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6. 05. 11(수)
윤동주 시인(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은 1943년 5, 6월경 도시샤대 유학 시절 학우들과 우지로 야외
송별회를 나와 생전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그해 7월 윤 시인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돼 수감생
활을 하다 옥사했다. <동아일보DB>
▲1990년대 복원한 윤동주선생 생가윤동주시인의 생가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본래의 생가가 존재
했었다.
그러나 그곳에 살던 분이(어느 학교의 교사) 이사를 가려고 집을 팔려고 하였으나 워낙에 도심과 떨어진 곳
의 집이다 보니 집이 팔리질 않았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집을 헐어서 목재만 팔아버렸다고 전한다.
그 후 1990년대에 이르러 선생의 기념사업회 측인 연세대학교에서 복원 하면서 원래의 집터에 옆 동네에
있던 비슷한 년대의 집을 헐어다가 복원한 것이다.
▲윤동주시인의 생가 옆에는 어정쩡한 건물로 보이는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원 건물로 윤동주의 스승
이자 외삼촌이었던 김약연목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김약연목사의 기념비가 있다.
▲윤동주 기념관 옆 적색 벽돌 건물이 윤동주의 스승이자 외삼촌이었던 김약연 목사가 목회 활동하던 옛
교회 건축물이다.
▲김약연목사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