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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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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25대 철종, 진주 민란 동학의 탄생, |
> 진주민란, 진주민란의 직접적인 발생 계기는 경상우병사 백낙신의 탐학과 착취에 있었다. 백낙신이 민란이 일어나기 전 몇 년 동안 착취한 돈만도 약 5만 냥에 달했는데 쌀로 환산하면 약 1만 5천 석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었다. 게다가 당시 진주목에서는 지금까지 지방 관리들이 불법적으로 축낸 공전이나 군포 등을 보충하기 위해 그것을 모두 결세에 부가시켜 해결하려 했는데 그 액수가 2만 8천 석에 축난 환곡만 해도 2만 4천 석이나 되어 농 민 부담이 급격하게 가중될 처지에 있었다. 이에 농민봉기군들은 스스로 초군이라 부르면서 머리에 흰띠를 두르고 진주 성으로 쳐들어 갔는데 그 수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 이에 당황한 우병사 백낙신은 환곡과 도결의 폐단을 시정할 것을 약속했으나 농민들은 그를 놔주지 않고 죄를 묻는 한편 악질적인 아전 몇 명을 죽이고 원한을 샀던 토호의 집을 불태웠다. 6 일간이나 계속된 진주민란은 그동안 23개 면을 휩쓸었고 120여 호의 집이 파괴되고 재물 손실이 10만 냥을 넘었다. 단성을 시작으로 진주에서 폭발한 이 민란은 곧 경상, 충청, 전라, 황해, 함경도의 5도와 경기도 광주에서 무려 37차에 걸쳐 일어난다. 크게는 수만 명에서 작게는 천여 명에 이르는 규모로 전국 각지의 농민들이 악정에 대항하여 민란에 참가했다.
동학의 탄생, 동학은 1860년(철종11년) 4월에 최제우가 창도한 종교로서 그 교지가 시천주 신앙에 기초하면서도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을 내세운 점에서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종교라 할 수 있다. 동학이라는 명칭은 교주 최제우가 서교인 천주교에 대항하여 동방의 도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며 1905년 손병희에 의해서 천도교로 개칭되었다. 창도 당시 동학은 시천주 신앙을 중심으로 모든 서민이 내 몸에 한울님을 모시는 입신 에 의하여 군자가 되고 나아가 보국 안민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나라 구제 신앙이었으나 2대 교주 최시형에 가서는 '사람 섬기기를 한울 같이 한다'는 사인여천의 가르침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산천초목에 한울님이 내재한다고 보는 범천론적 사상으로서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3대 교주 손병희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사상을 교지로 선포하였다
동학의 초대교주 최제우, 최제우는 1824년 순조 24년에 경주 최씨 옥의 서자로 태어났다. 몰락 양반 가문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에 의술, 복술 등 여러 방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세상의 어지러움이 바로 천명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깨닫고 천명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1856년 천성산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구도 노력은 1859년 구미산 용담정 수도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그가 파악한 당시의 사회상은 왕조의 기운이 쇠하여 개벽이 필요한말세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위기의식에서 최제우는 서학과 서교에 대한 대응으로 동학이라는 새로운 도를 제창하게 되었다. 그가 본래 이름인 제선을 제우로 고친 것도 종교적으로 구국과 제세의 길을 찾겠다는 자각에서 나온 것이다. |
고맙습니다.
쏠쏠한 재미 좋은글 사랑합시다.
전주향교/鶴田/옮김/한문희총대장 감사합니다.
 본래의 마음,자유인 한문희총대장, 백두대간의 전설 자유인 백두대간종주대한문희총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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