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SBS에서 주목을 끈 특집 방송이 있었다.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인상적인 제목의 다큐멘터리에서는 신축한 아파트에서 나오고 있는 독성 물질에 대해 충격적인 보고를 하고 있다. 이 방송을 계기로 ‘새집 증후군’이란 말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새집 증후군’는 영어의 sick-house syndrome, 혹은 sick-building syndrome이라는 말을 번역한 것이니까 좀 더 원어의 의미에 가깝게 쓰자면 ‘아픈 집 증후군’이라고 해야겠지만, 아마도 ‘집이 아프다’라는 뜻으로 잘못 해석되기 쉬우며,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새 집일 경우 거의 100% 엄청난 독성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의미가 쉽게 와 닿을 수 있도록 ‘새집 증후군’이라는 말로 쓰기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어쨌든 이 복합 단어는 신축 건물이나 실내 공간에 유해물질 농도가 높은 건물 내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때 생기는 부정적인 신체적·정신적 증상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새 집을 짓더라도 이런 문제가 거의 생기지 않는 방식으로 지을 수 있으며 지은 지 오래 된 집이나 건물이라도 새로 내부수리를 하거나, 위치가 좋지 않아서 구조적인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화학물질 등 독성 물질을 많이 사용하면서 환기를 잘 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이런 증상들이 생기기 때문에, ‘새집 증후군’이란 말은 사실은 적절한 단어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아픈 집 증후군’이라는 말로 쓰고 싶으니까 독자들의 양지를 바란다.
원래 의미의 아픈 집 신드롬에 어떤 증상이 포함되어 있는지 손에 잡히는 몇 가지 문헌에 나와 있는 대로 열거해보겠다. 무기력, 집중력 저하, 미각과 후각의 저하, 짜증, 탈모, 때 이른, 혹은 갑작스러운 백발, 구내염, 두통, 멀미, 식욕감퇴, 피부 발진, 방향 감각 상실, 어린이의 성장 저해, 초조, 피로, 우울증, 공격성, 의욕 상실, 두통, 나른함, 불안, 불면증, 현기증, 운동 기능 상실, 기억력 저하, 지능 감소, 마비, 근육 경련, 변비, 설사, 위장 장애, 코·목·눈의 이상, 시력 저하, 알레르기, 독감, 천식, 호흡기 염증, 관절통, 골다공증, 고혈압, 저혈압, 흉부 통증, 신경 손상, 재생불능성 빈혈, 호흡곤란, 생리불순, 발열, 백내장, 폐섬유종, 백혈병, 발암, 심장마비, 면역력 저하, 기형아 출산, 유산, 정신분열… (Martlew 외 1991, Pearson 1998, 石川哲 1999) 이밖에도 얼마든지 이어진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모든 육체적·정신적·지적인 기능이 엉망이 되는 상태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아픈 집 증상이 현재 우리 사회에 보급되어 있는 주택이나 건물 실내 공간에 다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신축 건물 등 문제가 특별히 더 심각한 주거 공간에 살게 되면 이런 증상들이 더욱 강화되어 나타난다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또한 청소년이나 어린 아이들일수록 더 심하게 겪고 있다. 다만 유아나 청소년의 경우는 신체적 증상을 어른들에게 말로 잘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표현력이 부족해서도 그렇겠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것이라 특별히 문제라고 느끼지 못해서 그러는 경우가 더 많다) 피부염이나 기침, 발열 등 눈에 띄는 증상이 아니면 어른들이 잘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짜증이나 정서불안, 공격성, 집중력 부족 등 정신적·지적 장애 증상들은 그 아이의 인성의 부족함으로 돌려지지, 환경 요인에서 오는 신경 계통의 손상으로 생기는 결과라고는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 요즘 우리들의 의식 수준이다.
물론 이런 증상들이 주거 환경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공기가 나쁘고 먹거리도 오염되어 있으니까 그런 데서 오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일생에서 90% 가까운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고 있고, 대부분의 경우 실내 공기에는 바깥 공기보다 훨씬 더 많은 독성 물질이 농축되어 있으며, 24시간 호흡을 통해서, 그리고 빈번한 접촉으로 피부를 통해서 이런 독성 물질이 체내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주거 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아픈 집 증후군의 주범은 화학물질
왜 이런 문제들이 생길까? 주거 환경 중에서 인체의 작용을 저해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그런 나쁜 주거 요인에 대해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수맥이나 전자파, 소음, 자동차의 배기 가스 등에 대해서는 이미 주의를 기울일 만큼 기울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아픈 집 증후군’, 혹은 ‘새집 증후군’이라는 말은 이제 막 우리 사회에 소개되기 시작한 정도로서 일반 대중은 아직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임은 물론이고 대충 짐작하는 의미로라도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지도 못한 상태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70년대부터 이 말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가 공식적인 병으로서 인정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처음에 이 아픈 집 증후군의 원인을 ‘심인성’인 것으로 분류하였다가 1990년 입장을 바꾸어서 실내 공기 중에 존재하는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증상으로 다시 분류하였다.
여기서 잠깐 용어의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화학방정식으로 표시될 수 있는 화학물질이다. 공기도 물도 쌀도 화학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화학물질의 유해성 논란에서 말하는 화학물질은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할 때 쓰이는 ‘화학물질’(chemical)이라는 말은 보통 ‘인공적으로 합성된’, ‘유해한’, 혹은 ‘독성이 있는’ 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된 의미에서 쓰인다. 앞으로 이 글에서도 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화학물질’이라는 말은 ‘유해 화학물질’과 같은 의미로 쓰고 싶다.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를 잡기 어렵다. 해마다 2천 종이 넘는 화학물질이 새로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영국에서 나온 문헌에서는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6만 종이 넘는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 나온 문헌에서는 8만 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00년대 초 일본에서 나온 문헌에서는 일본 국내에서 쓰이는 것만 6만 5천 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 나온 문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학물질이 1만 종이 넘는다고 한다.
어느 숫자가 진실에 가깝든 그것은 엄청난 숫자이다. 이런 물질들 중에는 이미 유해성이 확실히 입증된 것이 많다. 맹독성, 발암성, 기형유발성 등의 확실한 딱지가 붙은 것들이 많다. ‘환경 호르몬’(이것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용어로서 보다 정확하게는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다)이라는 말은 인체 내에 들어와서 호르몬 작용을 교란시키는 물질을 가리키는 말인데 맹독성 물질보다 범위가 폭 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다른 물질도 아직 유해성 여부가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 뿐이지 결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화학물질,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면 왜 이런 화학물질들이 그렇게 온갖 병적 증상을 다 일으키는가? 한 마디로 하자면 이런 화학물질들이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순간의 멈춤도 없이 외부 환경과 상호 작용을 한다. 상호작용의 경로는 호흡, 피부 접촉, 음식물과 수분 섭취 등이다. 이런 환경 속에는 눈에 보이거나 기타 감각기관으로 감지할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무수한 물질들이 있다. 이런 물질 중에는 물론 인간의 몸에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어떤 것이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것일까? 인간이 그 물질을 자기 생명 유지에 유용하게 쓸 수 있으면 좋은 물질이고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무해무익하거나 아니면 유해한 물질이다. 그 판단을 내리는 기준은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정보 속에 있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 속에서 그 당시 자기가 몸을 담고 있던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유전자 정보를 축적해왔다. 예를 들어서 인간은 산소가 이 지상에 충분히 생긴 다음 생명체로서 진화했기 때문에 산소를 이용해서 살게끔 몸이 설계되어 있다. 인간의 유전자 정보는 자기 주변에 있는 다양한 물질들이 인체에 들어왔을 때 처리하는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질은 적극적으로 영입하여 이용하고(물, 공기 속의 산소, 역시 공기 중에 존재하는 식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등 치유 물질, 여러 먹거리 중의 ‘영양분’이 이에 해당된다), 별로 필요 없는 것은 배설하며, 해로운 것은 적극적으로 쫓아내거나 (대표적인 것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등 병원체이다) 아니면 빨리 분해해서 별로 해가 되지 않는 물질로 만들어 배설해버린다(주로 독성물질이 이에 해당된다).
만일 인체가 새로운 물질을 접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신속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물질이 상당량 신체에 유입되어도 별 반응을 하지 못한다. 계속 그런 물질이 들어오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분해하거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노력한다. 아토피 증상은 이런 물질을 분해하는 힘이 특별히 약한 사람이 총력을 다해서 이런 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과정이다. 이런 저런 노력을 다해 봐도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그런 물질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 몸은 체념하고 거기 적응하려고 한다. 겉으로는 아무런 급작스런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속으로는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물질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다.
이렇게 체내에서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물질이 쌓이게 되면 그 물질이 몸 안에 있는 물질과 반응을 하기 시작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모든 물질은 화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반응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떤 물질이든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 중에 외부물질로서 우리 몸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과 아주 쉽게 반응해서 그 체내 물질의 원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막는 물질을 유해물질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잘 아는 유해물질인 일산화탄소는 산소보다 훨씬 더 빨리 철분과 결합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 몸에 들어오면 모든 철분이 먼저 일산화탄소에 붙게 된다. 철분은 우리 혈관 속에 산소의 전달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몸 안에 일산화탄소가 많이 들어오면 산소 부족 증상이 생겨 멀쩡해 보이는 공기 속에서 질식사에 이르기까지 한다.
일산화탄소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인간보다 더 오래 되었으며 인간의 인식 영역에 들어온 지는 한 세기가 넘는다. 이런 물질에 대해서도 대응을 잘하지 못하는데, 해마다 2천 종이 넘는 물질이 새로 개발되어 우리 생활환경 속으로 쏟아 부어지는 상태에서 우리 몸이 이 모든 물질에 잘 대처하길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 세부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다. 수만 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우리 생활환경 속에 존재하는데, 이 중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또 사람마다 면역 능력과 신체 구조가 다르다. 그러므로 어떤 물질이 사람 몸에 들어와서, 몸 속에서 생명작용을 수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체내 물질과 어떤 식으로 반응해서, 어떤 모양새로 표면적 증상이 나타날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과학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발달한다 해도 기대하기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상 상태는 처음에는 재치기나 콧물 등으로 쫓아내려는 과민 반응을 보이는 ‘화학물질과민증’으로 나타난다. 심해지면 피부가 짓무르고 천식이 생기는 ‘아토피’ 증상을 거쳐(‘아토피’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영어의 abnormal, 우리 말의 비정상에 해당하는 말이다) 점차 간기능, 혈압, 기타 내장의 문제가 가시화되는 ‘생활습관병’을 거쳐 결국에는 암이나 에이즈, 자가면역증과 같은 치명적인 병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너무 새로워서 우리 몸이 감당할 수 없는 화학물질을 우리는 ‘유해 화학물질’이라고 하며, 특히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물질과 화학구조가 비슷하여 몸 안에서 빨리 반응하는 물질일수록 ‘맹독성’이니 ‘발암성’이니 하는 딱지가 붙여진다. 물론 이것은 인간이 실험실에서 그 물질의 성질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던 물질에 해당되는 말이다. 이런 물질만 목록으로 만들어도 두꺼운 책으로 몇 권이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정도의 양도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누구라도 의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나쁜 물질을 왜 그렇게 많이 만들고 많이 쓰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이 글에서는 자세한 대답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대 문명의 기초부터 근본적으로 의문시해야 하며 자본주의 경제 체계, 더 많은 파워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같은 경제적·철학적 검토도 따라야 하며, 더 깊이 들어가면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종교적인 논쟁까지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짚어두자. 우선 처음부터 그렇게 나쁜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농약, 합성 섬유, 프레온 가스 등 초기 단계의 화학물질들은 대부분 인류를 구원해줄 기적의 물질로 환영을 받으며 등장했다. 둘째로는 너무 쉽게 싼 값으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요즘 유해물질로 꼽히는 새로운 화학물질은 대부분 석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물질들이다. 셋째로는 이런 물질들은 외관은 얼마든지 좋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요소를 중시하는 현대 문명 속에서 대중들의 환영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물질들로 엄청난 부를 획득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이런 물질의 눈에 보이지 않는 독성에 관한 진실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사태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는 것이다.
주거 환경 속의 유해 화학물질
주거 환경 내에는 어떤 유해 요인들이 있을까? 우리 사회의 도시 생활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보급되어 있는 아파트 내부의 공간의 꾸밈새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먼저 안방. 장롱의 재료인 목재에서는 뒤틀림을 막고 외관을 좋게 하기 위해 포름알데히드, 카르벤다짐, 디엘드린 등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이 쓰인다. 요즘 일반적으로 시판되는 장롱 안에서는 독성이 강해 벌레가 생길 수가 없는데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좀벌레를 막기 위해 나프탈렌 등 방충제를 넣는다. 실내에는 신경계를 손상시키는 발암 물질인 나프탈렌의 기체까지 합쳐져 농축된다.
침대에도 목재 부분은 가구와 비슷한 화학물질이 쓰였으며, 합성 섬유로 충전하고 커버를 만든 매트에서도 포름알데히드, 합성수지 증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온다. 새로 산 이불이며 베드 커버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는데, 아무리 빤다 해도 합성 세제로 빠니까 역시 해롭다. 그것도 모자라서 요즘은 방향제를 겸한 섬유유연제 등 세제 첨가물이 듬뿍 첨가된다. 포름알데히드, 암모니아, 트리클로로에틸렌 외 다양한 합성물질들에 코와 입과 피부를 대고 자는 셈이다.
벽지는 공기가 통하지 않으며 화학물질 범벅인 합성 소재로 제조된 것을 합성 접착제를 잔뜩 발라 붙인 것이고, 바닥재는 상온에서도 환경 호르몬이 다량 배출되는 PVC를 주원료로 한 합성 장판을 쓴다.
창문은 이중창으로 밀폐성이 좋기 때문에 소음 방지 등을 위해 꽉 닫아 두면 자고 있는 동안 가구와 내장재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차곡차곡 누적되어 호흡을 통해 무방비 상태의 몸 안에 깊숙이 침투한다. 이런 물질들은 자고 있는 동안에 피부와 호흡을 통해서 끊임없이 몸 속으로 들어가 호흡중추를 교란시켜 산소 호흡 효율을 떨어뜨려 코를 골게 하고 숙면을 방해하고 불면증과 악몽의 원인이 되며 면역력을 저하시킨다.
거실에서는 보통 벽지와 바닥재로 더욱 유해성이 큰 소재를 쓰는 경우가 많다. 요즘 유행하는 데코 타일 같은 것은 합성 마루 바닥재로 본드를 듬뿍 칠해 한 장 한 장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합성 바닥재보다 훨씬 유해하다. 천연 소재라고 해서 나무를 쓴다 하더라도 유럽산 저공해 강화 마루 같은 것을 제외하면 나무 자체가 방부성과 열전도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많은 화학물질에 절여져서 나오므로 유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소파는 가죽 소파이든 천 소파이든 포름알데히드나 염화에틸렌 같은 독성 물질로 가공한 것이며 합성 가죽이라면 색소에 든 포름알데히드 외에도 소재 자체에서 환경 호르몬이 거의 영구적으로 나온다. 소파나 의자의 쿠션인 폴리우레탄도 염화 비닐 등 독성 물질이 든 플라스틱 기체를 끊임없이 방출한다.
거실의 실내 공기 오염원 중 중요한 것의 하나로서 주방에서 나오는 가스 레인지 배기 가스도 추가된다. 요즘 웬만한 아파트에서는 주방과 거실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스 레인지의 배기 가스는 자동차 배기 가스 못지않게 유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로에 자동차가 많을 때처럼 농축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이산화질소나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물질이 연소되는 연료 양을 기준으로 보면 더 많이 나온다. 이런 유해물질 중에는 공기보다 무거운 것이 많아 바닥에 가까운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기나 어린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피해를 많이 받게 되어 있다.
주방에서는 가스 레인지의 배기 가스 외에도 주방용 세제, 특히 주방을 깨끗이 유지하기 위해 쓰는 세척제 종류가 쓰여서 역시 유해물질 발생원이 되고 있으며 플라스틱 식품 수납 용기, 부엌 바닥에 까는 라텍스 매트 등도 상온에서도 끊임없이 환경 호르몬을 방출시키고 있다.
놀이방의 성격이 많은 어린 아이의 방의 경우 장난감의 재료인 플라스틱에서 발생하는 환경 호르몬이 큰 오염원이 된다. 유럽에서는 어린이들이 입에 넣게끔 만들어진 장난감은 생산 금지 조치를 검토 중이다. 시민단체들은 아기들은 어떤 장난감이든 입에 가져가기 때문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든 장난감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나라에서 위험성이 대중적으로 홍보됨에 따라 판매량이 급감해가는 덩치가 큰 PVC 장난감(실내용 PVC 미끄럼틀, PVC 모형 집, PVC로 만든 식탁과 의자, PVC 자동차 등)이 판로를 찾아서 밀려들어와 성업 중이다. 때문에 이전보다 아동들이 노는 공간에 남성 호르몬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한 프탈레이트 등, PVC에 가소제로 사용된 환경 호르몬 기체가 훨씬 농도 짙게 떠돌고 있다.
학생 방이나 서재의 경우, 대부분 넓지 않은 공간에 원목이나 MDF로 만든 책상, 의자, 책장 등이 꽉 채우고 있다. 원목은 페인트 칠은 하지 않지만 좀벌레와 뒤틀림을 막고 자연스러운 광택을 내기 위해서 트리클로로에틸렌 등 발암성 독성 물질에 몇 개월이나 담갔다가 건조시켜 만든다. MDF는 나무 가루를 합성 접착제를 써서 압착하여 만든 것이니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새로 사들이는 책의 종이와 인쇄 잉크에도 포름알데히드, 톨루엔 등 유해물질이 많이 쓰인다.
욕실 및 화장실은 실내 공간 중에서도 특히 오염물질의 농도가 높은 곳이다. 대부분 욕실과 화장실이 한 공간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필요 이상으로 많은 샴푸 린스 바디 클린저 등 합성세제, 향료 등 화학물질이 많이 든 화장비누, 기타 합성세제, 표백제와 향료, 물감이 든 화장지, 타일 세척제 등을 수납장에 촘촘히 진열해놓는 경우가 보통이다. 여기에 특히 공동주택의 온수에는 원래 수돗물에 든 염소나 트리할로메탄 등 화학물질 외에도 파이프의 부식 방지를 위해 독성이 강한 클로르포름이나 트리클로로에틸렌 등이 들어 있다. 이것도 모자라서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면 분사하는 스프레이식 방향제를 쓰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생명 현상 중에 가장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인 휴식과 배설을 해야 하는 좁은 공간에서.
방향제의 사용은 끔찍스러울 정도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공공장소에서는 질식해버릴 것 같은 짙은 농도로 방향제를 분사해대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냄새에 따라 성분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기본 성분은 뇌와 신경 계통에 손상을 입히는 트리클로로에틸렌이라는 사실을 대중적으로 알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밖에도 꼽자면 한이 없지만 지면의 제약 상 이 정도로 하고, 모든 공간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며 계절에 따라 사용되는 추가적인 오염원을 두 가지만 더 지적하자. 날씨가 따뜻할 때는 실내용 살충제, 추울 때는 난방 기구가 그것이다.
살충제의 독성은 양만 많으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것이고 양이 아무리 적더라도 지속적으로 흡입하면 면역력 저하 등 각종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아무리 냄새가 나지 않거나 향기로운 냄새가 나며 아무리 디자인이 좋은 훈증기에 들어 있어도 그것이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난방 기구는 전기를 사용하는 것만 빼고 겨울철 실내오염에 심각한 요인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새 집의 경우에는 문제가 또 한 차원 더 심각해진다.
우선 이상에서 말한 오염물질이 엄청나게 짙은 농도로 농축되어 있다. 공업제품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의 발생량은 시간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생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품일수록 유해물질이 많이 방출된다. 새로 산 물건이 많이 들어 있거나 새로 인테리어를 개조한 공간 내부 실내 공기 속에 존재하는 유해물질의 양은 처음 1년은 그 다음 1년에 비해서 수십 배 이상 높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외부 공기와 희석되어 가지만, 10년이 지난 후에도 가구나 내장재에서는 미량일지라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그 엷어져 가는 정도는 그 물질의 휘발성이 얼마나 강한지, 또 실내 공간의 환기가 얼마나 잘 되는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이에 덧붙여서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이 새 집에는 있다. 엄밀히 말하면 시멘트 콘트리트를 사용한 신축 건물에 있는 문제다. 우선은 시멘트에 포함되어 있는 유해물질이며 다음으로는 시멘트가 완전히 말라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미세 시멘트 먼지가 문제다.
시멘트에는 라돈 등 방사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분해 되어 유해성이 약해진다. 물론 완전히 분해 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지만 당연히 초기일수록 방사능이 강하다. 이밖에도 점착성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첨가물질이 사용되는 데 이런 물질의 유해성 역시 심각하다.
신축 건물은 물론 시멘트가 다 굳은 다음 내장 공사에 들어가지만, 수분이 완전히 마르려면 1, 2년 걸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미세한 마른 시멘트 가루가 자꾸 표면에 쌓이게 된다. 이 시멘트 미세 먼지는 호흡을 할 때 우리의 호흡기 깊숙이 침투하며, 또 피부를 통해서도 혈관 속으로 침투한다. 시멘트 먼지 자체도 대단히 위험한 것이지만 이런 미세 먼지들이 표면에는 화학물질을 붙여서 우리 몸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화학물질이 많은 공간 속에 미세 먼지도 많으면 실제로 우리 몸이 입는 피해는 엄청나게 증폭된다.
이쯤 되면 ‘아픈 집’(sick-house) 정도가 아니라 ‘생명을 죽이는 집’ (killing-house)라고 해야 할 정도라고 말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생명을 죽이는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생명들
위와 같이 주거 환경 속의 오염원을 간략히만 짚어보아도 ‘인간의 생명’은 참 질기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오염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태어난 인간의 경우이다. 그런 사람은 면역력이 웬만큼 갖추어져 있어 어느 정도 피해를 막아낼 수 있다, 물론 그런 세대에 속하는 40대 이후부터도 급격하게 암이나 기타 난치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오염된 공간에서 생명이 시작된 생명체의 경우에는 어떨까? 아예 생명의 탄생까지 결실을 맺지 못하거나(요즘 도시의 주거, 특히 신축 아파트에 사는 임산부의 자연 유산율이 상당히 높다), 태어났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환경 속의 오염물질과 처절한 투쟁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현재 서울 시내 초등학교 1학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아토피 증상이 완전히 없는 아이는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는 보고도 있다). 겉으론 별 문제가 눈에 띄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라면서 보면 지능이 떨어진다든지 성격이 불안하다든지 면역력이 약해지는 경우도 많다(먼저 쓴 글『아토피와 학력 저하』에서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대규모 아파트 건설 사업 이후 태어난 학생들의 학력 저하 문제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주거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머리도 총명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온순한 성격에 운동 능력도 뛰어나길 바란다면 처음부터 계산이 잘못된 것이다. 끊임없이 생명 작용을 방해하는 공간에서 90%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아무리 사교육비를 많이 들여 첨단 교육 방식으로 학습과 교양, 운동 능력을 키워주려 노력하려 한들 큰 효과가 있을 수 없다. 물고기가 물 밖의 세상을 모르듯 그런 아이들은 이런 공간 이외에 다른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냥 세상이 짜증스럽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어른들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에 자기 자신을 평가 절하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 환경오염이 심하지 않았던 시절에 태어난 기성세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X-세대라고까지 부르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이렇게 처음부터 생명을 죽이는 생명 공간에서 규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이 글을 시작할 때는 ‘생명을 살리는 집’을 만들기 위한 대안 제시 부분도 계획했었지만, 지면의 제약 상 일단 문제 제기에서 매듭짓기로 한다. 이어서 지금 현대의 상황에서 가능한 개선 방법은 어떤 것인지, 앞으로 나가야 할 장기적인 계획에는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부분도 또 하나의 글로서 계획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