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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2화 ― 「스무 해 늦은 책 반납」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숲의 잎사귀 끝에 작은 물방울만 맺히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카페 앞 돌계단도 젖었다.
창밖의 나무들은 빗속에서 조금 더 짙은 초록빛을 띠었다.
소진은 창가에 앉아 원고를 쓰고 있었다.
지영은 주방에서 찻잔을 닦았다.
“오늘은 손님 없겠네.”
소진이 말했다.
“비 오는 날 좋아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누가?”
“소진 씨.”
“나는 비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비 오는 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거야.”
“그게 그거 아닌가요?”
“달라.”
소진이 다시 원고를 보았다.
그때—
딸랑.
문 위의 종이 울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우산을 접고 있었다.
회색 재킷의 어깨가 비에 조금 젖어 있었다.
남자는 우산을 우산꽂이에 넣은 뒤에도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품에 무언가를 꼭 안고 있었다.
책이었다.
낡은 시집 한 권.
책은 투명한 비닐봉지에 싸여 있었다.
남자는 그것이 젖을까 봐 가슴 안쪽으로 깊숙이 품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소진이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차 한잔 마셔도 됩니까?”
“그럼요.”
남자는 창가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지영이 다가왔다.
“어떤 차 드릴까요?”
“따뜻한 걸로 아무거나 부탁합니다.”
“대추차 괜찮으세요?”
“네.”
지영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비닐봉지에서 책을 꺼냈다.
표지가 많이 낡아 있었다.
모서리는 닳았고 책등에는 작은 금이 가 있었다.
하지만 책은 깨끗했다.
오랫동안 소중하게 보관한 흔적이 있었다.
소진의 시선이 책에 머물렀다.
“오래된 책이네요.”
남자가 책 표지를 쓰다듬었다.
“스무 해쯤 됐습니다.”
“가지고 계신 지요?”
남자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말했다.
“빌린 지요.”
---
지영이 대추차를 가져왔다.
남자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하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시선은 계속 책에 머물러 있었다.
소진이 물었다.
“도서관 책인가요?”
남자가 시집을 펼쳤다.
책 안쪽에 오래된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도서관 대출표였다.
잉크가 흐려져 날짜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마지막 반납 예정일만은 남아 있었다.
**스무 해 전.**
소진이 웃었다.
“연체료가 꽤 나오겠는데요.”
남자도 아주 조금 웃었다.
“그러게요.”
“이제 반납하시려고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서관에요?”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리고 낡은 시집을 내려다보았다.
“이 책을 빌려준 사람에게요.”
소진은 더 묻지 않고 기다렸다.
잠시 뒤 남자가 말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빗소리가 조금 크게 들렸다.
---
남자의 이름은 **강태호**.
쉰여섯 살이었다.
스무 해 전 그는 서른여섯이었다.
작은 인쇄소를 운영했다.
직원은 세 명.
낡은 인쇄기 두 대.
명함과 전단지, 작은 책자 같은 것을 찍어내는 동네 인쇄소였다.
처음 몇 년은 괜찮았다.
일이 많았다.
밤을 새워도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했다.
큰 업체들이 생겼다.
가격 경쟁이 심해졌다.
거래처가 하나씩 끊겼다.
인쇄기 할부금은 남았다.
은행 빚도 늘었다.
결국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도 어려워졌다.
“제일 힘든 게 빚이었어요?”
소진이 물었다.
태호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럼요?”
“사람들 얼굴 보는 거였습니다.”
월급날마다 미안했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어린 두 아이에게 미안했다.
은행 직원에게도 미안했다.
거래처 사장에게도 미안했다.
심지어 자신을 믿고 종이를 외상으로 내준 문구점 주인에게도 미안했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 사람 전부한테 빚진 것 같더군요.”
태호가 말했다.
“그래서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가 오면 받지 않았다.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집에도 늦게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겨울—
인쇄소 문을 닫았다.
---
“그 책을 그때 빌리셨어요?”
소진이 물었다.
“네.”
책을 빌려준 사람은 인쇄소 근처 작은 도서관의 사서였다.
이름은 **오명숙**.
당시 마흔 후반쯤 되는 여자였다.
태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서관에 갈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인쇄소 문을 닫은 뒤 갈 곳이 없어졌다.
집에는 들어가기 싫었다.
친구를 만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에 들어갔다.
따뜻했기 때문이다.
“책 읽으러 간 게 아니었네요.”
지영이 말했다.
“아니었습니다.”
태호가 웃었다.
“난방하러 갔지요.”
소진도 미소 지었다.
태호는 매일 같은 구석 자리에 앉았다.
책은 펼쳐놓았지만 읽지 않았다.
몇 시간씩 창밖만 바라보았다.
명숙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도,
직업이 뭐냐고도,
왜 매일 오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그저 가끔 따뜻한 물 한 잔을 놓고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명숙이 태호 앞에 시집 한 권을 내려놓았다.
바로—
지금 태호가 가지고 있는 책이었다.
“이거 한번 읽어보세요.”
태호는 고개를 저었다.
“저 시 안 읽습니다.”
“알아요.”
“그런데 왜 줍니까?”
명숙이 말했다.
“다 읽지 말고 아무 데나 한 장만 펴보세요.”
태호는 귀찮았지만 책을 펼쳤다.
그리고 우연히 한 페이지를 읽었다.
---
태호가 지금의 카페에서 그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종이는 누렇게 변해 있었다.
한 문장 아래에 연필로 가느다란 선이 그어져 있었다.
태호의 손끝이 그 문장 위에 머물렀다.
소진은 묻지 않았다.
태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날 이 문장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읽었다.
**‘길을 잃은 날에도 저녁은 오고,
저녁이 온다는 것은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소진은 조용히 그 문장을 들었다.
태호가 말했다.
“별것 아닌 문장이었어요.”
그날 태호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책을 덮은 뒤에도 그 문장이 계속 생각났다.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그날 밤에도.
다음 날 아침에도.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
태호는 다시 도서관에 갔다.
명숙이 물었다.
“읽었어요?”
“한 페이지요.”
“그럼 됐네요.”
“뭐가 됩니까?”
명숙은 웃었다.
“시집은 꼭 다 읽을 필요 없어요.”
그리고 말했다.
“한 문장만 데리고 가도 돼요.”
태호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뒤—
정말 그 문장 하나를 데리고 도서관을 나왔다.
시집을 빌렸다.
대출 기간은 이 주였다.
하지만 이 주가 지나도 돌려주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그 책은 늘 태호의 책상 서랍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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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돌려주셨어요?”
소진이 물었다.
태호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그냥 깜빡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웃었다.
“그다음에는 돌려주기가 싫어졌어요.”
“왜요?”
“그 문장이 없어질까 봐.”
책을 돌려준다고 문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태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책 자체가 필요했다.
힘든 날이면 꺼냈다.
사업 실패로 압류 통지서가 왔을 때도.
아내와 크게 다투었던 날도.
새로 구한 일자리에서 나이 많다고 면박을 들었을 때도.
아들이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던 날도.
태호는 책을 펼쳤다.
늘 같은 페이지.
같은 밑줄.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그 문장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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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는 어떻게 사셨어요?”
지영이 물었다.
태호는 웃었다.
“그냥 살았습니다.”
인쇄소를 다시 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택배 상하차 일을 했다.
그다음에는 작은 출판사의 창고에서 일했다.
책을 포장하고,
상자를 나르고,
반품된 책을 정리했다.
우습게도—
책을 읽지 않던 사람이 책 속에서 일하게 됐다.
몇 년 뒤에는 물류 관리 일을 맡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조금씩 나아졌다.
아이들은 자랐다.
빚도 오래 걸렸지만 모두 갚았다.
“성공하셨네요.”
소진이 말했다.
태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면 좀 이상합니다.”
“왜요?”
“그냥 살아낸 거니까.”
소진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
**그냥 살아낸 것.**
어쩌면 그것도 충분히 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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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지금 반납하려는 거예요?”
소진이 물었다.
태호의 손이 멈췄다.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말했다.
“지난달에 명숙 씨를 찾아갔습니다.”
스무 해 만이었다.
도서관은 이미 없어져 있었다.
건물은 리모델링되어 다른 시설이 들어와 있었다.
태호는 수소문했다.
옛 직원에게 연락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어렵게 명숙의 소식을 들었다.
“삼 년 전에 돌아가셨더군요.”
소진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아…….”
태호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을 듣는데 이상했습니다.”
스무 해 동안 언젠가는 돌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찾아가서—
“그때 책 고마웠습니다.”
그 말 한마디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았다.
내년에도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오 년 뒤에도.
십 년 뒤에도.
그런데—
없었다.
“고맙다는 말도 기한이 있더군요.”
태호가 말했다.
소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태호는 며칠 뒤 명숙의 딸을 찾아갔다.
이름은 **지은**.
마흔 초반의 여자였다.
어머니가 사서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태호라는 사람은 몰랐다.
태호는 시집을 보여주었다.
“이 책을 어머니께 빌렸습니다.”
지은이 낡은 대출표를 바라보았다.
“언제요?”
“스무 해 전에요.”
지은은 놀랐다.
태호는 책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지은이 받지 않았다.
“왜요?”
소진이 물었다.
태호가 말했다.
“딸이 그러더군요.”
그날 지은은 책을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이건 저희 엄마 책이 아니잖아요.”
“도서관 책입니다.”
“그 도서관도 없어졌고요.”
“그래도 어머니가 저한테 빌려주신 겁니다.”
지은은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이걸 왜 아저씨한테 줬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책을 태호 쪽으로 다시 밀었다.
“아저씨가 가지고 계세요.”
태호는 받을 수 없었다.
“그러면 반납을 못 하잖아요.”
지은이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다른 사람한테 반납하세요.”
“다른 사람?”
“네.”
“누구한테요?”
지은은 대답했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한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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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는 그 말을 듣고 며칠 동안 시집을 들고 다녔다.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몰랐다.
지하철에서도 사람을 보았다.
회사에서도 보았다.
거리에서도 보았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만 보고는—
누가 한 문장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지인에게 이 카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때로는 자기 이야기를 두고 간다는 곳.
그래서 찾아왔다.
“여기에 두고 가도 되겠습니까?”
태호가 물었다.
소진이 시집을 바라보았다.
“여기에요?”
“네.”
“왜요?”
“누군가 읽겠지요.”
태호는 손끝으로 책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혹시…….”
잠시 목이 메었다.
“저 같은 사람이 한 명쯤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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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은 책을 바로 받지 않았다.
“태호 씨.”
“네.”
“정말 괜찮겠어요?”
“뭐가요?”
“스무 해 동안 가지고 있었잖아요.”
태호는 시집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표지.
닳은 모서리.
수없이 펼쳤던 한 페이지.
스무 해 동안 힘들 때마다 만졌던 종이.
“사실…….”
태호가 웃었다.
“아깝습니다.”
소진도 웃었다.
“그럴 것 같아요.”
“이 책 없으면 좀 허전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가져가세요.”
태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리고 책을 소진 앞으로 밀었다.
“이제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왜요?”
태호가 대답했다.
“문장을 외웠거든요.”
소진의 표정이 멈췄다.
태호가 웃었다.
“스무 해를 읽었는데 어떻게 잊겠습니까.”
그제야 소진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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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은 시집을 받아 들었다.
“그럼 여기 두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뭡니까?”
“누가 가져가도 찾으러 오지 마세요.”
태호가 웃었다.
“그래야 반납이 되겠네요.”
“그렇죠.”
태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 앞까지 갔다.
그런데 다시 돌아왔다.
시집을 한 번 바라보았다.
손을 뻗을 듯하다가—
멈췄다.
“왜요?”
소진이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번 만져봐도 됩니까?”
소진이 책을 내밀었다.
태호는 표지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고마웠다.”
책에게 하는 말인지,
명숙에게 하는 말인지—
소진은 묻지 않았다.
태호는 다시 책을 내려놓았다.
“이제 됐습니다.”
그는 우산을 펼치고 빗속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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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문이 닫혔다.
지영이 시집을 바라보았다.
“어디에 둘까요?”
소진은 책장 한쪽을 가리켰다.
“잘 보이는 데.”
지영이 책을 꽂으려 했다.
“잠깐.”
소진이 말했다.
“왜요?”
“그냥 꽂아두면 아무도 모르잖아.”
“뭘요?”
소진은 작은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짧게 적었다.
**이 책은 빌려가도 됩니다.
반납 날짜는 없습니다.
다만 언젠가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건네주세요.**
지영이 읽고 웃었다.
“이제 카페에서 도서관까지 해요?”
“도서관 아니야.”
“그럼요?”
소진이 책을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반납소.”
“무슨 반납소?”
소진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고마움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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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흘렀다.
시집은 그대로 있었다.
어떤 손님은 표지만 보고 지나갔다.
어떤 손님은 몇 장 넘겨보았다.
누군가는 소진이 적은 메모를 읽고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오후—
젊은 남자가 혼자 카페에 들어왔다.
서른이 채 되지 않아 보였다.
그는 구석 자리에 앉아 한 시간 가까이 휴대전화만 바라보았다.
차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
전화가 몇 번 왔지만 받지 않았다.
소진은 묻지 않았다.
그런데 나가기 직전—
남자의 시선이 책장에 머물렀다.
그는 낡은 시집을 꺼냈다.
몇 장을 넘겼다.
그리고 어느 페이지에서 손을 멈췄다.
오래된 연필 밑줄.
남자는 그 문장을 읽었다.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소진은 멀리서 바라보았다.
남자의 표정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
그는 책을 덮었다.
그러다가 다시 펼쳤다.
소진에게 물었다.
“이거…… 빌려가도 돼요?”
소진이 말했다.
“네.”
“언제까지요?”
“반납 날짜 없어요.”
남자는 의아한 얼굴로 메모를 읽었다.
“그럼 언제 돌려드리면 돼요?”
소진이 미소 지었다.
“다 읽었을 때 말고.”
“그럼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요.”
남자는 한동안 소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집을 가슴에 안았다.
“고맙습니다.”
소진은 대답했다.
“저한테 하실 말은 아닌 것 같아요.”
남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시집을 들고 카페를 나갔다.
---
지영이 소진 옆으로 왔다.
“갔네요.”
“응.”
“태호 씨한테 알려줄까요?”
소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요?”
“반납했잖아.”
“그래도 궁금할 텐데.”
“궁금하겠지.”
소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젊은 남자가 숲길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한 손에는 우산.
다른 팔에는 낡은 시집.
스무 해 전 태호가 그 책을 들고 도서관을 나왔던 모습도 어쩌면 저랬을 것이다.
소진이 말했다.
“저 책은 이제 태호 씨 책도 아니고, 명숙 씨 책도 아니야.”
“그럼 누구 책인데요?”
“필요한 사람 책이지.”
---
그날 저녁.
소진은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적었다.
**고마움에는 때가 있다.
말할 수 있을 때 말해야 하고,
잡을 수 있을 때 손을 잡아야 한다.**
펜을 멈췄다.
명숙은 태호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건넨 책은 한 사람의 스무 해를 함께 걸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소진은 한 줄을 더 적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고 해서
고마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하지 못한 감사는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친절로도
조금은 돌아갈 수 있다.**
지영이 옆에서 물었다.
“오늘은 뭐 써요?”
소진이 수첩을 덮었다.
“반납 이야기.”
“스무 해 늦었는데?”
“응.”
“그래도 반납됐어요?”
소진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웃었다.
“아니.”
“그럼?”
“다시 대출됐어.”
지영도 웃었다.
---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숲길 저편에서 젊은 남자는 우산을 쓰고 걸었다.
품에는 낡은 시집이 있었다.
그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의자에 앉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다시 책을 펼쳤다.
오래된 밑줄 아래—
스무 해 전 한 남자를 붙잡았던 문장이 있었다.
**길을 잃은 날에도 저녁은 오고,
저녁이 온다는 것은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젊은 남자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한 사람을 살게 했던 책이
다른 한 사람에게 건너가고 있었다.
책에는 여전히 오래된 대출표가 붙어 있었다.
반납 예정일은 스무 해 전에 끝나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책의 진짜 반납일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한 문장을
다시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는 날.**
그날이야말로—
가장 늦었지만,
가장 정확한 반납일이었다.
**― 제42화 끝 ―**
### 다음 편 예고 ― 제43화 「아이들이 만든 비밀 메뉴」
토요일 오후.
민호가 친구 둘을 데리고 카페에 나타난다.
아이들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소진과 지영 앞에서 비밀스럽게 속삭인다.
“우리 메뉴 하나 만들어도 돼요?”
지영이 묻는다.
“무슨 메뉴?”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카페에 혼자 오는 어르신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차 한 잔을 시켜놓고—
누군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며칠 뒤 카페 메뉴판 한쪽에 아이들이 손으로 쓴 작은 메뉴 하나가 붙는다.
**〈말벗 차〉**
가격은 돈이 아니다.
조건은 단 하나.
**차를 받은 사람과 십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런데 첫 번째 주문을 한 사람은—
아이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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