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대보>
장롱 깊숙이 화선지에 싸여 있는 천은 횃대보가 분명했다. 열아홉 새색시의 혼수품이었던 한 폭 크기의 횃대보에는 부귀와 장수를 기원한다는 꽃과 나비가 수 놓여 있다. 양 끝자락의 ‘복(福)’ 字 는 글자이기 보다는 한 땀 한 땀 수를 놓으며 집안에 복이 들어오는 길을 트고 싶었던 엄마의 기도였을 것이다. 당신의 유난했던 손길이 그대로 묻어있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창문 가리개로 쓰면 제법 근사할 성 싶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벽에 못을 박아 긴 막대를 걸쳐서 옷을 걸었다. 횃대보는 벽에 걸어둔 옷에 먼지가 앉는 것을 막아 주는 커다란 천으로, 걸어둔 옷이 보이지 않게 미관상 가리개 역할도 했던 보자기 농이었다. 안방 벽장엔 언제나 부모님의 옷이 걸려 있었고, 그 옆 한쪽 면에 길게 놓인 횃대보에는 우리 오남매의 옷들이 들어앉아 수다 꽃을 피웠었다. 카라가 반짝이는 언니오빠들의 교복과 바깥나들이 할 때 입을 동생과 내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벽에 다소곳이 걸린 새하얀 옥양목의 횃대보에는 호랑나비가 멋진 날개무늬를 팔랑거리며 꽃 주위를 맴돌며 날아다녔다. 청실홍실로 살아 움직이는 듯 수(繡)놓인 천에는 모란꽃잎 뒤에 숨어 겨우 꽁무니만 드러낸 노랑나비도 있었다. 다섯 살 계집아이는 횃대보의 빈 공간을 바라보며 늘 꿈을 꾸었다. 팔베개를 하고선 붉은 모란에 혼이 빼앗긴 나비가 되기도 했다.
횃대보가 걸린 아랫목은 엄마가 불을 지펴 언제나 따끈따끈했었다. 호롱불 아래 윗목에 앉은 엄마가 해어진 양말을 기울 즈음, 우리는 아랫목에서 가마솥에 찐 고구마와 동치미 무를 먹으면서 귀신이야기에 온몸이 달달 소리가 나도록 떨었다. 그럴 때면 보자기 농 안의 옷들도 주인들처럼 서로를 바투 끌어당겼고, 솜이불 밑, 얼기설기 얹힌 다리 사이로 솔가지 군불의 온기가 끝없이 퍼져나갔다. 오늘처럼 겨울바람이 무섭게 울어대면 방바닥이 익는 달큼한 그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다.
횃대보 안은 안식처였다. 동냥을 얻으러 오는 걸인이나 험상궂은 사람이 대문을 들어설 때엔 쪼르르 횃대보 속에 숨었다. 때로는 엄마에게 혼이 나 속이 상할 때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약 구하기가 수월치 않았던 그 때, 큰오빠가 시름시름 앓자 엄마는 한밤중에 낯선 사람을 데려와 치성을 드렸다. 창호지에 난 구멍 사이로 숨죽여 지켜본 광경은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느닷없이 부엌칼로 방 문살을 드르륵 긁는 바람에 얼른 횃대보를 들추고선 뛰어들었다. 그 곳에 있으면 엄마의 자궁처럼 포근하여 오소소 소름이 돋았던 마음이 금세 편안해졌다.
횃대보는 웃음을 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언니 오빠와 숨바꼭질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는 거기로 숨어들었다. 언니 치마로 얼굴을 휘감고선 두 발은 그 아래로 쏙 내밀은 채 몸통만 횃대보 안으로 숨겼다. 술래가 일부러 못 찾는 척을 하면 잔뜩 힘이 들어간 옹그린 발가락과 등짝에는 땀이 삐질거렸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식구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꼬마는 제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것이다. 지명을 넘긴 지금에 딱 고만큼의 영혼이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고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들, 사는 일이 절벽 끝에 선 것처럼 아득해질 땐 세상사 다 잊고 순진무구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횃대보에는 꿈이 있었다. 심심할 때는 그 안에서 혼자 놀았다. 나란히 걸려 있는 옷들이 마치 우리 형제들처럼 여겨져 온전히 나를 감싸주는 것 같았다. 그 옷들을 손으로 매만지고 냄새도 맡으며 상념에 빠지곤 했다. 옹기종기 걸린 옷들처럼 우리 형제들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같이 있을 줄 알았다. 그 안은 언제나 든든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그런데 횟대보 속에 걸린 옷처럼 끈끈하게 이어졌던 우리 오남매의 두터운 우애는 어디로 달아나버린 걸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여물자 배필을 만나 저마다 터전을 찾아 나섰다. 나름의 제 몫을 하며 발붙이고 사느라 옆을 돌아다볼 겨를도 없다. 그래도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암탉날개깃에 병아리 모이듯 엄마의 횃대보 속으로 쪼르르 몰려들었다.
이제는 그런 일은 까마득한 옛 이야기가 되었다. 각자의 삶이 허락하지 않는 탓도 있을 테지만, 우리를 감싸주던 엄마가 먼 길을 떠난 뒤 우리의 횃대보도 사라져버렸다. 요즘은 겨우 부모님 제삿날이나 얼굴을 마주할 뿐, 거의 남남처럼 지낸다. 오남매를 아우르던 엄마의 부재가 불빛을 잃은 밤배들처럼 저마다 떠다니게 하는 것이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전화 한 통으로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겠느냐 자위하며 서로의 무심함을 두루뭉술하게 넘긴다. 몸만 건강하면 된다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굳이 함께 뭉쳐야할 의미를 찾지 못하고 시큰둥하긴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입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안부를 전하지만 텅 빈 가슴에는 서늘한 바람이 분다. 방금 목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허우룩한 마음은 피붙이들이 그립다.
멀리 있는 형제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좋다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 한구석에 그늘이 내려앉는다. 오남매는 대구와 서울 경기도 그리고 바다 건너에 흩어져 있다.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 내에 오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바쁘다는 핑계로 마주앉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저 형식적인 혈육의 관계만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무관심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창 있는 벽에다 횃대보를 건다. 말갛게 빨아서 뽀송하게 풀을 먹이고 다림질을 한 옛 옥양목을 걸자, 추억이 방안 가득 들어선다. 모란과 나비 아래서 귀신 이야기로 밤새는 줄 모르던 지난 세월이 피어오른다. 여기에 오남매들이 모인다면 어찌될까, 비록 그 시절의 귀여운 꼬마는 아니나 횃대보 속에 몸을 숨기려는 어쭙잖은 나를 보고 한바탕 웃음꽃이 터지리라. 배를 잡고 나뒹굴다가 젖어드는 눈가와 뭉클해진 마음 따라 어느새 우리들의 옛정은 촉촉해지리라. 어리는 조명등 불빛에 모란이 더욱 붉다.
< 심사평 >
제1회 삼성앤유 시, 수필 공모전에는 첫 회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작품을 투고해 성황을 이루었다. 총 4657편의 작품은 엄정한 예심을 거쳐 시와 수필은 30편씩, 동시는 50편이 본심에 올라 2차에 걸친 심사 과정을 통해 모두 65편의 작품이 수상의 영예을 차지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공모전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삶의 뒷면에 시선을 주는 행위이고 삶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순간을 다시 기록하는 일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최후의 순간, 현실적인 목적이나 이해관계를 잊은 채 자기 삶의 깊은 시간을 마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언어의 섬세함과 진실함은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소통의 계기를 선사한다.
예심을 통해 올라온 작품들은 고른 수준을 자랑하고 있어서 심사위원들이 수상자를 결정하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의 채점과 토론을 거쳐 결정된 각 부문 수상작들은 문학적 글쓰기의 진정성과 정교함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대상으로 결정된 솔미숙의 ‘은행나무 부족’은 아름답고 순수한 상상력이 빚어낸 작품이다. ‘오백 살이 넘는다는 은행나무’ 안에 ‘멸종되어 잊힌 어느 순한 부족이 그 속을 환하게 살고 있다’는 상상에 착안한 시이다. 상상적 공간의 신선함과 신화적 뉘앙스는 물론이고 현대 세계에서 절실한 생태적 상상력의 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 시는 자연의 깊은 신비를 체험하게 해주는 동시에 ‘잎과 꽃의 선한 메시지를 전하며’ 함께 산다는 것의 현대적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수필 부문 대상작인 정재순의 ‘횟대보’는 아스라한 기억의 한 이미지를 섬세하게 재생하고 있는 산문이다. ‘횃대보는 벽에 걸어둔 옷에 먼지가 앉는 것을 막아주는 커다란 천’이며 일종의 ‘보자기 농’이다. 이 물건에는 ‘한 땀 한 땀 수를 놓으며 집안에 복이 들어오는 길을 트고 싶었던 엄마의 기도’가 스며들어 있고, 그 옛날 ‘다섯 살 계집아이’는 그 속에서 ‘붉은 모란에 혼이 빼앗긴 나비가 되기도’ 하는 꿈을 꾸었다. 횃대보의 공간은 가족의 따뜻한 안식처이고 오 남매에게 웃음을 주는 공간이었으며, 그것의 부재는 어머니의 공간의 부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는 그 횃대보의 재생을 바라는 글쓰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내밀하고 따뜻한 공간을 다시 상상하게 해준다.
동시 부문 대상작인 신하정의 ‘우리 엄마다!’는 어린이의 솔직하고 순수한 마음결이 고스란히 드러난 맑은 작품이다. 동생을 돌보느라 자신에게 신경 써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섭섭했던 마음은 비 오는 날 뜻밖에 데리러 와준 엄마를 보면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의 순간을 경험한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그 장면 속에서 같이 느끼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이 동시는 어떤 형식적 기교 없이도 맑은 동심의 한가운데로 우리를 단번에 초대한다.
심사위원장 이 광 호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첫댓글 정선생님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오늘 또 하나 배웁니다.
저는 횃대보를 몰랐습니다. 부끄럽게도 ㅎㅎ
횃대보....그런 것이 있었군요.
아무튼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며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쭈욱 좋은 작품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홍 선생님 고맙습니다.^^
실은 저도 알게 된지 얼마되지 않습니다.
칠월 오일 프린스호텔에서 뵈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애선 문우님,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공부하시더니 좋은 결과 낳으셨군요. 그런데요, 순전히 제 개인적인 의견인데요. 제가 알고 있던 정애선이라는 이름보다는 정재순이라는 본명이 필명으로 더 좋을 듯 해서 강력히 권하는 바 입니다.
애정어린 말씀 고맙습니다.^^
주위에서 그런 조언을 주시는 분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앞으론 필명을 '정재순'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