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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경위
10월 우수작품상 역시 운영 규정을 준수하였다. 이번에는 <월간문학 9월호>, <어린이와문학 9월호>, <시와동화 가을호>, <동시문학 가을호>, <새싹문학 가을호>와 <협회보 66호>에 실린 회원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하였다. 예심을 통해 본심 추천 작품(동시 6편, 동화 2편)을 뽑았으며, 본심위원들은 대상 작품을 꼼꼼히 살피고 토론하여 최종 수상작을 선정하였다. 10월은 협회 가을세미나가 있어 우수작품상 심사 일정 전체가 미루어졌다. 그래서 이번 달 역시 본심 토론 모임을 갖지 않는 대신 좀 더 엄중하게 심사하기로 했다. 지난달보다 예심 대상 작품의 편수가 많았으나, 동화의 경우 2편만이 본심에 올라오게 되었다. 앞으로 사무국에서는 우수작품상 선정에 대한 취지를 더욱 알리고, 대상 문예지의 영역을 계속 확대해 나갈 것이며, 엄중한 심사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우수작품상’ 선정이 회원들의 왕성한 작품 활동의 작은 불씨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울러 심사 일정과 발표가 늦어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준비하도록 하겠다.
•10월의 우수작품상 심사평-동시 부문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잘 보이는 시
예심을 거쳐 본심 심사 두 사람에게 보내온 작품은 여섯 편이었다. 여섯 편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라서 우수 작품을 선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여섯 작품의 색깔이 지나치게 뚜렷하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먼저 두 작품을 가려냈는데, 두 작품 가운데 하나인 ‘어른이 된 것 같은 날’ 은 제 이름 도장을 처음으로 받아든 아이의 설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종이에 신문지에, 제 소유의 책에 공책에 꾹꾹 눌러 찍어 제 것임을 표시하는 것은 물론, 그 조그만 도장 하나로 문득 어른이 된 듯한 기쁨이 적절히 표현되어 있다. 이제까지 써 온 그의 동시 작품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번에 우수작품으로 가려진 ‘고물고물’을 본다.
동시 ‘고물고물’이 이달의 우수작품으로 가려진 까닭은 그이의 본래의 작품과 많이 달라진, 새로워진 덕이라면 덕이었다. 어른의 눈에 들어와 비친 어린이의 모습을 어른의 눈으로 그려낸 점이 다소 걸리긴 하나, ‘아지랑이처럼 고물고물’, ‘꽃잎처럼 흔들리는’ 등의 어린이를 참으로 사랑하는 지은이의 눈빛이 읽혀진다.
단번에 읽혀져 가슴에 들어오는 시가 아닌, 몇 번을 삭혀 읽어 가슴에 드는 동시라는 평으로 심사위원 두 사람은 선정의 뜻을 모았다. 축하드리며 건필을 기원한다.
-심사위원: 이상교 박정식
•10월의 우수작품상 심사평-동화 부문
작가의 능청스런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달의 우수작품상’에 대한 관심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가운데,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네가 정말 꾸룩이니?’와 ‘치즈케익을 만드는 병원’ 두 편이었다. 어느덧 아동문단의 중견이 된 두 작가의 작품 중 한 편을 고르는 일은 그 어느 심사보다 힘든 일이었다.
먼저 ‘네가 정말 꾸룩이니?’는 할아버지 농장에서 키우는 아기 거위 꾸룩이와 주인공에 얽힌 이야기이다. 자신의 실수로 감기에 걸리게 된 아기 거위 꾸룩이를 정성껏 돌보던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가서도 날마다 할아버지께 꾸룩이의 안부를 물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꾸룩이가 잘 자라고 있다고 주인공을 안심시켜 주었다. 하지만 몇 달 만에 농장으로 간 주인공은 꾸룩꾸룩 울던 꾸룩이가 자꾸 깨룩깨룩 우는 걸 보며 이상히 여긴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주인공이 돌아간 다음 날 꾸룩이가 하늘나라로 갔으며, 이 거위를 장에 나가 다시 사다 키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은 “그래, 깨룩깨룩 울어도 넌 꾸룩이야. 꾸룩이가 틀림없다고!”하며 꾸룩이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을 보여 준다.
작은 동물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읽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매우 안정적인 이야기 전개, 매끄러운 문장, 마지막 부분의 반전 등 단편동화의 전형적인 모범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주제가 너무 밋밋하고 주인공의 캐릭터 또한 개성이 없어 새로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치즈케익을 만드는 병원’은 심한 기침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찾아간 병원에서, 어딘가 독특하고 색다른 의사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커피도 팔고, 치즈케익도 만들고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카페 같은 병원, 뭔가 어수선하고 뒤죽박죽인 그 병원은 사실 의대를 일등으로 졸업한 ‘홍나연’이라는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모든 게 다른 병원과 아주 달랐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낡은 고정관념을 가진 엄마와 신선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지닌 의사를 대비시켜 우리가 그동안 바삐 사느라 얼마나 잊은 게 많은가를 역설적으로 보여 주었다. 특히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이가 서서히 의사의 느리고 자유로운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과정을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그린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이야기의 짜임새가 어딘가 허술한 점이 아쉬웠다.
그런 점에서 두 작품 모두 우수작으로 뽑기에 손색이 없었으나, 두 심사위원은 고민 끝에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신선한 발상과 재치 있는 문장, 분명하게 살아 있는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능청스런 솜씨로 빚어낸 임정진 작가의 ‘치즈케익을 만드는 병원’을 이달의 우수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이번 달에도 꾸준히 자신만의 문학을 위해 애써 온 회원 여러분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조대현 이규희
•10월의 우수작품상-동시-이준섭
고물고물
야, 참 예뻐 죽겠어
고물고물 고 어린 것들
개웅산 긴 언덕길
고물고물 올라오는 고 모습
얘, 정말 예뻐 죽겠어
아지랑이처럼 고물고물
봄 언덕길에 울긋불긋
꽃잎처럼 흔들리는 고 모습
줄 맞춰도 고물고물
흩어져도 고물고물
말소리도 고물고물
참, 정말 고것들 예뻐 죽겠어.
•수상 소감
자기만의 체험을 소재로
이상배 회장님 체제의 출범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 우리 한국아동문학인협회의 역점 사업 중 하나가 ‘이달의 우수작품상 선정 발표’가 아닌가 합니다. 이는 창작의 침체기에 있거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작가나 시인에게 새로운 창작 의욕을 북돋아 주는 일로, 좋은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년퇴임 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려 다짐하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뜻밖에도 저의 졸작 ‘고물고물’이 선정되었다는 회장님의 메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봄날 제가 살고 있는 개웅산 등산 중 “얘, 참 정말 예뻐 죽겠어야!” 라고 아주머니 둘이 서로 외쳐 대고 있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걷다가 뭐가 예쁘다고 그럴까? 걷는 속도를 줄여 바라보니 개웅산 언덕길을 유치원 아이들이 고물고물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도 바라보는 순간 그 귀엽고 깜찍한 모습에 흠뻑 빠져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두 달 후 제 가슴속에 잠들어 있던 ‘정말 예뻐 죽겠어야’가 동기가 되어 3연의 이 짧은 동시가 생산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주변에 이 아주머니들처럼 사물을 사랑의 눈으로 외쳐 대는 시인들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작품들 중 자기만의 체험을 형상화해야 그래도 괜찮은 작품이 나오게 되나 봅니다.
동시 창작의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약력
1946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1977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조가 당선되었으며, 1979년 시조문학 추천을 완료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와 1981년 광주일보 창간기념 현상공모에 동시가 당선되었다. 1986년 동시집 <대장간 할아버지> 외 4권, 1988년 시조집 <새아침을 위해> 외 3권, 수필집 <국화꽃 궁전>과 장편동화집 <잇꽃으로 핀 삼총사>를 발간했다.
청구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 한정동아동문학상, 방정환아동문학상, 전라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0월의 우수작품상-동화-임정진
치즈 케익을 만드는 병원
“쿨럭쿨럭”
계속 기침이 나왔어요. 별로 먹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가 타 주던 생강꿀차를 혼자서 타 먹을 정도로 기침이 심했어요. 생강맛이 너무 강해서 매웠지만 꾹 참았어요. 석 잔이나 마셨더니 그 다음엔 화장실에 왔다갔다 하느라고 푹 잘 수가 없었어요. 아플 때는 정말이지,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주 힘들어요.
“아니 왜 이렇게 기침을 하지. 큰일이네.”
회사에 돌아온 엄마는 냉장고에서 배를 하나 꺼냈어요.
“엄마, 나 배 안 먹을래. 차가운 거 먹으면 기침 더 하잖아.”
“얼씨구. 누가 찬 거 준다니? 배 속에 꿀을 넣어서 중탕해서 마시면 기침에 좋단 말야.”
나는 꿀배탕을 기다리면서 커튼에 그려진 여러 색깔의 말 그림을 바라보았어요.
“엄마, 컥캑캑. 나 말 한 마리만 사 줘요.”
“말을 뭐하게.”
“쿨럭쿨럭, 나도 할아버지처럼 학교 다닐 때 타고 다니게.”
“알았어. 돈 벌면 사줄게. 대신 그거 사주면 공부 1등 할거지?”
“응, 당연하지.”
엄마 말에 웃음과 함께 기침이 나왔어요. 서랍에서 약속 공책을 꺼내서 얼른 엄마 말을 적었어요. 엄마는 심각한 깜빡병이 있어서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꼭 다른 말을 해요. 엄마는 은행통장 비밀번호도 냉장고 안 쪽 문에 유성펜으로 작게 적어두었어요.
“수첩도 가방도 지갑도 언제 달아날지 알 수 없잖니.하지만 냉장고가 사라지는 일은 드물잖아. 이사 갈 때도 가져가고 말야. 안심이다.”
하지만 냉장고를 혹시 바꾸는 날이 되면 큰 일이잖아요. 혹시 몰라서 나는 내 돌 사진 액자 뒤에도 엄마의 비빌번호를 몰래 적어두었어요. 돌 사진은 새 걸로 바꿀 날이 없잖아요.
아마 내가 말을 배울 때 첫 번째로 한 말이‘엄마’고 두 번째로 배운 말이 적어’일 거에요. 엄마는 늘 외쳤어요.
‘적어야지. 적어.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
난 다른 건 안 적어도 엄마랑 관련된 일은 꼭 적어두었어요.
43번. 말 사주기(조랑말도 된다) 5월13일 (기침약 먹을 때 한 말)
이렇게 잘 적어두면 엄마도 기억이 안 난다고 오리발 내밀기는 어려울 거에요.하지만 언제나 엄마가 부자가 되어서 말을 사 줄 수 있는지는 몰라요. 아마 하느님도 그건 모르실 거에요. 엄마는 늘 부자가 되려고 애를 쓰지만, 그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거보다 오만배는 더 어려운 거랬어요. 엄마는 부자가 되면 어마어마하게 큰 바늘을 사서 낙타도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게 하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어요.
우리 증조 할아버지는 옛날에 아주 부자여서 함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대요. 다시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어릴 때 아주 부자 아버지를 갖고 있었던 거에요. 정말 부러웠어요. 할아버지는 어릴 때 집에서 학교까지 타고 다니는 말이 있었고 그 말을 돌보는 마부도 따로 있었대요.
“지금으로 따지면 일곱 살짜리 애한테 고급 자동차 한 대랑 전속기사를 딸려준 셈이지.”
할아버지는 그 얘기를 일년에 5백번쯤 했대요. 할아버지는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나중에 그 얘기를 처음 듣고는 나는 아버지에게 물어봤어요.
“그러면 아버지도 말 타고 학교 다녔어?”
“말이 다 뭐냐? 집안이 쫄딱 망해서 난 자전거도 없었어.”
그리고 나서는 아버지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다음에 꼭 이렇게 말했어요.
“집안이 어려워야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큰 인물이 된단다.”
내가 의심하는 얼굴로 올려다보면 아버지는 다시 급하게 말했어요.
“알았지? 아버지가 부자가 안 되는 건 다 널 위해서야.”
할아버지도 집안을 가난하게 만드셨다는데 왜 아버지는 큰 인물이 안 되었는지는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어른들은 가끔 그렇게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하면서 우리가 믿어주길 바래요. 참 순진하지요.
어쨌든 말 사주기가 추가되어서 엄마의 <돈 벌면 사줄게>의 목록은 이제 43개가 되었어요.
그 중에서 정말 사준 건, 딱 두 개였는데 하나는 새로 나온 아이디어 줄넘기였고 또 하나는 두뇌발달 영어카드 게임 세트였어요. 아이디어 줄넘기는 학교에서 줄넘기 대회를 한다고 해서 사준 것이었어요. 게다가 줄넘기하면 키도 큰다는 소문도 있었어요. 난 줄넘기 대회에서 줄넘기를 다섯 번 밖에 못 했어요. 애들이 앞에 죽 앉아서 쳐다보니까 다리가 막 후들거리고 꼬였어요. 켁켁. 영어카드 게임세트는 엄마랑 같이 해야되는데 엄마가 자꾸 지니까 엄마가 너무 화를 내서 요샌 숨겨두었어요.
수첩을 숨기고 다시 마루로 나가보니 엄마가 전화를 받고 있었어요.
“두영이 엄마? 아. 네. 세민이 조퇴하고 왔더라구요. 내일 준비물이 있다고요? 네 고마워요. 아니 자꾸 기침이 나오는데 소리가 점점 이상해지고요.”
나는 이때다 싶어 얼른 기침을 또 해주었어요. 그래야 두영이 엄마가 더 걱정해주실 테니까요. ‘크릉크릉.’소리도 내주었어요. 저절로 그런 소리가 났어요.
“병원요? 우리 집은 되도록 병원에 안 가는 게 가풍이라서요.”
아, 나는 물론 병원이 무섭긴 해요. 주사도 맞으라고 하고 검사한다고 막 피를 뽑잖아요. 하지만 진짜로 병원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였어요. 나는 더 크게 기침을 하면서 엄마가 붙잡고 있는 전화기 곁에 머리를 들이댔어요.
“아, 세민아 저리 가.아. 네. 개 짖는 소리요? 그러네요. 좀 그런 거 같아요. 네? 그런 병이 있어요? 몇 시간 만에요? 정말이에요?”
갑자기 엄마 얼굴이 어두워졌어요.
“그러면 정말 병원에 가봐야겠네요. 지금 문 연 소아과가 있을까요?”
나는 옆에서 고개를 마구 흔들어댔어요. 기침을 하고 있지만 엄마 말대로 배꿑탕을 먹으면 내일 아침에는 나을 것 같았어요. 병원은 정말 싫었어요.
“세민아. 너처럼 개 짖는 소리 나는 기침하는 병이 아주 무서운 병이래.”
“왜요? 개가 된대?”
“개가 되는 게 아니고. 개 짖는 소리로 나는 기침을 하는 크루프라는 병이 있대잖아. 기도가 막혀서, 그러니까 숨을 잘 못 쉬어 몇 시간만에 죽기도 한대. 남자애들이 더 많이 걸린다잖아. 어떡해.”
엄마는 울먹거리기까지 했어요. 너무 걱정이 되어서 나를 업으려고 했어요. 말도 안돼요. 나는 업히지 않으려고 뒤로 발을 빼면서 팔을 휘저었어요.
“엄마, 나 숨 잘 쉬잖아. 봐봐. 쿨럭크억. 심호흡 해볼까? 핫둘핫둘. 켁켁.”
엄마는 내 말은 듣지도 않았어요. 무조건 가야한다는 거였어요.
“엄마가 지금 문 연 병원 없다고 했잖아요.“
“아냐. 밤 10시까지 하는 병원이 있대. 어서 가보자. 좋은 병원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대. 나는 이 동네 소식을 이렇게 모르고 사니 원.”
엄마는 나에게 급하게 파란 줄무늬 티셔츠를 입혔어요. 그 옷 말고 체크무늬 셔츠를 입으면 더 멋지게 보일텐데 말이에요.
“아, 나, 컹컹. 이 옷 싫어.”
“나중에 갈아입자. 응? 지금 시간 없어.”
정말 맘에 안 드는 티셔츠를 입고 낯선 의사를 만나러 가기는 싫었어요. 아무튼 병원은 가기 싫었어요. 엄마는 큰 길가로 허겁지겁 날 끌고 나가서 택시를 잡았어요.
“엄마. 우리 집 쿨럭, 부자 될 때까지 택시 안 탄다고 했잖아.”
“부자되기 전에 아파서 죽으면 되겠냐? 시끄러.”
“죽기 전에 부자 되기, 진짜 힘드네.”
나는 꼭 부자가 되어서 세인트 버나드 강아지를 사고 싶었어요. 멋진 부자라면 최소한 덩치 큰 강아지를 두 마리쯤은 길러야 되는 거잖아요. 세인트 버나드보다는 좀 작은 비글 강아지를 한 마리 더 기르면 좋을 거에요. 그리고도 너무 부자라서 마당이 크다면 삽살강아지를 기르면 딱 어울릴 거에요. (우와, 그러면 완벽하겠다. )
나는 강아지 세 마리를 생각하니 부자가 되기 전에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엄마 말대로 병원에 가보기로 했어요. 택시는 출발하자마자 금방 멈췄어요.
“여기에요?”
엄마가 택시 운전사에게 물었어요.
“손님이 여기로 오자고 하셨잖아요. 국민은행 앞, 훼미리마트 옆. 맞잖아요.”
“아 그러네요. 그런데 대체 병원이 어디 있는 거지?”
엄마는 우물쭈물 거리면서 택시비를 냈어요. 나는 엉거주춤하다가 엄마가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택시에서 내렸어요.
“엄마 여기 맞아? 여기 우리 학교 뒷문 쪽인데. 여기 병원 없어.”
“설명으로는 여기가 맞는데 왜 병원 간판이 없냐고. 미치겠네. 아니 그 여자는 대체 병원이 어디인지 제대로 설명도 못 해주면서 가라고 한거야?”
엄마가 화를 내면서 휴대전화를 찾았지만 엄마 손지갑에는 휴대전화가 들어있지 않았어요. 엄마는 늘 그래요. 중요한 순간에 꼭 중요한 게 없어요.
“아차, 휴대폰, 큰 핸드백에 들어있는데....... 미치겠네.”
나는 기침을 하면서 두리번거렸어요. 학교 후문 쪽으로는 잘 나오지 않아서 못 보던 가게들이 뭐가 있나 두리번거렸어요. 어떤 카페 안에서 고양이가 빤히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발이 그쪽으로 움직였어요.
“세민아, 어디 가? 지금 고양이 구경할 때가 아냐.”
엄마가 따라오면서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어요. 하지만 난 세차게 고양이를 향해 갔어요. 카페 문에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우리 동네 병원, 고양이네 카페’
“엄마, 여기 병원이래. 켁켁.”
“카페잖아. 게다가 고양이까지 기르고 있다니. 커피에 고양이 털이 들어있을거야. 별꼴이다. 아니 근데 병원은 어디 있는 거니. 큰일이네. 빨리 진찰을 받아보고 그 이상
한 병인지 아닌지 알아봐야 되는데.”
마침 그 때 어떤 키 큰 아저씨가 카페에서 나오면서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엄마가 그 아저씨에게 급하게 물었어요.
“혹시 여기 근처에 가정의학과 병원 어디인지 아세요? 저녁 늦게까지 한다는데.”
“여기에요. 잘 찾아오셨네요.”
“네? 아, 이 안에 병원이 있어요? 감사합니다.”
놀란 엄마와 신난 나는 후다닥 문을 열고 고양이를 지나서 의사선생님을 찾아 카페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고양이가 설렁설렁 나를 따라왔어요.
그런데 카페 한 쪽에 있는 작은 노란 소파에서 동후가 벌떡 일어났어요.l
“어, 세민아. 너 여기 왜 왔어?”
갑자기 나타난 동후가 너무 반가웠어요. 아마 동후도 내가 반가웠는가 봐요. 학교에서는 좀 미웠었는데 학교 아닌 데서 보니까 달라보였어요.
“밤에 문 여는 병원이 없어서 소개받았어.”
“그래? 잘 왔네. 우리 고모가 여기서 일하거든. 내가 잘 말해줄까?”
동후는 턱으로 카페 주방에서 일하는 고모를 가리켰어요. 나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서 인사를 했어요. 손님들이 있는데 큰 소리로 인사를 하기는 눈치가 보였어요.
“아니. 컥컥. 뭐. 그럴 것 까지는 없어. 차는 안 마실 거야.”
동후랑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엄마는 의사를 찾고 있었어요.
“저기요. 의사선생님이 어느 방에 계시나요?”
동후 고모에게 엄마가 물었어요. 그러자 설거지를 하던 동후 고모가 앞치마를 벗으며 말했어요.
“진료 받으러 오셨어요? 다행이 예약환자가 없네요. 따라오세요.”
나는 엄마랑 같이 동후 고모를 따라서 두 폭 병풍 모양의 가리개 안 쪽으로 들어갔어요. 동후 고모가 책상 앞에 앉으며 볼펜을 집더니 물었어요.
“누가 진찰 받으실 건가요?”
세민이는 얼른 의자에 앉으며 말했어요.
“저요. 쿨럭.”
“자. 잠깐. 아가씨가 의사에요?”
엄마가 놀라서 나를 잡아당겨, 도로 일어서게 했어요. 나는 얼른 엄마에게 말해주었어요.
“엄마, 동후 고모래.”
나와 거의 동시에 동후 고모도 대답했어요.
“네. 제가 오늘 당직 의사입니다.”
엄마는 의사 책상 뒤쪽 벽에 붙은 의사면허증을 빨리 쳐다보았어요.
“하지만 면허증에 사진이 없는데 어떻게 아가씨가 저 의사인지 알겠어요.”
“음. 그렇긴 한데요. 제가 의사에요. 여기 이름표를 달고는 있지만 이것도 못 믿으시면 소용없겠어요.”
나는 웃음이 막 나왔어요. 하지만 기침하고 웃음이 섞여서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설거지 하던 카페 아르바이트생 누나가 갑자기 가리개 뒤로 와서 의사로 변신했잖아요. 동후 고모는 블라우스에 이름표를 달고 있었는데 아주 작은 글씨로 <의사 홍나연> 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이렇게 변신하면 나중에는 합체도 하는 거 아닐까? 고양이하고 의사하고 합체하면 정말 멋질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씨익 웃었어요. 동후가 우리 엄마의 큰 소리를 듣고 가리개 가까이 와서 소리쳤어요.
“고모. 우리 반 친구야. 살살 치료해줘요. 기침을 너무 해서 오늘 학교에서 쫓겨난 친구에요. 세민이 아줌마, 우리 고모 의사 맞아요. 의대서 일등으로 졸업한 고모에요. 우리 할머니의 자랑이에요.”
의사 선생님이 그 말을 듣고 빙긋이 웃었어요. 그러자 엄마는 깜짝 놀라 가리개 뒤를 내다보고 동후에게 물었어요.
“정말이야? 니네 고모야?”
동후는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어요. 나는 조금 창피해서 엄마 옷자락을 잡아당겼어요. 그래도 엄마는 마음이 놓이지 않은 거 같았어요.
“저기....죄송하지만 혹시 다른 의사는 안 계시나요?”
“한 분은 오후2시부터 6시까지 진료하세요. 오후 6시부터 밤10시까지는 제가 당직이고요.”
“선생님, 컹컹 목 아파요. 컥.”
나는 동후 고모가 맘에 들었어요. 얼른 진료를 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모양이었어요.
“병원도 이상하고. 뭐에 홀린 거 같고.”
엄마가 중얼거리는데 누군가 가리개 너머에서 또 소리쳤어요.
“선생님, 저 이제 갈게요. 내일 다시 올까요?”
“아니에요. 처방전에 써드린 대로 주의하시고 치료는 이제 안 받으셔도 되요.”
“그럼 내일은 커피만 마시러 올게요. 감사합니다.”
손님인지 환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사라지는 소리가 나자 다시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물었어요.
“일단 아이 상태부터 봐도 될까요? 제가 의사인지 아직 못 믿으시는 거 같긴 하지만요.”
“아니 내가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고요. 의사 선생님이 왜 설거지를 하고 있고....이상하잖아요. 애는 아픈데 병원이라고 해서 왔는데 카페잖아요. 고양이도 있고 말이죠. 뒤죽박죽이잖아요.”
“죄송해요. 병원이 너무 가난하면 운영이 안 되서요. 커피 팔아서 병원을 유지하느라 그렇게 되었어요. 기침이 언제부터 났지요?”
“가운도 안 입고. 간호사도 없고.”
“간호사는 필요하면 제가 불러요. 지금 커피 만들고 있거든요. 그리고 가운은.......저기 걸려 있는데요. 아무나 가운 입으면 의사가 되고 의사가 가운 벗으면 의사가 아니고 그런 건 아니잖아요. 저를 믿으실래요? 가운을 믿으실래요?”
나는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들이 참 무서웠더랬어요. 그래서 가운 안 입은 의사 선생님이 진찰해주는게 더 좋았어요. 그리고 동후 고모라니까 더 좋았어요. 전에 엄마는 잘 아는 사람 중에 의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왜 동후고모가 의사라는 데도 이렇게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엄마는 흰 가운을 한 번 더 쳐다보고 이름표를 또 보고는 중요한 결심을 내린 거 같았어요. 하기는 뭐 계속 따질 시간이 없었어요.
“아무튼 우리 애가 어제부터 기침을 하는데요., 자꾸 개짖는 소리처럼 기침을 해서요. 너무 무서워서 병원을 찾아 온 거에요.”
“뭐가 무서우셨어요?"
“구르프라는 병이 개 짖는 소리를 내다가 기도가 막혀서 몇 시간 만에 죽는 병이라고. 혹시 우리 애가 그런 병에 걸린 건가 너무 무서워서.””크루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런 병이 있기는 해요. 자, 이름이 뭐지? 동후랑 친구구나. 반갑다.“
“세민이요. 장세민. 쿨럭쿨럭.”
“목 안을 좀 봐야 하겠는데 입 벌릴 수 있지? 아--하고 소리내볼래? 노래 잘 하는 목소리인가 들어보자.”
“ 아----”나는 입을 벌리고 노래하듯이 소리를 질렀어요. 그런데 혓바닥을 지긋이 누르는 막대기에서 사탕맛이 났어요.
“잘 했다. 노래도 잘 하겠구나. 목소리가 좋은데. 세민이 어머니. 세민이가 기관지염이 좀 있어요. 기도가 막히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목욕탕에 욕조에 뜨거운 물을 좀 받아두시면 수증기가 차잖아요. 그러면 목욕탕 안에 들어가있으면 되요. 그러면 기침이 좀 가라앉을 거에요. 그리고 잘 때도 차가운 수증기가 나오는 가습기를 틀고 재우세요.”
“기도가 막힌 거는 아니지요?”
“기도가 막히면 애가 숨을 잘 못 쉬지요.”
“휴-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엄마가 일어서면서 나도 일으키려는데 의사 선생님이 “잠깐만요”하면서 웃었어요. 나는 진찰용 막대기에 달린 납작한 작은 사탕을 빨아먹느라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바쁘시지 않으면 조금 기다리세요.”
“왜요?”
“진찰이 안 끝나서요.”
의사선생님은 세민이에게 별별 걸 다 물어보았어요. 잠은 잘 자는지, 반찬은 무얼 좋아하는지, 똥을 쉽게 잘 나오는지, 매일매일 똥을 싸는지, 우유를 많이 먹는지, 아니면 두유를 많이 먹는지, 잡곡밥은 잘 먹는지, 학교는 걸어다니는지, 형이나 동생이 있는지, 학교생활은 어떤지도 물어봤어요. 그리고는 몸무게도 재고 키도 쟀어요. 의사 선생님 책상에는 봉제 완구가 세 개 있었는데 하나는 곰이고 하나는 토끼 또 하나는 코알라였어요.
“어떤 동물이 좋아?”
“고양이요. ”
나도 모르게 고양이라고 말했어요. 그동안 늘 강아지가 제일 좋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사는 고양이를 보니 고양이가 정말 멋지게 보였어요.
“아니 이 세 가지 완구 중에서 하나 골라봐.”
나는 얼른 코알라를 골랐어요.
“안아볼래?”
코알라를 가슴에 안으니 의사 선생님은 코알라 인형 속에 청진기를 넣고 내 가슴뛰는 소리를 들었어요. 나는 이 병원이 아주아주 맘에 쏙 들었어요.
“선생님, 저 고양이, 이름이 뭐에요?”
“응, 핫초코야. 한 마리 더 있는데. 저기 안쪽 큰 소파에서 안 내려와. 그 애는 이름이 식혜야.”
“이히히히, 켁켁. 다 먹는 거다.”
의사선생님은 내가 여러 가지 생활습관이 좋은 편이라고 칭찬했어요. 운동을 조금 만 더 하면 아주아주 건강이 좋아져서 오래오래 재미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고 종이에 잔뜩 무얼 적느라 시간이 꽤 많이 지나갔어요. 난 좀 졸리기 시작했어요. 기침은 아직 나왔지만 기분은 훨씬 편해졌어요. 부자가 될 때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알았잖아요.
엄마가 커피 만들던 간호사에게 진료비를 내고 처방전을 받는 동안 나는 동후랑 같이 고양이들을 구경했어요. 동후가 고양이에게 주는 간식을 두 개 주어서 하나씩 나누어 주었어요. 진료실에서 나온 동후고모는 다시 주방으로 가서는 무언가 만들기 시작했어요.
“동후야. 넌 왜 여기 있어? 집에 안 가?”
“오늘 엄마랑 아빠가 음악회 갔어. 그래서 날 여기다가 맡긴거야. 나도 뭐 집에 있는 거 보다 여기가 더 좋아. 고양이도 있고. 코코아도 마시고.”
“코코아도 있어?”
“응. 우리 고모는 코코아라고 부르지 않고 핫초코라고 불러. 아무튼 우리 고모가 나한테는 특별히 코코아에 마쉬멜로우 조각을 넣어서 주거든. ”
“맛있냐?”
“음. 마쉬멜로우가 구름처럼 스르륵 녹아.”
“맛있냐고. 쿨럭, 컥.”
“솔직히 맛은 비슷한데 그래도 되게 맛있게 보여.”
“우리 엄마는 구두쇠라서 킁킁. 그런 거 절대 안 사줘.”
“내가 사주면 좋겠지만, 이번 주 용돈을 다 썼어. 우리 고모네 카페 오면 공짜로 먹지는 못 해. 엄마가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 그래도 고모가 나한테 몰래 반값에 할인해줘. 그리고 무한 리필이야 . 나는 특별하니깐.”
“무한 리필? 그게 뭐야?”
“빈 컵이 되면 계속 더 따라 주는거야. 배가 터질 때까지. 다른 날 만났으면 리필해서 너도 한 잔 먹게 해주는 건데. 근데 더 좋은 건 고모가 만드는 치즈케익이야. 진짜 환상이지.”
동후는 학교에서와는 다르게 설명도 잘 해주고 친절했어요.
“야. 되게 좋다. 나도 그런 고모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고모는 우리 할머니네 집에서는 아주 골칫덩어리 딸이야.”
“이히히 왜? 자랑거리라면서.”
“의대 다닐 땐 자랑거리였어. 지금은 골칫덩어리가 되었어. 시집을 안 가거든. 게다가 돈 많이 주는 대학병원을 때려쳤어. 할머니가 아까워죽겠대. 수술해야되는 사람이 치즈케익이나 만든다고 할머니는 불만이 많으시지.”
“히히히 케익을 수술시키면 안 될까.”
“우리 고모 케익은 굽는게 아니고 굳히는 거라서 정말 특별하거든. 할머니는 고모가 만든 케익을 안 드셔. 케익만들라고 의대 보낸 거 아니라고 화내시거든.”
“케익도 만드는 의사는 더 훌륭한 거 아닌가?”
“그렇지? 근데 우리 할머니는 아니래.”
동후 고모 이야기를 더 들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엄마가 빨리 집에 가야한다고 소리질렀어요.
“약국 문 닫기 전에 빨리 가자.”
동후는 나에게 손을 흔들고 우리 엄마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어요.
“안녕히 가세요. 아줌마.”
“그래. 너 빨리 집에 가서 이 닦고 자라. 숙제는 하고 여기서 노는 거니?”
엄마의 잔소리에 동후는 깜작 놀라면서 나에게 두 손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여주었어요.
‘야야 니네 엄마 잔소리 캡왕짱이다.’
그런 뜻이란 걸 나는 다 알아들었어요.
‘정말 엄마는 못 말린다니까.’ 나는 약국으로 따라가면서 잔소리를 없애주는 약은 없을까 생각했어요,
약을 사서 집에 와서 나는 엄마랑 수증기가 가득 찬 목욕탕에 앉아 있었어요. 나는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앉고 엄마는 쪼그리고 앉아 속옷을 손빨래했어요.
“정말 이상한 병원이야. 뭐 그렇게 물어보는 게 많니. 진찰하는데 30분이나 걸렸어. 기관지염인지 알았으면 얼른 처방전 써주고 가라하면 되는데 말야.”
엄마는 정말 이중인격자에요. 전에는 병원에 다녀오면 이렇게 불평을 했었어요.
“아니 무슨 의사가 그래? 뭘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피부터 뽑으래. 검사하고 결과보고 말해준대. 날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더라니깐. 수의사들이 훨씬 친절하다니깐. 수의사는 개나 고양이가 오면 일단 만지고 안아보기라도 하잖아.”
그랬던 엄마가 이번에는 의사가 말이 많다고 싫어했어요. 나는 고양이카페 병원이 맘에 들었어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 편을 들고 싶어졌어요.
“난 좋더라. 혀 누르는 막대기도 맛있고.”
“막대기가 맛있어?”
“히히히 거기 사탕이 쿨럭, 달려있어.”
“맙소사. 애들을 그렇게 꼬시는구나.”
“엄마는 그 병원 싫어?”
“이상해. 병원같지 않아. 카페 속에 병원이라니 말이 되니?”
“왜 말이 안 되는데? 친절하고 좋은 병원이잖아.”
“뭔가 불법병원같은 분위기잖아. 사주카페도 아니고 병원카페가 뭐냐고. 넌 수증기나 많이 마셔. 얼른 자야지. 벌써 10시야.”
“엄마, 눈이 빨개. 엄마도 내일 우리 동네 병원에 가봐.”
“눈 아플 땐 안과가는 거야.”
수증기 안에서 코를 벌름거리다가 엄마랑 이야기를 하니까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기침도 조금 약해지는 기분이었어요.
“오늘은 그림책 안 읽어도 돼. 엄마.”
“왜? 만날 읽어달라고 하더니.”
“이거 읽을라고..”
세민이는 아까 병원서 받아온 처방전을 꺼내어 몇 번이나 읽었어요. 의사선생님이 처방전을 두 장 주셨는데 프린터로 찍은 약 이름 쓰여진 처방전은 약국에 냈어요. 그리고 손으로 써주신 한 장은 집에 가져왔어요.
-세민이는 목 안의 기관지가 아프니 담배연기가 있는 곳에는 가지 마세요. 먼지가 많은 곳도 나쁘니까 사람이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하세요. 열이 많이 나면 곧바로 병원에 오세요. 약은 시간에 맞춰서 먹으세요. 약을 먹으면 설사가 나올 수도 있어요. 치료는 며칠 걸릴 겁니다. 병원에 내일도 오세요.-
손으로 쓴 처방전에는 고양이 그림도 그려져 있었어요.
“엄마. 이거 편지 맞지? 어른한테 손으로 쓴 편지는 처음 받아봤어.”
“왜 이래. 엄마랑 아빠가 네 생일 때마다 카드에 손으로 편지 썼는데.”
“아 맞다.,그래도 이건 긴 편지잖아. 진짜 편지야.”
나는 자기 전에 먹어야 되는 쓴 약도 도망다니지 않고 얼른 먹었어요. 고양이가 보내준 약 같았어요.
나는 잠들면서도 계속 병원에 있던 고양이들을 생각했어요.
다음 날은 학교에 안 가는 토요일이었어요. 하지만 엄마네 회사는 토요일에도 일을 하지요. 그런데 아침에 깨어보니 엄마가 그냥 누워있었어요.
“엄마, 8시 반인데 왜 회사 안 갔어?”
“못 갔어. 아파서. 세민이도 아픈데 엄마까지 아파서 속상하네.”
나는 엄마 이마에 손을 얹어보았어요. 아빠는 포항에서 저녁 때나 오실텐데 엄마가 아프니까 내가 엄마를 돌봐주어야 했어요. 나는 아빠랑 사나이 대 사나이로 약속을 했는데 그건 아빠가 없을 때는 내가 엄마를 잘 돌봐준다는 약속이었어요.
“엄마, 내가 약 사올까? 컥컥,”
“그럴 수 있어? 참. 세민이 너 얼른 씨리얼이라도 먹어. 그래야 어제 받아온 약을 먹지. 지금 엄마가 도저히 일어나서 밥 못하겠어. 미안해.”
나는 후다닥 세수를 하고 씨리얼을 한 그릇 먹었어요. 그리고 어제 ‘우리 동네 병원’ 앞에 있는 건강약국서 사온 약을 먹었어요. 그리고 엄마가 말하는 걸 종이에 적었어요.
-어지럽다. 속이 울렁거린다. 머리가 아프다.-
“참 너 오늘 병원도 가야되는데 안 되겠다. 너 데리고 병원부터 갔다 와야지.”
엄마는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어요. 그렇지만 곧 도로 주저앉았어요.
“안 되겠다. 못 가겠어. 이따 오후에 좀 나아지면 같이 가자.”
엄마는 힘없이 말하고는 누워서 눈을 감았어요. 엄마가 저렇게 기운이 없는 걸 처음 보았어요. 다른 때는 아파도 잔소리를 계속 하면서 내 밥은 챙겨주었는데 이번엔 일어나지도 못 했어요. 엄마가 아프다니까 내 기침도 걱정되서 도망갔는지 기침도 잘 나오지 않았어요. 엄마 몰래, 아빠에게 전화를 했어요.
“아빠. 엄마가 많이 아픈가 봐. 회사도 못 가고 밥도 못 먹고 있어,.”
“너무 무리해서 그렇지. 엄마는 원래 건강 체질이니까 하루 푹 쉬시면 괜찮을 거야. 아빠가 오늘 3시까지 근무라서 저녁 8시쯤 집에 갈 거야. 너무 걱정 말고 너라도 밥 잘 챙겨 먹고 있어. 우리 씩씩한 세민이, 잘 할 수 있지?”
“네.”
나는 우선 엄마 약부터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약을 사러 혼자 가본 적은 없었지만 문방구에서 딱풀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문제는 없었어요.
엄마가 준 만원 짜리와 메모지를 점퍼 주머니에 넣고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갔어요. 화단에는 꽃도 피어 있고 나무들도 싱싱한 이파리를 반짝이며 서 있었어요. 그래도 나는 세상에 나 혼자 밖에 없는 거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 꽃과 나무도 슬퍼보였어요.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약국으로 가려다가 <우리동네> 병원이 생각났어요.
‘아, 동후 고모한테 물어보고 약을 사면 더 좋겠다.’
나는 뛰기 시작했어요.
카페병원은 문이 닫혀있었어요. 이럴 수가. 병원 앞에는 어떤 아저씨가 비질을 하고 있었어요.
“컥컥. 의사 선생님 언제 오세요?”
“아이고. 넘어지겠다. 천천히 말해. 내가 의사야.”
“헉헉 그게 아니고. 저기 그 여자 의사 선생님.”
“아. 홍원장은 오후에 나오는데.....홍원장하고 약속했니?”
카페 앞, 아니 병원 앞을 빗자루로 쓸던 의사선생님? 아저씨? 형님? 아무튼 그 분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어요.
“안 되는데. 엄마가 아픈데.”
“엄마가 많이 아프셔? 그럼 엄마가 이따 오후에 병원에 오시면 되지.”
“어지럽다고 못 일어난대요. 큰일났다. 아빠는 밤에 오는데. 나는 운전도 못 하는데. ”
“그래? 그러면 집이 어디니? 같이 가보자.”
“예? 정말요?”
“아직 카페 문 열려면 1시간 남았거든. 우리는 게으른 병원이라서 진료는 오후 2시부터야.”
의사 선생님은 진료실에 들어가서 고양이에게 밥과 물을 주고 두 번씩 쓰다듬어 주고 작은 가방을 챙겨서 나왔어요.
“앗, 선생님 가운하고 이름표 챙기세요. 그거 없으면 우리 엄마가 무시해요.”
의사선생님은 웃으면서 가운을 팔에 걸치고 나왔어요.
나는 의사선생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했어요.
‘나도 이런 병원에서 일하는 친절한 의사가 되고 싶다.’
엄마가 아픈 게 나으면 다시 고양이카페병원에 올 거에요. 치즈케익을 사먹으러 말이에요.
<작가 메모-홍대 앞에 고양이를 기르는 병원이 있다 해서 가 보았습니다. 하루에 환자 20명 이내, 한 명당 30분 진료에 진료비 3천 원 남짓으로는 병원 유지가 어려워 카페를 겸하고 있었습니다. 원장이 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들도 카페에 살고 있었습니다. 1차 진료기관으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긴 세월을 함께하고 싶다는 젊은 의사가 소박한 생각으로 만든 의원이었습니다. 두 명의 의사가 원칙에 입각한 진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꼼꼼하게 문진하고 가족 병력을 파악하고 있는 동네 분들 주치의의 역할을 하는 이상적인, 그러나 그래서 비현실적인 병원이었습니다.>
<수상 소감>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습니다. 혹 뭐가 생각나면 얼른 쓰려고 모니터 앞을 사수하지만 수많은 시간은 이런저런 인터넷 상의 소식들을 들춰보는 걸로 지나가버립니다.
그 혼돈 속에서 가끔 알토란 같은 이야기거리를 건지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작은 병원이야기였습니다. 홍대 앞 놀이터 부근에 제너랄닥터라는 병원이 있다 했습니다. 젊은 의사가 소신껏 병원을 운영한다 했습니다. 그 의사가 쓴 책도 있다 하니 사 봤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서 가봤습니다. 비만 치료를 받으려 했지만 예약을 하지 않아서 안 된다 하길래 병원에 딸린 카페에서 카레라이스를 주문해서 퍼먹으며 고양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거기 앉아 있다만 와도 마음이 편안해져서 병이 나을 듯 싶었습니다. 제가 알던 병원의 이미지는 차갑거나 전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병원은 평화로웠습니다. 다른 의사들은 병원을 그렇게 운영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의사는 자기 생각대로 해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동화같은 일이 가끔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내가 쓴 동화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진다면, 그러면 참 좋겠습니다.
병원 덕에 이달의 우수작품으로 뽑혀서 송구스럽습니다.
•약력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월간 주니어 취재 기자, 크라운제과 사보 편집자, 월간 하이빙키 주간, MBC <뽀뽀뽀> 구성 작가, EBS <빵빵 그림책 버스> 스토리 작가,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등으로 일했다.
1988년 계몽아동문학상 동극 부분에 수상했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초빙교수, 분당 한겨레 문화센터 동화쓰기 입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해금 교실과 목수 학교는 학생으로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