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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 스님은 최고의 보살이시다.
상락선(서울)
1997년 어느 날 선방에서 수행하시던 스님들이 극락을 다녀온 중국 스님이 한국에 오셔서 서울 능인 선원에서 법문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우리 집 조카 사위가 중국 연변에서 와 있었기 때문에 함께 능인선원을 갔다. 법문도 듣고 마정수기도 받았다. 스님이 마정수기를 해주실 때는 온 몸이 속속들이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집으로 스님을 초대하였고, 그 때부터 한국에 오셔서 서울에 계실 때는 늘 우리 집에서 묵으셨다. 스님은 늘 말씀하셨다.
“이곳은 아무 것이나 먹지 않아 좋다.”
사실 나는 우유도 안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지 않았는데, 큰스님은 그 점을 크게 좋아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식성이 까다로우신 것은 아니고 내가 먹는 것은 모두 잘 잡수셨다.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신다. 그리고 일어나시면 아침 일찍 마을 둘레를 산보하셨다. 집에 계실 때도 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바르게 앉아계셨다.
우리 집에 오시면 때때로 마정수기도 해주셨고, 특히 내가 당시 100명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고 있었는데, 관정 스님이 그 천도재의 회향을 해 주신 것은 잊을 수가 없다. 실재 가까이 모셔보니 정말 큰스님이시다. 공부 많이 하시고 특히 행을 으뜸으로 삼으신다. 큰아들도 “진짜 스님 같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스님은 늘 검소하셨다. 어느 비구니 스님이 양말을 사오니까 “지금 신고 있는 것도 충분하다.”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관정 스님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내가 공부한 것을 알고 계셨고, 특별히 나에게 잘해 주셨다. 나는 특히 그 먼데서 공부하셔가지고 중생을 위해서 한국에 와서 법을 펴시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나는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큰스님은 최고의 보살이었다.”
나는 나이가 들고 중국말도 못해 중국에 가서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는데, 중국 가서 찾아뵌 분들의 말이 관정 스님이 “나를 기다린다.”고 해서 늘 고맙고 죄송하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입적하셨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도 내 방에는 관정 스님이 오실 때마다 선물해 주신 그림이 5점이나 걸려있어 스님을 대하듯 하고 있다.
나는 을축생으로 관정 스님과 동갑이다. 이제 나이 92살이 되니 기억력이 없어지고 단어가 바로 떠오르지 않아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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