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입니다.
“머리 손질하고 염색해야 하는데 어쩌지?”
아내가 며칠 동안 궁시렁 거렸습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둘째가 종종 머리 손질을 해 줬는데 그걸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미장원 가는 비용을 줄이려는 속셈입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해 줄 게 .”
딸아이가 가위를 집어 들었습니다.
“어? 가위 솜씨가 괜찮은데?‘
제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아내는 신문지로 앞뒤를 가리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는 가위를 들고 앞뒤로 오가며 열심히 가위 질을 해댔습니다. 그러면서 딸과 아내의 궁시렁 거림이 시작된 겁니다.
“야! 이 가위 무슨 가위지?”
“아빠 코털 가위지 무슨 가위야!”
“코털 가위? 야야, 다른 걸로 해. 더럽게 아빠가 코 쑤시던 가위로 내 머리를 다듬냐?”
느닷없이, 정말 느닷없이 불똥이 저에게 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깎으려면 조용히 머리나 깎지 왜 저를 끌어 들이는 겁니까? 가위를 깨끗이 잘 닦았느니, 그래도 기분이 안 좋다느니, 너희 아빠는 왜 가위로 코를 쑤시는지 모르겠다느니, 그러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결국은 그 가위로 내 아름다운 머리를 자르게 됐다느니, 벼라 별 얘기가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둘이 아주 쿵 짝이 착착 맞아 떨어졌습니다. 제가 뭐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때 갑자기 제 콧구멍이 벌룸 거렸습니다.
그렇게 둘이 죽이 잘 맞는 것 같았는데 그건 잠깐이었습니다. 딸이 한마디 했습니다.
“엄마, 머리 좀 흔들지마. 머리 흔들면 깎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알어?”
“야! 흔들어도 척척 깎을 줄 알아야지.”
“그럼 이대로 그만 둘꺼야.”
“어라! 얘가 미용사가 아니라 조폭이잖아?”
“엄마, 조용히 좀 해. 쥐 파먹은 것처럼 된단 말이야.”
“그럼 미용실 문 닫게 할 거다.”
저에게 시비를 걸다가 제 반응이 시쿤둥하니까 이제는 둘이서 찢고 까불고 야단이 났습니다. 물론 아내는 가만히 앉아서 입만 중얼거렸습니다. 그래도 딸아이의 손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신세지는 쪽이 큰소리치는 것은 아주 잘못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했습니다.
“어허, 공짜로 머리 손질 해주는데 말이 많구만 말이 많아.”
“어허, 자기 딸이라고 편들어?”
요즈음 들어서 아내의 말솜씨가 부쩍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뭐라고 하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요즈음은 영 딴판입니다. 조금도지지 않습니다. 물론 저하고 20년 넘게 살은 덕택입니다. 어느 때는 좀 썰렁하지만 유모어를 사용하기도 하구요. 전에는 그런 거 전혀 못하던 여자거든요. 제가 한마디 질렀습니다.
“야! 말 많으면 막 쥐어뜯어 놔라.”
그때 아내는 처량한 목소리로 시를 읊듯이 이랬습니다.
“딸은 머리를 쥐어뜯고 남편은 내 가슴을 쥐어뜯고.”
캬! 상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내를 너무 욱박지른 거 같아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습니다.
“니 엄마, 저렇게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 내가 반했거든, 그랬거든.”
박신양 식으로 한마디 했지요. 아내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났습니다.
“킥!”
그날 드디어 여자가 머리를 깎던 날, 가을도 여름을 깎아 버렸습니다. 거짓말처럼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맛있습니다.
이 모습 이대로 감사한 가을되게 하소서.
첫댓글 “딸은 머리를 쥐어뜯고 남편은 내 가슴을 쥐어뜯고.” 니 엄마, 저렇게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 내가 반했거든, 그랬거든.” 박신양 식으로 한마디 했지요. 아내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났습니다. “킥!” 압권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