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1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새로운 무대무용이며 춤을 추는 소재와 그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서양에는 16세기 이래 발레라는 유일한 무대무용이 있었으나, 발레는 지나치게 기교적이고 형식적이어서, 그 인습과 질곡(桎梏)을 벗어나 인간의 정신과 내재한 영혼의 소리를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무용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기운에 부응하여 생긴 것이 모던 댄스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프리댄스(free dance:自由舞踊), 익스프레싱 댄스(expressing dance:表現舞踊)라고 불렀고 독일에서는 노이에 탄츠(neue Tanz:新舞踊)라고 하였다. 그후 모던 댄스라고 총칭하게 되었고, 이를 현대 무용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모던 댄스는 창조적이고 개성적인 특성으로 시대마다 양식도 다기다양하다. 어제의 모던 댄스는 이미 오늘의 모던 댄스가 될 수 없으며 시대와의 적합성이 엄격한 조건이 된다. 이처럼 모던 댄스는 반(反)발레를 출발점으로 20세기에 개발된, 창조성과 현대성을 명제(命題)로 하는 새로운 무대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금세기 초 처음으로 무대무용 혁신의 횃불을 든 사람은 미국의 두 여성무용가인 이사도라 덩컨과 루스 세인트 데니스였다. 덩컨은 자연과 고대 그리스의 무용에서 자유로운 무용의 영감(靈感)을 얻어, 무용화(舞踊靴) ·코르셋을 벗어버리고 해방된 육체로 춤을 추었다. 세인트 데니스는 옛 동양무용에서 자연스러운 무용의 원천을 발견하여, 당시 서양무용이 상실하였던 정신적인 요소의 회복에 노력하였다. 사람들은 여기서 무용예술이 지니는 계시적 의의를 볼 수 있었다. 덩컨은 주로 유럽에 광범한 영향을 주었고, 특히 러시아 발레의 젊은 세대를 감동시켜, 댜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에 의한 발레의 현대적 부흥을 가져오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 일어난 노이에 탄츠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세인트 데니스는 주로 미국에서 무용 향상과 보급에 선구적인 공헌을 하였고, 테드 숀과 함께 조직한(1914) 데니숀무용학교에서 마사 그레이엄, 도리스 험프리, 찰즈 와이드먼 등 다음 세대를 짊어질 많은 준재(俊才)를 배출하였다.
이상이 모던 댄스의 제1기라고 할 수 있으며, 1920년대에 이르러, 독일에서는 루돌프 폰 라반과 마리 비그만을 중심으로 노이에 탄츠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미국에서는 데니숀무용학교에서 독립한 제2의 세대들에 의하여 보다 근대적인 무용의 창조가 추진되었다. 모던 댄스가 글자 그대로 모던 댄스다운 무용예술로서 빛을 발휘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두 사람의 선구자들이 모두 먼 고대를 바탕으로 현대무용의 주제와 표현을 찾으려 한 데 반하여, 이들 새로운 세대들은 어디까지나 현대를 그 기점으로 하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사랑 ·기쁨 ·아름다움 같은 것만이 아니라, 증오 ·공포 ·고뇌 ·회한 ·절망 등 암울한 무드나 추한 것까지도 중요한 주제로 취급하였다. 이를 위하여 당연히 새로운 움직임(동작)이 필요하게 되었다. 긴장과 이완, 수축과 해방, 낙하(落下)와 복원(復元), 육체와 공간의 관계 등을 표현하기 위한 동작의 역학(力學)이 연구되어, 모던 댄스에 관한 용어(用語)와 테크닉을 매우 풍부하게 하였다. 음악도 무음악(無音樂)이나 단순한 타악기에 의한 반주로부터 동시작곡(同時作曲)이나, 무용 작품을 위하여 특별히 작곡한 무용곡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으며, 의상이나 장치도 장식적인 것에서 기능적인 것으로, 회화적인 것에서 조각적인 것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하여 제2기의 모던 댄스는 제1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식(意識)과 양상으로 바뀌어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모던 댄스가 확립되었다. 그 대표적인 무용가로는 앞에서 든 무용가들 외에, 독일의 하랄트 크로이츠베르크, 게르트 파루카, 쿠르트 요스, 미국의 하냐 홀름(독일에서 이주)을 비롯하여 헬렌 타미리스, 안나 소콜로프, 소피 마스로, 레스터 호튼, 발레리 베티스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모던 댄스는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걸쳐 독일과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하여왔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는 그 자취를 감추고 발레만이 인기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것은 모던 댄스가 성행한 시기와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던 시대가 겹쳤으므로, 나치스의 악몽과 함께 던져버리고 싶었던 독일국민의 감정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이 모던 댄스의 세계적 중심이 되었다. 모던 댄스의 제3기라고 할 수 있는 전후에는 필 랭, 진 에드만, 시빌 샤러 등 여성무용가들 외에, 머스 커닝엄, 존 버틀러, 폴 테일러, 앨빈 에일리, 도널드 매킬, 앨윈 니콜레이즈 등 많은 남성 무용가들이 등장하였다. 그때까지 여성 무용가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모던 댄스계(界)에 남성 무용가들이 대거 참여하게 된 것도 제3기의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이다. 모던 댄스에서는 이미 발표된 작품의 모방이나 반복은 허용되지 않는다. 각기 독자적인 주제와 내용과 표현을 창출해내야 한다. 따라서 제3기의 모던 댄스는 더욱더 다양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모던 댄스의 주요한 명제였던 인간 감정의 표현이나 내적 경험의 전달 등을 그리 중요시하지 않게 되고, 무용 동작은 그 자체가 아름답다는 관점에서, 극적인 표현동작이나 어떤 이야기의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동작의 채택을 피하고 순수한 동작 자체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따라서 무용수(舞踊手)를 비인간화하여, 포름(form)이나 오브제(objet)로 사용하는 무용가도 나타나게 되었다. ‘우연(偶然)의 방식’이나, ‘액션 페인팅(action-painting:無形象畵)’, ‘해프닝(happening)’에서 모티프를 구하려는 무용가도 있다. 안 할프린이나 이본 레이너 등이 펼치는 전라(全裸)의 작품은 현대 누드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모던 댄스는 원래 우상파괴(偶像破壞)의 예술이며, 시대와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겠지만, 오늘날처럼 그 변용(變容)이 격심한 때는 없다.
한국의 모던 댄스는 1930년대에 조택원(趙澤元) ·최승희(崔承喜) 등이 이를 전수, 서울에서 첫 공연을 가짐으로써 태동(胎動)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들에게 사사한 진수방(陳壽芳) ·김민자(金敏子) ·장추화(張秋華) 등이 그 뒤를 이어 모던 댄스의 정립을 위하여 힘썼으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8 ·15광복과 6 ·25전쟁의 암흑기를 겪게 되었다. 그 후에도 한동안은 모던 댄스의 주조(主潮)를 파고들어 이론적으로나 표현면에서 그 전통성을 제시 ·확립하지 못하고 윤곽에서만 변칙적인 발전을 하는 데 그쳤다. 그러다 1960년대에 이르러 육완순(陸完順) 등에 의하여 모던 댄스는 한국의 토양에 맞는 새로운 각도에서 발전의 한 단계가 이룩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후 거듭되는 발표회 등으로 한국의 모던 댄스는 착실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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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구리의모던댄스 샛별이 되도록 노력합시다.....난 JJ탱고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