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2장 1-22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지난 며칠 동안 예레미야서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시드기야 왕 제11년에 남 유다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렘39:2).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에 의해 자신의 자녀들과 나라의 귀족들이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아야 했고 자신은 눈이 뽑혔고 쇠사슬에 결박당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시드기야가 끌려갈 때에 예루살렘과 유다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끌려갔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들과 이들을 이끌 소수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유다 사람 ‘그다랴’를 임명하여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성읍들을 맡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지배국의 왕에 의해 세워진 총독 ‘그다랴’ 이외 일부 지도층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남아있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었고 총독 ‘그다랴’의 측근들이 있었고 특이하게도 군대 지휘관도 있었습니다.
남 유다 멸망 이후에 예루살렘과 유다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가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난세를 이기고 그 땅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국권을 상실하였으니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것이 불안정하였습니다. 바벨론 왕이 그다랴를 총독으로 세웠지만 유다 왕의 장관이었던 이스마엘이 총독 그다랴를 살해하였습니다. 이스마엘은 그다랴의 측근들과 심지어 그다랴와 함께 있던 바벨론의 군사들까지 죽였습니다. 큰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42장은 이 사건 이후의 전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탄원과 기도요청
1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요하난’이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그가 사람들과 힘을 모아 총독 그다랴를 죽였던 이스마엘 세력을 암몬으로 쫓아내었고, 사태 수습을 위해 사람들과 함께 예레미야 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찾아간 이유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자문을 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를 중보자로 여기고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요청이 3절입니다.
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은 38장에서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자문을 구했던 것과는 달리 현 사태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신앙심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자 예레미야 선지자는 4절 하반절에서, 그들에게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고 대답했습니다. 요하난의 사람들은 또 다른 말을 합니다.
5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면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응답이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요하난의 사람들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 이스마엘 사태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했지만 사태 해결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따르려고 하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짐과 시드기야 왕가의 비참한 장면과 귀족들이 붙잡혀 가는 것을 보았으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의 쾌락과 출세를 위해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지를 알았습니다.
기도응답
예루살렘이 무너지듯이 최근 하는 일이 무너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혹시 또 다른 어려움으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아니면 이 정도는 아니더라고 고민이 있어 견디기 버거운 상태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지면 길게 기도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떻습니까? 요하난의 사람들처럼 행동할 때가 많지 않았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가 요하난의 사람들의 요청을 받고 하나님께 기도한 후 10일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전했습니다.
10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12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아왔던 땅을 떠나지 말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예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것과 다른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의 후손들을 이 땅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스마엘 사태로 인해 바벨론 왕으로부터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나라의 정치든지 개인의 일이든지 무엇을 할지 결정함에 있어서는 처해진 상황에서 이성이나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해야 합니다. 상황은 바벨론 왕이 임명한 총독과 바벨론 군사들을 유다 사람들이 죽였으니 자신들이 살인자가 아니라며 사건의 경위를 해명하더라도 쉽게 믿어줄 리가 없을 것이고 설령 믿어주더라도 연대 책임을 물어 엄벌을 받는 것입니다. 사태가 심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각한 사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면 바벨론 왕도 이들을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가 우선 누구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면 상황이 나쁘거나 절망적이더라도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실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있을 때입니다. 요하난의 사람들은 이스마엘 사태로 닥칠 환난을 피하기 위해 애굽으로 가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를 아시고 거기에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16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주전 586년 유다가 멸망할 당시 중동 지역의 패권은 바벨론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애굽의 힘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46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애굽왕 바로느고가 주전 605년에는 유프라테스 강 인근 갈그미스까지 원정을 가서 앗수르와 연합하여 바벨론과 전쟁을 했습니다. 비록 애굽이 패하기는 하였지만 애굽이 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전쟁으로 바벨론이 애굽을 정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애굽은 갈그미스 전쟁에 패한 후 유다가 망할 때까지 이스라엘 영토이였던 팔레스틴 지역의 주도권은 상실했지만 여전히 바벨론이 애굽의 영토를 쉽게 넘보지 못했습니다.
이를 요하난의 사람들이 몰랐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도망가면 바벨론의 왕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남지 않고 애굽으로 피신가면 바벨론의 칼이 애굽 땅에 미칠 것이고 칼이 아니면 기근이나 전염병으로(17,22절)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의 칼이 두려워 안전하게 생각되는 곳으로 피신해도 바벨론의 칼이 미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괴로운 것을 피해 다른 곳에 갈지라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으면 그곳은 결코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합니다. 직장을 옮기거나 휴학을 하거나 사업장을 옮기는 것, 그리고 사람이 싫어 사람을 피하고 일이 싫어 일을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장소를 옮기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위기의 상황을 피하려고만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 길을 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기도응답 후
요하난의 사람들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중보자로 삼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제 이 길을 택하면 이렇게 되고, 저 길을 택하면 저렇게 된다는 것을 중보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응답받았습니다.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의 어떤 목소리에도 순종하겠다고 결의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그들의 땅,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 심어주실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중보자 예레미야 선지자를 불신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43장에 있습니다. 42장 20절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겠다’는 이들의 거짓된 반응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책망하는 말입니다.
20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요하난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목에 힘을 주어 결단하지만 막상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응답을 받으면, ‘그건 아니라’고 말하며 달리 행동하지는 않습니까? 기도만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성경공부를 하고 설교를 듣지만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지 못합니까? 손해 보기 싫고 자존심 굽히기 싫고, 의의 길 고난의 길을 가기 싫은 것은 아닙니까? 믿음은 처해진 상황에 이성이나 경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보고 자존심 버리고 모든 것을 잃을 각오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정치 외교 경제 사정이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살 길이 있습니다. 살 길을 성경을 통해 읽고 듣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요하난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 하루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고 행함으로 얽혀있는 삶의 실뭉치를 풀어가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도하며 아버지와 교통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생의 위기 때에만 하나님을 찾고 기도 응답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긴급한 일에 요하난의 사람들처럼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고 이미 응답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하시옵소서. 이를 위해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하여 읽고 듣고 지키게 하시옵소서. 인생사용설명서인 성경말씀을 읽고 답을 얻었으면 그 말씀을 행하는 경건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경건의 본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보여 줌으로 공동체를 살리는 주님의 도구가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처해진 상황에서 이성과 경험을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하여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