홍천 내면을 찾은날은 4월 10일이다. 조그마한 마을에 장날이였다 장꾼이라곤 서너명에 불과했고 인적이 드문 장날의 풍경이였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이곳이 정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진것은 길거리에서 만난 초등학교학생들. 그리고 내면 중고등학교운동장에서 만난 학생들 이였다.
나를 본 모든 학생들은 전부 인사를 하는것이 아닌가 난 처음에 나랑 닮은 사람이 있어서 인사를 하는줄 알았다. 그러나 학생들이 한결같이 인사를 하는것을 보고..
참 사람들이 좋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꾸김없이 인사를 하는 학생들 그것이 진정한 산교육이 아니겠는가?
이런 학생들의 예의바른 행동이 아직도 가슴안에서 맴돌고 있다.
내면 다시한번 찾아 볼 예정이다...
살둔마을이나, 칡소폭포,통마람마을... 한반도지형..등 추억속에 간직해야지...
홍천군 내면 - 마지막 은둔의 땅
내면의 일반현황
홍천 내면은 넓고 높고 깊고 맑다.
내면은 넓다.
홍천군이 우리나라 시, 군 중에서 가장 넓다면 내면은 우리나라 읍, 면 중에서 가장 넓다. 다른 면가 비교하자면 글쎄.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교하는 식이다. 쉽게 서울 면적의 70%를 넘는다면 짐작이 갈까. 내면은 홍천 동쪽 끝에 있다. 지도에서 면 경계를 따라 색칠을 해보니 딱 중국처럼 생겼다. 동북쪽으로는 양양과 동남으로는 강릉, 평창과 북서로는 인제와 맞닿아 있다. 백두개간을 분수령으로 영동과 영서를 통하게 하는 두개의 관문(운두령과 구룡령)이 있는 곳이다. 남북을 잇는 31번 국도와 동서를 잇는 56번 국도가 내면에서 교차한다. 그렇다고 내면을 교통의 요지로 오해해선 안 된다. 그 넓은 땅에 큰 길은 딱 2개뿐이다. 나머지는 1개의 지방도와 임도, 산길로 통한다. 그나마도 길로 갈 수 있는 곳은 몇 곳뿐이다. 내면은 넓되 발 닿을 수 있는 땅은 손바닥만 한 곳이다. 그 넓은 여백을 산과 물줄기가 채우고 있다. 그래서 내면의 땅 임자는 '자연'이다. 내면은 높다. 동쪽으로 오대산(1,563m)과 계방산(1,577m), 북쪽으로 가칠봉(1,240m)과 구룡덕산(1,388m), 서쪽으로 응봉산(1,103m), 남쪽으로 문암산(1,146m)이 에워싸고 있다. 그 사이 사이를 1,000m가 넘는 고봉 30여 개가 비집고 솟아 있다. 내면은 사방이 1,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 자락에 걸터앉아 있는 셈이다. 평균 해발 600m. 내면은 고산 마을이다. 산 속에 갇힌 '육지의 섬'같은 곳이다. 홍천 내면 자운리와 평창 용평면 노동리를 가르는 운두령(1,088m). 구름도 쉬어간다는 이 험준고령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높은 고갯길이다. 차로 오를 수 있는 고개로는 제일 높다. 90도가 넘는 굽잇길을 꺾고 돌아 고갯마루에 오르면 손바닥 만하던 하늘이 열리고 백두대간 연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내면으로 가는 길, 달리 이정표를 찾지 않아도 된다. 구룡령, 아홉사리고개 같은, 차도 힘들어하는 고개가 이정표다. 높디높은 고개를 올랐다 싶으면 그 아래 땅이 내면이기 때문이다. 내면은 ‘사람 길’은 막히고 ‘하늘 길’만 뚫렸다.
내면은 마지막 은둔의 땅이다 위성방송시대에 국군방송만 나오는 곳이라면 확실한 '오지'일 것이다. 이태 전인가. 전기가 들어왔다고 신문에 나온 마을이 있었다. 누구라도 "여기 우리나라 맞아?"라고 실소하고 의아해 했겠지만 그런 오지 마을들이 내면엔 많다. 찾아가는 사람은 불편하겠지만 사는 사람은 살던 대로 사는 곳, 그 곳이 '오지'다.
내면, 산만 봐도 안다. 난을 피할만한 곳, 그게 '삼둔사가리'이다. 삼둔은 생둔(살둔), 월둔, 달둔. 사가리는 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거리. 삼둔은 홍천 내면에, 사가리는 내면에 잇댄 인제 기린면에 있다. 살둔. 삼둔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 살둔이다. 살둔은 원래 생둔(生遁)인데, 사람들이 살둔이라고 더 자주 부른다. 왜냐. 생둔의 둔은 산골 안 너른 땅, 그러니까 평평한 둔덕을 뜻한다고 한다. 때문에 삼둔(三遁)은 3곳의 둔덕이란 뜻이고 생둔(生遁)은 그중에서도 '살만한 둔덕'이란다. 살둔은 은둔의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 세조 때 사육신 후예들이 세상을 등지고 이 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지금 삼둔 중에 사람이 사는 곳은 살둔 뿐이다. 살둔에는 명소가 있다. 살둔산장이다. 마을 초입, 감자밭으로 산자락 밑에 다살색 2층집이 보인다. 그런데, 눈길을 끌게 생겼다. 귀틀집에 2층 누각을 얹었다. 내를 따라 3분거리. 이 집이 '한국 사람이 살고 싶은 집 100선'에 뽑혔던 집이란다. 내력도 많다. 1985년, 산악인이자 백담사 산장지기를 했던 윤 모 씨가 오대산 월정사를 복원한 대목을 데려다 지었단다. 통나무를 우물 정자로 쌓고 그 사이를 황토로 메운 귀틀 양식이다. 원래는 함석지붕이었는데, 기와로 지붕을 새로 올렸다. 운치 있는 집이다. 원래 이 집은 미진각(未盡閣)이었다고 한다. '다 못다 지은 집'이라. 산이 반, 물이 반이라서 '산반수반정'(山半水半亭)이라는 별칭도 있다고 했다. 2층 다락방의 이름엔 풍류가 넘친다. 침풍루(寢風樓). 바람을 베고 눕는다. '육침선방'(陸沈仙房)이라는 글을 쓴 액자도 띈다. 나오는 때를 못 만나 땅에 사는 신선이라는 뜻이라는데. 술 좋아하고 산 좋아한다는 이 집 주인의 면모를 알 듯 싶다. 그대로 들어 집으로 옮겨 놓고 싶다. 내면은 깊다. . [출처] 홍천군 내면 - 마지막 은둔의 땅|작성자 가야
내면의 연혁
내면은 홍천군 1읍 9면의 하나로 본래 강릉군에 속해 있다가 1895년에 내일면과 내삼면 두면으로 분할됐다. 내일면에는 가미동, 율전리, 조항리, 이현동, 광원리, 자운리, 창촌리, 생둔리, 원당리, 하북동, 소한리의 11개리를 내삼면에는 용연동, 미산동, 여차동, 아계동, 방내동, 성내동의 6개리를 관할하다가 1906년에 인제군에 이전되고 1914년에 다시 두면을 병합하여 내면이라하고 율전, 광원, 창촌, 자운, 미산, 방내의 6개리로개편됐다.
1945년 38선이 생기고 인제군의 대부분이 공산치하에 들어감에따라 그 나머지 지역은 모두 홍천군에 편입되었다. 1951년 인제군이 수복되었으므로 홍천군에 편입되었던 대부분 지역이 인제군에 복귀되었다. 1973년 7월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양군 서면 명개리가 흡수되고 내면 미산 8리와 3리가 인제군에 편입되어 6개의 법정리에 17개 행정리 72개 자연부락을 관할하고 있다.
#. 창촌리 본래 강릉군 내일면의 지역으로 조선시대에 창고가 있었으므로 창말 또는 창촌이라 하였는데 광무10년에 인제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따라 하북곡, 소한리를 병합하여 창촌이라하여 내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38선이 생기면서 홍천군에 편입되었는데 속칭 한이로도 불리어 진다. 1955년 설립한 내면중학교 1983년에 개교한 내면고등학교 1929년에 설립한 창촌초등학교 1963년에 설립한 소한분교가 있다. 3개리로 분할되어 있고 1리 중심지는 각종 상가가 있다. #. 광원리 본래 강릉군 내일면의 지역으로 조선시대 원집이 있었다하여 늘원이 또는 광원이라 하였는데 광무10년(1906)에 인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따라 가덕동, 쇠터울, 일어서기, 소월평, 실론, 월둔, 달둔, 을수동, 쇳골, 다릿골을 병합하여 광원리라 하였고 1945년 38선이 생기면서 홍천군에 편입되었다. 일명 너른장거리로 불리는 이 마을은 3개 행정리로 나뉜다. 1951년 설립한 원당초등학교와 광원분교는 1935년에 개교 했었다. 2리에는 권대감당이 있고 1941년에 건립한 전주이씨 열녀각이 있다. #. 명개리 본래 양양군 서면의 지역으로 메밀앗골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옛날 이곳에 어떤 사람이 메밀 아홉 이랑을 심어 아홉섬을 수학하였다는 데서 유래하는 명칭인데 지금은 동맥동으로 불리운다. 1973년 7월1일 양양군에서 홍천군 내면으로 편입됨1949년에 설립한 명개분교가 있다. #. 율전리 [출처] 홍천군 내면 - 마지막 은둔의 땅|작성자 가야
오지여행의 대명사, ‘3둔4가리’
오지 중의 오지 3둔4가리. 일부는 도로가 뚫려 속세와 만나게 됐지?3둔4가리는 아직까지 오지여행의 대명사로 꼽힌다. 3둔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의 살둔, 달둔, 월둔을, 4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그리고 명지거리를 말한다. 예언서 정감록에는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곳-피장처로 3둔4가리를 꼽고 있을 정도이다. ‘둔’은 산기슭의 펑퍼짐한 땅, ‘가리’는 계곡가의 살만한 땅을 뜻한다.
사방이 험산으로 둘러싸여 바깥으로 노출이 안되는 데다 물이 있고 경작 가능한 땅이 있어서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곳, 그러니 온 세상에 난리가 나도 능히 숨어살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방태산, 구룡덕봉, 가칠봉, 개인산 등 해발 1천2백∼1천4백m 급 고산자락에 깃들어 세속의 접근을 거부하고 원시의 자연미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사는 주민들은 3둔4가리의 속내가 매스컴에 알려지는 것을 극구 사양한다. 그 산골 마을 사이로 포장도로가 생겨나면서 3둔4가리는 피장처가 아니라 피서를 겸한 트레킹 명소로 변신하고 있다. 3둔 가운데 여행대상지로 추천되고 일반인들이 대중교통이나 승용차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살둔이고 4가리 중에서는 적가리 정도이다. 은둔의 땅.....살둔마을 먼저 3둔부터 여행을 떠나보자. 홍천군 내면 살둔마을을 소개하자면 내린천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내린천은 계방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자운천과 오대산 자락에서 흐르는 계방천, 그리고 점봉산에서 발원한 방태천이 합류, 50여km를 흘러내려 소양강 상류 합강에 이르는 하천이다. 내린천의 기점은 홍천군 내면 광원리 모래소 위쪽, 종점은 인제군 기린면 현리 소양강 합류점이며 홍천군 내면과 인제군 기린면에서 각각 한 글자씩을 따 이름이 지어졌다. 내린천은 모래소를 지나고 동강의 뼈대 같은 절벽 지대도 통과하면서 인제군으로 넘어가기 직전 살둔마을을 만난다. 하회마을처럼 물도리동을 이룬 살둔마을 앞 강변은 무지한 여행자들의 환경오염을 철저히 거부하는 곳이다. 56번 국도가, 446번 지방도가 지금처럼 포장되지 않았더라면 살둔은 오래오래 은둔의 땅으로 남았을 터이다. 지난 1995년 56번 국도가 완전 포장되면서 살둔은 도시인들의 접근을 허락했다. 대표적 오지 중의 하나였던 살둔마을 가구 수는 지금도 고작 8가구 정도에 불과하다. 밭농사 짓는 것이 주된 수입원이다. 살둔마을 정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살둔산장이 그곳에 있어서이다. 율전리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내린천과 합수하는 지점 강변에 산장은 2층집 구조로 서있다. 이 집은 1985년 윤두선이라는 사람이 처음 지었다. 통나무를 귀틀집 방식으로 올렸으며 2층 다락방이 독특한 외양을 이룬다. 다락방은 사방에 유리창문이 달려 늦잠을 잘 수 없는 곳이다. 앞 뒤 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계곡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온다. 함석 지붕이라 실내가 더울 듯하지만 안으로는 피나무 껍데기 등을 잘라 붙여 열기를 막아낸다. 그 독특한 건축 양식 덕분에 이 집은 모 출판사가 펴낸 ‘한국의 살고싶은 1백대 집’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1층 전면에는 툇마루가 둘려있는데 큰 방 앞에는 난간이 달려 있고 거기에 응접세트가 하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툇마루나 난간 적당한 곳에 편한 자세로 앉아서 소나무향기, 내린천 물소리, 산새소리를 듣고 있으면 욕심과 근심이 깨끗이 사라진다. 산장 손님의 90%는 산사람들이고 나머지 10%는 일반여행자들이다. 신선타운을 지나 월둔으로 월둔은 살둔으로 들어가는 신선타운 삼거리에서 삼봉휴양림 방면으로 1km 가량 가다가 왼쪽의 월둔교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지나고 민가가 끝나는 지점에 자동차 통행을 제지하는 차단기가 서있다. 그 안쪽이 월둔골이고 계속 산길을 올라가면 구룡덕봉과 아침가리로 이어진다. 매년 5월 말일까지는 영림서에서 산불예방을 이유로 통행을 금지시킨다. 그 뒤에도, 피서시즌을 포함해 연중 외부차량의 출입이 통제된다. 월둔골 안에 이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 있어서 그렇다. 일부 몰지각한 여행자들이 청산가리를 풀어 열목어며 산천어 씨를 말리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라고 마을 사람은 말한다. 차단기를 지나 아침가리와 구룡덕봉으로 갈리는 월둔고개 삼거리 지점까지는 도보로 1시간 가량 걸린다. 임시도로가 잘 닦여 있기는 하지만 승용차 통행은 어림없는 길, 4륜구동차라야 겨우 갈 수 있다. 그마저 마을 사람들이 통제하므로 월둔골은 물놀이피서지로 적당하지 않고 다만 구룡덕봉 등산이나 아침가리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의 트레킹 코스 중 일부라 하겠다. 해발 1,388.4m의 구룡덕봉(일명 참석봉)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대청봉, 중청, 끝청, 귀청 등 설악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지를 이룬 정상에는 쥐오줌풀이 군락을 이뤄가며 피어있다. 사방을 둘러보면 오대산, 계방산 그리고 홍천과 인제의 산하들이 가슴으로, 가슴으로 가득가득 밀려든다. 집터만 남아있는 달둔 적가리골 상류에 통나무집이 들어서 있고 주변의 마당바위와 2단폭포는 절경이다. 폭포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계곡 바람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피나무, 박달, 소나무, 참나무류 등 수종이 다양해서 계절에 따라 녹음, 단풍, 설경 등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열목어, 메기, 꺽지 등의 물고기와 멧돼지, 토끼, 꿩 노루, 다람쥐 등 야생동물도 다양하게 서식한다. 숙박시설인 산림문화휴양관은 다른 곳에 비해 우수한 시설이다. 9∼12인용 원룸형 숙소 9개가 있다. 방마다 수세식 화장실, 샤워시설, 싱크대, 가스스토브 등을 갖추었다. 야영장과 놀이터도 보유,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도 좋은 곳이다. 휴양림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방동약수는 위장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이름났다. 방동약수는 1670년 무렵 어느 심마니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하며 무색 투명의 광천수로 천연가스를 함유하고 있다. 약수터 바로 아래에는 민박집이 두어 채 있다. 아침가리, “소개하지도 말라” 어쨌든 호젓한 피서지를 고집하는 여행자들이라면 조경동분교를 지나 아침가리골 안쪽으로 더 들어갈 일이다. 싸리꽃과 망초꽃이 사이좋게 피어있는 원시림을 따라서 3km 가량 산중으로 가면 기막힌 절경 지대가 기다린다. 커다란 소가 산길 옆에 숨어있고 하얀 자갈밭이 시퍼런 물빛을 다소 누그러뜨린다. 연가리는 방태산휴양림과 방동약수의 초입인 방동교에서 쇠나드리 방면으로 한참을 가야 입구를 만날 수 있다. 방태천을 따라 형성된 추대계곡과 진동계곡을 지나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드디어 하천 건너편으로 연가리골이 숨어있다. 어디에도 연가리골을 알려주는 표지판은 없다. 물을 건너야 하고 민가도 없으므로 피서지로는 그리 알맞은 곳이 아니다. ◆ 여행쪽지(지역번호 033)
영동고속도로 속사나들목을 빠져나간 다음 운두령 고개를 넘는다. 홍천군 내면 창촌리에서 56번 국도를 타고 삼봉자연휴양림 방면으로 오르자면 광원리가 나타난다. 이곳의 신선타운휴게소에서 좌회전하면 살둔마을과 미산계곡으로 갈 수 있고 그냥 국도를 따라 직진하면 월둔마을 앞, 달둔 입구를 지나 삼봉휴양림 입구에 닿는다. 이 길은 미천골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 양양으로 이어진다. 숙박시설로 살둔산장(435-5928)이나 삼봉자연휴양림의 통나무집(435-8536), 휴양림 내 삼봉산장(435-8535) 등을 이용한다. 월둔마을에는 숙식시설이 없고 달둔 입구 56번 국도변에 하얀집 민박(435-8975)이 있다. 맛집은 광원리에 운형식당(033-435-7838), 동명양어장(435-7210), 신선타운(435-8702) 등의 맛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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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강산 원문보기 글쓴이: 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