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을 피택 장로 (구미만민교회, TK케미컬 공무팀 차장)
작년 12월, 나는 영예로운 장로 직임을 받았다. 교회에 다니기 전까지 불교신자였던 어머니께서 사월 초파일이 되면 절에 가족 이름으로 등을 달곤 하신 기억 때문에 여지없이 나의 종교는 불교였다. 그런 내가 장로가 되다니 하나님 사랑과 은혜는 실로 크고 놀랍다.
버거운 육아 문제로 우울증에 걸린 아내
1994년,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열 달이 되도록 임신이 되지 않아 노심초사였다.
“주님! 저희 부부에게 아기를 주세요. 저희에게 꼭 필요하답니다.”
이렇듯 매일 교회에 나가 기도하던 아내가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다음해 10월, 고대하던 쌍둥이 덕영이와 태영이의 출생은 우리 부부의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아이들은 몸이 약해 잔병치레가 많고 예민해서 잠을 깊게 자질 못했다. 낮과 밤을 뒤바꿔 자는 데다가 툭하면 칭얼대기 일쑤였다. 아내는 밤새 쌍둥이와 실랑이하다가 동틀 무렵 잠이 들고 낮에 잠깐 눈을 붙여야 했다. 이런 상황이 매일 반복되었다. 게다가 허리디스크까지 겹쳐 아내는 웃음이 사라지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니 대화도 단절되어 갔다. 급기야 아내가 멍하니 앉아 있거나 혼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말로만 듣던 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쁜 직장 생활로 아내에게 마음 써 줄 여유가 없었다. 집 안 살림은 엉망이었고, 나도 같이 예민해지면서 행복은 온데간데없었다.
치료받아 변화 된 아내의 모습에 감명받아
그런데 1997년 어느 날부턴가 아내 얼굴에 미소가 되살아나고 말씨가 사근사근해졌다. 심지어 찬송가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또한 어찌된 일인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내 입장을 이해하고 예전과 달리 집 안도 깔끔하게 청소돼 있었다.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나?’ 내 눈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요즘 구미만민교회에 출석하면서 하나님 사랑을 많이 느껴요. 삶이 너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내는 교회 다니면서 우울증을 치료받아 모든 일이 행복하고 유쾌하다고 했다. 내게도 만민중앙교회와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에 대해 소개하며 전도했다. 하지만 나는 한 집안에 두 종교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밝아진 아내 모습이 반가운 건 사실이었지만 분명 어머니가 아시면 야단이 날 것 같아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할수록 아내는 오히려 나를 더 섬겨 주며 평안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니 내 마음은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아내와 아이들을 차에 태워 교회에 데려다 줄 때면 아늑하고 평안한 느낌이 들어 교회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의 말씀으로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고
1998년 8월, 아내의 간청으로 남선교회 수련회에 참석한 나는 놀라운 일을 체험했다. 당시 장마철이라 비가 줄곧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당회장님 교육시간이 되자 수련회 장소 주변에만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주변은 여전히 비가 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기계공학을 전공한 나는 ‘1+1=2’이고, 보이는 것만을 믿어 왔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분의 존재가 내 마음을 두드렸다. 이런 체험은 교회 등록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뒤, 나는 ‘십자가의 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간 경작 섭리를 깨닫고 큰 감동을 받았다. 농촌에서 자란 덕에 참 자녀를 얻고자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하나님께서 추수 때에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신다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 마음을 닮은 선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 뜻이기 때문에 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큰 은혜가 되었다.
이것이 인생의 참된 의미임을 깨달은 나는 어찌하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면서 다니엘철야 기도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마디하고 나면 더 이상 기도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기도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의 매일 밤 드려질 줄이야! 진정 하나님 은혜다.
가정과 직장에 행복이 넘쳐
그 은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해 오던 내게 내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2005년 3월 22일, 둘째 태영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놀다가 우측 다리가 골절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뼈가 세 조각이 나서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일로 우리 부부는 지난날의 모습을 돌아보았고, 티격태격하거나 사소한 말다툼으로 서로에게 상처준 일 등이 떠올라 마음을 찢으며 회개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가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았다. 그 후, 태영이의 우측 다리는 수술하지 않고도 조각난 뼈들이 제 자리에 붙어 정상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직장생활을 통해서도 많은 깨달음을 주셨다. 일을 하다 보면 급할 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곤 했는데 그런 날은 기도 중에 상대의 얼굴을 떠올려 주셨다. ‘상대가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까.’ 회개하며 화평을 이뤄갔고 점점 부드러운 성격으로 변화되고 있다. 지금은 나와 대화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니 섬세한 하나님 손길에 감사드린다.
부모님은 새대구만민교회 성도가 되었고, 중학생이 된 쌍둥이는 믿음 안에서 건강하고 기도하는 아이들로 자랐다. 아내와 나는 기도의 동역자이자 주의 일에 적극적 후원자로서 영적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아내의 우울증을 치료해 주시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복된 가정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 아들 태영이의 X-ray 검사 결과 >
세 부분으로 골절된 소견 |
기도받고 뼈가 정상으로 된 소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