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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2018년을 보내며
그냥 몽땅 주님의 은혜 였습니다.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특별히 그동안 개척한 교회들은(7개교회) 3년전에 후배 선교사님들에게 맡기고 저는 2008년부터 해오던 목회자 성경학교에만 올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늘 말씀에 갈급해오다가 한국의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믿어진다”는단어가 눈에 들어와 늘 내 마음을 사로잡앗던 것입니다.
그 이후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말씀으로 말미암으니 철저히 말씀앞에 굴복했으며 주님은 슬며시 비밀들을 열어 보여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먹을것이아닌 말씀이 없는 기갈증에 걸린 이곳 미얀마 목회자들에게 주신 비밀을 열어 보여드리기 시작 했습니다.
참으로 감사올리며 부족한 이종을 위하여 계속 기도해 주시는 90을 훌쩍 넘기신 모친을 비롯 여러 성도님들에게 감사 올립니다.
부디 새해에도 주님 영광을 위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생명을 주님앞에 드리게 되어지기를 함께 기도 드립니다. 샬롬
부록
미얀마 문화
미얀마인들은 성(姓)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자의 경우에는 결혼 후에도 그 본래의 이름을 간직한다.
이름은 보통 태어난 요일에 준 해 지어지는데, 예를 들면 월요일은 호랑이의 날로 미얀마어로 ‘짜'로 불리우는데, 그에 준해 이름마다 ‘ㅈ' 발음이 포함되는 식이다.
성이 없기에 모든 공문서에는 주소와 부모의 이름이 병기된다.
또한 우리처럼 많은 호칭이 존칭에 가름하여 붙여지는데, 나이가 많거나 결혼한 사람들은 미스터나 미시즈 같이 그들의 이름 앞에 우(U)나 도(Daw)를 쓰고, 동년배나 젊은 사람들은 존경의 의미로 꼬(Ko-’형‘ 남자의 경우)나 마(Ma-’누나‘ 여자의 경우)의 호칭으로 불린다.
아이들은 마웅(Maung-남자), 마(Ma-여자)로 불린다. 즉, 어디서고 사람을 부를 땐 적절한 호칭이 따라주어야 하되, 과도한 경칭은 오히려 결례이다.
출생, 약혼, 결혼 등 습속에서도 한국과 다른 특징이 있는데, 여아가 태어나면, 남아보다 귀히 여긴다. 이는 특이하게도 이 나라에서 부모를 모시는 것은 보통 딸, 그 중에서도 막내딸이므로 여권이 무척 세고 가업도 이들이 계승하므로 보통은 남자들은 경제활동에서나, 집안 대소사에 전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경우든 선물로 돈은 절대 건네지 않으며, 젖병이나 옷을 선물로 준다.
그러나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이에게 불행이 온다는 미신 때문에 선물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백일이 되었을 때 작명의식을 연다.
이 때는 승려들을 초청, 아이의 행복을 기도하며 축하하러 온 사람들에게는 음식을 대접한다.
결혼도 보통은 불교사원에서 열리거나 집에서 승려를 초청 거행하며 특징적인 것은 아이스 크림을 대접하는데, 이는 가장 잘 차린 결혼식을 가름하는 기준이다.
장례 문화 역시 불교 식으로 진행되며, 한 동안-보통은 3일간- 온 동네가 떠나갈 듯 경야(밤샘 독경)가 열리고 화장을 한다.
물론 식민기에 들어온 장묘 문화가 일부 기독교인들에게는 받아들여진다.
일부 미얀마 사람들-특히 산지나,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다양한 미신을 가진다.
점성학, 수상술(手相術), 투시력은 결혼, 동업자 결정, 작명 할 때 많이 의지한다.
그러면서도禍를 막기 위해서 수시로 새나 동물을 방생하거나 다리나 도로를 건설함으로써 공덕을 쌓는다.
주식은 쌀과 카레(‘힌’으로 불림)-인도카레가 아닌 모든 국물있는 반찬 류를 통칭함,
이는 우리의 ‘닭도리탕’ 형태의 음식으로 고기와 약간의 국물을 포함한 볶음과 끓인 음식의 중간 형태로 그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식이다.
그러나 한국이나 태국식의 국물이 흥건한 뜨거운 장국류는 선호하지 않는다.
또한 간장-생선을 졸여만든-이 아주 보편화되어 모든 밑반찬에 이것이 들어가거나, 이에 고춧가루, 약간의 기름을 넣어 졸여 그로 밥을 비벼먹는 것이 이들 서민의 평상음식이다.
특히 유명한 음식은 모힝가(mohinga - 메기, 잉어등을 푹 고은 물에 말아먹는 쌀국수)로 하루중 시간을 가리지 않고 먹는 일종의 간식으로 대개는 아침식사로 집에서는 진한 차에 연유와 설탕을 듬뿍 넣은 ‘레페 예’-차를 마시고 나와 허기진 속을 달래는데 많이 먹는다.
다른 음식들로는 카욱스웨(khaukswe - 맑은 닭고기국물이나 고기국물에 만 쌀국수), 카욱스웨 쪼(볶은 국수)와 터민-쪼(taminzaw - 볶음밥), 터민-떠욱-비빔밥, 카욱스웨-떠욱-비빔국수(간장을 주재료로 비빈) 등이 있다.
중국음식도 쉽게 찾을 수 있으나 기본적인 음식의 경향은 인도 음식과 흡사하고, 식사에 손을 사용하는 것에서 인도와 흡사하다. 그러나 부유층에서는 중국식, 타이식이 상당히 인기 있다.
양곤에는10개 정도의 한국 음식점이 있는데 한국 수준의 가격으로 이곳 현실에 비하여 비싼 가격을 제외하고는 모든 음식이 괜찮은 편이다.
대부분의상점은 7시 8시면 문을 닫아 길거리도 어둡지만 식당은 10시쯤에 문을 닫는곳도있고 커피, 차, 술 집 등은 좀 더 연장영업을 한다.
■ 사 회
사회생활을 살펴보면 도시 안에서도 전통적인 부락은 대개 동족부락을 이루어 같은 종족끼리 모여 산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카렌, 친 부족에 많고, 이것이 선교(?)에 긍정, 부정적 영향을 준다.
보통 이들은 일가 친척이라 보면 된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새로이 조성된 신도시-강제이주단지에는 이런 현상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성에 대한 의식은 상당히 담백해서 동남아 어떤 나라보다 고상하다 할 것이며, 결혼한 부부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애정의 표현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그리고 다른 동남아시아 사회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이 유교권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데, 그 이유는 부모 부양의 책임이 여성에 있고, 가업의 계승이 딸들을 통하는 탓으로 보여진다.
이런 경향은 관청에 가도 높은 자리는 꼭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혼률도 높은 편이다.
그리고 친정과 시집의 개념도 없고 대 가족을 선호하여 한 집에 보통 성원이 15명을 넘는 경우도 흔하다.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전에는 보통 한 집에 기,미혼 자녀모두 동거한다.
사위가 장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도 많으며 호칭도 '어메(어머니)'라고 부른다.
국기
미얀마의 국기는 2010년 10월 21일에 새로 제정되었으며 2008년에 개정된 미얀마 연방 공화국 헌법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새 국기의 디자인은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세 가지 가로 줄무늬 바탕에 가운데에 하얀색 별이 그려진 형태를 한 디자인입니다.
노란색은 단결, 초록색은 평화와 자연의 풍요로움을, 빨간색은 용기를 상징하며(노초적) 그 삼색 가운데에 하얀색 별은 연방의 영원한 존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문화를 존중 하는 삶에서 선교는 시작 되어집니다.
우리는 흔히 그들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해한다는 말은 그러한 삶을 나도 공유하고있다는 말과는 너무 동떨어진 말입니다.
이해한다는 뜻 속에는 그들의 삶이 싫지만 그들과 관계를 가지려니 그들앞에서 그들의 삶을 비판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 입니다.
이정도로는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수가 없고 따라서 선교가 될수가 없는 것이지요.
나도 그들의 식탁문화를 비판했습니다.
손가락으로 밥을 비벼먹지요.
그리고 화장실문화를 고쳐볼려고 애를 썻고 같이 사는 아이들에게 강압적인 자세로 꾸짖었습니다.
변을 본후에 종이로 닥지않고 물로 씻어내기 때문이지요.
그외에 목욕문화, 신발문화, 의상문화, 게으름, 등등.....강하게 비판했고 고칠것을 권면하고 강권하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앗습니다.
선교 2년이 되어서야 깊은 기도속에서 깨달음이 왔습니다.
주님도 냄새나고 더러운 병자들의 몸을 만져주시고 안수기도 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약점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생활습관을 비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머리둘곳도 없으셨던 주님도 그들의 삶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오직 그들의 주님닮은 형상만을 보시고 그들 구원에만 관심하셨습니다.
선교하겠다고 온 내가 그들을 고치려하고 비판하고 있으니 절대로 주님의 말씀은 전해지지 않은것이 당연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깊이 회개하고 그들의 삶 전체를 긍정적으로 볼수 있는 눈을 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드디어 응답하셨습니다.
그들의 손으로 먹는 모습이 아름다웟습니다.
엄마손이 생각낫습니다.
엄마들이 조리할때 나물이고, 반찬이고 여러번 손으로 주물럭대야 맞이나는것을 생각하고는 그들의 지혜에 감탄했습니다.
화장실도 지금은 우리사회가 비대라는 것을 많이 사용하지만 몇년전만해도 모두 화장지를 사용하는것이 일반적이었고 냄새나는 푸세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씻어내는 문화는 뒤처리가 더 말끔하다는 것을 알앗습니다.
마치 젖먹이 아기의 기저귀를 엄마가 갈아줄때 때로는 냄새도 맡아보는 엄마의 마음으로 스스로의 신체를 깨끗이 씻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청결하지요.
또한 모두가 수세식 화장실 이지요.
이런식으로 그들의 문화를 보니 더럽고 않좋게 보엿던 모든것이 그리도 아름다울수가 없는겁니다.
이들의 음식을 먹고 이들이 사는 삶을 똑같이 따라 살려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은 마음문을 열기 시작 했습니다.
이는 기적이라 할수 있을 만큼 엄청난 선교 효과를 가져 왔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그리도 싫었고 역했던 그들의 음식이 맞이 있게 됐습니다.
따로 한식을 않해 먹게 됐습니다.
그들의 의상문화를 아끼게 됐고 즐기게 됐습니다.
론지라는 치마를 입는데 아랫도리에 통풍도 잘되고 시원한것이 아주 좋지요.(엘범 참조)
변이 급할때는 그자리에 그냥앉아 해결 할 수도 있고요......
많은 경우에 그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것을 희생하고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주님과 같이 그들과 같이 사는 삶이 없다면 모양만 있을뿐 절대로 그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문화는 내가 살아온 문화하고는 다르기에 내심 비판하기 때문 입니다.
절대로 마음문을 열지 않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동역하는척하는 것은 선교사가 갖고있는 돈의 권세가 있기에 그앞에 굴복할 뿐입니다.
나는 미얀마 인이 되려고 피부를 태웟고 그들과 같은 식사를 하며 그 모든것을 즐길때에 그들은 내게 다가 왔으며 외국인이 아닌 같은 동족의식을 갖고 나와 동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고 함께하는 삶이 바로 겸손이요 선교라는 것을 깨달은것은 얼마되지 않앗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08년을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는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요 감사인 것입니다.
기축년 소해를 맞아 더욱 그들을 아끼는 삶속의 겸손으로 힘찬 소와같이 그리고 주인께 순종하는 소와같이 살기를 결단하며 기도드립니다.
2008년5월3일 새벽의 재난|미얀마 이야기
아프리카 | 등급변경▼
준회원정회원우수회원특별회원
| 조회 72 |추천 0 |2008.06.24. 17:48 http://cafe.daum.net/loammission/AkVs/52 모든것 ---전기, 전화 , 수도, 교통까지 마비되고 가옥이 파괴되고.......
어떤사람은 좋은 나라 좋은 가정에서 좋은 교육과 좋은 환경에서 재난이란것을 모르고 자라지만 어떤이는 가난과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우상이 마치 하나님인냥 굳게 믿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말하는데로 운명일까요??
아닙니다.
선교의 대상으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사명이라 하지요.
그러나 오래 기다려도 믿지 아니할때 주님이 철저히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재난의 현장을 보면서 여러 생각에 몸부림치며 주님앞에 기도했던 제목 입니다.
평소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장에 쉽게 대답할수 있었지요.
모든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그러나 해일이 사정없이 쓸고 지나간 뒷자리에는 아픔과 고통의 울부짖음이 있고 질병과 상처, 그리고 치유할수 없는 죽음이 뒹구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마지막때의 그분의 진노앞에 아무것도 할수 없고, 아무런 힘도 없는 인간의 모습과 나자신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만은 아닌 잔인한 심판의 하나님이심을 목격했습니다.
이런 현장을 보면서 왜 그리 놀랍니까??
아름다운 가면을 쓴 휴머니즘에 흠벅젖어 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잊고있는 나자신을 발견하고 주님앞에 회개의 눈물을 쏟앗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신앙이었습니다.
내생각은 너희 생각과 달라서..."
5월 2일 밤새 내리던비가 3일 새벽 2시가 되면서 갑자기 돌풍을 동반한폭우가 또한 밤알 크기만한 우박을 쏫아부었지요.
이는 뱀부하우스 지붕을 뚫고 총알 박히듯 쏫아졌습니다.
유리창이 깨어져 날라가고 벼락으로 간전제품, 컴퓨터등이 심한 충격을 받고....
모두 잠에서 깨어나와 피할곳을 찾아 우왕좌왕하는 사이 집이 날라가면서 해안지역에는 해일이 덮친것이지요.
어떤이는 나무조각을 붙들고 어떤이는 야자나무에 올라가 생명을 구한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생명을 잃었지요.
게다가 자자손손 살아오던 섬이 흔적도 없이 물에 잠겨버리는 일을보면서 요한계시록 18:21의 마지막때의 심판의 상황과 같앗습니다.(이에 한 힘센천사가 큰멧돌같은 돌을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아름들이 나무가 뽑혀 쓰러지고 간판 전봇대, 신호등이 꺽이거나 쓰러졌으며 집이 통채로 날라가 솥이없어 쌀을 드려도 밥을 할수가 없으니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저도 한참을 멍청히 업드려만 있었답니다.
나뒹구는 시체들 .. 악취.. 정부에서도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모르고 방황하다가 5일이 지나서야 통제를 시작하여 누구도 현장 접근을 금지했지만 마침 고향이 레빠따인 학생이 다니러 갔다가 조부모님과, 동생을 해일로 잃고 울며 온 학생의 보고를 듣고 우리는 더이상 지체치 않고 의약품, 물, 장갑, 마스크, 식량을 준비하여 청년7명과 함께 현장에 갈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어떤것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엄청난 현실 앞에 눈물만 나오고..
남해안인 뽀글리, 레빠또 , 양곤이 집중타격을 맞은 것이지요. (엘범 참조)
희생자가 30,000명이라고 정부는 발표하고 있지만 미얀마 선교사회의 조사에 따르면 200,000명이상이 될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협조계획을 세워 보앗지만 이미통제가 차단되어 들어갈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차선으로 해야할 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지사를 중심으로한 집세워주기 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어느마을은 화장실만 9동건축해 드렷습니다.
한채에 많게는 250,000짯 적게는 13,000짯으로 건축하는 일을 도와드렷으며 솥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쌀 40가마를 공급해 드렷습니다.
이사역을 지사에 따라 계속할 예정입니다.
물론 선교효과는 100%이상이었음을 감히 보고 드립니다.
절도 많고 중도 많아 매일 시주받는 심방은 있지만 이렇게 어려울때 집을 짓는일을 도와드리며 쌀을 제공해드리며 격려의 말씀을 드리는 이는 오직 목회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교회로 꾸역 꾸역 몰려 오시는 겁니다.
어려움이 곧 기회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 했습니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신속이 대처할수 있었던것은 교회건축하라고 보내주신 헌금과 자립선교밑천인 돼지헌금을 우선 사용할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 가운데 총회 사회부에서 $3,000으 보내주셔서 힘을 실어 주셨구요 그리고 또 더많은 헌금을 모금하여 보낼터이니활동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이돈이 들어오면 가축헌금 교회건축 헌금을 우선 충당하도록 하겠습니다.
헌금하신이들의 넓은 이해를 기원 합니다.
워낙 대규모의 재난이기에 급히 필요로 하는 지원만을 선별하여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천막 조각으로 하늘만을 조금 가리고 벽없이 지내는 이들을 어찌해야 할지......
비바람 몰아치면 작은몸하나 숨길데가 없으니...
아뭏든 최선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이들을 섬기는 일이 내게 주어진 사명일 것입니다.
모든 원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 원인외의 모든 원인들, 생각들은 사라지기를 원합니다.
엄청난 재난과 죽음의 그림자 앞에도 누구도 원망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앞에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운명론적이든 아니든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부러웟고 우리와 비교가 되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바랄것없이 없으면 없는데로 비맞아가며 춥고 배곺아 밤새 비맞고 떨어도 누구에게 호소함없이 원망없이....
우리나라 같으면 정부는 뭐하는 거냐.. 도와주지 않는다고 항의하고...더주지 않는다고 자살시위하고...
모든 잘못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불신앙의 소치임을 괴로워 했습니다.
저는 약합니다.
불가능 합니다.
하나님이 능력 주실때 설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게 사명을 잘 감당할수 있는 지혜와 건강과 물질을 주시 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미얀마는 소승불교국이다.
소승불교란 작은수레라는 뜻으로 석가의 계율을 지키겠다는 보수적 신앙이다.
원시불교라고도 한다.
또한 소승불교는 출가주의로 남자들은 평생에 한번은 출가하여 중생활을 하는 것을 계율로 삼고있다.
부쳐가 되는 길은 오직 출가하여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도를 닥을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평생 출가한다면 그 가문의 영광이요, 마을에 큰 명에로 축제가 벌어지곤한다.
그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5-6세에 출가시켜 소달구지에 태워 왕같은 옷을 입혀 떠받들고 사찰로 가는 수많은 행열을 쉽게 볼수 있다.
출가는 가정생활, 성 생활, 경제 행위 등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대하며 일어난 불교계의 종교개혁이 바로 대승불교로 큰 수레라는 뜻을 갖고 있다.
출가하지 않아도 부처가 될수 있다는 철학이다.
소승불교란 이들이 붙인이름으로 낮고 천박한 종교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소승불교는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뉘이는데 대중부는 그힘이 약하고 상좌부불교에서는 소승불교라는 치욕적 용어를 쓰지 않고 상좌불교라한다.
스리랑카, 라오스, 태국, 미얀마가 대표적이 소승불교국으로 윤회의 세계에서 개인이 노력하여 해탈하고 열반에 이르겠다는 철학사상을 가진반면, 대승불교는 대중구제를 중시라여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대중을 교화한다는 철학 사상이다.
대승불교는 혼합종교로 미륵이라는 메시야를 만들어 이를 섬기면 부처가 된다하며 나무아불 타불을 많이 외우게한다.
원래 원시불교에서는 정토(천국)을 가르치지 않앗는데 대승불교에서 기독교 사상을 따와 미륵을 섬길때에 부쳐가되어 나무(귀의하다, 믿다)아불타불 즉 열반에 들어 가게 된다는 철학체계를 만든것이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는 재가주의로 바로 한국, 일본, 중국의 불교 형태가 그것이다.
참고로 석가의 사상은 원래 무신론으로 신 또는 신적 존재자에 관한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대일여래나 아미타불 등과 같은 신적 존재자가 나옵니다.
그러기에 상좌부 불교도들은 대승불교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들은 대승불교가 비불설(非佛說)이라고 공격한다.
즉 대승불교는 석가가 입적한 후 몇 백 년이 지난 후에 나온 신흥종교로서 석가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비판입니다.
이들의 이런 비판은 억지가 아닙니다.
실제로 대승불교의 가르침에는 석가의 직접적인 가르침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가령
사람들은 석가가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석가는 영원 전에 이미 부처가 되었다. 그럼 왜 세상에 태어나서 수행했는가? 그것은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것이 바로 법화경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이것은 기독교의 영원한 그리스도 사상의 불교 판입니다.
실제로 인도의 유명한 종교학자 아만드 샤 박사는 “그리스도의 사도인 도마의 복음에 대항해 석가를 성인에서 구세주로 승격시킨 것이대승불교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석가가 영원부터 부처였다고 주장하여 석가를 신격화하는 것은 석가 자신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며 기독교에 밀리지 않기 위하여 기독교를 모방한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석가모니는 결코 전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죄를 대신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석가의 경우는 이와 다릅니다.
석가는 전지하지 못한 까닭에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는 쿠시나가라로 가는 중에 ‘춘다’라는 신도가 대접하는 돼지고기 요리를 먹고 죽었습니다. 춘다가 돼지 요리에 독버섯을 넣었던 것입니다. 석가는 이 요리를 먹고 설사병에 걸려서 죽어갔습니다.
첫댓글 신앙 잘 지켜서 예수님을끝까지 잘 믿겠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다시 꼭 뵙는 제가 되겠습니다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