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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0 편
인간이 체험하는 종교
(Paper 100 : Religion in Human Experience)
.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 1934년
100:0.1 역동적인 종교적 삶의 체험은 평범한 개인을 이상주의의 힘을 가진 성격자(personality)로 변화시킨다. 종교는 개개인의 진보를 발전시킴으로 모든 사람의 진보를 도우며, 모두의 성취를 통해 각자의 진보를 증가시킨다.
100:0.1 The experience of dynamic religious living transforms the mediocre individual into a personality of idealistic power. Religion ministers to the progress of all through fostering the progress of each individual, and the progress of each is augmented through the achievement of all.
100:0.2 영적 성장은 다른 종교인들과의 친밀한 관계에 의해 상호 자극된다. 사랑은 종교적 성장을 위한 토양―주관적 욕구의 만족이 아니라 객관적 매력―을 제공하지만, 그래도 최고의 주관적인 만족감을 낳는다. 그리고 종교는 일상적 삶의 고된 일을 귀하게 여긴다.
100:0.2 Spiritual growth is mutually stimulated by intimate association with other religionists. Love supplies the soil for religious growth―an objective lure in the place of subjective gratification―yet it yields the supreme subjective satisfaction. And religion ennobles the commonplace drudgery of daily living.
1. 종교적 성장 (Religious Growth)
100:1.1 종교는 의미의 성장과 가치의 향상을 낳지만, 악은 순전히 개인적인 평가가 절대적인 수준으로 높아질 때 항상 발생한다. 어린아이는 즐거움의 내용에 따라서 체험을 평가한다; 성숙은 개인의 기쁨을 위한 더 높은 의미를 대신할 수 있는 것에 비례하는데, 심지어 다양화된 삶의 상황들의 가장 높은 개념들과 우주 관계들을 향한 충성들도 포함한다.
100:1.1 While religion produces growth of meanings and enhancement of values, evil always results when purely personal evaluations are elevated to the levels of absolutes. A child evaluates experience in accordance with the content of pleasure; maturity is proportional to the substitution of higher meanings for personal pleasure, even loyalties to the highest concepts of diversified life situations and cosmic relations.
100:1.2 어떤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성장할 수 없고, 따라서 영적 고착의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 서로 다른 시대, 연속되는 문화, 그리고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의미의 성장을 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성장의 주된 저해 요인은 편견과 무지이다.
100:1.2 Some persons are too busy to grow and are therefore in grave danger of spiritual fixation. Provision must be made for growth of meanings at differing ages, in successive cultures, and in the passing stages of advancing civilization. The chief inhibitors of growth are prejudice and ignorance.
100:1.3 모든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종교적 체험을 성장시킬 기회를 주라; 기성 어른들의 체험을 강요하지 말라. 기억하라, 확립된 교육체제를 통해 해마다 진보하는 것은 반드시 지적 진보, 더군다나 영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휘가 늘어난다고 성품이 성장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성장은 단순히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를 진정으로 가리킨다. 참된 교육의 성장은 이상을 높이는 것, 가치에 대한 인식 증가, 새로운 가치의 의미, 그리고 최고 가치에 대하여 충성이 강화되는 것을 가리킨다.
100:1.3 Give every developing child a chance to grow his own religious experience; do not force a ready-made adult experience upon him. Remember, year-by-year progress through an established educational regime does not necessarily mean intellectual progress, much less spiritual growth. Enlargement of vocabulary does not signify development of character. Growth is not truly indicated by mere products but rather by progress. Real educational growth is indicated by enhancement of ideals, increased appreciation of values, new meanings of values, and augmented loyalty to supreme values.
100:1.4 아이들은 오직 어른 동료들의 충성에 의해서만 영구적으로 감명을 받는다; 교훈이나 심지어 본보기가 지속해서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성장하는 사람이고, 성장은 감명을 주고 영감을 주는 실체이다. 충실히 오늘을 살아라―성장하라―그러면 내일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올챙이로서 매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이다.
100:1.4 Children are permanently impressed only by the loyalties of their adult associates; precept or even example is not lastingly influential. Loyal persons are growing persons, and growth is an impressive and inspiring reality. Live loyally today-grow-and tomorrow will attend to itself. The quickest way for a tadpole to become a frog is to live loyally each moment as a tadpole.
100:1.5 종교적 성장에 필수적인 토양은 자아 실현의 진보적 삶, 타고난 성향의 조율, 호기심을 실행하는 분별있는 모험의 기쁨, 만족하는 느낌을 체험하는 것, 집중과 관심을 자극하는 두려움의 작용, 경이로운-자극, 그리고 빈약함, 겸손함의 평범한 의식이다. 성장은 또한 자아의 발견과 그에 따른 자기 비평―양심―에 근거해야 하며, 이는 양심이 정말로 사람이 자신의 가치 기준과 습관, 개인의 이상에 따라서 스스로를 비평하기 때문이다.
100:1.5 The soil essential for religious growth presupposes a progressive life of self-realization, the co-ordination of natural propensities, the exercise of curiosity and the enjoyment of reasonable adventure, the experiencing of feelings of satisfaction, the functioning of the fear stimulus of attention and awareness, the wonder-lure, and a normal consciousness of smallness, humility. Growth is also predicated on the discovery of selfhood accompanied by self-criticism-conscience, for conscience is really the criticism of oneself by one's own value-habits, personal ideals.
100:1.6 종교적 체험은 몸의 건강, 물려받은 기질, 사회적 환경에 두드러지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 현세의 조건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헌신하는 내면의 영적 진보를 막지 못한다. 성장하고 자아를 실현하고 싶은 어떤 타고난 욕구가 모든 정상 필사자에게 있으며, 이것은 특별히 억제되지 않으면 작용한다. 영적 성장 잠재력의 구성 자질을 기르는 확실한 기법은 최상의 가치들에 대하여 전심으로 헌신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100:1.6 Religious experience is markedly influenced by physical health, inherited temperament, and social environment. But these temporal conditions do not inhibit inner spiritual progress by a soul dedicated to the doing of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There are present in all normal mortals certain innate drives toward growth and self-realization which function if they are not specifically inhibited. The certain technique of fostering this constitutive endowment of the potential of spiritual growth is to maintain an attitude of wholehearted devotion to supreme values.
100:1.7 사람은 종교를 주거나, 받거나, 빌리거나, 배우거나, 잃어버릴 수 없다. 종교는 최종의 가치를 더욱 추구하는 데 비례하여 성장하는 개인적 체험이다. 따라서 우주적 견지에서 성장은 의미가 쌓이고 가치가 늘 높아지는 것을 돕는다. 그러나 사람의 고귀함 그 자체는 언제나 의식하지 않고 성장한다.
100:1.7 Religion cannot be bestowed, received, loaned, learned, or lost. It is a personal experience which grows proportionally to the growing quest for final values. Cosmic growth thus attends on the accumulation of meanings and the ever-expanding elevation of values. But nobility itself is always an unconscious growth.
100:1.8 생각하고 행동하는 종교적 습관은 영적 성장 체제에 기여한다. 사람은 영적 자극에 호의적인 반응을 하도록, 일종의 조건화된 영적 반사작용을 하는 방향으로 종교적 성향을 개발할 수 있다. 종교적 성장을 유리하게 만드는 습관에는 신성한 가치에 대한 발달된 감수성, 남의 종교 생활의 인식, 우주적 의미가 있는 것을 돌이켜보는 명상, 경건한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기의 영적 생활을 동료들과 공유하는 것, 이기심의 회피, 신성한 자비를 이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하나님 앞에 서 있듯 사는 것을 포함한다. 종교적 성장의 여러 요인은 의도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성장 그 자체는 어김없이 의식하지 않고 일어난다.
100:1.8 Religious habits of thinking and acting are contributory to the economy of spiritual growth. One can develop religious predispositions toward favorable reaction to spiritual stimuli, a sort of conditioned spiritual reflex. Habits which favor religious growth embrace cultivated sensitivity to divine values, recognition of religious living in others, reflective meditation on cosmic meanings, worshipful problem solving, sharing one's spiritual life with one's fellows, avoidance of selfishness, refusal to presume on divine mercy, living as in the presence of God. The factors of religious growth may be intentional, but the growth itself is unvaryingly unconscious.
100:1.9 그러나 종교적 성장이 의식하지 않고 일어나는 본질은 그 성장이 인간 지성의 하의식 영역이라 추정되는 곳에서의 작용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사자 지성의 초의식 수준에 있는 창조적 활동을 가리킨다. 무의식적으로 종교적 성장의 실체를 깨닫는 체험은 초의식 활동이 존재함을 가리키는 하나의 분명한 증거이다.
100:1.9 The unconscious nature of religious growth does not, however, signify that it is an activity functioning in the supposed subconscious realms of human intellect; rather does it signify creative activities in the superconscious levels of mortal mind. The experience of the realization of the reality of unconscious religious growth is the one positive proof of the functional existence of the superconsciousness.
2. 영적 성장 (Spiritual Growth)
100:2.1 영적 발달은 첫째, 참된 영적 세력과 살아 있는 영적 연결을 유지하고, 둘째로 영적 열매를 지속적으로 맺는 것: 영적 은인으로부터 받은 것을 동료들에게 베푸는 것에 달려 있다. 영적 진보는 완전-갈망에 대한 자의식과 연결되어 영적인 빈곤을 지적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알고 그와 같이 되려는 욕구, 전심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목적에 근거한다.
100:2.1 Spiritual development depends, first, on the maintenance of a living spiritual connection with true spiritual forces and, second, on the continuous bearing of spiritual fruit: yielding the ministry to one's fellows of that which has been received from one's spiritual benefactors. Spiritual progress is predicated on intellectual recognition of spiritual poverty coupled with the self-consciousness of perfection-hunger, the desire to know God and be like him, the wholehearted purpose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100:2.2 영적 성장은 먼저 필요를 각성하고, 다음에 의미 있는 것을 헤아리며, 그다음에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참된 영적 발달의 증거는 사랑으로 동기를 얻고, 사심 없는 봉사로 활성화되고, 그리고 신성의 완전한 이상에 대한 온전한 예배로 지배 되는 인간 성격을 나타내는 것에 있다. 이 체험 전부가 단순한 신학적 신념과는 대조가 되는 것으로서 종교의 실체를 구성한다.
100:2.2 Spiritual growth is first an awakening to needs, next a discernment of meanings, and then a discovery of values. The evidence of true spiritual development consists in the exhibition of a human personality motivated by love, activated by unselfish ministry, and dominated by the wholehearted worship of the perfection ideals of divinity. And this entire experience constitutes the reality of religion as contrasted with mere theological beliefs.
100:2.3 종교는 우주에 대하여 영적으로 반응하는, 깨우침을 받은 지혜로운 기법이 되는 체험 수준까지 진보할 수 있다. 그렇게 영화롭게 된 종교는 세 수준의 인간 성격: 지성, 모론시아, 영인; 지성의 토대 위에, 진화하는 혼 가운데서, 깃드는 영과 함께 기능할 수 있다.
100:2.3 Religion can progress to that level of experience whereon it becomes an enlightened and wise technique of spiritual reaction to the universe. Such a glorified religion can function on three levels of human personality: the intellectual, the morontial, and the spiritual; upon the mind, in the evolving soul, and with the indwelling spirit.
100:2.4 영성(Spirituality)은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있다는 것이며 동료 존재들에게 유용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영성은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의미에서 진리를 인식하고, 가치에서 선함을 발견하는 능력을 높인다. 영적 발달은 그 능력에 따라 결정되며, 사랑에 대한 이기적 자질을 제거하는 것과 정비례한다.
100:2.4 Spirituality becomes at once the indicator of one's nearness to God and the measure of one's usefulness to fellow beings. Spirituality enhances the ability to discover beauty in things, recognize truth in meanings, and discover goodness in values. Spiritual development is determined by capacity therefor and is directly proportional to the elimination of the selfish qualities of love.
100:2.5 실제적인 영적 상태는 신에 도달한 정도, 조절자와 조율된 정도를 측정한다. 영성의 궁극적 성취는 실체의 최대치에 이르는 것, 하나님 같은 최대치와 동등하다. 영생은 무한한 가치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이다.
100:2.5 Actual spiritual status is the measure of Deity attainment, Adjuster attunement. The achievement of finality of spirituality is equivalent to the attainment of the maximum of reality, the maximum of Godlikeness. Eternal life is the endless quest for infinite values.
100:2.6 인간 자아실현의 목표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 노력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실체는 신성한, 영적인, 영원함이다. 필사 인간은 육체의 즐거움과 인간적 애정에서 만족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는 인간관계와 현세의 제도에 충실함으로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들은 공간을 초월하고, 시간을 넘어서고, 신성한 완전함과 최후자 봉사의 영원한 운명을 성취하는, 불멸의 성격을 기르기 위한 영원한 토대가 되지 않는다.
100:2.6 The goal of human self-realization should be spiritual, not material. The only realities worth striving for are divine, spiritual, and eternal. Mortal man is entitled to the enjoyment of physical pleasures and to the satisfaction of human affections; he is benefited by loyalty to human associations and temporal institutions; but these are not the eternal foundations upon which to build the immortal personality which must transcend space, vanquish time, and achieve the eternal destiny of divine perfection and finaliter service.
100:2.7 예수는 “하나님을 알고 하늘나라를 믿는 자에게 땅에 있는 만물이 무너진다 해도 무슨 상관이냐?”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깊은 확신을 묘사했다. 현세의 안전은 취약하지만, 영적 보장은 확실하다. 인간의 역경, 이기심, 잔인함, 미움, 악의, 질투의 큰 물결이 필사자의 혼에 휘몰아칠 때, 너는 내면의 요새,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영의 보루가 있다는 확신 속에서 쉴 수 있다; 그것은 적어도 깃드는 영원한 하나님의 영에게 자기의 혼을 보존하려고 헌신한 모든 인간에게 진실이다.
100:2.7 Jesus portrayed the profound surety of the God-knowing mortal when he said: "To a God-knowing kingdom believer, what does it matter if all things earthly crash?" Temporal securities are vulnerable, but spiritual sureties are impregnable. When the flood tides of human adversity, selfishness, cruelty, hate, malice, and jealousy beat about the mortal soul, you may rest in the assurance that there is one inner bastion, the citadel of the spirit, which is absolutely unassailable; at least this is true of every human being who has dedicated the keeping of his soul to the indwelling spirit of the eternal God.
100:2.8 점진적인 성장이든 특정한 위기로 도달하든 상관없이, 그러한 영적 달성 후에는, 새로운 가치관의 발달과 더불어 성격의 새로운 적응이 일어난다. 그러한 영에서 태어난 개인들은 그들의 가장 애틋한 야망은 사라지고 그들의 가장 간절한 희망은 무너지는 동안에 차분히 서 있을 정도로 삶 속에서 다시 동기부여를 받는다; 그들은 그러한 재앙이 새롭고 더 숭고한 우주 성취 수준의 고귀하고 오래 가는 실체들을 육성하기 위해, 사람이 현 시대에 창조한 것을 미리 무너뜨려 방향을 바꾸게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알고 있다.
100:2.8 After such spiritual attainment, whether secured by gradual growth or specific crisis, there occurs a new orientation of personality as well as the development of a new standard of values. Such spirit-born individuals are so remotivated in life that they can calmly stand by while their fondest ambitions perish and their keenest hopes crash; they positively know that such catastrophes are but the redirecting cataclysms which wreck one's temporal creations preliminary to the rearing of the more noble and enduring realities of a new and more sublime level of universe attainment.
3. 최상의 가치에 대한 개념들 (Concepts of Supreme Value)
100:3.1 종교는 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한 기법이 아니다. 종교는 역동적인 봉사를 위해 혼을 조직하는 충동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섬기는 충실한 봉사에 자아 전체가 동참하는 것이다. 종교는 최고의 목표인 영원한 상을 얻기 위해 필수적인 어떤 값이라도 치른다. 대단히 숭고한 종교적 충성에는 헌신하는 완성도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충성은 사회적으로 효과 있고 영적으로는 진보한다.
100:3.1 Religion is not a technique for attaining a static and blissful peace of mind; it is an impulse for organizing the soul for dynamic service. It is the enlistment of the totality of selfhood in the loyal service of loving God and serving man. Religion pays any price essential to the attainment of the supreme goal, the eternal prize. There is a consecrated completeness in religious loyalty which is superbly sublime. And these loyalties are socially effective and spiritually progressive.
100:3.2 종교 주의자들에게 하나님(God)이란 단어는 사람이 최고의 실체에 대한 접근과 신성한 가치를 인정하는 상징이 된다. 인간의 호불호가 선과 악을 결정하지 않는다. 도덕적 가치는 소망의 성취나 정서적 좌절감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100:3.2 To the religionist the word God becomes a symbol signifying the approach to supreme reality and the recognition of divine value. Human likes and dislikes do not determine good and evil; moral values do not grow out of wish fulfillment or emotional frustration.
100:3.3 가치들을 숙고하면서 너는 어느 것이 가치이고, 어느 것이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구별해야 한다. 그 어느 때 보다 인간 체험의 더 높은 수준에서 더 나은 깨달음을 얻고 가치들의 의미 있는 통합과 즐거운 활동들 사이에서 관계를 인식해야 한다.
100:3.3 In the contemplation of values you must distinguish between that which is value and that which has value. You must recognize the relation between pleasurable activities and their meaningful integration and enhanced realization on ever progressively higher and higher levels of human experience.
100:3.4 의미는 가치에 체험을 더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치에 대한 의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립되고 순전히 이기적인 즐거움은 실질적으로 목적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상대적 악에 가까워지는 의미 없는 즐거움을 암시할 수 있다. 실체들이 의미 있고 정신적으로 연결될 때, 그러한 관계가 지성에 의해 이해되고 인식될 때, 가치들은 체험이 된다.
100:3.4 Meaning is something which experience adds to value; it is the appreciative consciousness of values. An isolated and purely selfish pleasure may connote a virtual devaluation of meanings, a meaningless enjoyment bordering on relative evil. Values are experiential when realities are meaningful and mentally associated, when such relationships are recognized and appreciated by mind.
100:3.5 가치는 결코 정지할 수 없다; 실체는 변화와 성장을 가리킨다. 의미의 확장과 가치의 고취에서, 성장 없는 변화는 가치 없는-잠재적 악이다. 우주 적응의 질(質)이 높을수록 어떤 체험이라도 더 많은 의미를 갖는다. 가치들은 개념적 환상이 아니다; 그것들은 실재하지만, 항상 관계의 사실에 의존한다. 가치는 항상 실제이면서 잠재력―지난날에 있던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있을 것이다.
100:3.5 Values can never be static; reality signifies change, growth. Change without growth, expansion of meaning and exaltation of value, is valueless-is potential evil. The greater the quality of cosmic adaptation, the more of meaning any experience possesses. Values are not conceptual illusions; they are real, but always they depend on the fact of relationships. Values are always both actual and potential-not what was, but what is and is to be.
100:3.6 실재와 잠재력의 연관성은, 가치가 체험으로 실현되는 성장과 같다. 그러나 성장은 단순한 진보가 아니다. 진보는 언제나 의미가 있지만, 성장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가치가 없다. 인간 삶의 최고 가치는 가치의 성장, 의미 있는 것들의 진보, 그리고 이 두 체험의 우주 관련성을 깨닫는 데 있다. 그러한 체험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과 같다. 그러한 필사자는 초자연적이지는 않지만, 진정으로 초월적 인간이 되고 있다; 불멸의 혼이 진화하고 있다.
100:3.6 The association of actuals and potentials equals growth, the experiential realization of values. But growth is not mere progress. Progress is always meaningful, but it is relatively valueless without growth. The supreme value of human life consists in growth of values, progress in meanings, and realization of the cosmic interrelatedness of both of these experiences. And such an experience is the equivalent of God-consciousness. Such a mortal, while not supernatural, is truly becoming superhuman; an immortal soul is evolving.
100:3.7 사람은 성장을 일으킬 수 없지만 유리한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 성장은 신체적, 지적, 영적에서 항상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사랑은 성장한다; 사랑은 창조되거나, 제조되거나, 돈으로 살 수 없다; 그것은 성장해야 한다. 진화는 우주의 성장 기법이다. 사회적 성장은 법을 세운다고 보장할 수 없고, 도덕적 성장은 행정을 개선한다고 보장되지 않는다. 인간은 기계를 만들 수 있지만, 기계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의 문화와 개인의 평가로부터 얻어야 한다. 인간이 성장에 기여한 유일한 것은 그의 성격(personality)의 총체적 힘-살아있는 믿음-을 동원한 것이다.
100:3.7 Man cannot cause growth, but he can supply favorable conditions. Growth is always unconscious, be it physical, intellectual, or spiritual. Love thus grows; it cannot be created, manufactured, or purchased; it must grow. Evolution is a cosmic technique of growth. Social growth cannot be secured by legislation, and moral growth is not had by improved administration. Man may manufacture a machine, but its real value must be derived from human culture and personal appreciation. Man's sole contribution to growth is the mobilization of the total powers of his personality-living faith.
4. 성장의 문제들 (Problems of Growth)
100:4.1 종교 생활은 헌신하는 삶이고, 헌신하는 삶은 창의적인 삶이며, 자발적인 삶이다. 새로운 종교적 통찰력은 예전의 열등한 반응의 형식 대신에 새롭고 더 나은 반응 습관들을 선택하여 시작하려는 갈등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의미가 있는 것들은 오직 갈등 속에서만 솟아난다; 갈등은 단지 우월한 의미를 내포한 높은 가치를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만 지속된다.
100:4.1 Religious living is devoted living, and devoted living is creative living, original and spontaneous. New religious insights arise out of conflicts which initiate the choosing of new and better reaction habits in the place of older and inferior reaction patterns. New meanings only emerge amid conflict; and conflict persists only in the face of refusal to espouse the higher values connoted in superior meanings.
100:4.2 종교적 혼란은 피할 수 없다; 정신적 갈등과 영적 동요가 없이 성장이 있을 수 없다. 철학적 생활 기준을 세우는 것은 지성의 철학적 영역에서 상당한 동요를 수반한다. 투쟁이 없이는 위대하고, 선하고, 참되고, 고귀한 것들을 위한 충성이 우러나지 않는다. 노력은 영적 시력이 맑아지고 우주 통찰력이 향상될 때 수반된다. 그리고 인간의 지능은 현세에 존재하는 비영적 에너지의 존속에서 젖떼듯 떨어져 나가는 것에 저항한다. 게으른 동물 지성은 우주적 문제 해결과 씨름하기 위한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100:4.2 Religious perplexities are inevitable; there can be no growth without psychic conflict and spiritual agitation. The organization of a philosophic standard of living entails considerable commotion in the philosophic realms of the mind. Loyalties are not exercised in behalf of the great, the good, the true, and the noble without a struggle. Effort is attendant upon clarification of spiritual vision and enhancement of cosmic insight. And the human intellect protests against being weaned from subsisting upon the nonspiritual energies of temporal existence. The slothful animal mind rebels at the effort required to wrestle with cosmic problem solving.
100:4.3 그러나 종교적 삶의 큰 문제는 사랑이 지배함으로 성격자의 혼의 능력을 통일하는 과제에 있다. 건강, 정신적 효율성, 육체적 체계의 통일로부터 생기는 행복, 지성 체계, 영 체계의 통합이다. 사람은 건강과 건전한 정신에 대해 많이 이해하지만, 행복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 거의 없다. 최고의 행복은 영적 진보와 떼어낼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영적 성장은 모든 이해를 뛰어넘은 영원한 기쁨, 평화를 낳는다.
100:4.3 But the great problem of religious living consists in the task of unifying the soul powers of the personality by the dominance of LOVE. Health, mental efficiency, and happiness arise from the unification of physical systems, mind systems, and spirit systems. Of health and sanity man understands much, but of happiness he has truly realized very little. The highest happiness is indissolubly linked with spiritual progress. Spiritual growth yields lasting joy, peace which passes all understanding.
100:4.4 육체적 삶에서, 감각은 사물의 존재를 말한다; 지성은 의미의 실체를 발견한다; 그러나 영적 체험은 개인의 삶의 참된 가치를 드러낸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인간 삶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인간의 사심 없는 사랑에서 이루어진다. 네가 동료들을 사랑하면, 너는 그들의 가치를 발견했을 것이다. 예수는 인간에게 높은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사람을 매우 사랑하였다. 너는 동료들의 동기를 발견함으로 그들의 가치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너를 짜증나게 하고, 분개하는 느낌이 일게 하면, 너는 동정심을 가지고 그렇게 불쾌한 행동에 대한 그의 이유를 헤아리려야 한다. 일단 이웃을 이해하면, 너는 너그러워질 터이고, 이 너그러움은 자라서 우정이 되고 무르익으면 사랑이 된다.
100:4.4 In physical life the senses tell of the existence of things; mind discovers the reality of meanings; but the spiritual experience reveals to the individual the true values of life. These high levels of human living are attained in the supreme love of God and in the unselfish love of man. If you love your fellow men, you must have discovered their values. Jesus loved men so much because he placed such a high value upon them. You can best discover values in your associates by discovering their motivation. If some one irritates you, causes feelings of resentment, you should sympathetically seek to discern his viewpoint, his reasons for such objectionable conduct. If once you understand your neighbor, you will become tolerant, and this tolerance will grow into friendship and ripen into love.
100:4.5 지성의 눈을 뜨고서, 동굴에서 살았던 너의 원시적 조상 중에 한 사람의 그림을 상상해 보라―키가 작고, 보기 흉하고, 더럽고, 으르렁거리며 서 있는 헐크 같은 한 남자가, 바로 앞을 무섭게 쏘아보면서, 다리를 벌리고 서서, 몽둥이를 치켜올리고, 미움과 적개심으로 격렬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한 그림은 도저히 인간의 신성한 위엄을 묘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그림을 확대해 보자. 이 활기찬 인간 앞에 칼 이빨을 가진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다. 그 사람 뒤에는 한 여자와 두 아이가 있다. 그러한 그림이 인류 중에서 훌륭하고 고귀한 많은 것의 시작을 나타낸다는 것을 네가 즉시 깨닫지만, 두 그림에서 그 남자는 동일하다. 오직 두 번째 스케치에서 너는 넓어진 시야의 덕을 보고 있다. 거기서 너는 이 진화하는 필사자의 동기를 파악한다. 너희가 그를 이해하기 때문에, 그의 태도는 칭찬할 가치가 있게 된다. 만약 네가 오직 동료들의 동기를 가늠할 수만 있다면, 너는 그들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네가 동료를 알 수만 있다면, 너는 결국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100:4.5 In the mind's eye conjure up a picture of one of your primitive ancestors of cave-dwelling times―a short, misshapen, filthy, snarling hulk of a man standing, legs spread, club upraised, breathing hate and animosity as he looks fiercely just ahead. Such a picture hardly depicts the divine dignity of man. But allow us to enlarge the picture. In front of this animated human crouches a saber-toothed tiger. Behind him, a woman and two children. Immediately you recognize that such a picture stands for the beginnings of much that is fine and noble in the human race, but the man is the same in both pictures. Only in the second sketch you are favored with a widened horizon. You therein discern the motivation of this evolving mortal. His attitude becomes praiseworthy because you understand him. If you could only fathom the motives of your associates, how much better you would understand them. If you could only know your fellows, you would eventually fall in love with them.
100:4.6 너는 단순히 의지의 행동만으로는 진정으로 동료를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은 이웃의 동기와 정서를 철저히 이해하는 데서 태어난다. 오늘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매일 한 사람을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 만약 네가 매일 혹은 매주 한 명 이상의 동료들에 대한 이해를 얻는 것이 너의 능력의 한계라고 한다면, 너는 너의 성격을 확실히 사회화하고 참으로 영적으로 만들고 있다. 사랑은 전염성이 있어서, 인간의 헌신이 총명하고 현명할 때, 사랑은 미움보다 더 잘 전염된다. 그러나 진실하고 사심 없는 사랑만이 진정으로 전염된다. 각 필사자가 오직 힘찬 애정의 초점이 될 수만 있다면, 사랑을 옮기는 이 유익한 바이러스는 곧 인류의 감성적 감정 흐름에 크게 퍼져서, 모든 문명이 사랑으로 휩싸일 터이고, 그것이 인간의 형제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100:4.6 You cannot truly love your fellows by a mere act of the will. Love is only born of thoroughgoing understanding of your neighbor's motives and sentiments. It is not so important to love all men today as it is that each day you learn to love one more human being. If each day or each week you achieve an understanding of one more of your fellows, and if this is the limit of your ability, then you are certainly socializing and truly spiritualizing your personality. Love is infectious, and when human devotion is intelligent and wise, love is more catching than hate. But only genuine and unselfish love is truly contagious. If each mortal could only become a focus of dynamic affection, this benign virus of love would soon pervade the sentimental emotion-stream of humanity to such an extent that all civilization would be encompassed by love, and that would be the realization of the brotherhood of man.
5. 감화와 신비주의 (Conversion and Mysticism)
100:5.1 세상에는 길 잃은 혼이 가득하다. 신학적 의미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방향 면에서 길을 잃었고, 좌절된 철학 시대의 주의들(isms)과 종교단체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종교적 권위에 복종하는 대신 어떻게 삶의 철학을 세우는지 배운 사람은 거의 없다 (사회화된 종교의 상징은 비록 강의 바닥이 강이 아니더라도, 성장의 통로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100:5.1 The world is filled with lost souls, not lost in the theologic sense but lost in the directional meaning, wandering about in confusion among the isms and cults of a frustrated philosophic era. Too few have learned how to install a philosophy of living in the place of religious authority. (The symbols of socialized religion are not to be despised as channels of growth, albeit the river bed is not the river.)
100:5.2 종교적 성장의 진행은 정체에서 갈등을 거쳐서 조정된 길로, 불안한 상태로부터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혼란스러운 우주 의식으로부터 통일된 성격으로, 현세의 목표로부터 영원한 목표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처지로부터 신성한 아들 신분을 갖는 자유로 이어진다.
100:5.2 The progression of religious growth leads from stagnation through conflict to co-ordination, from insecurity to undoubting faith, from confusion of cosmic consciousness to unification of personality, from the temporal objective to the eternal, from the bondage of fear to the liberty of divine sonship.
100:5.3 최고의 이상에 충성을 고백하는 것―하나님 의식을 마음, 감정, 영으로 깨닫는 것―은 자연스러운 점진적 성장일 수도 있고, 아니면 위기의 경우처럼 때때로 어떤 길목에서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 중대한 날에 다마스커스 길에서 바로 그러한, 갑작스럽고 극적인 전향을 체험했다. 고타마 싯달타는 혼자 앉아서 궁극의 진리의 신비를 파고들려고 애를 쓴 그날 밤에 비슷한 체험을 했다. 많은 다른 사람은 비슷한 경험을 했고, 많은 참된 신자들이 갑작스런 전향이 없음에도 영적으로 진보했다.
100:5.3 It should be made clear that professions of loyalty to the supreme ideals-the psychic, emotional, and spiritual awareness of God-consciousness-may be a natural and gradual growth or may sometimes be experienced at certain junctures, as in a crisis. The Apostle Paul experienced just such a sudden and spectacular conversion that eventful day on the Damascus road. Gautama Siddhartha had a similar experience the night he sat alone and sought to penetrate the mystery of final truth. Many others have had like experiences, and many true believers have progressed in the spirit without sudden conversion.
100:5.4 이른바 종교적 전향과 연결된 대부분의 대단한 현상들은 본질에서 전적으로 심리적인 것이지만, 때때로 영적 기원을 가진 체험이 일어난다. 정신적 동원이 영적 성취를 향한 어떤 수준에 도달했을 때, 신성한 개념에 대한 인간의 충성 동기가 완벽할 때, 그런 다음 믿는 필사자의 집중된 초의식적 지성의 신성한 목적에 맞추기 위해 깃들어 있는 영이 갑자기 내려와서 붙잡는 일이 무척 자주 발생한다. 그러한 체험들은 순전히 심리적 관계 위에 있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전향을 구성하는 통일된 지적, 영적 현상이다.
100:5.4 Most of the spectacular phenomena associated with so-called religious conversions are entirely psychologic in nature, but now and then there do occur experiences which are also spiritual in origin. When the mental mobilization is absolutely total on any level of the psychic upreach toward spirit attainment, when there exists perfection of the human motivation of loyalties to the divine idea, then there very often occurs a sudden down-grasp of the indwelling spirit to synchronize with the concentrated and consecrated purpose of the superconscious mind of the believing mortal. And it is such experiences of unified intellectual and spiritual phenomena that constitute the conversion which consists in factors over and above purely psychologic involvement.
100:5.5 그러나 감정만으로는 거짓된 전향이다; 사람은 감정뿐 아니라 믿음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정신적 동원이 부분적이고, 그 같은 인간-충성 동기가 불완전하다면, 전향하는 체험의 정도는 지적, 감정적, 영적 실체의 혼합된 체험이 될 것이다.
100:5.5 But emotion alone is a false conversion; one must have faith as well as feeling. To the extent that such psychic mobilization is partial, and in so far as such human-loyalty motivation is incomplete, to that extent will the experience of conversion be a blended intellectual, emotional, and spiritual reality.
100:5.6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통합된 지적 삶에서 실제적인 가설로 이론적 하의식 지성을 인정하고 싶다면, 통일된 지적 삶에서 실용적인 작동 가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면, 다음에 일관성을 가지기 위해, 사람은 그에 상당하는 비슷한 영역, 더 높은 지적 활동이 있는 초의식적인 수준, 즉 깃드는 영 개체, 생각 조절자와 바로 접촉하는 영역을 가정해야 한다. 이 모든 정신적 추측에 담긴 큰 위험은 소위 신비로운 체험. 그리고 비범한 꿈들이 인간 지성에게 신성한 의사소통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신성한 존재들은 하나님을 아는 어떤 사람들에게, 그들이 신비스러운 황홀경이나 병적 환상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모든 현상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왔다.
100:5.6 If one is disposed to recognize a theoretical subconscious mind as a practical working hypothesis in the otherwise unified intellectual life, then, to be consistent, one should postulate a similar and corresponding realm of ascending intellectual activity as the superconscious level, the zone of immediate contact with the indwelling spirit entity, the Thought Adjuster. The great danger in all these psychic speculations is that visions and other so-called mystic experiences, along with extraordinary dreams, may be regarded as divine communications to the human mind. In times past, divine beings have revealed themselves to certain God-knowing persons, not because of their mystic trances or morbid visions, but in spite of all these phenomena.
100:5.7 전향을 추구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생각 조절자와 접촉할 수 있는 모론시아 영역에 접근하는 더 좋은 방법은, 살아있는 믿음과 진정한 예배, 전심을 다하는 사심 없는 기도를 통해서일 것이다. 인간의 무의식적 수준에서 솟아오르는 기억 중에 허다한 것이 신성한 계시와 영적인 인도들로 오인되었다.
100:5.7 In contrast with conversion-seeking, the better approach to the morontia zones of possible contact with the Thought Adjuster would be through living faith and sincere worship, wholehearted and unselfish prayer. Altogether too much of the uprush of the memories of the unconscious levels of the human mind has been mistaken for divine revelations and spirit leadings.
100:5.8 종교적인 공상의 습관적인 수행에 관련된 큰 위험이 있다; 신비주의는 때때로 진정한 영적 소통의 수단이었지만, 현실 도피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바쁜 삶의 현장에서 물러나는 짧은 시간은 크게 위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성격이 오랫동안 고립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상을 의식하는 무아지경 같은 상태가 종교적 체험으로 양성되어서는 안 된다.
100:5.8 There is great danger associated with the habitual practice of religious daydreaming; mysticism may become a technique of reality avoidance, albeit it has sometimes been a means of genuine spiritual communion. Short seasons of retreat from the busy scenes of life may not be seriously dangerous, but prolonged isolation of personality is most undesirable. Under no circumstances should the trancelike state of visionary consciousness be cultivated as a religious experience.
100:5.9 신비주의 상태의 특징은 비교적 수동적인 지능에 작용하면서 주의가 집중되는 선명한 점들과 함께 의식이 흐려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초의식적인 영적 접촉 지대로 이끌기보다는, 하의식으로 끌어당긴다. 많은 신비주의자들은 그들의 정신 분리를 대단한 정신 현상으로 발전시켰다.
100:5.9 The characteristics of the mystical state are diffusion of consciousness with vivid islands of focal attention operating on a comparatively passive intellect. All of this gravitates consciousness toward the subconscious rather than in the direction of the zone of spiritual contact, the superconscious. Many mystics have carried their mental dissociation to the level of abnormal mental manifestations.
100:5.10 더 나은 영적 명상의 건강한 태도는, 깊이 사색하는 예배와 감사하는 기도에서 발견된다. 육체를 입은 예수 삶의 후반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생각 조절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을 이른바 이 신비의 체험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신비적 소통의 시작에 기여하는 요소들은 그러한 정신 상태의 위험을 나타낸다. 육체의 피로, 금식, 정신의 분리, 심오한 미적 체험, 선명한 성욕 충동, 두려움, 걱정, 분노, 그리고 미치듯이 춤추는 것들에 의해 신비스러운 상태를 촉진한다. 그러한 예비적 준비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많은 것들은 하의식 지성에 기원을 두고 있다.
100:5.10 The more healthful attitude of spiritual meditation is to be found in reflective worship and in the prayer of thanksgiving. The direct communion with one's Thought Adjuster, such as occurred in the later years of Jesus' life in the flesh, should not be confused with these so-called mystical experiences. The factors which contribute to the initiation of mystic communion are indicative of the danger of such psychic states. The mystic status is favored by such things as: physical fatigue, fasting, psychic dissociation, profound aesthetic experiences, vivid sex impulses, fear, anxiety, rage, and wild dancing. Much of the material arising as a result of such preliminary preparation has its origin in the subconscious mind.
100:5.11 비록 신비 현상이 일어날 조건이 유리했더라도, 나사렛 예수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와의 소통을 위해 그러한 방법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는 하의식적인 망상이나 초의식적인 환상을 겪지 않았다.
100:5.11 However favorable may have been the conditions for mystic phenomena, it should be clearly understood that Jesus of Nazareth never resorted to such methods for communion with the Paradise Father. Jesus had no subconscious delusions or superconscious illusions.
6. 종교적 삶의 표시 (Marks of Religious Living)
100:6.1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는 방법에서 현저하게 다를지 모르지만, 동기는 대단히 비슷하다. 종교는 삶의 특정한 기능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방식이다. 참된 종교는 신자가 자신에게, 그리고 온 인류에게, 최고의 가치를 가졌다고 판단하는 어떤 실체에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뛰어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최고의 가치 기준에 의심 없이 충성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최상의 가치에 대한 이러한 종교적 헌신은 비종교적인 어머니가 자식과의 가지는 관계에서, 그리고 비종교인들이 옹호하는 운동에 열렬히 충성하는 관계에서 보여지고 있다.
100:6.1 Evolutionary religions and revelatory religions may differ markedly in method, but in motive there is great similarity. Religion is not a specific function of life; rather is it a mode of living. True religion is a wholehearted devotion to some reality which the religionist deems to be of supreme value to himself and for all mankind. And the outstanding characteristics of all religions are: unquestioning loyalty and wholehearted devotion to supreme values. This religious devotion to supreme values is shown in the relation of the supposedly irreligious mother to her child and in the fervent loyalty of nonreligionists to an espoused cause.
100:6.2 종교주의자가 인정하는 최고의 가치는 저속하거나 거짓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종교성이 있다. 최고로 여기는 가치가 참으로, 진정한 영적 가치를 가진 우주 실체인 그 한도까지, 종교는 진정하다.
100:6.2 The accepted supreme value of the religionist may be base or even false, but it is nevertheless religious. A religion is genuine to just the extent that the value which is held to be supreme is truly a cosmic reality of genuine spiritual worth.
100:6.3 인간이 종교적 충동에 대한 반응의 표시는 고귀하고 위대한 자질을 포함한다. 성실한 종교인은 우주 시민임을 의식하고, 초인적 힘의 원천과 접촉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우수하고 고결한 단체에 속한다는 확신에 너무 좋아하고 힘을 얻는다. 자아-가치에 대한 인식은 가장 높은 우주의 목표―최상의 목표―를 향한 추구를 고무시킴으로 강화된다.
100:6.3 The marks of human response to the religious impulse embrace the qualities of nobility and grandeur. The sincere religionist is conscious of universe citizenship and is aware of making contact with sources of superhuman power. He is thrilled and energized with the assurance of belonging to a superior and ennobled fellowship of the sons of God. The consciousness of self-worth has become augmented by the stimulus of the quest for the highest universe objectives-supreme goals.
100:6.4 자아는 높은 자제를 부과하고, 정서적 갈등을 줄이며, 필사자의 삶을 진정으로 살 가치가 있게 만드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동기의 흥미를 자아내는 충동에 굴복한다. 인간 한계의 병적인 인식은 최고의 우주와 초우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덕적 결단력과 영적 열망과 관련된 필사자의 결점을 자연스러운 의식으로 바뀐다. 그리고 인간의 초월적 이상을 성취하기 위한 이러한 치열한 노력은 항상 참을성, 인내심, 불굴, 관용의 증가로 특징 지어진다.
100:6.4 The self has surrendered to the intriguing drive of an all-encompassing motivation which imposes heightened self-discipline, lessens emotional conflict, and makes mortal life truly worth living. The morbid recognition of human limitations is changed to the natural consciousness of mortal shortcomings, associated with moral determination and spiritual aspiration to attain the highest universe and superuniverse goals. And this intense striving for the attainment of supermortal ideals is always characterized by increasing patience, forbearance, fortitude, and tolerance.
100:6.5 그러나 참된 종교는 실천하는 사랑, 봉사하는 삶이다. 순전히 현세적이고 하찮은 많은 것들로부터 종교인이 초연하는 것이 결코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유머 감각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종교는 인간 존재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지 않지만, 삶의 모든 것에 새로운 의미를 더한다;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열정, 열의,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충성하는 평범한 사회적 의무에 대한 충성과 영적 통찰력에 의해 통제되지 않으면, 그 이상의 위험한 십자군 정신까지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100:6.5 But true religion is a living love, a life of service. The religionist's detachment from much that is purely temporal and trivial never leads to social isolation, and it should not destroy the sense of humor. Genuine religion takes nothing away from human existence, but it does add new meanings to all of life; it generates new types of enthusiasm, zeal, and courage. It may even engender the spirit of the crusader, which is more than dangerous if not controlled by spiritual insight and loyal devotion to the commonplace social obligations of human loyalties.
100:6.6 종교적인 삶의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역동적이고 숭고한 평화, 어떤 인간도 이해하기 힘든 평안, 모든 의심과 혼란이 없음을 예고하는 우주적인 평화이다. 그러한 수준의 영적 안정은 실망에 면역이 된다. 그러한 신자들은 이렇게 말한 사도 바울과 같다: “죽음이나 삶이나, 천사나 군주나 능력이나, 현재 일이나 앞으로 다가올 일이나, 높이나 깊이나, 그 밖의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내지 못할 것을 내가 확신한다.”
100:6.6 One of the most amazing earmarks of religious living is that dynamic and sublime peace, that peace which passes all human understanding, that cosmic poise which betokens the absence of all doubt and turmoil. Such levels of spiritual stability are immune to disappointment. Such religionists are like the Apostle Paul, who said: "I am persuaded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principalities, nor powers, nor things present, nor things to come, nor height, nor depth, nor anything else sha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100:6.7 최상위의 실체를 파악하고, 궁극위에 이르는 목표를 추구하는 종교인의 의식 속에 거하는, 승리하는 영광의 실현과 함께 연합되어진, 안정된 감각이 있다.
100:6.7 There is a sense of security, associated with the realization of triumphing glory, resident in the consciousness of the religionist who has grasped the reality of the Supreme, and who pursues the goal of the Ultimate.
100:6.8 심지어 진화하는 종교도 충성과 장엄함에서 이 모든 것이 진정한 체험이다. 그러나 계시 종교는 진실할 뿐 아니라 뛰어나다. 확대된 영적 비전의 새로운 충성심은 새로운 차원의 사랑과 헌신, 봉사와 동료애를 창조한다; 그리고 이 모든 향상된 사회적 관점은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형제인 확장된 의식을 낳는다.
100:6.8 Even evolutionary religion is all of this in loyalty and grandeur because it is a genuine experience. But revelatory religion is excellent as well as genuine. The new loyalties of enlarged spiritual vision create new levels of love and devotion, of service and fellowship; and all this enhanced social outlook produces an enlarged consciousness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an.
100:6.9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의 특별한 차이점은 순전히 체험으로 얻은 인간의 지혜에 더해지는 새로운 품질의 신적인 지혜이다. 그러나 인간의 종교들과 함께하는 이 체험은 차후에 늘어나는 신적인 지혜와 우주적 통찰력의 수여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한다.
100:6.9 The characteristic difference between evolved and revealed religion is a new quality of divine wisdom which is added to purely experiential human wisdom. But it is experience in and with the human religions that develops the capacity for subsequent reception of increased bestowals of divine wisdom and cosmic insight.
7. 최고의 종교 생활 (The Acme of Religious Living)
100:7.1 비록 유란시아의 보통 필사자는 나사렛 예수가 육체를 입고 머무르면서 얻은 그 높은 성품의 완성을 바랄 수는 없지만, 모든 필사 신앙인은 예수의 성격이 완전해진 길을 따라서, 튼튼하고 통일된 성격을 발달시킬 수 있다. 주(Master)의 성격(personality)의 독특한 모습은 완전하기보다 균형잡힌 것, 매우 정교하고 균형 잡힌 통일이다. 예수를 가장 효과 있게 보여주는 것은 다음의 어떤 사람의 예이니, 예수를 고발하는 자들 앞에 서 있는 주를 향하여 손짓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을 보라!”(*)
(*) 빌라도가 한 말
100:7.1 Although the average mortal of Urantia cannot hope to attain the high perfection of character which Jesus of Nazareth acquired while sojourning in the flesh, it is altogether possible for every mortal believer to develop a strong and unified personality along the perfected lines of the Jesus personality. The unique feature of the Master's personality was not so much its perfection as its symmetry, its exquisite and balanced unification. The most effective presentation of Jesus consists in following the example of the one who said, as he gestured toward the Master standing before his accusers, "Behold the man!"
100:7.2 예수의 한결같은 인자함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지만, 그의 강인한 성품의 힘은 추종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참으로 성실했다; 그에게는 위선자의 티가 전혀 없었다. 그는 전혀 꾸밈이 없었다; 그는 항상 매우 상쾌하게 진실했다. 그는 결코 가식적으로 굴지 않았고, 속임수에 의지하지도 않았다. 진리를 가르친 그대로 그는 진리를 실천하였다. 그는 바로 그 진리였다. 그의 세대에게 구원의 진리를 성실하게 선포하는 것이 때때로 고통을 가져왔지만, 그는 그런 진리를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의심하지 않고 모든 진리에 충성했다.
100:7.2 The unfailing kindness of Jesus touched the hearts of men, but his stalwart strength of character amazed his followers. He was truly sincere; there was nothing of the hypocrite in him. He was free from affectation; he was always so refreshingly genuine. He never stooped to pretense, and he never resorted to shamming. He lived the truth, even as he taught it. He was the truth. He was constrained to proclaim saving truth to his generation, even though such sincerity sometimes caused pain. He was unquestioningly loyal to all truth.
100:7.3 그러나 주는 너무 합리적이었고 가까이 가기 쉬웠다. 그는 모든 사역에 있어서 매우 실용적이었지만, 그의 모든 계획은 그러한 인정된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 특징을 가졌다. 그는 괴팍하고 변덕스럽고 기이한 성향이 전혀 없었다. 변덕을 부리거나 히스테리를 보인 적이 없었다. 어떤 가르침에도, 무슨 일을 행해도, 특별한 예의 바른 감각과 아울러 언제나 지극한 분별이 있었다.
100:7.3 But the Master was so reasonable, so approachable. He was so practical in all his ministry, while all his plans were characterized by such sanctified common sense. He was so free from all freakish, erratic, and eccentric tendencies. He was never capricious, whimsical, or hysterical. In all his teaching and in everything he did there was always an exquisite discrimination associated with an extraordinary sense of propriety.
100:7.4 사람의 아들(Son of Man)은 언제나 균형 잡힌 성격이었다. 적들조차 그에게 진지한 존경심을 보였다. 그들은 그가 앞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예수는 두려움이 없었다. 신성한 열정이 가득했지만, 결코 광신을 보이지 않았다. 감정이 살아 있어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상상력이 있었으나 언제나 실용적이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삶의 실체에 직면했지만, 그는 결코 무디거나 따분하지 않았다. 용기가 있어도 결코 무모하지 않았고, 신중했으나 결코 비겁하지 않았다. 동정심이 있어도 감정에 빠지지 않았고, 독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경건해도 거룩한 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완전히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균형이 잡혀 있었다.
100:7.4 The Son of Man was always a well-poised personality. Even his enemies maintained a wholesome respect for him; they even feared his presence. Jesus was unafraid. He was surcharged with divine enthusiasm, but he never became fanatical. He was emotionally active but never flighty. He was imaginative but always practical. He frankly faced the realities of life, but he was never dull or prosaic. He was courageous but never reckless; prudent but never cowardly. He was sympathetic but not sentimental; unique but not eccentric. He was pious but not sanctimonious. And he was so well-poised because he was so perfectly unified.
100:7.5 예수의 고유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전통에 얽매이거나 좁은 관습에 종처럼 순종하지 않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자신감 있게 말했고,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가르쳤다. 그의 뛰어난 고유성은 그의 선조와 그 시대 사람들의 가르침 속에 있는 진리의 보배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두려움과 희생물을 바치는 관습 대신에 사랑과 자비를 강조한 것이었다.
100:7.5 Jesus' originality was unstifled. He was not bound by tradition or handicapped by enslavement to narrow conventionality. He spoke with undoubted confidence and taught with absolute authority. But his superb originality did not cause him to overlook the gems of truth in the teachings of his predecessors and contemporaries. And the most original of his teachings was the emphasis of love and mercy in the place of fear and sacrifice.
100:7.6 예수는 대단히 넓은 견지에서 세상을 보았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권했다. 그는 전혀 편협하지 않았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온 인류, 아니 한 우주조차도 포함했다. 언제나 그의 초대는, “누구든지 그를 오게 하라.” 였다.
100:7.6 Jesus was very broad in his outlook. He exhorted his followers to preach the gospel to all peoples. He was free from all narrow-mindedness. His sympathetic heart embraced all mankind, even a universe. Always his invitation was, "Whosoever will, let him come."
100:7.7 예수에 관해 사람들은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다”고 진실되게 말했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숭고한 존재로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신뢰했다. 어린아이가 땅에서 부모를 신뢰하는 것처럼 아버지를 의지했다. 그의 믿음은 완전했지만, 결코 주제 넘지 않았다. 자연이 아무리 잔인하게 보일지언정, 이 땅에서 인간의 복지에 대해 아무리 무관심해 보일지언정, 예수는 믿음 안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실망에 면역이 되었고, 박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실패로 보이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100:7.7 Of Jesus it was truly said, "He trusted God." As a man among men he most sublimely trusted the Father in heaven. He trusted his Father as a little child trusts his earthly parent. His faith was perfect but never presumptuous. No matter how cruel nature might appear to be or how indifferent to man's welfare on earth, Jesus never faltered in his faith. He was immune to disappointment and impervious to persecution. He was untouched by apparent failure.
100:7.8 그는 형제로서 인간들을 사랑했고, 동시에 사람들의 타고난 자질과 후천적인 자질이 어떻게 다른지를 인식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좋은 일을 하였다.”
100:7.8 He loved men as brothers, at the same time recognizing how they differed in innate endowments and acquired qualities. "He went about doing good."
100:7.9 예수는 유난히 명랑한 분이었지만, 맹목적이고 무리한 낙천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늘 이렇게 격려의 말씀을 주었다, “힘내라.”였다. 그가 이처럼 자신감 있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고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신뢰감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믿었기 때문에 항상 감동적으로 배려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고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헌신하는 데 있어 매우 확고했다.
100:7.9 Jesus was an unusually cheerful person, but he was not a blind and unreasoning optimist. His constant word of exhortation was, "Be of good cheer." He could maintain this confident attitude because of his unswerving trust in God and his unshakable confidence in man. He was always touchingly considerate of all men because he loved them and believed in them. Still he was always true to his convictions and magnificently firm in his devotion to the doing of his Father's will.
100:7.10 주는 항상 관대했다. 그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 라고 말하는 것에 지치지 않았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셨다. 그는 무한이 너그러웠는데도, 결코 낭비하거나 사치하지 않았다. 그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누구든지 구하는 자는 얻을 것이다.”
100:7.10 The Master was always generous. He never grew weary of saying,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Said he, "Freely you have received, freely give." And yet, with all of his unbounded generosity, he was never wasteful or extravagant. He taught that you must believe to receive salvation. "For every one who seeks shall receive."
100:7.11 그는 솔직했으나 언제나 친절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너희에게 말했을 것이다.” 죄인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한다고 거침없이 의견을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놀랍게 솔직하면서 내내 그는 어김없이 공평했다.
100:7.11 He was candid, but always kind. Said he, "If it were not so, I would have told you." He was frank, but always friendly. He was outspoken in his love for the sinner and in his hatred for sin. But throughout all this amazing frankness he was unerringly fair.
100:7.12 예수는 때때로 인간적 슬픔의 잔을 깊숙이 마셨음에도, 한결같이 쾌활했다. 그는 두려움 없이 실존적인 실체들에 직면했지만, 하늘나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열정을 통제했다; 결코 열심이 그를 지배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이 신성한 열정은 비영적인 형제들로 하여금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바라보는 우주는 그를 온전한 본보기로서, 높은 수준의 영적 삶에 대한 최상 필사자의 헌신에 대한 원형으로서 평가했다. 그리고 그의 통제된 열정은 전염성이 있었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신성한 낙천주의를 나눌 수 있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100:7.12 Jesus was consistently cheerful, notwithstanding he sometimes drank deeply of the cup of human sorrow. He fearlessly faced the realities of existence, yet was he filled with enthusiasm for the gospel of the kingdom. But he controlled his enthusiasm; it never controlled him. He was unreservedly dedicated to "the Father's business." This divine enthusiasm led his unspiritual brethren to think he was beside himself, but the onlooking universe appraised him as the model of sanity and the pattern of supreme mortal devotion to the high standards of spiritual living. And his controlled enthusiasm was contagious; his associates were constrained to share his divine optimism.
100:7.13 이 갈릴리 사람은 슬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즐거운 사람이었다. “기뻐하고 지극히 즐거워하라”하고 늘 말했다. 그러나 의무가 요구될 때, 그는 기꺼이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용감하게 걸었다. 그는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겸손했다.
100:7.13 This man of Galilee was not a man of sorrows; he was a soul of gladness. Always was he saying, "Rejoice and be exceedingly glad." But when duty required, he was willing to walk courageously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He was gladsome but at the same time humble.
100:7.14 그의 용기는 그의 인내심에 못지않았다. 때 이르게 행동하도록 압력을 받았을 때, 그는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의 차분한 자세는 뛰어났다. 그러나 악을 보고서 자주 분개하였고, 죄를 참지 못했다. 이따금 땅에 있는 자녀들의 복지에 해가 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강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죄에 대한 그의 분노는 결코 죄인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지 않았다.
100:7.14 His courage was equaled only by his patience. When pressed to act prematurely, he would only reply, "My hour has not yet come." He was never in a hurry; his composure was sublime. But he was often indignant at evil, intolerant of sin. He was often mightily moved to resist that which was inimical to the welfare of his children on earth. But his indignation against sin never led to anger at the sinner.
100:7.15 그의 용기는 대단했지만, 결코 무모하지는 않았다. 그의 표어는 “두려워하지 말라” 였다. 그는 대단히 용기가 있었고, 때때로 영웅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용기는 신중함이 있었고 이성으로 통제되었다. 그 용기는 믿음에서 생겨난 용기였고, 맹목적인 추정의 무모함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용감했지만, 결코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100:7.15 His courage was magnificent, but he was never foolhardy. His watchword was, "Fear not." His bravery was lofty and his courage often heroic. But his courage was linked with discretion and controlled by reason. It was courage born of faith, not the recklessness of blind presumption. He was truly brave but never audacious.
100:7.16 주(主)는 경외심의 본보기였다. 젊을때에도 그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그는 동료들이 잘못 예배하는 것조차 존중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종교적 전통을 공격하거나 인간의 잘못된 믿음을 공격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는 참된 거룩함에 대한 경외심이 넘쳐났고, 동료들에게 “너희 가운데 누가 나를 죄 있다고 판단하느냐?”하고 말하면서 정당하게 호소할 수 있었다.
100:7.16 The Master was a pattern of reverence. The prayer of even his youth began, "Our Father who is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He was even respectful of the faulty worship of his fellows. But this did not deter him from making attacks on religious traditions or assaulting errors of human belief. He was reverential of true holiness, and yet he could justly appeal to his fellows, saying, "Who among you convicts me of sin?"
100:7.17 예수의 위대함은 그가 선했기 때문이었고, 여전히 그는 어린아이들과 친교 했다. 그는 개인적 삶에서 온화하고 겸손했지만, 우주에서는 완전해진 사람이었다. 그의 동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를 주(Master)라고 불렀다.
100:7.17 Jesus was great because he was good, and yet he fraternized with the little children. He was gentle and unassuming in his personal life, and yet he was the perfected man of a universe. His associates called him Master unbidden.
100:7.18 예수는 완전하게 통일된 인간 성격자였다. 그리고 오늘날, 갈릴리에서 한 것처럼, 그는 계속해서 필사자의 체험을 통합하고 인간의 노력에 협력한다. 그는 삶을 통합하고, 성품을 고귀하게, 체험을 단일화한다. 그는 인간의 지성 속에 들어가 그 지성을 높이고 변화시키고 그 모습을 바꾼다. 이 말씀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가 그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보라, 모든 것이 새 것이 된다.”
100:7.18 Jesus was the perfectly unified human personality. And today, as in Galilee, he continues to unify mortal experience and to co-ordinate human endeavors. He unifies life, ennobles character, and simplifies experience. He enters the human mind to elevate, transform, and transfigure it. It is literally true: "If any man has Christ Jesus within him, he is a new creature; old things are passing away; behold, all things are becoming new."
100:7.19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하였다.]
100:7.19 [Presented by a Melchizedek of Neba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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