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화, 제2캠퍼스 건립은 무산·철회 잇따라 ‘낙제’
대학들이 올해 야심차게 내놓은 계획의 성적표는 어떨까. 1년간 캠퍼스 마스터플랜과 중장기 비전에 따라 크고 작은 사업을 추진한 대학들의 연말 표정은 사뭇 다르다. 당초 계획대로 성과를 낸 대학은 활짝 웃은 반면 목표 달성에 실패한 대학은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있다. 본지가 올 한해 대학들이 진행한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대상으로 사안별 성패를 짚어봤다.
■ 본·분교 통합 또는 분리 ‘투트랙’ 체제 성과 = 올해는 실질적 대학 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쏜 해다. 교육 당국은 부실대학 퇴출과 대학 통폐합에 앞서 본교와 분교를 따로 운영하고 있는 대학들에게도 통합 또는 분리의 ‘투 트랙’을 적용, 자체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중복·유사학과 통폐합으로 본·분교 통합에 성공한 대학들은 휘파람을 불고 있다.
지난 8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본·분교 통합을 승인받은 중앙대와 경희대가 대표적이다. 중앙대는 구성원간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서울캠퍼스와 중복되는 안성캠퍼스 상경계열 학부를 폐지, 통합에 성공했다. 경희대도 학사 구조조정, 행·재정 통합시스템 운영, 캠퍼스간 전과 허용 등 국제(수원)캠퍼스와의 통합 노력이 인정돼 무리 없이 교과부 승인을 받아냈다.
중앙대와 경희대는 각각 2012년도와 2013년도부터 본·분교를 통합해 신입생을 모집한다. 학교 측은 입시에서부터 통합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김태성 중앙대 홍보팀장은 “기존 분교로 모집할 때와 비교해 수험생들의 기대감이 다른 것으로 들었다. 정시모집까지 마치면 통합 효과가 확실히 드러날 것 같다”고 말했다.
10월 중순 본·분교 통합 신청서를 제출한 한국외대도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유사학과인 용인캠퍼스 영어통번역학과 명칭 변경을 비롯해 캠퍼스별 특성화를 통해 통합한다는 방침이다. 교과부가 계획 보완을 요구하고 있고 타 대학들에 비해 신청이 늦었던 만큼 통합 작업 마무리는 내년으로 넘기게 됐다.
이들 대학 외에 단국대, 상명대도 본·분교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으며 건국대와 홍익대는 내부 논의 중이다. 분교의 대외 이미지 개선과 입학 성적 상승, 취업률 제고 등 장점이 뚜렷해서다. 분교의 기존 ‘아류’ 이미지를 벗고 전문화·특성화된 캠퍼스로 변신을 꾀한다는 복안이다.
반면 고려대·동국대·연세대·한양대 등은 분리 운영으로 가닥을 잡았다. 입학 성적 격차가 워낙 크거나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탓이다. 독립채산제를 도입하거나 각종 정부 재정지원사업 평가에서 분리 신청 방침을 굳히는 등 독자 노선을 표방하기도 했다. 인사·재정권을 분교에 일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본·분교의 ‘따로 또 같이’ 전략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 올해 입시 산업대 2곳만… 일반대 대거전환 = 올해 대학 입시에서는 주목할 만한 점이 눈에 띈다. 산업대로는 청운대와 호원대 두 곳만 지원이 가능하다. 기존 산업대들이 올해 대거 일반대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이미지 개선 효과가 기대되는 데다 올해 입시 결과도 긍정적으로 나와 해당 대학들은 뿌듯한 표정이다.
올해 산업대에서 일반대로 정체성을 바꾼 대학은 경운대·남서울대·서울과학기술대·초당대·한국산업기술대·한경대·한밭대 등이 있다. 이들 대학이 일반대 전환에 나선 이유는 산업대만의 메리트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성욱 경운대 기획실장은 “산업대의 주 설립 목적은 재직자 교육이었는데 고학력화로 교육 수요가 줄어들었다. 또 일반대도 계약학과를 설립해 재직자 교육을 하고 있어 산업대 체제를 고집할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일반대로 전환하더라도 기존 산업대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정부가 대학의 산학협력을 강조하는 데 발맞춰 이 분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정시 모집군에 포함돼 다른 대학들과 동일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점도 수확으로 꼽힌다. 산업대는 모집군에 관계없이 수험생이 지원할 수 있어 그간 ‘덤으로 넣어보는 대학’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있었는데 이의 해소에도 한몫 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들 대학은 올해 수시모집에서 전년 대비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일반대 체제로 전환해 처음 신입생을 모집하는 것이라 수험생들의 지원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대외 이미지 역시 대폭 개선됐다는 자평이다. 일반대 전환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만큼 나름의 역량을 갖췄다는 공신성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는 대학의 신선한 이미지가 더해졌다. 특히 일반대 전환에 나서며 함께 진행한 △입학정원 감축 △인프라 확충 및 교육환경 개선 △홍보 강화 등의 노력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대학 관계자는 설명했다.
■ 캠퍼스 부지 활용도↑ 지하로 눈돌린 대학들 = 캠퍼스 부지가 좁아 공간 활용 문제로 고심하던 대학들이 눈을 돌린 지하캠퍼스도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고려대, 이화여대가 앞서 지하공간을 활용해 캠퍼스를 구축한 데 이어 가천대,한국외대가 지하공간 활용 캠퍼스의 문을 열었다. 명지대도 내년 지하캠퍼스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며 연세대·동국대 등은 신임 총장들이 지하캠퍼스 추진 의사를 밝혔다.
한국외대는 지난 9월 지하 3층·지상3층에 연면적 1만 2천여㎡ 규모의 지하캠퍼스를 완공했다. 2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 겸 대강당과 국제회의장·피트니스센터·주차장 등의 시설이 들어섰다. 신형욱 기획조정처장은 “학교 경관을 해치지 않고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여러 대학이 지하캠퍼스를 대안으로 검토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가천대는 신축 ‘비전타워’의 연면적 60% 이상을 지하 공간에 할애했다. 가천대가 지하캠퍼스를 조성한 이유는 조금 독특하다. 대학 인근에 소재한 군사시설로 인한 고도 제한과 그린벨트 규제로 인프라 확장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지하 공간을 십분 활용한 비전타워를 짓게 됐다는 게 대학 측의 설명이다.
명지대는 지하캠퍼스 건립이 가시화됐다. 자체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따라 내년 지하캠퍼스 건립에 들어간다. ‘어반 캠퍼스’로 명명될 지하캠퍼스에는 학교 부지 약 2만㎡에 기숙사를 비롯한 강의·연구공간이 들어선다. 민자 유치의 일종인 BTO 방식으로 어반 캠퍼스를 건립할 명지대는 사업 시행사를 공모해 내년 중으로 착공식을 열 계획이다.
연세대와 동국대는 지하캠퍼스를 만들어 부지 부족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방침을 내놓았다. 내년 2월 임기를 시작하는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지난달 학내 교수 대상 소견발표회에서 차량 1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지하 주차공간을 만들어 주차난을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캠퍼스가 좁은 동국대 김희옥 총장도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지하공간을 활용해 인프라 확충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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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이화여대의 파주캠퍼스 추진 철회 발표에 항의 시위를 벌이는 파주 주민들. 사진 한명섭 기자 |
성과 지지부진… 속 쓰리게 한 사업들
반면 대학들의 속을 쓰리게 한 사업들도 많았다. 서울대를 필두로 국립대들이 추진한 법인화는 구성원 반대에 막혀 대부분 잠정 중단됐다. 법인화에 올인했던 시립 인천대도 끝내 국회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법인화법이 국회를 통과한 서울대는 올 한해 계속 마찰을 빚었다. 교수·직원의 반대에 이어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는가 하면 고공농성을 벌이는 등 법인화 반대가 사회적 이슈로 커졌다. 서울대의 뒤를 잇는 법인화 후발주자로 지목된 경북대의 경우 교수회 주관 법인화 찬반 투표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이어 총장직선제 폐지가 국립대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며 법인화 논의는 아예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인천대는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 법인화법 통과를 추진했으나 반값 등록금 논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본회의 통과 등 큰 이슈에 밀렸다. 또한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법인화 추진에 힘을 보탠 여당 의원들이 있음에도 처리에 실패했다. 인천대 관계자는 “숙원인 법인화법 통과를 내년에도 계속 밀어붙일 것”이라며 “인천시민들의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내년 총선에서 인천대 법인화 실현을 공약으로 내거는 후보가 높은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명 대학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제2캠퍼스 추진도 차례로 무산됐다. 이화여대는 캠퍼스 이전 철회로 경기도 파주시와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고 중앙대는 경기도 하남시, 인천 검단신도시 등을 후보지로 검토한 이전 작업이 모두 불발됐다.
파주캠퍼스 건립을 추진하던 이화여대는 국방부와의 토지 매수 협의가 결렬돼 지난 8월 추진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학교 측은 당초 제안받은 토지 매입 예상가에서 몇 배나 올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지만, 파주시는 이화여대를 상대로 14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해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대도 해당 지자체와 지원 규모를 두고 줄다리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앙대는 2007년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당시 1만명 규모 캠퍼스 조성 계획을 밝혔지만, 수용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도시 개발 이익금에 따른 건립 지원을 하남시에 요구하며 마찰을 빚었다.
또한 파주를 접고 남양주에 제2캠퍼스를 추진하는 서강대도 구성원간 잡음이 일었으며 대학 유치에 팔을 걷어붙인 인천 송도 역시 성과가 지지부진하다. 이 때문에 대학들이 캠퍼스 이전을 내용으로 한 MOU를 남발한 측면이 있다고 대학 관계자들은 전했다.
한국대학신문 2011.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