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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지기와 거문고 원문보기 글쓴이: 김삼진
화초사거리와 산타령류 노래의 관계 고찰
I. 머리글
논자는 남도잡가로 분류되는 보렴(報念)과 예불문을 중심으로 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졸고, “報念과 禮佛文 考察”, 「韓國音樂硏究 第24輯」, 서울:한국국악학회, 1996.
. 보렴이 경기산타령이나 서도산타령의 놀량에 해당하는 판염불의 옛 가사와 연관성이 있다고 하였다. 판염불의 가사는, 진국명산, 불경, 민간신앙, 진언, 놀량 등의 가사로 짜여졌고, 보렴을 주제로 한 연구였기에 범위 밖에 있었던 화초사거리와 판염불의 관계를 후일의 연구로 밀어 놓았었다.
최근에 논자는 국악방송에 소개할 곡목을 준비하는 눈에 띠는 곡목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국악방송국에서 2002년에 발매한 국악FM-창호에 드린 햇살(길위에 만나다)의 4번째 곡인 “산천초목”이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화초사거리의 “산천초목” 가사를 의식했지만, 그것은 제주도의 민요인 “산천초목”을 편곡하여 강권순이 노래를 부른 것이었다.
산천초목이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는 남도잡가로 분류되는 화초사거리와 경기와 서도잡가로 분류되는 놀량 또는 사거리만을 생각하게 된다. 논자도 제주도 민요에 산천초목이 있었는가 하는 궁금증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보니, 제주도의 대표적 민요로 분류하는 것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제주도의 성읍과 제주도 전 지역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노래라고 되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성격의 노래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홍주희 홍주희, “‘산천초목’의 고찰”, 「음악과 문화제5호」, 대구:세계음악학회, 2002.
와 조유미 조유미 “놀양의 악곡구조 연구”, 「한국음반학 제5집」. 서울:고음반연구회, 1995.
“유성기 음반에 담긴 산타령”, 「한국음반학 제6집」. 서울:고음반연구회, 1996.
“‘초목이’ 선율의 변화”, 「한국음반학 제7집」. 서울:고음반연구회, 1997.
에 의해서 산천초목이라는 가사에 의해 불려 지는 노래들에 대한 규명이 학술적으로 이루어 졌음을 알았다.
논자는 한국국악학회에서 발표한바 있는 보렴에 이어서 화초사거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이고, 당시에 생각하고 있었던 보렴이 불경의 가사에 더 충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원류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고(思考)의 틀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으로 화초사거리와 판염불, 또는 놀량 등 산타령 류의 노래와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전통음악의 장르 가운데서도 음악적으로 잘 다듬어지고 세련되었지만, 부르기가 힘들고 어려울 뿐만이 아니라 가사의 전달 등이 쉽게 되지 않아 대중적인 수용자가 적고, 문인들에게서도 홀대를 받았던 장르가 잡가이다.
화초사거리는 일반적으로 놀량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놀량은 판염불에서 시작되었으며, 산타령패에 의해서 선소리(立唱)으로 불려진다. 놀량은 경기와 서도 산타령 뿐만이 아니라 봉산탈춤, 양주산대도감놀이, 고성오광대놀이 등 가면극에서도 연행된다. 제주도의 산천초목은 오관산타령이라고도 부르지만, 다른 민요인 오돌또기에도 일부 가사가 출현한다.
화초사거리와 관련된 ‘산천초목’은 장르와 지역, 연희분야를 넘나들고 있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것은 가사와 음악의 변이과정, 사당패나 날당패의 음악과의 관계, 사당패 연희층의 이동경로 등을 모두 파악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점들이 많다.
먼저 금번 연구에서는 가사의 변이를 중심으로 화초사거리와 판염불, 놀량의 연관관계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앞으로 연구의 확장의 가능성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II. 연행 배경과 사설 내용
1) 화초사거리의 연행 배경과 사설 내용
화초사거리는 보렴에 이어서 부르는 남도 잡가로 분류되는 노래이다. 화초사거리 다음으로는 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에 이어 흥타령을 부르는 것이 원식(原式)이었다.
네이버백과사전에서는 “옛날 사당패들에 의해서 성창되었다고 하며, 신방초(申芳草)가 작곡하였다고 전한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내용은 「한국음악사전」이나 「국악대사전」에는 없는 내용이며, 「한국민속대사전2」에서 인용한 글인 듯 하다 신준호, 「한국민곡대사전2」, 서울:민족문화사 1991. 1599쪽.
.
신방초는 조선말기에 옥과와 창평에서 살았다고 하며, 예전에 전승되던 판염불의 하나인 사거리를 개조하여 화초사거리를 지었다고 한다. 신방초가 지었다고 하는 것은 화초사거리 후반부의 화초염불을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해랑, 「한국음악사전」 백대웅 條, 서울:대한민국예술원, 1985. 442쪽.
. 한편 신방초에 관한 생몰연대가 정확치 않지만, 가야금의 제1세대 명인인 한숙구(韓淑求:1865~?)가 신방초에게 사사를 받았다는 기록을 보아서, 한숙구 보다는 선배이거나 동연대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이매방이 호남 승무의 5세대 인데 반하여 신방초가 호남승무를 만들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봐서도 신방초는 조선말기 즉 19c 중기나 말기의 인물일 것이다.
화초사거리의 노래가사는 “산천경개를 읊은 첫 구절이 지나면 의미없는 입타령과 여러 가지 꽃이름이 아무렇게나 주워 섬겨진다” (이해랑, 「한국음악사전」 백대웅 條, 서울:대한민국예술원, 1985. 442쪽.)”고 하였다.
음악적 구성은 세도막 형식으로 명확하게 구분되고, 장단은 2분박 12박자의 중중모리 장단이 중심을 이루지만 자주 바뀌는 변화형이 많고, 마지막은 중중모리(굿거리)형으로 변하면서 남도 셰면조 선율로 바뀐다. 선법 또한 판소리의 우조길, 평조길, 계면길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그 가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산천초목이 송잎은 이허런다 구경해 산천경개
허허야 어허라이 아무리 허여 어기열사 에해 내로구나 입타령
아아 에헤야 어어의어야 어듸야
아무리 허여 어기열사 에헤 내로구나
어어 어허 어리이 아이열사 내로구나
이이이 어리이열사 내로구나
어기이얼사 에헤야 어야뒤 어허 어기열사
어리이이 얼시구나 절시구나 말들어 보아라
어어듸이 어어리이이 이이어리이 이이 이이 어허허야 어야듸어라
어기얼사 내로구나
운다봐라 어기어러사 송살이로구나 얼시구나 산천경개
나 운다봐라 어기어러사 송살이로구나
얼시구나 절시구나 받드러 보아라
노양 구분길도 달저무러 지는 밤이로다 이렁성 저렁성 수이도가며
아이고 이놈에 노릇을 어이 어이 살드란 말이냐
이렁성 저렁성 함부로 덤부로 살아보세
일수야 허 - 허 어허어야 아아 - 어 어기얼사 내로구나
선왕당 어리굼벅궁 송살이로다
이산으로 가도 어리굼벅새야 저산으로 가도 어리굼벅새야
어기이얼사해 어기얼사 어해야
아아 - 어기얼사 내로구나
야야 집안아야 받드러라 야야 총각아야 받드러 보아라
네그 누님이 날마다고 머리깍고 승낙쓰고 금산 절로만 중노릇 간단다.
이이창 저어창 사모장창 낯노 땡그렁 부러진 장창
어어 어기얼사 내로구나
고산에 신도어 모란도 구부러져 워리렁 출렁 뒤둥그러졌네
춘수난이 낭낙 기러기 세끼는 훨훨 낙낙장송이 와자자끈 부러졌다
이고부저고부 세고부 한트로 합수처 얼시구나
야야 지화자 좋네 절시구나 야야 지화자
좋구나 에에 어기얼사 내로구나
가자가자 구경을 가자서라 금강산으로 화류구경 가자서라
한라산도 백두산도 어리주춤 뜨저가니
초당 삼간만 다지였더라
왼갖 화초를 다심어 따라 맨드레미 봉선화며 외철쭉 진달래며 넌출넌출 심었다 화초타령
파릇잎은 여기도 넌출 심었네 저기도 넌출 심었꾸나
어허 어기얼사 내로구나
여보시오 활양님네 오셨다 섭섭한데 막걸리 일천오백
동무 드러마시거나 말거나
한승정 술을 비여라 무슨 술을 다비서떠냐 명천 두견주 한산에 소곡주로다
어여이 어허어야 청청청
산에 흰가마귀 떠 두다리 쫓아 가감실떠
평양 대동강산에 돛단선이 떠 나다니니
거동시에 회양산이 떠 양산밑에는 일사산이 떠히였다
일사산 밑에는 전마선이 떴다 만경창파 감자월이 떴다
아조설설 높이 에이 떴구나 에로구나 에로구나 노라여러
여어루 산아지로구나 에헤
보는 바와 같이 화초사거리의 가사는 단가와 비슷한 분량의 사설에 해당한다. 그러나 문장이 구성과 형식이 뛰어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문맥의 선후가 잘 맞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문학적 가치는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사설에서 반복되는 입타령 사설을 뺀 줄거리를 요약하여 보았다.
산천초목이 송잎은 이허런다 구경해
아무리 허여 어기열사 에해 내로구나
운다봐라 어기어러사 송살이로구나 얼시구나
나 운다봐라 어기어러사 송살이로구나
얼시구나 절시구나 받드러 보아라
노양 구분길도 달저무러 지는 밤이로다 이렁성 저렁성 수이도가며
아이고 이놈에 노릇을 어이 어이 살드란 말이냐
이렁성 저렁성 함부로 덤부로 살아보세
선왕당 어리굼벅궁 송살이로다
이산으로 가도 어리굼벅새야 저산으로 가도 어리굼벅새야
야야 집안아야 받드러라 야야 총각아야 받드러 보아라
네그 누님이 날마다고 머리깍고 승낙쓰고 금산 절로만 중노릇 간단다.
이이창 저어창 사모장창 낯노 땡그렁 부러진 장창
고산에 신도어 모란도 구부러져 워리렁 출렁 뒤둥그러졌네
춘수난이 낭낙 기러기 세끼는 훨훨 낙낙장송이 와자자끈 부러졌다
이고부저고부 세고부 한트로 합수처 얼시구나
야야 지화자 좋네 절시구나 야야 지화자 좋구나
가자가자 구경을 가자서라 금강산으로 화류구경 가자서라
한라산도 백두산도 어리주춤 뜨저가니
초당 삼간만 다지였더라
왼갖 화초를 다심어 따라 맨드레미 봉선화며 외철쭉 진달래며 넌출넌출 심었다
파릇잎은 여기도 넌출 심었네 저기도 넌출 심었꾸나
여보시오 활양님네 오셨다 섭섭한데 막걸리 일천오백
동무 드러마시거나 말거나
한승정 술을 비여라 무슨 술을 다비서떠냐 명천 두견주 한산에 소곡주로다
산에 흰가마귀 떠 두다리 쫓아 가감실떠
평양 대동강산에 돛단선이 떠 나다니니
거동시에 회양산이 떠 양산밑에는 일사산이 떠히였다
일사산 밑에는 전마선이 떴다 만경창파 감자월이 떴다
아조설설 높이 에이 떴구나 에로구나 에로구나 노라여러
여어루 산아지로구나 에헤
2) 판염불
판염불은 사당패들이 판놀음에서 부르는 노래의 총칭으로 되었다. “판염불은 긴 노래를 먼저 부르고 나서 끝에 유절형식의 짧은 노래들을 불렀던 것 같다. 먼저 부르는 긴 노래 가운데는 청중의 복을 비는 염불이 있고, 그 다음에는 산천경치를 노래하는 염불이 있으며 끝에는 잡가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산천경치를 노래하는 긴 노래들은 불규칙한 세마치장단에 경토리로 된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앞의 책, 이보형 條, 399쪽
. 처음에는 사당패들이 판놀음에서 불교에서 나온 노래를 부르는 것을 염불이라고 했으나, 나중에는 사당패들이 부르는 모든 노래를 다 판염불이라고 했다.
판염불은 현재는 따로 부르지 않지만, 한국잡가전집(韓國雜歌全集) 정재호, 「한국잡가전집1~4」 계명문화사. 1984. (1910년대의 잡가집들을 모아서 편찬한 문학적으로 잡가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다.)
에 실려 있기 때문에 그 사설의 내용을 알 수 있다. 판염불의 사설이 들어 있는 1910년대 이후의 책은 「무쌍신구잡가(無雙新舊雜歌)」 朴承燁, 「無雙新舊雜歌」 (京城 : 唯一書館, 1915), 87쪽.
와 「신구유행잡가(新舊流行雜歌)」 姜義永, 「新舊流行雜歌」 (京城 : 世昌書館, 1915). 60쪽.
, 그리고 「신찬 고금잡가(新撰古今雜歌)」 玄公廉, 「新撰古今雜歌」 (京城 : 德興書林, 1916). 62쪽.
와 「신구시행잡가(新舊時行雜歌」 池松旭, 「增補 新舊時行雜歌」 (京城 : 新舊書林, 1916), 60쪽.
등에 실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진국명산 만장봉에 청천삭출 금부용 옴도로 옴도로 시법이라 무어 살바에 동라 안산이라. 주산이라 좌우라도 청용 무라도 무라도 살바 무살바 츙청도라 포산에 두루두루 한량님네 와계신 막걸니 열달동의 걸녀스니 기거 말거 무라도 살 무살바.
일셰동방에 결도량 이셰남방에 득청룡 삼셰서방에 부정토 사셰북방에 영안강 도량청정무화례 삼보철영에 강지 아금지송에 묘진언 나무라셔 살바 무살바.
산쳔초목이여 셩님이나에 구경가기에 좃코나. 에에헤어 네로구나. 에에에헤야 에헤어 네헤에야. 어어듸이이 이이얼 네로구나. 말은 네헤야 어이이놈 말드러 보라 녹양 버들 길로 평양감영 숙드러 간다. 락락장송 느러진 가지 다 러져 줄거리만 남어 지화자 죠흘시고. 어 이놈 말 드러바라. 청산긔영에 올라 황운을 검쳐 잡고 에에이얼 네로구나. 어린 양 고흔 소 눈의 암암 귀에 비이다. 락락장송 느러진 가지 한 마리 남게 안 마리 들에 안져 쳬어다 보며 우름을 울고 려 구버 보며 우름을 운다. 당화 그늘 속에 비만 마즌 졔비 석기 졸졸 흐늘거려 거드려 거려서 랑 어화둥둥 내 랑이야. 어화둥둥 간간이로구나.
판염불의 사설에서 첫째 문단은 진국명산 서두(序頭)와 불교 경문에서 쓰이는 진언(眞言), 풍수지리 내용, 그리고 불경의 진언 순(順)으로 짜여졌다. 둘째문단은 불경 천수경의 사방찬과 도량찬과 진언으로 순수한 불경만으로 되어 있다. 셋째문단은 현행 산타령의 놀량이나 남도 잡가의 화초사거리와 같은 내용으로 세속적인 줄거리이다.
결국 판염불은 염불(보렴)에 해당하는 부분과 사거리(놀량과 화초사거리 등)에 해당하는 두 부분이 통합된 사설로 볼 수 있다.
3) 놀량
놀량은 선소리의 일종이다. 선소리는 애초에 사당패놀이에서 발생했다. 산타령(山打令)은 여러 소리꾼이 소고(小鼓)를 들고 늘어서서 소고를 치고 발림하며 합창하는 민속가요(民俗歌謠)를 가리키는데, 소리꾼들이 서서 노래한다고 하여 「선소리」 또는 「입창」이라 이르고, 또 소리말(가사 歌詞)이 산천경치(山川景致)를 그리는 노래라는 뜻으로 산타령(山打令)이라 이른다.
오늘날의 선소리산타령은 남자들이 부르는 노래로 되어 있으나 이에 대한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여자들이 부르는 사당패소리에서 비롯하였다. 절에는 비구나 비구니가 불상을 모셔놓고 불도수행(佛道修行)하는 사(寺)가 있고, 사(寺)의 곁에는 속가(俗家)에 다니며 가무(歌舞)로 시주를 걷는 우바새(優婆塞)와 우바니(優婆尼)를 관장하는 사(社)가 있었는데, 이 사(社)에 매인 사람들을 사당패(社堂牌)라 일컬었다. 사당패의 우바니를 사당이라 하고 우바새를 거사(居士)라 하였다. 사당과 거사로 구성된 사당패들은 큰 저자로 다니며 판염불(판念佛)을 합창하며 시주를 걷어 절에 바쳐 왔다. 조선조에 불교가 쇠퇴하자 사당패는 타락하여 급기야는 남사당(男寺黨)으로 대치되고 판염불은 소멸하고 말았지만 이 판염불이 저자의 소리꾼들에 의하여 계승되어 선소리산타령으로 발전한 것이다. 판염불은 남도 소리꾼들에 의하여 남도 선소리산타령으로 발전하였고 경기 소리꾼들에 의하여 경기 선소리산타령으로 발전하였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것은 경기 선소리산타령이다. 경기 선소리산타령은 처음 오강(五江)의 소리꾼들이 불렀다.
사당패들이 오강의 저자에 다니며 소리하던 것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 200여 년 전의 의택이와 종대가 선소리를 잘했고, 그 뒤 신낙택(申洛澤)이 선소리 명창(名唱)이었으며, 조선 말기에는 서울과 근교에 선소리패들이 여기저기 생겼다. 그 중 뚝섬패가 으뜸이었고, 왕십리패, 진고개패, 호조(戶曹)다리패, 삼개(마포 麻浦)패 등이 뛰어났으며 그 밖에 여러 선소리패들이 뒤이어 생겨나 저마다 장기를 자랑하였다. 뚝섬패에서는 이태문(李泰文)이 소리를 잘하였고, 왕십리패에서는 이명길(李命吉)이, 호조다리패에서는 월선(月仙)이가, 과천(果川) 방아다리패에서는 소완준(蘇完俊)이, 그 밖의 다른 패에서 이명산(李命山), 김태운(金泰運), 김태봉(金泰鳳)이 뛰어난 선소리꾼으로 이름이 났다. 소완준의 제자 정득만(鄭得晩), 이명길의 제자 이창배(李昌培), 김태봉에게서 배운 김순태(金順泰)가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나 이창배, 김순태는 작고하였다.
사당패들은 저자에서 시주를 걷기 위하여 판염불을 불렀으나 선소리패들은 답교놀이, 화전놀이와 같이 마을의 축제나 잔치에서 소리판을 벌이고 놀았다. 소리꾼들은 바지저고리에 테머리를 동이고 소고(小鼓)를 들고 늘어서고 모갑이(某甲이)는 장고를 치면서 앞소리를 메기면 여러 소리꾼들이 뒷소리를 함께 받으며 소고를 치고 춤을 춘다.
처음에는 느리게 놀량을 부르고, 이어 조금씩 빠르게 앞산타령과 뒷산타령을 부르고 나서 잦은산타령으로 몰아가면서 소리는 흥겨워지기 시작한다. 끝에는 개구리타령과 같은 장절형식(章節形式)의 짧고 빠른 소리로 판을 막는다. 세마치 장단이 주가 되나 불규칙한 장단이며 선율은 경토리로 매우 씩씩하고 명랑한 소리이다.
놀량은 경기산타령과 서도산타령에서 모두 첫째 곡으로 부르던 곡이다.
경기산타령에서는 놀량-앞산타령-뒷산타령-자진산타령(도라지타령) 순서로 부른다. 서도산타령도 순서도 놀량(사거리)--앞산타령-뒷산타령-자진산타령(경발림, 경사거리)로 경기산타령과 거의 같다.
경기놀량은 “산천초목이”로 시작하고, 서도놀량은 “녹양에 뻗은 가지~”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장사훈, 「국악대사전」 , 서울:세광출판사, 1984. 202-4쪽.
. 최근의 연구실적에 따르면 박춘재와 김정연의 산천초목이와 초목이를 비교한 논문에서 서도놀량도 “초목이”부터 구연되었었다는 가능성을 밝혀주었다 조유미, “‘초목이’ 선율의 변하” 참고
.
경기 놀량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다 무성(茂盛)한데...나 아아/ 에...에...에엔데에헤에 헤구 우후우.../겨이
어헝어헝 가 기에 에헤/도.../으.../.../.../.../제...어...이히지일 고오오호도...오호/다아하아아하 아무리.../...에.../...에헤/나 아아 하아 어허어허어야아하/ ~~~ 이열 네로 구나. 에 ~~~~~ 말 들어도 봐라
녹양 벋은 의 길로 평양감영 쑥 들어간다. 에헤에 헤이여.../
이렬네 헤루구나 춘수는 낙락 기러기는 훨훨 낙락장송이 와지지끈 다 부러져 마들가지 남아 지화자자 좋을씨구나 지화자자 좋을 씨구나
얼씨구나 좋~~/....다 말 들어도 봐라 에헤 ~~~ 이엘 네로구나
종일 가도 안성은 청룡이로구나 .... / 몽림 일월이 송사리나 삼월이며... /
육구함도 대사중로 얼씨구나 절씨구나 아무려도 네... / ... / 녹양방초 사랑초 다 저문 날이로구나 에 ... / 아하이얼로 네로구나 이창배, 「한국가창대계」 서울:홍인문화사, 1976. 327-8쪽.
서도놀량
에라디여 어허야 요홀 네로구나. 녹양(綠楊)에 벋은 길로 북향산(北香山) 쑥 들어도 간다.
에헤에헤이에- 어허야 요홀 네로구나
춘수(春水)는 낙락 기러기 나니 훨훨 낙락장송이 와자지끈 부러졌다. 마들가지 남아 지화자자 좋을씨구나 지화자자 좋을 씨구나.
얼씨구나 좋다 말들어도 보아라.
인간을 하직하고 청산을 쑥들어도 간다. 에헤에 헤이에 어허야 요홀 네로구나.
황혼아니 거리검쳐잡고 성황당 숭벅궁새 한 마리 에 앉고, 또한마리 땅에 앉아 네가 어디메로 가자느냐. 네가어디메로 가자느냐. 이 산 넘어가도 거리 숭벅궁새야 저 산 넘어가도 거리 숭벅궁새야 에.
어린 양자(樣姿)고운 태도 눈에 암암하고 귀에 쟁쟁.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니로구나. 소원성취로 비나니로구나. 에-
삼월이라 육구함도(六衢咸道) 대삼월이라 얼씨구나 절씨구나. 담불 담불이 생긴도 사랑사랑 내사랑아.
남창에 북창을 열고나 보니 담불 담불이 쌓인도 사랑
기암(奇岩)에 고송(古松)에 기어나 올라 휘휘 칭칭도 감긴 사랑.
사랑초 다방초 홍두깨 넌출넌출이 박넌출이 이내 가삼에 맺힌다.
사랑에 에-나엘 네로구나. 아하 아하 앞의 책, 348쪽. 외 「고금잡가」, 「조선곡가」, 「신정증보신구잡가」, 조선속곡집」에 서도 놀량의 사설이 실려 있다.
4) 제주도 산천초목(오관산 타령)
제주도에서 부르는 산천초목은 제주시와 성읍의 일부지역에서 몇몇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것으로 최근에는 강권순이 시조목과 같이 느리고 맑은 발성으로 노래하고 음반으로 발매되어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산천초목 속잎이난다
구경가기가 얼화 반갑도다
꼿은 꺽어 머리에 꼿고
잎은 따다가 얼화 입에물어
날 오라 하네 날 오라 하네
산골처녀가 얼화 날 오라 한다
돋아오는 반달처럼 도리주머니 주워놓고
만수무강 글자를 새겨 수명당사 끈을 달아
정든 임 오시거든 일화 채와나 봅시다
동백꼿은 피었는데 흰눈은 오나
한라산 선녀들이 춤을 추며 내려온다
5) 보성들노래 중에서 도화타령
산천초목과 같은 가사의 유형으로 불리는 노래는 간헐적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제주도 지방에서는 상여소리와 오돌또기와 전라도 풍물에서의 노래굿, 들노래 등에서 같은 유형의 가사가 보인다. 이 장에서는 전라남도 보성의 들노래를 예로 실어 보았다.
에헤헤 도화로다 에야라 디야 에헤야라디야 헤헤헤 도화로다
1. 얄곱드라 얄곱드라 삽막골 큰애기들이 얄곱드라 시집가기전에
아새끼를 낳아서 애기 압시를 찾을라고서 관례청으로 냉개부렀네
2. 빡빡 얽고 머리 하나도 없는 년이 함박 쪽박을 되집어 쓰고서
괴삼담박질을 쳤네
3. 산천 초목에 송잎이 난데 구경하기가 내가 즐거움이 난단 말이다
4. 사당마누라 미손을 들고 마누라 머리끝에다가 법단댕기만 들여부러리
III. 사설의 비교
본 장에서는 화초사거리, 판염불, 경기놀량 현행 서도놀량, 제주도 산천초목의 사설에 나타난 중심요소를 그 순서대로 나열하고, 서로 비교하여, 각 노래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찾고자 한다.
표 1> 화초사거리 유사 노래의 사설 비교<생략함>
위와 같이 화초사거리, 판염불, 경기놀량 현행 서도놀량, 제주도 산천초목의 사설을 입타령을 제외한 요소 또는 단락별로 구분하여 비교하였다.
전체의 사설길이나 요소에 있어서는 화초사거리가 가장 많고 길었으며, 사거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판염불이 불경과 산천경계, 사랑에 관한 내용을 골고루 구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놀량과 화초사거리, 제주도의 산천초목은 “산천초목”이라는 사설로 시작하는 특징이 있는 “산천초목”류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도 산천초목은 그 시작만 사설이 같을 뿐 동일형의 사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용은 유사한 점이 많아서 확실하게 이질의 노래로만 보기에도 어렵다.
현재의 서도놀량은 시작부분의 사설이 “녹양의 뻗은 길로~”부터 이기 때문에 “산천초목”류의 노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홍주희의 논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예전에는 불렸던 흔적이 있었고, 화초사거리나 경기놀량의 단락에 해당되고 판염불에도 있었던 가사로 동일하다는 점에서 같은 류의 노래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