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미술관(Musei Vaticani)
평생 한 번은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바티칸 시국.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이기도 하다. 특히 성 베드로 광장과 성 베드로 성당은 무료입장이다. 성 베드로 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프란체스코 모키의 성 베르니카상, 라파엘로의 축일의 제단,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열쇠를 들고 있는 성 베드로, 베르니니의 발다퀴노 조각품, 교황 바오로 2세의 무덤 등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려면 바티칸 미술관(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가야 한다. 미술관은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고 줄도 엄청 길다. 보통 서너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미켈란젤로의 두 작품만 감상해도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곳이다. 그만큼 대가인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우리에게 엄청난 감동을 안겨준다.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감과 석회가루를 4년동안 맞아가며 완성한 작품이다.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가 67세 때 완성했다. 그렇다고 시스티나 예배당이 미켈란젤로의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서 그리고 북쪽 벽으로는 페루지노,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코시모 등 화가들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안타깝게도 시스티나 예배당에서는 사진촬영을 할 수 없다.
1506년 1월 14일, 로마의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놀라운 유물이 하나 발견된다. 바로 “라오콘 군상”이다. 이 작품은 라오콘과 두 아들이 두 마리의 거대한 뱀과 싸우며 고통받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기원전 40-30 년경에 조각된 이 조각상은 바티칸 미술관의 기원이 되는 작품이다. 교황 율리오 2세가 작품 구입 후 조각상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했기 때문이다. 라오콘은 트로이의 고대 신전을 지키는 트로이 제사장이었다. 그는 독신이어야 했지만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았다. 거기에 그리스가 보낸 목마를 받아 들이지 말라고 트로이에 경고까지 했다. 이에 아폴로가 분노한다. 아폴로는 두 마리의 거대한 뱀을 보내 라오콘과 두 아들을 죽인다. 결국 트로이 목마 때문에 트로이는 멸망하고 말았다. 이때 트로이의 아이네아스 장군은 제사장의 경고를 듣고 트로이를 탈출한다. 그는 아프리카로 이동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 사랑을 나누고, 7년간의 유랑 끝에 이탈리아 라티움에 정착했다. 이후 아이네아스의 후손으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태어났다. 찬란한 로마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라오콘 조각상을 보니 디도와 아이네아스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떠올랐다.
미술관의 안뜰은 피냐 정원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청동으로 제작한 솔방울 조형물과 지구본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지구 안에 지구가 있는 지구본 조형물은 바티칸에서는 유일한 현대 조형물이다. 그 의미가 특별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태피스트리홀에는 17세기 브뤼셀에서 제작한 유명한 태피스트리가 여러 작품 전시돼 있다. 태피스트리는 양모와 실크의 금색실과 은색실로 짜서 만든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은 움직이는 원근법을 이용해 제작한 작품이다. 그리스도의 눈을 보며 걸으면 그 눈이 보는 이를 따라 움직인다. 그야말로 놀라운 기술이요 최고의 장인이 만든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미술관에는 멋진 남성상을 보여 주는 벨베데레의 아폴로상, 안토니오 카노바의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 나일의 동상, 아누비스신의 동상, 아프로디테 여신상, 오로라 여신상,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 제롬, 필리포 리피의 성모마리아의 대관식과 성도들, 프라 안젤리코의 “성 니콜라 디 바리”의 이야기, 안토니오 알레그리의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그리스도,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도제 니몰로 마르첼로의 초상화, 자코보 주끼의 눈의 기적, 귀도 레니의 성 마태오와 천사, 피에트로 나바라의 고전적인 요소와 과일 정물, 피에르 레오네 게치의 성 클레멘트의 순교, 카를로 마라타의 교황 클레멘트 9세의 초상화, 폼페오 바토니의 교황 비오 6세의 초상화, 동물 그림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벤젤 피터의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와 얼룩말을 공격하는 레오파드, 이탈리아 화가, 카를로 카라의 로스 3세의 두 딸, 미국 화가 윌 바넷의 4대 가족 그리고 폴란드 화가 얀 마테이코의 대작인 “비엔나 전투에서 오스만투르크 군을 격파한 폴랜드의 소비에스키왕” 등이 전시돼 있다.
바티칸 미술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는 단연 라파엘로 산치오다. 라파엘로의 작품 중에는 그의 마지막 작품인 그리스도의 변용, 폴리뇨의 성모자, 성모의 대관식, 몬테루스의 성모라 불리는 성모대관 그리고 라파엘로의 방의 그려진 놀라운 작품들이다. 라파엘로의 방은 콘스탄티누스의 방, 엘리오도르의 방, 보르고 화재의 방, 서명의 방 등 모두 4개의 방으로 연결돼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방은 아테네 학당이 그려져 있는 서명의 방이다. 기둥과 기둥이 아치로 연결돼 있는 로지아(복도) 벽화도 모두 라파엘로의 작품이다. 미술사가 바사리에 의하면 라파엘로는 재능있고 상냥했으며 유쾌한 성격의 미남이었다고 한다. 라파엘로는 많은 여인을 사랑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은 ‘마르게리타 루티’라는 여인이다. 라파엘로는 그녀를 모델로 하여 몇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제빵사의 딸’이라는 작품이다. 루티는 빵을 만드는 빵집 딸이었다. 루티의 팔에는 라파엘로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파란색 리본이 있고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어 있다.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서약을 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알리지 않았다. 라파엘로는 당시 후원자였던 베르나르도 추기경의 조카(마리아 빕비에나)와 약혼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마리아를 사랑하지 않았던 라파엘로는 추기경에게 결혼은 몇 년 후에나 하겠다고 말한다. 그 이후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결혼을 계속 미루었다. 기다리다 지친 빕비에나는 1520년 결혼식을 올리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3월의 어느날 라파엘로는 루티를 만나 뜨거운 밤을 보내게 된다. 집으로 돌아 온 그는 심한 열병을 앓았다. 그리고는 1520년 4월 6일,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라파엘로는 그가 원한대로 판테온에 묻혔다. 그리고 그가 남긴 재산은 모두 루티에게 넘겨졌다. 하지만 4개월 후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잠적해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그녀는 참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라파엘로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작업실에서는 루티의 초상화가 발견됐다. 현재 라파엘로 옆에 묻힌 사람은 공식 약혼녀였던 마리아 빕비에나다.
글, 사진: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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