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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과 갈등을 극복한 시심
― 김성자 시인의 시세계
리 헌 석
(문학평론가, 문학사랑 발행인)
1. 김성자 시인 엿보기
김성자 시인은 부산에서 출생한다. 부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여자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여 중등학교 국어 교사로 봉직한다. 그러나 결혼 생활과 기독교 신앙 생활에 충실하기 위하여 교직을 떠나게 된다.
문학 창작은 1995년 《아동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등단하고, 1999년 《오늘의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거듭난다. 그리하여 대전아동문학회, 문학사랑협의회(오늘의문학회) 등의 문학 단체에 참여하여 창작의 밭을 일구게 된다.
시인의 예리한 감성은 가정 생활 및 사회 생활과 관련하여 많은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생활의 작은 갈등에서부터 시작하여 신앙 전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갈등이 내재하게 마련이며,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고서야 새롭게 거듭난다. 김성자 시인은 이러한 삶의 과정을 거치며, 시 창작에 힘써 2000년에 신앙시집 ꡔ눈물은 꽃이 되어ꡕ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이 시집의 서문을 통하여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포착하게 된다. ① <시작(詩作)은 동시에서부터 출발하여, 일반시로 옮겨갔다가, 마지막으로 신앙시에서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점. ② 자신의 <시(詩)들은 눈물의 텃밭에서 자라나 회개와 감사와 찬양의 눈물을 받아먹고 꽃처럼 피어난 새 생명들>이라는 점. ③ 그는 그의 시집이 <거친 광야에서 방황하며 가슴 아파하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건네줄 수 있는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점. 이런 마음을 담은 그의 시집 ꡔ눈물은 꽃이 되어ꡕ는 신앙인의 내면이 오롯하게 배어 있다.
눈물은 꽃이 되어
기억 골짜기 이편저편
훑으며 씻어 내립니다
한스럽게 굳었던 돌짝들이 녹아지고
구멍이 나고 깨뜨려져
바람에 날아가는 가루가 되었습니다
고통은 면류관입니다
고통이 나를 선택했고
나는 그를 통하여
십자가 위의 그분을 바라봅니다
그분을 찾고 만나고
매일 더 가까워집니다
친히 고난 당하신 그분의 위로가
나의 기쁨이 됩니다
그러기에 고통의 눈물은 꽃이며
주님 앞에서의 귀한 면류관입니다
― 「눈물은 꽃이 되어」 전문
3연으로 된 이 작품의 핵심은 1연으로 보인다. 시인은 ‘기억의 골짜기’를 씻으며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 눈물에 굳었던 돌짝들마저 녹아 내린다. 여기에서의 ‘돌짝’은 신앙과 상대적 사물을 지칭할 수도 있고, 세속의 기준으로 인해 신앙을 멀리했던 내면의 상징으로도 보인다. 그러한 ‘돌짝’이 녹아 내리고, 또한 깨뜨려져 가루가 되었다는 것은 순정한 눈물에 의한 신앙의 승리를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2연의 핵심은 ‘고통’이 바로 ‘면류관’이라는 은유적 발상이다. 세속의 고통을 신앙에 의해 극복한 뒤에 얻은 승리가 곧 신앙의 면류관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십자가를 지고 만인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고통을 극복하는 요인으로 회개가 동원되고, 회개를 통해 예수를 만나게 되며, 고통이 크면 클수록 예수께 더 가까이 다가선다는 역설적 상황을 표현한다.
3연은 2연의 은유적 발상을 한 단계 발전시킨 형상화로 보인다. 고통을 겪은 시인은 그 고통을 감내할 ‘예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이 분의 위로가 바로 기쁨으로 전이된다. 따라서 고통(苦痛)은 위로(慰勞)를 동반하며, 위로(慰勞)는 기쁨으로 승화되고, 그로 인하여 시인은 신앙의 승리자가 되기에 이른다. 그러기에 처음의 고통은 바로 승리의 면류관에 이르는 요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시인의 내면은 시로 구체화된다. 그러기에 시는 시인 내면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을 정독하게 되면 시인의 진솔한 내면을 만나게 된다. 김성자 시인의 작품을 정독하는 것도 그의 추상적 내면을 부분적으로나마 확인하고자 함이다. 그가 갖고 있는 내면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 그리하여 일구어낸 신앙의 승리 등에 대하여 확인하고자 함이다.
2. 김성자 시의 구조적 특성
김성자 시인을 수년 전에 대면할 때, 조용한 미소를 잃지 않는 온화한 성품으로 보았다. 그리고 다시 만나서도 그러한 인식은 변함이 없었다. 특히 그가 신앙과 관련된 문학 활동만 하겠다는 말을 할 때, 목사님의 사모라서 그러려니 하였다. 그와 동시에 신앙심 깊은 시집을 발간하여, 그의 인상은 고착되어 가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그의 작품들을 통독하고 정독하면서, 온화한 미소 뒤에 엄청난 갈등과 아픔을 찾아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아픔은 본인의 순수가 상처받아 생기기도 하고, 가정생활 속에서 튀어나오기도 하고, 사회생활을 통해 생성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아픔과 갈등 속에 침잠(沈潛)되지 않고 늘 신앙 속에서 소망의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아픔과 갈등을 극복하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시들은 대부분 이러한 과정에서 창작되어진 듯하다. 말하자면 내면의 갈등이 시를 창작하는 동인(動因)으로 기능하고, 이에 그의 미적 감수성이 작품을 작품답게 완성시킨다.
이러한 구조를 간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 「부활의 뿌리」라 하겠다.
겨우내 삭막한 가슴으로
언 하늘 바라보며
가냘픈 고동 소리 매만졌다.
퇴색되었던 형상
죽음을 걸러 내고
빛을 끌어 모은다.
어느새 발목엔
따뜻한 물이 흐르고
언 하늘 풀어지면
고동 소리는 나래 치는데,
하이얀 침묵 속에
생명의 뿌리가
꿈틀, 땅을 딛고 일어선다.
― 「부활의 뿌리」
이 작품은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치밀한 구성으로 짜여 있다. 형식에서도 그러하지만, 내용에서도 치밀한 구성을 찾을 수 있다.
1연의 핵심어는 ‘삭막한 가슴’으로 ‘언 하늘’과 조응한다. 2연의 핵심어는 ‘죽음’과 ‘빛’의 상대적 시어를 동원하여 갈등과 아픔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환기시킨다. 3연의 핵심어는 ‘따뜻한 물’로 ‘언 하늘’을 풀어내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부정적 심상에서 긍정적 심상으로 이동하는 단계인 ‘전(轉)’의 해당한다. 4연의 핵심어는 ‘생명의 뿌리’로 시인의 원초적 내면이 지향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낸다.
그의 작품은 갈등의 제시, 갈등의 해소, 새로운 소망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진 작품이 대부분이다. 작품 「운명」도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
1연의 <너무 많은 분향이기에/ 도저히 떼 내어버릴 수가 없다/ 모진 말로 후벼파고 뚫린 가슴/ 그래도 두 팔로 에워싸며 살아왔다>에서 언어에 의한 모독과 피해의식을 드러낸다. 2연에서는 <짧지만/ 몹시 찬 겨울/ 서리 낀 바람이 구멍 속을 울리면/ 운명 같은 아픔이 묻어 나오고 한켠/ 멍든 눈물 베어버린 세월>을 통해 피해와 갈등을 확산시킨다.
그러나 3연에서 <이제 몇 가닥 봄바람 불어오면/ 흐뭇한 마음으로 잊을 수 있을까/ 우리 사이의 운명은 뿌리로 남아/ 지붕 하나 아래에서 길게 자라고 있는데>라고 노래하여 갈등을 해소할 요소로 ‘봄바람’이 등장한다. 이어 4연에서는 <우린 언제/ 그 어느 날의 햇살 속에서/ 곱디고운 모래로/ 멍이 개일까>라고 간절한 소망을 노래한다.
이와 같이 김성자 시인의 작품에는 ‘기승전결’의 4단 구성이나, ‘기서결’의 3단 구성이 중심을 이룬다. 가끔 5연 이상의 작품도 산견되지만, 이는 중간 단계의 반복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3. 부정적 실체와 갈등적 요소
김성자 시인이 「부활의 뿌리」에서 ‘삭막한 가슴’ ‘언 하늘’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부정적 실체는 무엇인가? 또한 그가 ‘죽음’과 ‘빛’으로 인식하는 갈등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찾아보기로 한다.
뚫을 수 없는 벽
마주하면
용트림하는 울음
훨씬 높아서 두 손 뻗어도
닿을 수가 없는 옹벽
보호해 주지 않는 보호자는
철창 속에다 가둬 놓고
저만의 욕심을 퍼 올린다
소유물이 되어도 재롱 떨지 않는 인형은
배앓이하며 애기 하나 낳고
여린 살 갉아먹는 문둥이가 된다
눈물 줄기
젖가슴을 타고 내려오면
달 따먹고 문드러진 살 만지며
어둡고 긴 터널 같은 잠 속으로 빠진다
― 「옹벽 속에서」 전문
시인은 절망적 상황을 체험한다. 이 작품은 가정생활의 고단함에 의해 형상화한 듯하며, ‘보호해 주지 않는 보호자’는 아마도 남편을 지칭하는 듯하다. ‘철창’ 역시 고립된 가정의 비유로 보이며, 시인의 이러한 내면은 자신의 삶을 ‘문둥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는 절망적 정서의 표출로 보이며, 시인의 예리한 감수성에 기인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소유물’이 되어 보지만, 시인은 ‘재롱떨지 않는 인형’이기 때문에 하나로 융합하기가 힘들다. 이와 같은 갈등으로 그의 내면은 황폐해져 가고, 그 상황은 ‘달 따먹고 문드러진 살’을 만지는 ‘문둥이’의 상황으로 급전하게 된다.
이와 같이 절망의 나락에 빠진 시인은 ‘옹벽’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런 비상의지가 드러난 작품이 「자유」로 빚어진다. <새 한 마리 되고 싶다// 시간이 풀어 주고./ 사람이 풀어 주고/ 공간이 풀어 주는/ 빈 하늘 날고 싶다>에서 시인은 새가 되어 옹벽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한다. 시간과 사람, 그리고 공간을 벗어나 완벽한 자유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현실은 <세찬 날개 파다닥거리며/ 흘러가는 저 물새 떼 속에/ 일렁이며, 일렁이며 흘러가는/ 자유의 몸짓>을 소망으로만 남는다. 이와 같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이어서 더욱 간절한 소망으로 남는다.
살 몇 점 떼어내어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굳어버리는 주검
팔을 늘려도 만져지지 않고
가슴팍을 핥아도 혓바늘만 돋는
마른 젖줄
―「가뭄」 일부
만질 수 없는 너로 인해
만져지지 않는 나
옅은 그림자 등뒤에 두고
시도한 탈출
― 「시도」 일부
시인은 「가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절망적 상황에 휩싸인다. <갈라진 등짝이/ 핏기 하나 없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상황, 그리하여 시인은 자신을 ‘굳어버리는 주검’ ‘마른 젖줄’ ‘미이라’로 비유․연상한다. 그러면서도 시인 자신은 <파도 이는 강물을/ 전설처럼 그리는/ 핏발 선 8월>이 되어 간절한 소망을 잊지 않는다.
그런 소망으로 인해 시인은 ‘탈출’을 시도한다. <온 수풀 휩쓸고 가는 바람이/ 살고 있는 산 아래/ 사나운 빗소리/ 파도 같은 소리가/ 밤새 어둠>을 몰고 다니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면적 탈출을 시도한다. <커져 버린 자아를 탐색하며/ 혼자 살 수 있는 몇 날의/ 기쁨>을 찾아 옹벽 속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러한 의식은 「바람은 날고 싶어한다」에서 구체화된다. <몇 굽이를 돌아서 왔나/ 바람 무늬만 그리다가/ 닳아버린 세월// 뿌리 없어/ 가득 흔들린 통증들은/ 물 묻은 솜처럼/ 세상을 적신다>에서 삶에 지친 육신과 정신의 황폐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바람은 또 다시/ 날고 싶어한다>라고 소망을 잃지 않는 강인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확인을 거쳐 다음의 정리에 도달하게 된다. 즉 「부활의 뿌리」에서 보였던 ‘삭막한 가슴’ ‘언 하늘’ ‘죽음’ 등의 부정적 내면은 ‘옹벽’ 속에 갇힌 자아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탈출’을 통해 ‘빛’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4. 갈등 극복과 소망의 빛
김성자 시인이 「부활의 뿌리」에서 ‘언 하늘’을 녹이고 ‘따뜻한 물’이 되게 하는 것, 갈등 극복의 요인은 무엇인가? 또한 그가 ‘생명의 뿌리’를 통해 간절하게 소망하는 실체는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간략하게 확인하기로 한다.
창 위로 솔잎이 흔들리고
창 밖 고요가 물결처럼 밀려드는
투명한 나라
멀리 뾰족탑 종각에선
소리 없는 울림 쏟아져 내리고
그 아래 집들은 여러 모양의 꿈을 꾼다.
하늘 가르던 새 한 마리
찻잔 속에 깃을 적시면
몽글몽글 뽀얀 김이 얼굴에 피어오르고
먼 하늘과의 접선이 코앞에 보인다.
문득
내가 가고픈 그 나라가
휴식처럼 가까워진다.
― 「탑」 전문
이 작품은 시인이 지향하는 세계를 그려낸다. 시인이 마음으로 그리는 가정의 구체적 실체이기도 하다. 시인이 사는 집의 뜰에는 소나무가 서 있다. 창문으로 소나무 밝은 달과 함께 솔가지가 어른거린다. 그 사이 솔바람이 투명하게 불어온다. 멀리 보이는 교회의 종각에서는 평화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한 정경을 바라보며 시인은 다양한 꿈을 꾼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차를 나눈다. 시인이 그렇게나 소망하던 새, 하늘을 가르던 새 한 마리가 찻잔 속에 깃을 적신다. 그러나 그 깃은 고단하고 무력한 날개가 아니라, ‘먼 하늘’과 접선하도록 도와주는 매체가 된다. 어쩌면 성령은 비둘기 같이 임한다고 한 성경 말씀을 그대로 보이는 듯하다. 그때 시인은 ‘가고픈 나라’ 즉 하늘나라가 가까이 있음을 자각한다. 말하자면 현실의 생활이 바로 천국이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그리움’을 잉태하게 마련이다. 「그리움․2」에서 <6월의 새벽/ 깨인 눈으로/ 누군가를 생각하고 싶다>고 노래함에 이르러 시인의 절망적 정서는 어느 정도 극복된 것으로 보인다. <어두운 장막 속에 가려졌다가/ 눈뜨면 아득해지고/ 감으면 선명한 얼굴// 싸늘한 어깨에/ 등만 내 보이고/ 내 심장 가져가서 감추고 있는 얼굴>로 비유되는 대상이지만, 시인은 <6월의 새벽/ 내 곁에/ 누군가를 잡아두고 싶다>고 노래한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다음과 같은 다부진 의지가 작용한 듯하다. 「홀로서기」에서 시인은 절망적 상황을 <굳건했던 언약이 여름 한 차례/ 천둥 속에 녹아 버리고/ 가슴팍은 말라버린 샘이 되어/ 먹골을 타고 흐른다// 비밀스런 얘기 하나 안고/ 설레던 시간 속/ 폈던 자리를 접어서 가 버리면 그뿐인/ 감각 없는 빈 가슴>으로 정리한다. 그러나 <홀로 서야 하는가>라는 자문자답에 이르게 되고, <생의 그림자 길게 끄을며/ 내 속의 나>를 일으켜 세우기에 이른다. 이런 의지에 의해 그는 절망을 극복하게 된다.
절망은 자신의 의지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자들은 신앙심을 통하여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온다. 신앙의 주체가 온갖 만물을 주재한다는 믿음 아래, 자신의 절망마저 신의 섭리임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사람의 일을 신께 귀의시킴으로써 절망을 극복한다.
큰 얼굴 하나
열린 하늘에서 내려온다
소망의 폭만큼 안겨드는 새벽
― 「부활의 새벽」 일부
우리는 하나의 점, 점으로 남아
다시 손을 잡자
마주 잡은 손가락 사이로
물이 흐르고
봄이 흐르고
― 「겨울의 끝」 일부
청사초롱 등불들이 하나씩
차가운 강변을 감싸안으면
왜,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오늘 이 저녁엔.
― 「아름다운 저녁」 일부
「부활의 새벽」에서 시인은 ‘단 하나의 그리움’을 노래한다. ‘빛과 어두움’을 주재할 ‘큰 얼굴’을 통해 시인은 ‘부활의 씻김’을 받는다. 그로 인해 <분주히 때 묻혔던 낮의 꺼풀이/ 말갛게 벗겨지고/ 하얀 살 돋아나는 시각>을 체험한다. 특히 김성자 시인은 ‘하얀’ 또는 ‘하이얀’이라는 시어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다용하는데, 대부분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겨울’의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다. 「겨울의 끝」에서 <시린 눈발이 강 속으로 여물어지면/ 어둠은 비늘마다 별을 꽂고 우수수/ 바람 위를 날은다>고 노래하여, 절망을 극복한 시심을 확인하게 된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나무에 물이 흐르듯이 마주잡은 손가락 사이에도 사랑의 물이 흐른다. 봄에 물이 흘러 세상 만물이 소생하듯이 시인의 내면에도 소생의 기운이 넘쳐흐른다.
그리하여 시인은 「아름다운 저녁」에 이른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젠 뒤안길 뒤돌아보는/ 차분한 황혼 녘/ 눈이 부시다>라고 지난날을 추억한다. 지난날의 아픔과 절망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런 상황들을 극복했다는 것이며, 현재에는 그런 아픔과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증적 단서가 된다.
5. 이웃 사랑에 대한 시심
자신의 절망을 극복한 시인의 눈에는 이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싹트게 되고, 그들의 생활과 신앙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꺼지지 않는 불씨로
횃불을 피워 올리는 이들
그들은
아침으로 가는 밤의 문턱에서
설레는 가슴으로
태양으로 달아오를 내일을 기다리며
하이얀 별빛 속에 서 있다.
― 「별빛 속에 서 있는 사람들」
헐벗은 가슴들 모인
역전 길바닥에서
서로서로 시린 등 신문지로 감싸주며
정을 모으는
속 시린 사람들
― 「역전 사람들」
받은 것이 있는 나를
줄 게 없다는 황폐한 땅 위에
물뿌리개로 단비를 뿌린다
― 「타인을 위한 노래」
「별빛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은 대전광역시 중구에 소재한 보문산 기슭에 사는 사람들, 생활이 어려워 산기슭에 집을 짓고 <겨우내 찬바람 비집고 비추이던/ 밤하늘의 별들도/ 낡은 옷>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이 작품은 자아에 집착하여 절망하던 시인의 거듭남을 비유적으로 노래한 소중한 작품이다.
이러한 관심은 「역전 사람들」에서도 드러난다. 그들 역시 <쉬 스러져 가는/ 겨울 햇살 속에서도/ 꽃을 피우려는 사람들>이며. <휘몰아치는 찬바람 속에서도/ 손잡는/ 따스한 체온과 체온>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이 작품 역시 가족의 외면 속에 절망의 나락으로 침잠하던 자신을 견주어 깨달음에 이르는데, 시인의 시선이 자아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타인을 위한 노래」에서 <바싹 마른 항아리의 입술을 벌려서/ 쏟아보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자신의 능력이 ‘바싹 마른 항아리’에 해당한다는 전제 아래, 타인을 위해 사랑을 나누려는 시심이 눈물겨운 바 있다. 그리하여 <메마른 눈망울아/ 내게 와서 안겨라/ 네 속에 마르지 않는 바다로 채워지고 싶다>고 노래하여 개인적 절망에서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했음을 확인시킨다.
이제 시인은 「그리운 이웃」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건강한 가슴으로 생활하리라 본다. <너의 생각과 감정도 소중하다고/ 온 세상에서 너는/ 단 하나뿐인 고귀한 존재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은/ 따사롭고 든든한 울타리/ 가장 그리운 이웃>임을 깨달았으니, 시인 스스로 ‘따사롭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리라 본다. 그리하여 타인들에게 ‘가장 그리운 이웃’으로 남으리라 본다.
그러면서 시인은 「꿈의 노래」에서처럼 아름다운 시심으로 <고개 들면 보이는/ 빛처럼/ 소망 하나>를 가꿀 것이다. <바람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긴 세월 홀로 삭이며/ 별들>을 키운 시인은 <바람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투명한 어둠을/ 노래>할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간략하게 평설(評說)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