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소설집
무심코 책장을 넘기는 과정에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소설…. 첫 소설집을 내놓고 이렇게 당당한 포부를 갖는 작가는 과연 누구이며 그녀의 작품은
어떠한 철학을 가졌는가.
예술의 본질은 ‘소통’이며 예술은 또한 본질적으로 ‘유혹’을 바탕으로 한다, 라고 작품을 통해 대변하고 있는 박경화의 첫 소설집 ‘태엽감는 여자’.
우선은 우울한 눈빛과 보랏빛 풍성한 머리칼의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강렬한 표지 디자인에 시선을 빼앗길 것이다. 책의 절반의 성공은 표지 디자인의 끌림에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듯 ‘태엽감는 여자’의 표지는 그렇듯 강렬하고 독특하며 아우라가 풍성하게 깃들여있다. 그러나 겉포장에 과다한 에너지를 쏟은 나머지 실제 속 내용은 보잘 것 없이 시시하여 독자들을 실망 시키는 작품들이 사실 얼마나 부지기수인가.
박경화의 ‘태엽감는 여자’는 탄탄하고 수려한 문체의 미학을 어필할 수 있는 수작이라는 평을 주위의 평론가들로부터 받은 바 있는 꽤 수준 높은 소설 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우울 모드는 최근 문학의 트렌드인 엽기 발랄 캐쥬얼적 감흥에 반하지만 그 우울의 느낌은 분명 따스하고 고급스러우며 세련된 깊이를 잃지 않는 삶의 특성적 고집이 역력하다. 인물들의 탁월한 심리 묘사와 정황의 자연스러운 흐름, 삶이 던질 막연한 불안과 광기 혼돈은 특별히 국적이나 경계를 짓지 않고 아름답고 따스하게 흘러간다. 또한 소설 읽기의 재미와 긴장미와 흡입력은 박경화 소설이 지니는 탁월한 힘이라고 볼 수 있다.
불문학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 모파상과 까뮈, 플로베르, 사르트르 와 같은 프랑스 거장들의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섭렵하였던 박경화는 현미경적 심리 묘사와 관계의 갈등, 폭 깊은 삶의 이해에 충실하며 소설의 단순한 스토리 구성적 기계성을 거부한다. 다시 말해 박경화는 소설을 하나의 깊이 있는 예술 장르로서 문체와 구성과 작품의 느낌, 언어적 리듬감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철저히 예술적, 철학적 장치를 작품들 전반에 자유롭게 깔고자 한다.
수록작품들 중 특별히 ‘딤섬’이라는 작품에선 지금껏 다루어지지 않은 퍼포먼스 아트라는 장르를 조심스럽게 접근함으로서 삶과 예술의 본질적 표현성을 감성적으로 잘 표현하였으며 ‘가을 몽정’과 ‘스무개의 담배’에선 남녀간의 거부할 수 없는 끌어당김과 공격성을 자연스러운 심리묘사와 빨려들어가는 정황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표제작 ‘태엽감는 여자’는 개인의 자유 욕구와 그에 반하는 괴물같은 삶의 함정의 간극을 충격적으로 어필하였으며 ‘어항’ ‘현실은 비스킷’ ‘지금 그대로의 당신들’ ‘어느 삭제되지 않은 비망록’ 과 같은 작품들은 삶이 지닌 간과할 수 없는 비극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서 그 어떤 페이소스를 독자들로 하여금 강렬하게 설파한다.
독자를 유혹하는 강렬한 느낌의 표지디자인(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작가의 남동생이 직접 선사해 주었다고 한다)과 그 특별한 기대감에 결코 배신하지 않는 꽤 심도 깊은 작품성과 완성도. 지방지 신춘문예 출신 작가지만 박경화의 소설들은 그 어떤 일류 작가들의 작품들 못지 않게 꽤 매력적이다.
따뜻하게 유혹하고 유혹 당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꿈꾸기가 박경화의 소설이다.
- 송은일(소설가)
박경화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리로 된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배우들같다. 너, 케이, 심지어 랑까지. 生은 유리 위를 걷는 것이며 필연코 비극이라고. 그러나 그들은 타인과의 소통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전나무 끝에 매달려 있는 노란 손수건을 향해 손을 내민다. 우울은 녹색 섬광 속으로 스며든다.
- 백은하(소설가)
240페이지 정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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