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날을 두고 지켜보아도 잘 자라지 않고 혹은 새로 싹을 틔운 후에도 쉽게 물 속에 가라앉아 죽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시내에 있는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무성하게 자란 부레옥잠을 보고 어떻게 키웠냐고 물었더니, 물 속에만 담그지 말고 바닥에 흙을 깔아주면 뿌리가 튼튼하게 내린다고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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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레옥잠보다 먼저 개구리밥이 어항을 가득채우며 겨울을 너머 생명을 이어가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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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흙을 구해다가 바닥에 깔고 두어 포기 되는 부레옥잠을 담궈 두었더니 며칠 사이에 생기가 돋고 포기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며칠만에 한 포기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여름이 지날 무렵에는 옹기로 만든 어항에 부레옥잠이 가득하였다. 여름을 지나는 동안 힘차게 뻗어 오른 꽃대에서는 연보라색 꽃이 두 번이나 피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조금씩 생기를 잃어가더니 더 이상 포기 수도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하나둘 잎과 줄기가 누렇게 변해가기 시작하였다. 날씨가 더 추워지고 겨울이 다가오자 눈에 띄게 힘을 잃고 한 포기씩 죽음을 향해 달려갔다. 혹 따뜻한 거실에 들여 놓으면 겨울을 날 수 있을까 싶어 베란다에 있던 어항을 실내로 들여놓았지만 자연의 이치를 바꾸지도 삶을 더 지탱해주지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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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새순이 올라온 후 20여일 만에 서너포기로 식구를 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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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한포기만 겨울을 날 수 있어도 생명력이 뛰어나고 번식도 잘 되기 때문에 내년 여름에는 어항 가득히 부레옥잠이 번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지만, 한 겨울에 들어서자 따뜻한 거실까지 옮겨왔건만 결국 단 한 포기도 삶을 지탱하지 못하고 누렇게 색이 변하며 물 속으로 스러져 갔다.
결국, 우리 집에 살던 부레옥잠의 겨울나기를 포기하고 부레옥잠의 죽음이 담긴 어항을 복잡한 거실에서 추운 베란다로 옮겨 놓았다. 이미 한 겨울을 지나는 동안 부레옥잠보다 생명력이 더 뛰어나 보이던 '개구리밥'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내년 봄에 꽃집에서 새로 부레옥잠을 한 포기 사와서 키우자며 마음을 달랜 후로는 그들의 존재조차 잊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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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주가 지날 때마다 부레옥잠의 포기수가 늘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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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왔지만 겨우내 내버려둔 어항에는 물조차 말라버렸고 흙 속에 파묻힌 지난 겨울에 죽은 '주검'들은 아파트 화단에 묻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새 봄이 왔다. 봄나들이 길에 새로 부레옥잠 한 포기를 사와서 키우려고, 지난 겨울의 주검을 버리려다가 '혹시'하는 마음에 어항 가득히 물을 부어놓았다.
그러고는 또 며칠을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아침 베란다에 나가보니 완전한 주검처럼 보이던 부레옥잠에서 연두빛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무심했던 내가 그냥 지나치는 동안에 어항에는 부레옥잠보다 먼저 어디에 숨어 있다 다시 나타났는지 '개구리밥'이 식구를 늘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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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순이 올라온지 한 달여 만에 꽃대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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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개구리밥은 일부러 옮겨 온 적도 없는데. 아마도 지난 여름 부레옥잠에 흙을 깔아줄 때 딸려왔지 싶다. 봄이 다 가기 전에 새로운 생명이 움터나는 부레옥잠 주변에는 연두빛 '개구리밥'이 가득하였고, 부레옥잠도 곧 살아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듯하였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부레옥잠도 점점 식구를 늘여가기 시작하였다. "부레옥잠은 물길이나 바람을 따라 먼 곳으로 떠다니며 영양번식을 되풀이"한다고 하는데, 한 포기가 삶을 개척한 후에는 잇따라 영양번식을 이루면서 포기 수를 늘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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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대가 올라와 이내 꽃마울을 트뜨릴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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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과사전을 살펴보니 일반적으로 부레옥잠은 부레에 눈이 생기고 뿌리가 나와 새로운 부레를 내는 영양번식을 하며, "특별한 경우에만 종자번식을 하는데, 수위가 떨어져 흙이 드러나기 쉬운 곳이나 물 깊이가 얕은 장소 또는 식물체가 부패 퇴적된 곳에서만 종자번식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난 겨울 우리 집에서 삶을 마감하던 부레옥잠들은 우연하게도 이른 봄에 종자번식을 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춘 것이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가을부터 일찍 삶을 놓아버린 부레옥잠이 부패 퇴적된 곳에서, 겨울 동안 물이 말라버려 물 깊이가 얕은 장소이면서 종내에는 흙이 더러 있기 때문에 결국은 종자번식을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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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 7시경 꽃이 피기 직전의 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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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에는 부레옥잠의 경우 "겨울을 넘기는 개체가 적거나 없는 경우에도 종자 번식하는 개체들이 이듬해 봄에 번식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지금 종자번식을 한 부레옥잠은 겨우내 봄을 기다리며 죽은 듯이 숨어있다 봄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자 발아하여 새로운 세대를 이어가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종자번식으로 해를 넘겨 생명을 이은 부레옥잠은 영양번식으로 금세 식구를 늘리기 시작했고, 유월 들어 보름을 지나며 꽃대가 올라오더니 닷새를 넘기 전에 연보라색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부레옥잠 꽃은 보통 하루나 이틀을 넘기기 힘들다. 이번에 핀 꽃은 아침에 사진을 찍고 나서 출근했다가 돌아왔더니 어느 새 물 속으로 거꾸러져 있었다. 아마도 한낮 동안 활짝 핀 꽃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꽃대가 꺾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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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략 30분쯤 지난뒤에 꽃잎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