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짜 : 2013.7.30 - 8.6
2. 산행/등반코스 : 백두산 서파코스
3. 참가자 : 이정표 가족 4인
지난 2013년 7월 30일부터 8일간 백두산 천지를 다녀왔습니다. 물론 천지만 다녀온 것은 아니고 신의주 맞은편 도시인 단동과 고구려 유적탐방이 포함된 여행입니다. 보통 백두산은 비행기를 타고 3박4일정도의 일정으로 가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은 배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왜냐구요? 저렴합니다^^
집사람과 작은녀석이 인천국제여각터미널에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있군요. 터미널 지하에 식당이 있습니다. 가격이나 맛 모두 그냥 그렇습니다만 주변에 다른 식당이 없으니 어쩔수 없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 여행은 시간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거의 2박3일을 배에서 보내야 합니다. 그래 심심하지 않으려면 여러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영화, 다큐멘터리를 저장한 노트북과 PMP 그리고 잡지와 책 한권을 준비했습니다. 이만하면 심심할 일 없겠지요^^
이제 출발입니다. 타고가는 배는 중국국적 범영페리소속의 자정향(紫丁香) 입니다. 3만톤이 조금 안되는 배로 인천과 영구사이를 운항하는 정기 여객선입니다. 紫丁香은 중국어로 라일락을 말합니다. 배이름에 꽃이나 여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뱃사람의 오래된 관습입니다. 꽃이나 여자처럼 바다가 부드러웠으면하는 바램이었겠지요. 몇번의 경험이지만 3만톤에 가까운 배도 날씨가 사나우면 일엽편주처럼 흔들립니다. 한강에 운하를 만들어 서울과 상하이간을 5000톤짜리 배로 항해하겠다던 명바기의 4대강 사업에 코웃음이 나온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사실 편안한 배여행이 가능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이전의 바다여행은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날씨도 알 수 없는 망망대해를 30m자리 목선으로 다닌 다는 것은 제정신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수 많은 뱃사람들은 바다로 바다로 나가고, 심지어 대항해시대라는 말까지 만들어 냈을까요? 그만한 이익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찾게 된 이유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서 라는 것은 다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럼 왜 기를 쓰고 인도를 가려했을까요? 그것은 향신료 때문입니다. 15,6세기 향신료의 가치는 말그대로 금값이었습니다. 후추는 같은 무게의 금과 교환되었고, 넛맥이라고 불리는 육두구 500g은 여자노예 3명 혹은 소 7마리와 교환되어 금보다도 휠씬 비쌋습니다. 문제는 이 향신료 무역을 베네치아 공화국이 독점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새로운 항로를 통해 인도로 가려는 시도가 줄을 잇습니다. 결국 이 노력은 바스코 다가마에 의해 결실을 맺습니다. 멀리 희망봉을 돌아 인도의 캘커타에 도착한 바스코 다가마는 가지고 간 모든 것들을 향신료로 바꾸어 배에 싣습니다. 그리도 다시 희망봉을 돌아 도착했을 때, 그는 들어간 총비용의 600 배를 이익으로 남깁니다. 이후 모든 이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바다로 바다로 나가게 됩니다.
카나페를 만들어 한잔합니다. 크래커에 햄과 치즈 그리고 참치를 살짝 올려 먹으면 간단한 간식이나 안주로도 좋습니다. 배나 기차로 장거리 여행할 때마다 만들어 먹는 단골 메뉴입니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배에서 보낸 후 새벽에 영구항에 도착합니다. 영구항에서 단동으로 이동합니다. 5시간 거리. 중국에서는 옆집 마실가는 거리 되겠습니다^^ 위 사진 빨간선은 제 여행 코스가 아닙니다. 스카우트 북부연뱅 홈피에서 무단으로 사진을 퍼오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꾸벅
단동에 도착합니다. 단동은 신의주를 마주한 국경도시로 압록강 하구입니다. 뒤로 보이는 다리가 중조우의교(中朝友谊橋) 입니다. 다리가 두개인데 앞쪽다리는 6.25 때 폭격에 맞아 끊어진 채로 있습니다.
건너편 신의주가 보입니다. 사실 단동은 안동(安東)이라 불리던 작은 시골마을이었습니다. 20세기 초 신의주와 마주 보고 있는 국경이라는 이유로 일제에 개항이 되었고, 1965년에 단동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이 보잘 것 없던 마을은 이제는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성장하여 밤이면 불야성을 이룹니다. 반면 신의주는 거의 발전하지 못하고 밤이면 꺼질듯한 희미한 불빛만을 내 비치고 있습니다. 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얼마나 어려울까요... 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이 편치 만은 않습니다.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봅니다. 압록강은 북한과 중국이 수면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즉 아주 가까이 북한 땅에 접근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지요.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들. 북한 산들의 특징입니다.
어족도라는 북한의 섬입니다. 위화도 위쪽에 위치하는 섬인데 면적은 여의도보다 크다고 합니다. 압록강 수계의 섬들은 1962년 중조 국경조약을 통해 국경을 확정합니다. 압록강 전체 205개중 127개가 북한, 78개가 중국쪽에 귀속됩니다. 특이할 만한 점은 하류에 있는 대부분의 큰섬은 다 북한의 영토이고 면적으로 보면 94.8% 가 북한의 영토입니다. 백두산 천지 또한 55%가 북한의 영토입니다.
수 많은 나라와 분쟁을 겪고 전쟁도 불사하며 영토문제에 관해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중국이 어떻게 북한과는 이런 영토 조약을 체결했나 이상할 지경입니다. 북한이 6.25 참전의 댓가로 백두산 영토의 상당부분을 양보했다고 제멋대로 떠들던 우리나라 일부 언론의 보도가 생각나는군요. 한가지 특이할만한 점은 백두산의 중국쪽 관광객이 북한쪽 영토로 넘어와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다는 다는 것입니다. 그덕에 제 식구들도 북한 땅을 밟아봅니다.
단동에서 통화로 가는 중 휴게소에 들립니다. 단동에서 통화까지는 고속도로로 5시간, 이전에는 8시간 걸렸다고 합니다. 새로 생긴 휴게소가 깨끗합니다. 사실 중국여행에서 가장 고생스러운 것이 화장실 문제입니다. 2008년 베이찡올림픽 이후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것도 대도시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시골은 그야말로 으악! 수준입니다. 중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두가지 있다고 하네요. 첫째는 어떻게 화장실이 자기들 안방보다도 깨끗할 수 있는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 먹이는 주면서 그 맛난 새를 왜 잡아먹지 않는가 라고 하네요. 그러게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둘기를 안 잡아 먹지요?
통화시에 도착했습니다. 이 산골짜기 도시까지 이 정도라.... 빠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다음날 통화에서 백두산으로 출발합니다. 왕복 8시간, 그것도 예상일뿐입니다. 결국 나중에 보니 11시간 걸렸습니다. 가던 길에 들린 고구려휴게소, 이름이 마음에 드는군요. 조선족 아주머니께서 하시는 사설휴게소입니다.
점심식사 차 들린 휴게소에서 장백산산삼을 팔고 있습니다. 가격도 상당히 비쌉니다. 실제 백두산 산삼이냐구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만 가이드가 한마디 합니다. '포장한 나무 상자가격이 더 비쌀걸요'
드디어 입구에 도착합니다. 입장료도 대단히 비쌉니다. 셔특버스비 포함해서 250위안이니 우리돈으로 5만원 가까이 됩니다. 중국의 입장료 참 비쌉니다. 황산이나 장가계는 케이블카 포함해서 거의 10여만원 정도이고 아무리 보잘것 없는 곳을 가도 3,40위원(7,8천원) 정도는 받습니다. 입장료도 거의 없고, 있어도 몇천원 수준인 우리나라에 살다가 보니 더 비싸게 느껴집니다.
첫댓글 멋있네요!! 이런거 추진할때는 미리 공지하요, 참석할수 있으면 동참하겠습니다. 햐~~ 부럽습니다.
늘 바뻐서 여행가기 힘들구나ㅋㅋ 인생 뭐있니 여행도 다니면서 살아야지. 다음에 갈 때는 연락하마
우후~ 부럽습니다.
다가는 여름휴가인데 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