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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호 놀이하며 덜렁이 탈출
김정배
#1. 시우네 가족은 할아버지 생신이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어요. 출발할 때는 맑았던 하늘이 점점 흐려졌어요. 한참을 달려 할아버지네 마을로 접어들었을 때였어요. “우르릉 쾅! 우르릉 쾅쾅!” 시커멓던 하늘에서 천둥까지 쳤어요.
#2. “아이, 비 오면 안 되는데.” “집 안에 있을 건데 비 오면 어때서?” 시우가 걱정하자 엄마가 말했어요. “솔이 형이 형네 학교 운동장에 데리고 가서 투호 놀이하자고 했단 말에요.” “별것도 아니네. 투호 놀이야 꼭 운동장에 가서만 하니? 집에서도 할 수 있지.” 아빠가 말했어요. “솔이 형하고 약속했다고요. 학교에 가기로.” 시우가 툴툴거리며 말했어요.
#3. 시우네가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 큰엄마인 솔이 엄마가 미리 준비해 두어서 금세 생신상이 차려졌어요. 허겁지겁 음식을 먹은 솔이와 시우는 눈짓을 주고받았어요. “할아버지, 저 그만 먹을게요.” “저도요.” 솔이가 숟가락을 내려놓자 시우도 바로 일어섰어요. “고놈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어디 가려고?” “갈 데 있어요.” 솔이와 시우는 비가 올까 봐 마음이 급했거든요.
#4. 얼마 전에 시우네 학교에 전통 놀이 강사님이 오셨을 때였어요. 놀이 방법을 알려주고 나서 다섯 사람이 한편으로 팀을 짰어요. ‘앗싸, 혜원이도 우리 편이잖아.’ 시우는 혜원이와 같은 편이라서 속으로 좋아했어요. 다섯 개를 다 넣어서 혜원이한테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5. 다른 팀 아이들 하는 것을 보니 대부분 두 개 이상씩은 넣었어요. 시우는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던지나 유심히 보았어요. 아주 집중해서 침착하게 던지는 거였어요. 시우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별명이 덜렁이거든요. ‘침착하자, 침착하자.’ 주문을 걸듯이 속으로 말했어요. 차례가 다가올수록 손에 땀이 났어요.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 가야겠다며 빠져버릴까도 생각했어요. 그러는 사이에 마지막 팀인 시우네 팀이 던질 차례가 되었어요.
#6. 시우는 ‘후유’하고 심호흡을 했어요. 그래도 가슴이 벌렁거렸어요. 첫 번째 던지는 자리에 서 있다가 얼른 마지막 자리에 선 아이와 자리를 바꿨어요. 시우네 팀 첫 번째 아이가 세 개, 두 번째 아이는 두 개, 세 번째 던진 효원이는 네 개를 넣었어요. 네 번째 아이는 다섯 개가 모두 들어가자, ‘와아! 와아!’ 구경하던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어요. 지금까지 점수는 15개 한 팀, 16개 두 팀, 17개 한팀, 18개 한팀이었어요. 만약 시우가 던진 화살이 다섯 개가 다 들어간다면 시우네 팀이 1등이 되는 것이었어요.
#7. 마지막 선수인 시우가 던지는 선에 서자 아이들 시선이 시우한테 쏠렸어요. “시우야, 잘해!” 효원이가 나직이 말했어요. 시우는 땀방울만 도르륵 떨어졌어요. 시우가 던진 첫 번째 화살은 통을 한 참 지나서 떨어졌어요. 두 번째 화살도 통보다 더 멀리 떨어졌어요. “시우야, 침착하게 던져. 덤벙대지 말고.” 효원이가 시우 옆에 가서 말했어요. 하지만 세 번째도 네 번째도 통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마지막 화살마저도 가장자리에 맞고 튕겨 나왔어요.
#8. “와아! 와아!” 화살 18개를 넣은 팀이 함성을 질렀어요. 시우가 던진 화살이 한 개도 안 들어가는 바람에 시우네 팀이 꼴등을 하고 만 것이지요.
#9. 투호 놀이 시간이 끝나자 시우는 힘없이 손 씻으러 수돗가로 갔어요. “덜렁이 한시우, 덜렁대니까 화살이 하나도 안 들어가지.” 언제 왔는지 혜원이가 옆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어요. “뭘! 그럴 수도 있지.” 시우는 큰소리치기는 했지만, 마음이 상했어요. ‘두고 봐. 다음에 또 하게 되면 내가 제일 잘 할 테니까.’ 이렇게 벼르고 또 벼르던 중에 솔이 형이 투호 놀이 하러 가자고 했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10. 솔이와 시우가 반 달음박질을 해서 학교 운동장에 들어섰을 때였어요. 뻔쩍! 우르릉 쾅쾅! 하늘이 시커메지며 번개와 천둥소리가 요란했어요. “시우야. 빨리 집에 가야겠어. 비가 곧 쏟아질 것 같아.” 솔이가 말하자 시우도 우길 수가 없었어요. 금세 비가 퍼부을 것 같았으니까요.
#11. 시우 얼굴도 날씨만큼이나 구겨져 있었어요. “쯧쯧, 비 와서 돌아왔구나. 아빠한테 들었다. 투호 연습하러 갔다던데.” 할아버지가 안쓰러운 듯이 말했어요. “네, 우리 반 혜원이가 저 때문에 졌다고 뭐라 했단 말이에요. 별명까지 빗대면서.” “우리 시우 별명이 뭐던고?” 할아버지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어요. “더, 더, 덜렁이요.” 시우는 자기가 생각해도 덜렁이는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덜렁이라. 허허허.” 할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었어요.
#12. “치, 할아버지는. 제 별명이 그렇게 우스워요? 저는 속상해 죽겠는데.” “그게 아니고, 네 아빠를 닮아 덜렁거리는 것 같아 그런다. 네 아빠도 어렸을 적에 어찌나 덜렁거리는지 신발 한 짝은 벗지도 않은 체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지.” “제가 언제요?” 시우 아빠가 얼굴이 빨개지며 말했어요. “투호 놀이 덕에 고친 셈이지. 아범은 시우보다 훨씬 어렸을 때니까 분유통을 적당한 거리에 놓고서는 바둑알을 던지며 놀게 하더라니까. 네 할머니가 어디서 듣고 왔다면서. 그렇게 놀다 보니 차차 덜렁거리지 않게 되었지. 시우 너는 투호 놀이가 맞을 것 같구나.”
#13. “집에 가면 당장 우리 시우 투호 놀이하라고 해야겠어요.” 옆에 있던 시우 엄마가 말했어요. “엄마, 진짜죠?” “좀 더 생각해보고.” 엄마가 뜸을 들였어요. “나도 어디선가 투호 놀이하면 집중력도 길러진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 “진짜요? 그럼 하라고 해도 되겠네요.” 집중력을 길러진다는 시우 아빠 말에 시우 엄마는 입이 귀에 걸리며 좋아했어요. “집에 가면 투호 놀이 도구 준비해 줄게. 우리 아들 덜렁이 습관도 고치고 집중력도 좋아진다는데.” 시우 엄마가 활짝 웃으며 말했어요. ‘혜원이, 나보고 덜렁이라고 했지. 나 이제 덜렁이 탈출이다.’ 시우가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어요.
<부록>
투호 놀이의 유래 투호 놀이는 서울의 궁내와 양반 집안에서 주로 행해지던 놀이로 아주 오래 되었어요. 넓은 마당의 잔디밭이나 대청에 귀가 달린 항아리를 갖다 놓고 하는 놀이지요. 많은 사람이 모여 동서로 편을 갈라 항아리를 놓은 곳에서 10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화살을 던지지요. 화살을 항아리나 귓구멍에 많이 넣은 편이 승리하게 되며, 무희들이 나와 한바탕 춤을 추어 흥을 돋우기도 해요. 살은 병 위 5치가량 되는 데서 반듯하게 떨어져 병 속이나 귓구멍 어느 쪽이든 가운데에 들어가게 해요. 이때 살을 던지는 이는 양쪽 어깨의 균형을 취해 어깨가 기울어지지 않게 주의해야 해요. 이기는 것을 현, 지는 것을 불승이라 하며, 점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헌배. 벌배 등이 행해져요. 투호병은 입구의 지름이 5치. 4치. 2치이며, 귀의 크기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살은 청살과 홍살 2가지로 겨뤄요. 남자들도 많이 놀았지만, 함부로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던 양반 부녀자들이 집 안에서 많이 즐기는 놀이였지요.
2. 투호 놀이의 의의 투호 놀이는 화살을 일정한 통 안에 던져 넣어야 하는 놀이여서 집중력과 침착성을 기르게 되어요. 눈으로 판단하고 손으로 정확히 던져야 하는 놀이로서, 눈과 손이 협력관계를 발달시키는 데도 좋아요. 어린이들이 거리감을 익히는데도 좋은 놀이지요. 화살을 정확하게 던지는 기능을 기르며 대근육 발달을 도와요.
3. 투호 놀이 방법 (1)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법 ⓵팀을 편성하고 놀이기구를 배치하여 청백으로 나눈다. ⓶화살을 청백 팀별로 색깔을 구별하여 각자 2개씩 나누어 갖는다. ⓷병이 놓인 곳에서 1~2m 정도 떨어진 곳에 금을 그어 놓은 선 상에 선다. ⓸“준비”하면 선상에 서서 던질 준비를 하고, “시작”하면 병 구멍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화 살을 차례로 던진다. ⓹경기가 끝나면 병 구멍 속에 꽂힌 화살 수를 가려 많이 꽂힌 개인이나 팀이 이긴다.
(2) 투호 놀이와 유사한 놀이 ⓵분유통과 바둑알을 준비한다. ⓶분유통을 놓고 통으로부터 2m 정도 떨어진 곳에 선을 긋는다. ⓷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고 바둑알 같은 수로 나눈 바둑알을 차례로 던진다. ⓸많이 들어간 사람이 1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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