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6.10토) 오랜만에 갔던 만인산에 다시 왔다. 오늘은 어제의 루트와는 다른 휴양림에서 정기봉을 향해 걷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둘레산 3구간으로 갈지는 정기봉을 오르고 결정하기로 맘먹었다. 버스타고 오늘은 만인산휴양림에서 내렸다. 어제의 하산부터 거슬러 시작을 위해 휴양림에서 태실로 걷다 정기봉으로 올랐다.
오늘의 산행은 멜로를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전혀 뜻밖의 호러를 경험한 기억에 두고두고 남을 산의 기록이 될 것이다.
정기봉은 전 편에서 언급했듯 580미터로 대전 제2봉이다. 특색을 지녀 강렬한 인상을 주거나 독특한 암봉의 모습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산이다. 대전119에선 이 산을 태봉산으로 만인산과 구분 짓고 있다.
휴양림에서 시작하면 오래지 않아 정상에 다다를수 있다. 거의 정상 가까이의 능선에서 마지막 오르막을 중간쯤 오르면서 대명천지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별일을 겪었다. 너무도 순탄하고 평범한 산행중 등산로가 아닌 비탈진 우거진 숲속에서 갑자기 심상치않은 그 동안 들어본 적이 없는 거대한 물체의 묵직한 발자욱 소리와 함께 잠시 잠깐 호랑이로 착각하게 만드는 듯한 낮은 크르릉거리는 경고성 울부짖음이 온 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직감적으로 성체 맷돼지란걸 알게 됐다. 예전 식장산에서 거대한 멧돼지의 저돌적 질주를 목격한 바가 있어 더욱 큰 두려움이 엄습했다. 마침 산 위에서 음악을 틀고 내려오는 한 분이 있어 상황을 전했더니 음악을 더 크게 하고 가면 상관없다며 무덤덤하게 내려간다. 오싹해진 뒷끝이라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다리가 얼어 붙은듯 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를 망설이다 다시 위에서 사람 소리가 난다. 부부로 보이는 두 분에게 다시 상황을 전하고 함께 빨리 내려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여기서 내려가는 것은 뭔가 굴복하는 느낌이고 계속 오르자니 혼자 감당하기엔 두려움이 매우 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단 휴대폰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배낭에서 3단 접이 우산을 꺼내들고 한 손엔 스틱두개를 움켜쥐고 오른손엔 우산을 한 단을 뽑은 채로 손잡이의 버튼을 누를 준비를 하고 일부러 큰 기침소리와 고함을 쳐가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소리가 났던 곳을 외면한체 등산로 양 옆으로 난 급하게 튀어 오를 나무를 찾아가며 잰 걸음으로 오름을 서둘렀다.
어느 정도 거리를 올라 진정을 위해 막걸리 한 잔하고 대범해지잔 생각에 벤치에 앉아 한 잔을 먹는데 작은 고양이만한 줄무니가 선명한 새끼 멧돼지가 쏜살같이 내가 있는 것을 크게 우회해 후다닥 도망치는 걸 보았다. 그 걸 보고 한 잔 더 먹으려던걸 멈추고 다시 배낭을 정리했다. 좀 있으니 또 한마리의 새끼 멧돼지가 그 뒤를 이어 달린다. 진로를 보아하니 반대편 지네 은신처로 피신하는 모양이다. 어미의 날카로운 괴성이 이런 이유였슴을 알게 되니 그나 나나 그 상황에서 어쩔수 없는 불우한 조우가 터럭만큼의 차이로 비켜가 이 순간은 서로 안위의 큰 숨을 내쉴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맷돼지라고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약점을 가진 상태였으므로.....
정상엔 결국 올랐다. 나무들이 정상에서의 전망을 가려 시원한 감은 아쉽지만 남쪽으로 서대산이 보이고 반대편엔 저 멀리 계룡산을 찾을 수 있으며 가까이 동쪽엔 식장산이 반갑다.
맷돼지가 일부러 해코지를 위해 이 곳까진 올리 만무하니 긴장이 풀리는지 막걸리 한 잔 추가에 졸음이 파고든다. 기세좋게 벤취에 누워 살짝 오수에 빠졌나보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아래서 들려 벌떡 일어났다.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 정상적 등산차림이 아닌 행장으로 산을 오르셨다. 또 맷돼지 못 봤느냐는 얘길 꺼냈더니 아무 낌새도 못차렸단다. 난 주차장쪽으로 가니 휴양림쪽으로 내려가시려면 각별히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렸더니 지팡이 대신으로 짚고 온 나뭇가지를 들어보이며 이 것 있으니 큰 걱정있겠냐며 대수롭지 않는다는 식이다. 맷돼지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것 같다. 하긴 나도 예전엔 그랬던 적이 있었다. 둔하고 느린 돼지의 산에 사는 종 정도로 알았는데 정말 다른 모습을 보고서부터는 적어도 산에서만큼은 맷돼지가 왕이란걸 인정하게 되었다.
정상에서 왼쪽은 바로 주차장으로 가고 더 직진하면 둘레산길 3구간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턴 혼자 가기는 너무 무서운 경험을 이전에 한터라 담을 기약하고 빠르게 하산한다. 내려가는 길은 제법 거리가 멀다. 어제 만인산 오르는 정도보다도 긴 거리이며 경사도 비슷하다. 능선 길 그런 것 없이 비슷한 경사로 한 번에 쭉 내려간다. 올라온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힘든 상황이리라.
내려가는 길의 끝은 주차장 커피숍 카페베네 앞에 도착한다.
만인산으로 돌아 정기봉으로 해서 내려온다면 예닐곱시간정도 걸릴듯 하다. 혼자 가는 건 권하기 좀 그렇고 (만인산은 상관없지만) 여럿이 가면 충분히 재미있는 아기자기한 산행길이 될 듯하다. 그림을 보면 다르겠지만 언듯 이 코스는 큐피트의 화살 모양과 비슷하다 차가 추부터널로 진행하는 것을 산길은 멀리 한 바퀴 도는데 크게 찌그러진 하트 모양으로 한 바퀴 우회하는 형국의 등산로로 이루어져 있어 일부러 갈매기 머리부위 쯤에 정자든 조형물을 세워 하트 형상의 등산로를 만들어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사랑이 이루어지는 등산로라는 스토리를 녹여 가미시키면 전국 유일의 ♡'사랑의 코스"♡가 되지 않겠나 하는 상상을 해 보게 한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산행중 가장 스릴 넘치고 무섭고 긴장했던 경우는 없었는데 산에서 또 한 번 배우고 간다. 산에선 잠깐 들린 객이란 사실을 잊지 말라는 깨달음을. 주인이 허락하여 산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조용히 조심스럽게 또 경건하게 걸음하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