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은 셋의 내용들을 지니고 있다고 현자들은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대도 그런지 알아보기 바랍니다.
그 첫번째는 삿입니다.
무엇이 있습니다.
무한한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유한한 그대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대가 무한이 될 때 무한이 무엇인지 압니다.
강들은 바다에 대한 개념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유한한 존재들이 가진 생각일 따름입니다.
유한한 강들은 바다를 만나면
무한한 바다 속으로 들어갑니다.
아무런 말을 우리에게 주지 않습니다.
삿은 그러한 것입니다.
붓다도, 예수도, 무수한 깨달음을 얻은 현자들도 삿이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뒤에 남겨놓은 말들은
무한이 유한에게 전한 공허한? 말들에 불과합니다.
두번째는 칫입니다.
의식, 순수한 의식, 초월의 의식, 절대적 의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들을 있게 하는 빛나는 무엇입니다.
세상과, 중간 세상과 천국을 있게 한, 창조한 능력, 그 힘입니다.
그대와, 그대가 있는 세상, 수많은 인간들, 동물들, 식물들. 무생물들이 있는 것은
의식의 표현들입니다.
그대가 무수한 생각들을 합니다.
그것은 의식의 표현들에 불과합니다.
의식이 없으면 그대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의식은 늘 생각에 앞서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와, 교리들은 의식의 표현들에 불과합니다.
그대의 생각들로는 결코 의식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명상을 해서, 그대가 초월로 넘어가면
즉 그대가 사마디에 이르면 알 수 있습니다.
의식은 세상을 나타나게 하고
또 초월로, 불멸로 그냥 있습니다.
그것을 빛이라 해도 됩니다.
세번째는 아난다입니다.
희열, 열락, 감로, 지극한 기쁨, 혹은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대는 행복을 찾아 움직입니다.
무엇을 해도,
그것이 그대에게 행복을 주기에,
나중에라도 행복이 올 것이라는 기대로 합니다.
행복이 오지 않을 것이라면 그것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결코....
식물들, 동물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행, 요가도 행복이 오지 않으면 안합니다.
붓다도 왕궁을 나선 것은 결국 행복입니다.
공을? 그러면 붓다도 그대도 이상한 사람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아난다. 즉 열락에 이른 것입니다.
수행을 해보아요. 요가를 해보아요.
그대는 아난다를 주는 무엇에 이릅니다.
그대의 유한한 존재를 잃어버리고
절대적인 행복에 잠깁니다.
붓다도 그것을 경험하고
왕궁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왕궁은 초라한 마굿간에 불과합니다.
누가 그곳에 들어가겠습니까?
아난다는
세상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의 수억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