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 가족 그림 에세이】
아들이 그린 장형[尹佶遠]의 얼굴을 바라보며
― 형님이 그리울 때마다 넘겨보는 ‘특집 기사’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큰 형님께
누나도 어느덧 팔순입니다.
누나도, 저도 형님이 살아오신 세월을
한 걸음 두 걸음 따라가고 있습니다.
어느 땐 발자국을 더듬어 보기도 하고
어느 땐 앞서가신 행로를
짚어 보기도 합니다.
누나와 전화 통화하다가
형님을 자주 추억합니다.
누나와 통화에서
자주 나누는 이야기가 무엇인 줄 아세요?
“이럴 때 큰 형님이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것은 제가 누나한테 하는 이야기지요.
“이럴 때 큰 오빠가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은 누나가 제게 하는 이야기지요.
이렇게 우리 형제들은 집안에 좋은 일이 있을 때나,
궂은일이 있을 때나 큰 형님을 그리워하지요.
큰 형님은 그처럼 부모님과 같은 집안의 큰 어른이었지요.
매사 자상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어른이었지요.
오늘은 우연히 인터넷 기사에서 형님을 발견하고
한동안 옛 추억을 더듬었습니다.
형님이 남기신 발자취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동생의 기억 속에 자랑스럽게 빛납니다.
어디 집안 동생들뿐인가요.
형님을 그리워하는 제자들도 많습니다.
교육자로서, 향토사학자로서, 문인으로서
형님의 생애는 동생들에게, 제자들에게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어디 동생들과 제자들뿐인가요.
자식, 며느리, 손주들에게도 가문의 자랑스러운 어르신입니다.
형님께서도 기억하시지요?
서양화를 전공한 아들이 대학생 시절에 그린 형님 초상화.
형님의 초상화는 조선일보에도 소개됐지요.
‘가족 그림 그리기 축제’에 아들이 출품한 그림이지요.
형님께서도 아들의 그림을 보시고 무척 반가워하셨지요.
기사 한 대목을 살펴볼까요?
『대학생 윤종운(22) 씨는 병석에 계신 큰아버지 윤길원(76) 씨의 쾌유를 빌면서 초상화를 그리고 ‘쾌유기원’이라 써서 보내왔다.』
▲ 조선일보가 창간 88주년을 맞아 펼쳤던 ‘그림이 있는 집’ 캠페인 ‘그림은 사랑입니다. - 가족 그림 그리기 축제’에 소개됐던 형님의 초상화 - 대학생 아들이 그렸다.(2008.03.10일자 조선일보 인터넷 판 기사 일부 캡처)
♧ ♧ ♧
어디 그뿐인가요.
충청권 일간지 동양일보 특집 기사는 어떤가요.
이 기사는 《충북의 101인》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되었지요.
‘고난의 시대 원로들의 지혜는 앞날을 밝히는 등불’
책의 부제가 형님의 자랑스러운 생애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책의 표지 문구 좀 보세요.
<충북의 버팀목 101명의 인생 프로필>
‘암울한 시대 순수한 열정과 투지로 살아온
그들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 충청권 일간지 동양일보 특집 기사가 책으로 출간됐다. 형님의 기사는 이 책의 318~322쪽에 실려 있다. (동양일보 1999. 03. 16.)
♧ ♧ ♧
형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따뜻한 눈길로 우리를 영원히 지켜보시지요.
형님은 집안에 좋은 일이 있을 때나, 힘든 일이 있을 때나,
힘과 용기를 담은 말씀을 아낌없이 주시지요.
형님의 지혜 넘치는 덕담과 자상한 가르침 덕분에
우리 집안이 행복을 누리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
2025. 5. 4.
큰 형님 15주기를 앞두고
동생 승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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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형님이 펴내신 저서 일부
♧ ♧ ♧
■ 관련 기사 – 동양일보 1999.3.16.
《충북의 인물 101인》
‘옥천사랑’ 38년… 향토사 발굴 ‘헌신’
윤길원 교육자. 향토사학자
- 옥천장학회 만들어 325명 뒷바라지 숱한 인재 배출
- 관성동회회장 겸임 연구 수준 한 차원 끌어 올려
/ 글. 노영원 기자. 사진 우희철 기자
여우도 죽을 때는 태어난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데, 하물며 사람이 ‘제2의 고향’에 뼈를 묻을 생각을 했다면 그 지역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큰 것인가.
윤길원(尹佶遠. 67)씨는 지난 61년 옥천과 인연을 맺은 뒤 지역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데 헌신해 왔다.
굳이 ‘지역색’ 운운하지 않더라도 타 지역 사람에게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배타적인 지역 풍토에서 옥천군민들은 그를 내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향토사학자로, 교육자로 지금까지 지역에 헌신하고 있는 그의 활동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공주사대를 졸업한 뒤 충주에서 교편을 잡다가 61년 옥천중 교사로 부임하면서 옥천군과 인연을 맺었다. 옥천군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게 된 계기는 옥천장학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던 지난 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옥천 출신 인재를 양성하자는 목적으로 장학회가 창립되자 옥천중 교사였던 그는 장학회 운영위원을 맡아 동분서주했다. 주유소 운영, 농장 경영을 주도해 장학기금을 늘렸고 이를 통해 325명의 학생에게 도움을 줬다.
미래를 위해 지역의 새싹을 키우는 소중한 시기였다. 옥천장학회는 지금은 명맥이 끊겼으나 아직도 기라성 같은 인재를 배출한 요람으로 회자되고 있다.
현재는 당시 혜택을 받았던 학생들이 대학교수, 의사, 사업가 등으로 성장 학우회를 결성해 지역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으니 옥천장학회의 의미를 알 만하다.
옥천장학회 활동에 헌신하면서 옥천이 제2의 고향과 같은 포근함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황간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년 퇴임한 뒤에도 고향인 청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옥천에 남아 활동을 전개하는 것도 바로 그때 느낀 옥천에 대한 애정이 가슴 깊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옥천지역에 뿌리내린 가장 큰 유산은 향토사 발굴.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향토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국문학을 전공한 그의 이력과 관련이 있다. 1960년대 향토사는 단어 자체가 생소할 정도로 황무지였다.
국어를 가르쳤던 윤 위원장은 국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향토사 교육이 우선이라는 소신을 갖게 됐고, 이 시기부터 향토사 연구에 매달렸다.
옥천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름 없는 장승과 비석을 찾고 연구했다. 누가 시켜서라거나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옥천의 역사를 온몸으로 더듬어 가면서 옥천에 대한 애정도 더욱 깊어졌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 82년 옥천에 향토사 모임인 관성동호회가 발족됐고 그는 발기인 대표로 관성동호회를 이끌게 됐다.
관성동회는 박효근 문화원장, 양무웅 새마을운동 옥천군지회장 등 지역 인사들이 주축이 돼 시작된 뒤 지속적으로 신진 향토사학자를 배출하며 올해에도 그 명맥을 힘차게 이어오고 있다.
윤 위원장은 2대 회장에 이어 4대 회장으로 선출돼 현재에도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연구자료를 문헌으로 남기기 위해 향토사 연구 제1집을 발간하고 3집까지 마무리했다.
그의 연구 가운데는 구한말의 풍운아 김옥균과 군북면 대청호변 명일암의 인연을 비롯해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격전장이 있다.
지난 95년 9월 ‘옥천군민대상’ 학술문화부문상을 수상한 것은 30여 년에 걸친 윤 의원장의 이런 노력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볼 수 있다.
▲ 옥천의 문화재 보존에도 남다른 열정을 가진 윤길원 씨가 안내면 장계국민관광단지 내 향토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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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 문화재 보존에도 남다른 열정으로 안내면 장계국민관광단지내 향토사료전시관 명예관장을 맡아 출근하고 있다.
향토사료전시관 앞에 충북도 민속문화재 1호인 동이면 청마리 돌탑과 솟대 형상의 구조물을 세운 것은 삼한시대부터 이어진 옥천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으로 표현할 수 있다.
76년부터 옥천군지 내용 중 민속, 전설, 민요 편은 그의 몫일 정도로 유명사학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에 대한 집념은 옥천의 향토사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년 전 교직에서 퇴직한 후 향토사 연구에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요즘 어느 때보다 신바람 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시간의 구애 없이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옥천군내 우라늄 광맥의 존재 여부를 캐기 위해 고문헌을 뒤지면서 관심 분야를 한층 넓혀가는 중이다.
올해 1월 발족된 제2건국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 교직에서 퇴임한 뒤엔 고향인 충남 청양이나 대전에 가족수련원을 세워 소박한 노후를 보내겠다는 꿈도 미룬 지 오래다.
이제는 일선에서 한걸음 물러 편안한 노후를 즐길 만도 하건만 앞으로도 후손들을 위해 무엇인가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안락함은 나중에 찾아도 늦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역의 어른으로 꼽히지만, 어렵기만 한 고문헌을 뒤적이며 지질까지 연구하는 그의 정열만큼은 ‘영원한 청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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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산에서 이양자 교수님
손자에게도 이메일로 全文을 보냅니다.
가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심 축을 이루고 계신 집안 어른이므로
단편적이나마 생애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할아버지 생각입니다.[필자 주]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5.05.05. 08:44
참으로 훌륭한 형님 생전 업적 값지고 크십니다. 그리고 두 분의 그리워함은 우리에게 진한 울림을 줍니다. 거기에 윤 선생의 아들 윤종운 씨의 초상화는 웃음 띤 인자한 마음을 잘 담았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소중한 인연을 경하드리며. 가족의 날이 있는 모임의 큰 경사에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가족사의 한 단면이지만 인터넷 공간에 소개하면 멀리 미국에서 조카네 가족들도 보게 되고, 가까이는 커가는 손자도 보게 됩니다. 요즘 커가는 손주들은 이런 사실을 모릅니다. 돌아가신 어른에 대한 이런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만이 쓸 수 있는 글입니다.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께서 따뜻한 인정의 격려 말씀을 주시니, 큰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