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최초의 8,000m 봉우리, 낭가파르바트＞] 꿈이 최종적으로 이룩된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대한산악연맹 홍성군연합회장,엄중섭]

에르하르트 로레탕의 낭가파르바트 디아미르 벽(서벽) 등정기

스위스 육군은 의무적인 군복무를 수행하는 젊은 남성들에게 군사훈련 중 산악 가이드의 기초 훈련과정과 4개월간의 의학교육을 병행시켜, 군의관, 위생병, 또는 변덕스러운 상사들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사병들을 양성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무위도식하는 집단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나(에르하르트 로레탕Erhard Loretan)는 어린 시절부터 알피니스트Alpinist가 되려는 꿈을 지녔다. 그래서 1979년, 스무 살 때 스위스의 피셔탈에서 73명의 후보생들과 산악 가이드 훈련을 받았다.

우리는 절벽 밑에서 ‘클라이밍 슈즈Climbing shoes’의 해악害惡(당시는 이 장비의 착용을 반대하는 시류가 우세했다) 등에 관한 등반 이론을 학습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가이드가 추락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에 승복하고, 등반 실습에 들어갔다.

나는 클라이밍 슈즈를 미착용한 가이드와 자일을 묶었다. 루트 난이도가 높아짐에 따라 선등자인 가이드의 발이 절벽에서 자꾸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루트 파인딩route-finding 솜씨도 서툴러 막다른 골목, 즉 몸을 앞으로 전진시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그는 “나는 길을 잘못 들었어, 곧 하산할 거야”하고 말했다. 나는 ‘등반 중에는 가이드 판단이 항상 옳다’는 가이드 규정 1조의 내용에 따라 그의 결정에 동의했다.

그는 작은 관목에 그의 로프를 걸었고 내가 자일을 조금 풀어주자, 그는 갑자기 추락했다. 관목이 그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휘어졌고, 로프가 벗겨져 그는 20m를 추락한 후 로프 끝에 매달려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벽 밑까지 자일 하강시켰고, 그는 헬기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는 그날 세 번째 부상자였다. 그 가이드가 그날 클라이밍 슈즈를 착용했다면 추락을 피할 수 있었을까? 나는 가이드 지망생 학급을 수석으로 졸업했기 때문에 나를 수용했던 조직체를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교육 과정에서 행운이 내 편을 들어 주었다.

나는 스키에 ‘클라이밍 스킨Climbing Skins(미끄럼 방지를 위해 스키 밑바닥에 부착하는 물개 가죽 조각)’을 부착하고, 스키 여행단을 인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출발지는 ‘아롤라’, 행선지는 ‘비뉴에테’로 ‘베르톨 헛’, ‘테트 블랑쉬’, ‘몽 브륄레’, ‘레베크’ 등의 여러 설벽을 경유했다. 앞뒤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가 끼어 레이더 장비(전파 탐지기)를 이용하더라도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사용 경험이 전무한 나침반을 지급했다. 나는 나침반의 바늘을 주시注視하며, 최대한 용기를 발휘해 일행을 인도했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발생한 사건과 비견比肩한다면, 마젤란Magellan(포르투갈의 유명한 항해사) 일행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을 때, 나침반의 힘에 크게 의존해 남미의 남단과 티에라델푸에고 섬 사이의 해협(나중에 마젤란해협으로 명명)의 짙은 안개 속의 미로迷路를 돌파했던 사건과 맞먹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러 시간 동안 짙은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다가, 운좋게 목적지 비뉴에테로 정확하게 빠져 나왔다. 영국의 유명한 산악인 머메리는 “우리 산악인들이 고산에서 기울이는 최선의 노력은 때때로 행운의 여신의 축복을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등반 기량을 평가받기 위해 연로한 전문등반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크램폰을 착용하거나 또는 미착용한 상태로 등반이나 하산을 병행하면서 수주일 동안 등반했다. 나는 그때 “최악의 날씨 속에서 최고 수준의 등반을 이룩할 수 있는 자가 최고의 산악인”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그런 사고방식은 우리를 재난으로 몰고 갔다. 발라이스 알프스의 테트 블랑쉬에서 우리 중 12명은 눈사태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사라졌다.

1981년 우리 중 28명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산악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는 산에 관한 열정 덕분에 가이드 자격을 얻게 되어 매우 행복했다. 그러나 당시 오직 가이드 직업만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이드로 채용돼도 끊임없는 등반사고로 그 직업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나는 툰Thun 소재의 한 등반학교에 3개월간 가이드로 고용되었다. 그 학교는 고객이나 가이드의 안전보다는 학교의 수익을 앞세웠다. 나는 자일 한 동에 5~6명의 고객을 묶고 등반해야 했다.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인원들을 이끌고 눈사태의 위험지역인 몽 로즈를 등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그후 등반학교 취업은 사양했다. 나는 가이드 교육과정에서 노르베르 조오스와 페터 힐트브란트와 친구 지간이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낭가파르바트Nanga Parbat(8,125m) 원정에 관심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 고봉은 1982년 당시 어떤 스위스인도 등정하지 못한 봉우리였다. 내가 수년간 꿈꾸어 왔던 낭가파르바트 원정에 어찌 관심이 없었겠는가? 그런데 원정에 참가하려면 1만~1만2,000프랑을 납부해야 했다. 나는 그뤼예르 알파인 클럽에 편지로 나의 낭가파르바트 원정계획을 밝히고, 그들에게 등반 자금을 빌려 달라고 간청했다.

그들의 호의 덕분에 나는 5월 2일 파키스탄의 라왈핀디로 향했다. 90명의 포터들을 모집하고 각각 14kg의 짐을 분배하는 데 하루가 소요되었다. 우리는 디아미르빙하Diamir Glaciers를 따라 야심찬 캐러밴을 시작했다. 슈테판 뵈르너Stefan Wörner 대장을 비롯해 7명의 산악인들, 그리고 90명의 포터들이 2,250kg의 장비와 식량을 운반하며 낭가파르바트의 디아미르벽이 바라보이는 해발 4,250m 지점의 베이스캠프에 4일 만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에는 겨울의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어 심설과 얼음을 파내고 어렵사리 캠프를 구축했다.

거대한 것에 위협당하고, 동시에 매혹된 기분

디아미르벽 밑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고도 3,875m를 더 올라야 정상을 밟을 수 있다고 했다. 그때 거벽 앞에 선 느낌은 낙하산을 타고 거대한 신세계에 투하投下한 기분이었다. 이 거대한 세계에서는 측량의 단위가 무의미해 914m의 등반과 91m의 등반 사이에 별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인가 거대한 것에 위협당하고, 동시에 매혹된 기분이었다.

모든 알피니스트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어느 날엔가 자신이 8,000m의 장벽을 허물어버릴 꿈을 꾼다. 이 꿈은 우리 산악인들이 평생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으로, 알프스 등지에서 우리가 겪은 난관을 모두 합산하고, 거기에 최종적인 요소, 아니 최악의 요소, 킬러, 즉 고도를 합쳐 생성된다. 즉 이 거벽을 허물어 버리려는 의욕이 생긴다.

히말라야와 카라코룸에 산재하는 모든 8,000m 봉우리들은 등반 기술상의 난관에 상관없이, 모두 ‘죽음의 지대Death Zone(8,000m 이상의 고도를 말함)’를 보유하고 있다. ‘죽음의 지대’라는 용어는 과장된 표현 같고, 모험담에서나 등장하는 용어 같지만, 실제로 죽음이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팩트의 표현이다. 7,500m 이상의 고도에서는 인간이 생존하기에 부적합한 요소들이 허다하다. 사람들이 장시간 그곳에 머무르면,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등반사는 그곳이 그렇게 잔인한 장소라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견딜 수 없는 고도에서 최후를 맞이했는가?

그곳에서 공기의 산소 함량은 평지에 비해 30% 이하이다. 그곳에서는 인간 생리 기능의 모든 요소가 변화한다. 사람의 반사기능이 둔화된다. 산소 결핍缺乏으로 인해 사람의 두뇌가 느리게 작용한다. 우리 원정대가 낭가파르바트를 등반하던 1982년까지 그곳에서 사망한 사람은 40명이 넘어 이 산은 ‘죽음의 산’으로 불렸다. 우리 등반대가 그 묘비명에 한 명을 더 추가하게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비극은 기어코 발생하고 말았다.

베이스캠프에서 첫날밤을 보낸 후 우리는 아침식사 중이었는데, 페터 힐트브란트 대원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아 매우 놀랐다. 우리는 그의 텐트 속에서 혼수상태인 그를 발견했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페터는 체격이 건장한 23세의 청년으로, 남미 페루의 와스카란Huascaran(6,768m) 등정을 비롯해, 알프스 등지에서 다수의 뛰어난 등반 업적을 이룩한 산악인이었다. 그는 뇌수종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이동식 고압산소탱크, 팀 닥터, 내과의와 치료용 산소를 확보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를 고압산소탱크실에 집어넣었다가 포터들의 도움으로 해발 2,000m의 낮은 고도로 하산시켰다. 일단 비극은 잠정 중단되었다.

페터가 치료 중일 때 디아미르벽 중앙을 등반할 작정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루트는 1895년 영국 산악인 머메리가 히말라야 8,000m 고봉 등반의 효시嚆矢를 이룩했던 ‘머메리 립Mummery rib(rippe)’이었다. 머메리 조는 6,100m 지점까지 진출했으나, 립 양쪽으로 쏟아져 내리는 눈사태에 놀라 후퇴했다.

1982년 당시에도 적설량이 너무 많아 등반이 무척 위험한 루트였다. ‘디아미르’란 말은 전설상 ‘거인들의 주거지’란 의미이다. 거인들이 신음하며 으르렁대고, 호통치고, 거친 숨소리를 내뱉고 있는 것처럼 눈사태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며 후폭풍을 동반했고, 대지가 굉음으로 진동했다.

5월 2일 6,000m 지점에 진출한 후 강한 블리자드blizzard(눈보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질식사를 모면謀免하기 위해 등반을 포기했다. 우리의 다음 등반 목표는 ‘킨스호퍼Kinshoper’ 루트였다. 이 루트의 개념도를 약술하면, 먼저 디아미르벽 좌측에 있는 고난도의 가파른 스노 쿨와르snow couloir를 오르면, 5,900m 지점에 높이 60m의 ‘록스텝rock step’이 버티고 있다. 이것을 돌파하면, ‘킨스호퍼 아이스 필드Kinshoper Icefield(Kinshoper Couloir)’와 ‘바친 분지Bhazinbasin’가 차례로 이어진다. 바친 분지를 통과한 후, 초등 루트인 북서릉과 이어지는 루트가 있고, 또한 바친 분지를 대각선 방향으로 통과한 후, 사다리꼴 형의 상부, 정상 능선으로 이어지는 루트(오늘날의 노멀 루트)가 있다.

1962년 독일의 헤를리히코퍼(1934년 이 산에서 등반 중에 사망한 메르클 대장의 이복동생) 의학박사가 이끌었던 등반대의 킨스호퍼, 만하르트, 뢰우 세 대원이 등정했고, 그들이 하산 시에 폭풍과 조우했으며, 뢰우 대원이 추락사한 루트였다(훗날 한국 여성 클라이머 고미영이 이 루트로 등정하고 하산시 쿨와르 밑에서 추락사함). 또한 1982년 당시 이미 세 차례나 등정이 반복된 루트였다.

우리는 전통 등반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원들은 이 산에서 등하산을 반복하며, 고소 캠프로 짐을 계속 운반했다. 그러나 두서너 중요 구간에만 고정 자일을 설치할 계획이어서 운반하는 짐의 무게는 가벼운 편이었다.

5월 22일 노르베르 조오스와 나는 제2캠프(6,100m)까지 루트를 개척하고, 이튿날 9일간의 루트 개척을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우리는 2, 3일간의 휴식기간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폭설이 계속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휴식 기간이 10일로 연장되었다. 그동안 물이 끓어 막 넘치려는 냄비처럼 대원들 간에 긴장이 최고조로 상승했다.

6월 3일이 돼서야 알렉스 베르거, 마틴 브라운, 노르베르 조오스, 그리고 내가 베이스캠프를 떠날 수 있었다. 이 봉우리는 내게 최초의 8,000m 봉우리였으며, 우리는 이 봉우리의 정상을 밞을 때까지 베이스캠프로 되돌아오지 않을 각오였다. 2시간 뒤 제1캠프(5,000m)에 도착했다. 최근 강설의 결과는 상당히 파괴적이었다. 모든 텐트들이 1.8m 깊이의 심설에 매몰되어 있었다. 텐트들을 어렵사리 파내고 보니, 중앙 폴 하나가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 폴을 난로 위에 가열시켜 휘어진 부분을 똑바로 폈다. 고산 등반가들은 고산병 예방을 위해 의무적으로 많은 양의 물(하루에 1 갤런, 4.5리터)을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취침 시까지 계속 차를 끓여 마셨다.

6월 4일 오전 2시 55분. 나는 잠을 설치는 바람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전날 저녁부터 내 위장은 모든 음식을 거부해 아침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장차 고산 산행에서 단식을 감행해야 할 운명이었다. 두서너 개의 에너지 바를 먹고 억지로 물을 몇 모금 마셨다. 새벽에 제2캠프를 향해 심설 지대를 등반하는 것은 탈진으로 이어졌고, 여전히 고역이었다. 우리는 눈 속에 파묻힌 자일을 어렵사리 파내며 등반을 이어갔다. 눈 속에 파묻힌 제2캠프도 비참했지만, 다행히 텐트들은 무거운 눈 지붕을 이고서도 파손을 면했다.

6월 5일 오전 5시, 우리는 크램폰을 착용하고 배낭을 멨다. 알렉스는 병이 나서 베이스캠프로 하산할 예정이었기에 우리는 그를 여분의 텐트 속에 남겨 두었다. 등반의 속행은 고달픈 작업이었다. 우리는 그늘 속에서 킨스호퍼 쿨와르를 돌파했으나 혹한에 발이 얼어 걷는 게 고통스러웠다.

지난 5월 22일 노르베르와 내가 돌파했던 최고지점에 다시 도달했다. 햇볕이 우리 몸을 조금 녹여 주어 혹한의 고통이 다소 완화되었다. 대각선 방향으로 바친 분지를 향해 등반을 이어갔다. 우리는 갑자기 거대한 ‘윈드 슬랩wind-slabs’(부드러운 심설 표면에 바람의 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두꺼운 눈 껍질로, 판상 눈사태를 유발하는 위험구간) 밑에 당도했는데, 우리 위쪽에 30cm 깊이의 금이 나 있었다. 우리는 눈사태 공포에 떨었다. 순간적으로 그곳에 거주한다는 ‘거인들’의 장난감으로 둔갑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스럽게 그 슬랩은 무너지지 않았다.

잠시 후 바위 섬(눈밭 중앙에 위치한 암석 지대)에 도착해 제3캠프(6,950m)를 구축했다. 눈삽들과 아이스액스를 사용해 캠프를 구축하는 것은 지난至難한 작업이었다.

아이스액스는 결국 톱날만 달린 곡괭이여서 눈을 옮기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6월 6일, 우리 두 사람은 7,200m 지점까지 등로를 개척하기 위해 오전 5시경 출발했다. 7,200m 지점에 도착하니 정상 능선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우리는 단박에 등정을 밀어붙일까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신중한 편이어서 어떤 고도에서 어떤 일은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구분할 수 있었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고, 비박 장비 없는 등반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우리는 ‘헤르만 불Herman Bull의 등반 방식’을 거부하고, 계획대로 휴식 차 제2캠프로 하산했다. 1953년 헤를리히코퍼 박사가 이끄는 독일 초등대에 참가했던 나의 영웅 헤르만 불은 등반 대장의 하산 명령을 묵살하고, 낭가파르바트의 북동릉 상의 검은 암탑 ‘뫼렌코프(무어즈 헤드)’ 부근에 설치된 제5캠프(6,900m)에서 출발, 질버자텔Silbersattel(남동피크와 북동피크 사이의 은빛 말안장을 닮은 눈 등성이)을 지나 전위봉(7,910m)의 설벽 7,803m 지점에 배낭을 데포시키고, 깃발·장갑·수통을 주머니 속에 넣고 아노락Anorak(후드가 달린 방한용 코트, 파카)을 허리에 묶은 채 북서릉 쪽으로 등로를 바꿔 단독 등반을 계속했다. 그는 ‘바친 갭Bhazhin Gap(7,812m)’에 이어 톱날 형태의 암탑 능선인 높이 60m의 장다름gendarme(뾰족 바위)과 눈 처마 능선의 측벽, 즉 디아미르벽으로 우회한 후, 마지막 3m는 탈진으로 엉금엄금 기어서 노스 숄더North Shoulder(8,072m)에 도달했다. 그는 오후 7시 수직고 1,300m 수평거리 6km를 17시간 만에 돌파하고, 무산소 단독 등정으로 낭가파르바트를 초등정했다. 그는 암흑 속에서 하산 시에 8,000m 부근에서 크램폰 한 짝을 분실하고, 하산이 불가능해지자 바위에 기대어 혹한 속에서 비박 장비 없이 입은 옷차림 그대로 비박하고, 죽음의 문턱을 넘어 생환해 산악 영웅이 되었다.

우리는 하산 중에 제2 공격조 슈테판 뵈르너 대장, 한스 슈타우프, 그리고 고산병에서 회복한 페터 힐트브란트를 만났다. 그들은 제3캠프로 등반 중이었다. 그들은 다음날 제4캠프를 구축하고, 그 다음날 등정을 시도할 의도를 피력했다.

우리는 그들이 고도 6,100m 이상의 고지대를 처음 등반했고, 또한 고소적응이 잘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등정을 서두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그들의 계획을 단념하도록 충고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응답 없이 등반을 계속했다. 그 순간이 우리의 모험이 비극으로 전환되는 순간의 시발점이었다.

페터, 영원한 무덤 크레바스로 밀어 넣어

6월 7일, 우리는 오전 5시 이후 무선으로 대원들의 안부를 확인했다. 마틴 브라운, 노르베르, 나는 제3캠프를 향해 등반을 시작했다. 눈길이 이미 뚫려 있어 등반이 수월했다. 그러나 혹한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고 괴롭혔다. 우리가 제3캠프에 도착했을 때, 제2 공격조는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었다. 우리는 그들이 멀리서 등반 중인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나무늘보처럼 아주 느린 속도로 등반 중이었다.

슈테판 대장과 한스 두 사람만 제4캠프 예정지에 도착해 텐트를 구축하고 있었다. 페터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슈테판과 한스는 나중에 얘기하기를 페터를 한 시간 동안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자, 무선기로 하산을 종용했다고 했다. 그러나 페터는 일단 등반을 시작하면 포기할 줄 모르는 옹고집쟁이였다.

페터는 마침내 오후 7시경 제4캠프에 도착했으나, 소화불량을 하소연하면서 구토를 계속했다고 한다. 나머지 대원들도 사고를 예견하고 무선으로 그에게 하산을 충고했다. 누군가는 페터가 당장 하산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된다고,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페터의 고집은 완강했다. 노르베르 조오스, 마틴 브라운과 나는 제3캠프에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었다.

새벽 2시경 슈테판 대장이 제3캠프로 달려 내려 와 “페터가 죽어가고 있다”며, 구조를 요청했다. 우리는 총알처럼 출발, 오전 6시 30분 제4캠프에 도착했다. 가엾은 페터는 헛소리를 중얼대면서, 모든 질문에 로봇처럼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했다.

“페터, 자네는 즉시 하산해야 해.”

“그래, 그래.”

그는 대답만 했다.

“그러니 자네는 어서 등반화를 착용해야지.”

“그래, 그래.”

그는 똑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무관심했다. 자신의 목구멍에서 콜록콜록 기침이 계속 나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치명적인 고산병인 뇌수종뿐만 아니라 폐수종까지 동시에 앓고 있어 절망적인 상태였다.

그의 몸을 텐트 천으로 감싸고 7,400m 지점의 눈처마 위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눈 처마는 너비 3.2km 길이 4km인 방대한 규모의 눈밭 위에 있었다. 그를 끌고 16m를 내려왔을 때, 우리는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 고도에서는 그를 끌고 제3캠프에 도착하자면 이틀이나 소요될 성 싶었다.

페터는 계속 지껄였다.

“괜찮아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

그러나 오후 8시경 그는 마치 우리의 노력이 헛수고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이 자리에서 혼자 죽을 수 있도록 나를 내버려 두고 떠나게.”

그 말을 하고 나서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우리는 그의 눈을 감겨 주고 천으로 그의 얼굴을 완전히 가린 다음, 그를 영원한 무덤, 크레바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우리들은 비통한 심정이 되어 대성통곡을 금할 길이 없었다. 고산에서 이길 가망이 없는 게임의 규칙을 이미 인정했지만, 거기에 항거하고 싶은 부질없는 욕구도 느꼈다.

우리는 빈손이 되어 제3캠프로 귀환했다. 이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친구의 죽음 앞에서 등반을 포기할까 아니면 계속 할까 기로岐路에 섰다. 등반을 포기한다고 죽은 친구가 살아 돌아올 리 만무했고, 지금 등반을 포기하는 것은 또 한 번의 좌절을 반복할 뿐이었다. 우리는 페터를 추모하기 위해 등반을 재개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마틴 브라운은 치질이 덧나서 하산이 불가피했다. 그는 이틀 뒤에 귀국해 입원할 작정이었다.

6월 9일, 이제 등반할 만한 사람은 노르베르 조오스, 한스 슈타우프, 나 이렇게 세 사람만 남았다. 우리는 비통한 심정으로 제4캠프로 올라갔다. 나는 멀지 않은 크레바스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 친구가 그리웠다. 오후에 노르베르와 나는 7,500m 지점까지 루트를 개척했다. 그 작업은 다음날 등반에 큰 도움을 줄 터였다.

텐트로 돌아와 가능한 한 많은 음료를 마련해 마셨다. 그러나 위가 받아주지 않아 음식은 더 이상 섭취할 수 없었다. 나는 최초의 8,000m 봉우리 등정에 앞서 신경과민으로 밤잠을 설쳤다. 나는 미지의 세계가 두려웠다. 나는 발이 동상에 걸릴까봐 겁이 났고, 기상 악화가 닥칠까 공포감을 느꼈다.

등반화 깨진 이후 동상 위협 감수하며 등정 강행

6월 10일, 오전 4시 기상했다. 날씨는 완벽한 상태였다. 나의 짐은 보온병, 비박장비, 여벌 장갑 한 켤레, 선글라스, 녹음기로 꾸려졌다. 오전 5시경 정상능선을 향해 출발했다. 반 시간 뒤 발이 얼어붙어 기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인간은 체온이 37℃가 될 때까지 일정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의 동물이다. 그런데 당시 낭가파르바트의 기온은 영하 31℃여서 체온조절이 잘되지 않았다.

나는 무의식 중에 아이스액스로 등반화를 툭툭 쳤다. 그때 혹한 속에서 얼음처럼 얼어붙은 등반화 가죽은 아이스액스의 충격에 금이 갔고, 잔인한 ‘악마의 미소’를 띠듯이 헤벌어졌다. 갑작스러운 사건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나의 등산화 앞쪽이 갑자기 파괴되어 나는 ‘산들의 여왕Queen of the Mountains(낭가파르바트)’의 등반에서 샌들 차림이 되었다. 등반화 상태가 정상적이어도 동상 위험이 클 텐데,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등정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 동상의 위험을 감수하며 등반을 지속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나는 끝내 등반을 계속하기로 작정했다. 내가 등반을 서두르자 우리의 속도가 빨라졌다. 7,600m 지점에서 나는 기계적인 동작을 멈추었다. 등반화와 양말을 벗고 무감각해진 발의 혈액순환을 위해 마사지했다. 발에 감각이 되살아나자 나는 양말과 등반화를 신고, 스패츠를 차고, 크램폰을 착용했다. 크램폰에 부착된 끈이 등반화가 더 이상 파괴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양파 껍질이 양파의 흩어짐을 막아 주는 원리와 흡사했다. 노르베르가 나와 합류, 선등하며 루트를 개척했다. 오전 8시 태양은 주변에 약한 햇살을 던지고 있었다. 다음 구간에서 아주 나쁜 상황에 직면했다. 사방이 윈드 슬랩 천지였다. 그러나 나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은 윈드 슬랩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등반을 계속했다.

나는 더 이상 혹한 때문에 고통받지 않았다. 내가 추위에 무감각해진 사정이 동상 때문에 기인한 일이 아니기를 희구했다. 나의 얼굴은 눈을 위한 두 개의 구멍, 입을 위한 한 개의 구멍, 즉 세 개의 구멍만 뚫린 등산용 발라클라바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 세 개의 구멍들은 나의 시각과 호흡 기능을 수행하는 데 충분한 능력을 발휘했다.

쿨와르를 200m쯤 오르고 나니 두 갈래로 갈라졌다. 우리는 정상으로 이어지는 우측 지류로 오를 계획이었으나, 그쪽은 눈사태의 위험이 너무 커서 단념했다. 우리는 상당히 가파른 좌측 쿨와르로 등반했는데, 두 군데의 불룩 튀어나온 오버행들이 진행을 방해했다. 오버행의 난이도는 4급(IV+)과 5급(V) 사이였다. 우리는 자일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이 난코스를 우회해 무사히 돌파했다.

쿨와르는 아주 위태로운 아레테are'te(험준한 산등성이)로 이어졌고, 그 산등성이는 8,072m의 북봉north summit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강풍이 사납게 날뛰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날씨가 보장되는 동풍이 불고 있어서 안심할 수 있었다. 오후 1시였다. 한스는 뒤처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노르베르와 나는 주봉을 향해 등반을 계속했다. 나는 기분이 썩 좋았다. 무산소 등반이었지만, 고도에서 호흡 곤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랫동안 걸을 수 있을 만한 기력은 없었다. 그렇다고 나의 등반 속도는 느린 편은 아니었다. 정상을 향한 트래버스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1시 반에 낭가파르바트(8,125m) 정상 위에 우뚝 섰다. 정상에서 나의 첫인상을 녹음기에 녹음했다. 나는 정상 주변의 파노라마를 바라보고 만족감을 느꼈다. 낭가파르바트의 다른 쪽에서는 등정한 흔적들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이 산의 10번째 등정 팀이었고, 스위스인으로는 최초의 등정대였다. 오후 2시 직전 노르베르가 나와 합류했다. 우리들은 몇 장의 등정 사진을 촬영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찰나刹那의 순간을 어떻게 불멸不滅의 순간으로 전환시킬 수 있겠는가? 나는 작은 금속제 상자를 꺼내고, 그 속의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나는 그 종이 위에 ‘낭가파르바트. 1982년 스위스 등반대. 디아미르 벽. 6월 10일’이라 쓰고 그 밑에 우리 이름을 적고 바람에 날려보냈다. 나는 또 한 장의 종이를 집어 들었으나, 펜이 혹한에 얼어붙어 글씨를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디아미르 거인들Diamir giants’은 우리들에게 보잘 것 없는 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낭가파르바트의 허공에 우리 이름을 더 이상 글로써 알릴 방법이 없었다.

한스 대원은 여전히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그가 북봉의 등정에 만족하고, 퇴각했다고 추측했다. 우리는 오후 2시 동료들에게 등정소식을 무선으로 알렸다. 이 등정의 대가로 사람의 목숨을 바칠 만한 가치가 과연 있을까?

고산 등반 열정 때문에 비극 반복

1982년 6월 10일자로 이 산에서 등반 중 목숨을 잃은 사람은 42명에 달한다. 1895년 영국 산악인 머메리와 2명의 구르카 병사들의 실종, 1934년 드렉셀 대원의 폐렴(폐수종) 사망, 빌란트 대원, 빌리 메르클 대장, 독일의 유능한 산악인 벨첸바하와 6명의 포터들 총 10명의 사망. 1937년에는 독일 산악인 7명과 9명의 포터들 총 16명이 눈사태로 몰살되었다. 또한 1970년 헤를리히코퍼 박사가 이끄는 낭가파르바트의 수직고도 4,500m인 루팔벽(남벽)에 4번째 도전하는 독일 대에 이탈리아 산악인 메스너 형제가 참여했는데, 메스너 형제는 7,300m 지점 위쪽의 경사도 70도 이상이고 낙석과 눈사태 통로인 메르클 걸리를 돌파하고, 루팔벽에 ‘메스너 직등 루트’를 개척했으나 동생 귄터가 고산병에 걸려 디아미르벽으로 하산 중에 눈사태로 사망했다(메스너는 1978년 디아미르벽을 단독 등정함).

이런 종류의 고산 등반에 따른 모험의 위험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산에 대한 열정이 더 우세해 산에서 비극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죽은 페터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다면 그는 틀림없이, “자네들에게 갈채를 보낸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낭가파르바트의 초등자 헤르만 불이 했던 이야기가 나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전날(1953년 낭가파르바트의 초등일)에 관한 나의 감정은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꿈처럼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지만, 실제로 그 꿈이 최종적으로 이룩된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1976년 오스트리아 대의 한스 쉘, 힐마르 슈투름, 로버트 샤우어, 지에게 김펠 대원들이 루팔벽 남서릉에 신 루트를 개척했다. 1985년 폴란드 산악인 쿠쿠츠카와 칼마스가 루팔벽의 우측 남동 필라에 신 루트를 개척했다. 1995년 일본대가 낭가파르바트의 북서벽에 신 루트를 개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