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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헌신(요12:1~8)
저를 예수만나도록 인도해 주신 목사님께서 저를 포함하여, 청년들을 만나면
도전하면서 질문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질문인가 하면
여러분 평생에 목 놓아 부를 노래가 있습니까?
평생을 향해 달려갈 푯대가 있습니까?
또 여러분의 인생을 걸만한 가치 있는 일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합니다.
한마디로 인생을 걸만한 헌신을 할 만한 대상자가 있느냐라는 그런 질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반드시 어디엔가 반드시 헌신하며 삽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명예에 목숨을 걸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을 위해 헌신한다고 말하기 자존심이 상해서 말은 안해서 그렇지, 그 사람을 삶을 보면 우선순위를 보면 영락없이 돈 때문에 사는 인생도 있습니다.
헌신이라는 이 거창한 단어를 안 쓰더라도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반드시 그 어디엔가 마음을 두고 마음을 쏟고 살아가는 어떤 부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자녀 된 우리는 누구에게 헌신하며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겠습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 그분을 위해서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때로는 제가 우리 청년들에게요 아주 강력한 헌신을 요구합니다.
아직은 우리 청년에게 그 수준까지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정신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헌신하라고 강력하게 요구를 합니다.
왜냐하면,
제 속에는 한 가지 확실한 믿음이 있습니다.
주님께 헌신하지 않으면 반드시 세상에 헌신하게 되어있습니다.
주님께 헌신하지 않으면 반드시 세상에 헌신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주님께 헌신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참아 헌신하기 전에 주님께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수있기를 축원합니다.
세상 사람들도요 여자분들은 그렇다고 합니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 자기 보스에게 목숨을 건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세상에 하다못해 불량배들도 자기를 인정해주는 보스를 향해서 혈서를 쓰고
충성을 맹세합니다.
하물며,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주께 헌신해야 될 줄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께 아낌없이 자기 자신을 드린 아름다운 헌신의 기사가 나옵니다.
오늘 함께 이 헌신의 내용을 살피면서, 이 마리아의 헌신을 살피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될지 다시 한번 고민하는 시간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늘 본문을 보면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앞에 쏟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 당시에 향유는 합회 유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그 당시에는 화페의 기능을 대신했다 라고 말합니다.
마리아가 주님께 바친 향유는 3절에 보니까, 나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드라는 향유의 기륵을 찾아보니까 동인도 산으로써 당시에도 아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고급품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메이커 있는 고급브랜드예요. 째닙다. 째.물건너 온거예요.
그리고 그 양이 얼마냐하면 한근이라고 밣히고 있습니다.
대략 찾아보니까 340g 의 분량입니다.
이만큼의 향유를 담는 용기가 따로 있어서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을 보면 그것을 옥합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여튼 굉장히 값나가는 향유 옥합을 깨뜨려서 마리아가 예수님 발앞에 붙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당시의 향유는요 처녀가 시집을 가기 위해서 평생을 다해 준비하는 혼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아마 마리아가 이 향유를 준비하기 위해서 평생 동안 저축해온 혼수물일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5절 말씀을 보면,마리아가 받친 향유의 가치를 얼마라고 성경이 밝히고 있냐하면, 얼마라고 얘기하죠?
5절을 보면 300데나리온. 여러분 잘 아시죠? 1데나리온은 요즘 말로 말하면, 노동자가 하루 일해서 버는 하루 품삭입니다.
300데나리온이니까, 이런거예요. 안식일 빼고 휴일빼고, 1년동안 일해서 버는것 몽땅 다모은거예요. 1년 연봉입니다.
그 정도의 상당한 액수입니다. 굉장한 금액이죠.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처녀에게 있어서 혼수로 예비한 향유라는 이 점에 있어서 적어도 마리아에게 있어서 이 향유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깨뜨려서 예수님 발에 붇고 있는 거예요
그것을 그저 털석 깨뜨려서요, 예수님 발아래 붙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발을 씻기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마리아가 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헌신을 할수 있었을까요?
여러분 마리아가 한 이 헌신은 계산기 대충 두드려서 적당한 수준의 헌신이 아닙니다.
형편봐서, 형편 되는 대로, 그저 내가 할수 있는 데로 그저 그렇게 한 정도가 아니고, 그저 몽땅을 헌신해 버린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헌신할수 있었을까요?
첫 번째로 한번 따라 하겠습니다.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아에게는요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런 헌신을 가능케 한것은 마리아에게 있어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현장이 있었던 거예요.
주님을 삶 가운데서 끈끈하게 만나는 그런 현장, 확실한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요 요한복음12장 오늘 본문 말씀을 설교하면서 놓치는 부분이 이부분입니다.
많은 목사님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마리아가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리고 마리아가 예수님을 많이 좋아해서, 그렇게 받쳤다 얘기합니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누구는 예수님 안좋아합니다? 다 좋아하죠,
누구는 예수님께 사랑안받은 사람이 어디있었습니까? 그 당시에 예수님 주위에 몰려다닌사람, 다 사랑을 받았죠. 다 은혜를 받았죠.
근데 이렇게 예수님 앞에 전체를 드려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마리아에게 주님을 만나는 역사적인 현장이 분명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 요한복음11장을 보면 11장 서두를 보면, 대충 한번 훌어보시면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때 마리아는 죽은 오라버니, 이 나사로를 살려주시는 예수님과의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32절을 보시면, 11장 32절을 보시면, 마리아가 주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지금 마리아가 뭐하는거죠? 예수님께 하소연 하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 조금만 일찍 왔으면,, 중간에 그렇게 어그적 거리지 않았으면, 우리 오라비 죽지 않았을 텐데,,하면서 예수님께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주님이요,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실 어정거렸어요. 며칠을 더 유했죠?
이틀을 더 유한거예요. 6절에 보면 이틀을 더 유하고 찾아간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런 하소연을 하고 있으니까, 주님이 33절을 보면 통분히 여겼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망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제 무덤에 돌을 옮겨놓으라고 명령합니다.
이런 사정을 이렇게 지켜보고 있던, 옆에 있었던 마르다가 이제는 나서서 한마디 거듭니다.
39절을 보십쇼. 뭐라고 얘기하는가 하면“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메,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죽은지 나흘이 됐으니까, 다 끝났습니다. 마르다가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어서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는가 하면, 40절을 보면
“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내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
그렇게 나무라시고는 무덤의 돌을 옮겨놓으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43절을 보면
“나사로야, 나사로야, 나오라 그렇게 말씀 하십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장사한지 나흘이 지났는데, 이 시신이 벌떡 일어나서 걸어 나옵니다.
다 베로 동였으니까, 미이라 처럼 그렇게 되었겠죠. 시신이 수족이 베로 동여진 채로 걸어나오고 있는 거예요. 엄청난 일이 벌어진거예요.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짜빠진거예요.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나사로의 누이였던 마리아에게 있었서는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에게 있어서는요, 도저히 부인할수 있는 주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어디 도망갈 수 없는, 분명한 역사적인 현장이 있었던 거예요.
이 주님과의 체험이, 주님과의 만남이, 마리아의 오늘날의 헌신을 가능케 한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 마리아와 같은 충격적인 현장이 있습니까?
적어도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을 삶의 현장에서 분명히 만난, 현장이 있습니까?
이 현장이 있어야지, 이 역사적인 만남이 있어야지, 헌신하며 주님 앞에 나아갈수 있습니다.
분명히요 주님을 만난 사람은 삶이 다릅니다.
여러분 베드로 보십시오.
십자가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베드로 벌벌벌 떨고, 그저 웅크리고 앉아서 그저 다락방에 앉아 있었는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베드로 완전히 바뀌잖아요.
사도행전2:36절을 보면 뭐라고 말합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담대하게 외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주님 만나면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뜨겁게 만나는 체험을 다시한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속에서, 말씀속에서, 삶의 현장속에서....
그저 그것 생각만 하면 주님이 생각나고, 그것 떠올리기만 하면, 도저히 주님을 부인할 수 없는 그 뭔가가 우리 삶 가운데 있어야지 만이 헌실 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십자가가 부담되세요?
교회에서 맡기는 사역들이 무게로만 느껴지십니까? 신앙생활이 힘겹게만 여겨지십니까?
다른것 다 접어두고 다시한번 주님과의 만남으로 말미암아 새출발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모든 것이 다 걸려있습니다.
그사람의 직분이 목사냐, 장로냐, 집사냐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이 10년,20년, 얼마나 믿었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얼마나 주님과의 처절한 만남이 있는가, 분명한 만남이 있는가,
여기서부터 모든 것들이 다 출발되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과의 만남이 있을때, 그때 비로소 저와 여러분들도 마리아가 오늘 드렸던 것 과 같은
헌신이 있게 될 줄을 믿습니다.
두 번째로 이 마리아의 헌신은요, 정말 전부를 드리는 헌신입니다.
대충보고 적당하게 한 수준이 아니예요.
남들 눈치보면서 적당하게 떼우는 그런 식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받친 이 나드한근의 향유는요 여성들이 손쉽게 구할수 있는 그런 향수와 완전히 다른거예요
집에 굴러다 다니는 그런 향수병 하나를 깨뜨려서 부은 그게 아니예요.
전부를 드린거예요. 적어도 마리아에게 있었서는 생명과도 같은 것을 드린것입니다.
요즘 저는요, 화가 나는 것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성도들이 주님을 마치 쓰레기 처리장 정도로 생각합니다.
연속극 시간은 잘도 맞추는데, 예배시간은 철저하게 지각합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죠? 어떻게 풀이해야 되죠?
청년들에게 지난 안식일날 왜 예배에 빠져는지 묻습니다. 답이 이렇게 나옵니다.
피곤해서, 약속이 있어서, 시험기간이었는데,
여러분 새가족이라면 제가 이해를 하죠.
모태신앙인데, 10년넘게 예수를 믿어오고 있는데, 우리가 좀 은혜를 받아야 살지 않겠냐고
기도회 나로라고 얘기하면 대답이 뭔지 아십니까?
밥사줍니까?
우리가 은혜받아야 살지않냐? 우리 수련회가서 은혜받고 기도하자, 다시한번 거듭나자 그렇게 예기하면 다 미꾸라지 빠지듯이 빠져나가는데, 여자친구가 어디 놀러가자 하면 1박2일 패키지로 계획해서 떠납니다.
그걸 그저 꼬셔가지고 수련회 장소에 갖다놓면 질문합니다. 뭐냐 하면,
전도사님 회비 대신 내주나요? 이렇게 얘기합니다.
비단,청년들만의 문제는 아닐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쓰레기 취급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것이 나쁘기도 하지만, 여러분
뒤집어서 생각해 보십쇼. 주님이 기분 나빠서, 뒤집어서 거꾸로 우리를 쓰레기 취급해버리면, 어떡합니까?
하나님이 넌 안돼. 넌 어쩔수 없는 인간이야. 그렇게 한번 낙인을 찍어놓으면
우리는 어쩔수 없는, 해답이 없는 인생들입니다.
주님앞에 온전한 헌신을 드릴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최근에 말라기서를 보면 제사장들이, 백성들이 또 뭘 하나님앞에 받치는가하면,
어떤 것들을 받치는가하면, 눈먼것, 저는것, 병든것, 그런것을 받칩니다.
왜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눈먼것, 병든것, 저는것을 받쳤을까?
하나님은 치료의 은사가 있기 때문에, 병든것을 좋아해서, 그걸 알고 철이 들어서
제사장이 그런 걸 받쳤다?
아니죠, 간단합니다. 귀찮으니까, 쓸모없으니까
온전한 것 받치려니까 아까우니까, 쓸모없는것 받친거예요.
그리고는 기도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이 여기소서..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뭔줄압니까?
말라기서 1:10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너희가 내 단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도 받지도 아니하리라.”
여러분! 헌신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희생입니다.
참 헌신이라는 것은 내가 입을것 다 입고, 내가 하고싶은것 다하고, 버리기 직전인 것을
하나님앞에 드리는 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빈 껍데기를 드리고
하나님앞에 큰 소리를 칩니다. 틀렸습니다.
여러분 희생은요 내가 좀 불편해도, 내가 좀 손해를 봐야 합니다.
아깝지만, 내것 내려놓을때 그것이 희생인거예요. 그것인 희생인거예요. 그것이 헌신입니다.
따라합시다. 헌신은 희생이다.
헌신은 희생입니다.
마리아가 드린 헌신은요,적당히 내것 내 유익을 챙기고, 남은것을 드리는 그런것이 아닙니다.
그런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씀을 증거하는 저도 참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좀 제대로 된 헌신, 아니면, 제대로 된 헌신을 하려고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요, 이렇게 신앙고백을 담아서 마리아가 전부를 다해 헌신을 하니까요,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면, 마리아의 헌신은 전이가 됩니다.
전염이 된것입니다.
여러분 3절 하반절에 보십시오.
“예수의 발에 붙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냄새가
집에 가득하니라,” 아멘~“
이 마리아의 헌신의 결과는요, 온집안을 향유 냄새로 가득 채운 그런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제대로된 한사람의 헌신은, 온전한 헌신은 무서운 파급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한 사람만 제대로 살리면,
교회를 살리고, 구역과 부서를 살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 진동하게 될줄을 믿습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의 일을 하다가, 물질의 손해를 보더라도,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나는 돈으로 시간으로 사는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주님이 은혜 주시기만 하면 그 은혜로, 그 능력으로 나는 세상가운데 살수있는 존재입니다.” 라는 그런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마이라에게는요, 이 순전한 나드 한근을 드릴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이것으로 사는것이 아니라, 이것 가졌다고 해서 시집잘가고, 성공한는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던 거예요. 주님! 은혜주시면 산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경건은 연습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헌신은요, 체험이 필요합니다.
오늘 마리아가 향유를 쏟아붇는 장면을 잘 보십쇼,
연습해서 된것 같습니까? 훈련을 해서 된 것 같애요? 아닙니다.
생명의 주님을 만나 버리니까, 생명의 주님을 만나버리니까, 너무 자연스러운거예요.
여러분 본문을 잘 살펴 보십쇼. 이걸 아까와서 드릴까 말까, 갈등한 흔적이 있습니까?
우리처럼 다짐하고, 결단하고 결심해서 두손을 꽉 잡고, 그렇게 깨뜨렸나요? 그렇게 드렸나요? 아닙니다. 그저 드렸습니다. 주님 만나니까,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죠? 왜 우리가 주님께 그냥 팍 쏟아붇는 그런 헌신을 못하는지 아십니까?
연습이 안되서, 훈련이 부족해서,
사실은 틀렸습니다.
주님 만난 경험이 없는 거예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주님을 만난 체험이 없는 거예요.
나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주시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갈수 있도록 은혜내려주신 그
주님의 사랑에 대한 분명한 체험, 그 머리통을 얻어맞는것 같은 그런 체험이 없는거예요.
그것 있으면 헌신하게 됩니다. 마리아 보십쇼. 그냥 나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 12:24일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여러분 지금 마리아의 헌신을 기록한 뒤에, 후반부로 넘어가서, 밀알의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거, 한알의 밀알, 누구 얘기인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사신거예요
그런데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어떻게 하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죠? 죽으면.
여러분 헌신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쇼
헌신은 희생이고 죽음입니다. 오늘 주님은, 본인이 그렇게 사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따라서 살기를 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저와 여러분이 또다른 한알로
이세상 가운데 그렇게 썩어지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죽을수 있는가? 어떻게 헌신할수 있는가에 대해서 2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기도의 헌신을 하십시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내자신과 가정을 위해 기도하십시요
두 번째로는요.
지갑을 여십시오. 분명합니다.
정확한 헌금을 드리십시오. 대충 때먹는 그런식으로 그리고는 입으로 하나님 섬깁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사람도 속고요 목사도 속을지 몰라도, 우리 주님은 절대 속지 않습니다.
저는것 드리고, 눈먼것 드리고, 병든것 드리고, 내가 다 드렸다고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은 속지 않습니다.
내가 물질도 주님앞에 헌신할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제대로 된 헌신을 좀 하고 싶습니다. 마리아 처럼 그저 퍽썩 깨서 주님 앞에
다 드리듯이 그렇게 제대로된 헌신하고 싶습니다.
주님 만나는 현장 있게 도와 주시고, 그리하여 전부를 드리게 도와주시고,
그리고, 내가 드리는 헌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예수의 향기가 전염되는 역사가 우리가운데 나타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기도에 헌신하게 도와주시고, 물질에 온전한 헌신이 있을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