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영 알렉시오 기일(12월 10일/음 11월 5일)

[엠마오]

오늘 황사영 알렉시오 기일입니다. 1801년 12월 10일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 형으로 죽임을 당하셨고 가족과 집안은 멸문지화에 처해졌지요. 가혹한 1801년 박해를 종식하고자 하는 방안으로 쓴, ‘조선을 청나라의 한 성(省)으로 편입 감독하거나, 서양 전함 수백 척과 군대 5만∼6만 명으로 조선을 위협하여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방안으로 대역죄인으로 몰려 겨우 '하느님의 종' 반열에 올라가 있을 뿐입니다. 그분을 따라다니는 '대역죄인, 반역자'…. 정말 그럴까요? 1801년 당시 국문 과정에서 하신 말씀, "천주학은 이 몸이 볼 때 나라와 백성에게 해가 없는데, 다만 왕가에서 금교하므로 이 몸이 힘을 다하여 천주학을 금하지 못하게 할 계교로 한 짓이올시다."라는 치열한 생각과 고백 그리고 짧지만 굵고 진한 투신의 삶은, 황사영 알렉시오야말로 나라와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애국자'였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누가, 무엇을 위해, 입신양명을 버리고 심지어 가족, 자신의 목숨까지 던지면서 미망의 왕조시대 나라와 백성을 진리와 평등의 하느님 나라로 격상시키고자 했을까요? 안타까운 심정으로 황사영 알렉시오의 명예가 하루빨리 회복되고 널리 제대로 공경받으시길 기도합니다.

저도 3년 전부터 기일 미사에 참석합니다.

약간의 성지개발금도 봉헌합니다.

너무 큰 빚과 은혜를 지고 있는 믿음의 후손의 당연한 도리로요.

아~ 오늘 함께 참수되신 순교자 옥천희도 함께 추모합니다. 이분은 쇄마 구인 신분으로 황심 토마스를 도와 북경 밀사직을 동반했습니다. 황사영 알렉시오가 서양 선박을 끌어들여 모반을 시도했음을 알고도 고발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체포되고 12월 10일 오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었습니다.

미사 후기

묘지 가는 길, 서울 조계사에서 704번을 탔습니다. 704번은 서울역~송추 종점까지 가는 버스입니다. 잔뜩 흐린 날씨마져 그분을 추모하는 듯, 사람도 별로 704번을 타고, 광화문- 경교장-서대문 사거리... 한양 길을 통과하니 240년전 12월 10일 그 날의 풍경이 더 새록새록 새겨집니다. 그 때 그 날 겨울 날씨도, 죽기 위해 끌려가는 마음도 얼마나 혹독했을까요.

지구가 몸살을 하는 따듯한 겨울, 묘지에 도착하여 미사 시작 전인데 잠시 쉬었던 보슬비가 다시 행동을 개시해 살짝 걱정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소나기도 아닌데 뭐 어떠랴 싶었어요. 간이 돗자리로 우산을 만들었는데  특별한 미사 풍경 오래 기억이 될 것이구요. 고맙고 대견한 이 모습에 순교자님의 전구 하심인지 성찬의 전례부터 다행히 비가 그쳤습니다.

해당 교구와 가까운 담당 성당에서는 참석하신 기척이 없고(?), 순교자님의 후손, 천만다행 다수의 ’우하하 성지순례단‘이 참석해주어 아주 초라함을 겨우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분이 성인품에 올라가시면 이 기일 미사 풍경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미사 전 모습, 오늘 분명 순교 기일 미사이고 시복과 시성을 청원하는 미사인데, 미사지향을 들으니 단연 가족들 중심의 지향이 압도적입니다. 이 신앙의 맛이(?) 아니면 더욱더 불참하실까요? 기복신앙 같은데 여전히 인기 만점인 이유를 양쪽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여태까지 ‘기복신앙’이라고 바로 잡아 주시는 ‘힘 있는 분’을 본 적이 두 손가락 안에 들어갑니다. 신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힘 있는 그 분들'만 그런가요? 생각을 정리해보니  ‘수도자들 나 자신’도 같은 기복신앙인임을 성찰하게 되어 부끄러웠습니다. 가까운 지인들과 사회•경제•정치 주제로 대화할 때, 분명히 공부가 된 부분이 있는 데도, 관계와 그에 뒤 따르는 것들이 두려워 입을 봉하고 있던 것들이, 결국 다른 내용 같은 맥락이라고 성찰이 들더군요.  우리(나, 너)의 믿음과 신앙의 본질 예수께서 생각하고 판단하시고 행하셨던 바로 그런 분별과 투신이어야겠습니다.

입력(최 마리 에스텔 2021년 12월 10일 /12월 11일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