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털'이란 거물급 정치인.기업인이나 고위공무원 등
특별히 주목받는 수감자를 이르는 교도소 내 은어(隱語)다.
대북송금. 현대비자금. 대선불법자금 등 최근 일년 가까이 굵직굵직한 수사가
계속되면서 구치소에 '범털'이 넘쳐나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주말(17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의 서울구치소 주차장.
평소 주말이면 곳곳이 비어 있던 주차장이 고급 승용차 등으로 가득 찼다.
대검.서울지검.경찰청 등 주로 서울에 위치한 수사기관에서 구속 기소된
범털이 많아지면서 벌어진 풍경이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범털은 현역 국회의원 8명을 포함해 3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격리 수용이 필요한 수감자'로 분류돼
대개 독방을 쓴다.
이에 따라 늘 여유가 있던 서울구치소 독방(3백여개)이 거의 포화됐다.
구치소 한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독방에 수감될 VIP급도 요즘은 워낙 범털이 많아진 때문에 어지간해선 독방에 수감되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구치소 측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은 면회 일정을 잡는 일이다.
'거물'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건 이상의 면회 요청이 쇄도해 이를
조절하거나 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면회객들이 크게 느는 바람에 주차장 관리에도 애를 먹고 있다.
구치소 다른 직원은 "20분 정도 주던 면회 시간을 최근 15분 이하로 줄였다"고
말했다.
수감 중인 범털끼리 마주치는 일도 흔해졌다.
면회 일정이 빡빡해지면서 면회장을 오가는 중에 수감자들이 스쳐지나면서
서로 눈 인사를 주고 받는 경우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구치소의 풍경도 바뀌어 사회지도층 면회객들이 타고온
검은색 세단들로 주말이면 주차장이 '고급차 전시장'이 되고 있다.
지난주에 면회를 다녀왔다는 한 법조계 인사는
"모 국회의원을 면회하고 나오다가 다른 정치인을 만나 아는 척을 했다"면서
"서울구치소에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모여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아픈 한 단면"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