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퓌시스(Physis) II .
박홍규, 형이상학 강의 2: 박홍규전집 3, 민음사, 2004, pp. 277-314. (P. 467)
박홍규(1919-1994), 1991. 12. 15 .
* 공시태(synchronique)로 인격성 인격 인간 사람들로 구분해보면,
인격성은 종교성처럼 형이상학적 관념인데
인격은 사회에서 개별자로서 각자의 고유한 지위와 형태를 띤 것이다. ; 계약의 사회
인간(사람) 사회 속에서 본능 속에서 전체와 부분사이에 연결이 되어 있다.
사람들은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일반화된 명사로 쓰인다. 즉 개, 소처럼 종의 명칭이다.
이렇게 네 가지로 위상적으로 세워 놓으면, 플라톤의 선분의 비유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플라톤은 사람이란 측면에서 다룬 것이 아니라 사물이란 측면에서 다루었는데, 이는 영혼을 다루기 어렵고 또 규정하기 어렵지만, 신체(물체)를 설명하고 또 이해시키기 쉽기 때문인 것 같다. 벩송이 DI 2장에서 구슬의 설명을 네 단계로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52MLD)
** 자연의 자기에 의한 자기 생성과 창조(발생)과 무에서 자연의 창조(발명)이라는 두 견해가 종교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전 자가 자연 신앙이라면 후자가 인위 신앙이다. 전자에는 겸손과 연민이 있어서 이타성이 발현되는데 비해, 후자에서는 오만과 과잉으로 이기심의 지배한다. 사유에서 보면 전자에서는 상상과 몽상이라 할 수 있고, 사고에서 보면, 후자에서는 망상과 착란이라 해야 할 것 같다. 후자는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다고 해야 할 것같고, 인간을 사이보그로 만들 것 같다. (52OKD)
# 퓌시스(Physis) II
- 박홍규, 1991. 12. 15. pp. 277-314.
희랍어에서 <physis(자연)>라는 말은 영어의 <nature>에 해당하는데,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했지? 하나는 동적 이론((dynamic theory)이고 하나는 정적 이론(static theory)이고, 동적 이론은 <physis>를 식물에서 싹이 터서 잎사귀나 나오고 하는, 살아가는 힘, 생장하는 힘으로 본다고 했지? 그것이 기초가 된다고 했지? 그리고 또 하나의 정적 이론은 그게 아니라 사물의 고정된 성격, 구조로 생각한다고 했지? 그래서 어원상 이 두가지 학설이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느냐하는 결정이 나질 않아. 인도 게르만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bheu->인데, 이것은 발생한다는 의미도 있고, 동시에 <있다>, 독일어 <du bist(너는 있다)>의 <bist>에 해당하는, 영어의 <to be>에 해당하는 것도 있더라, 그 둘이 동시에 있어. (277)
초기에 탈레스 같은 이오니아 학파 사람들이 <physis>를 찾았다고 할 때 아리스토텔레스나 버넷(J. Burnet, 1863–1928)같은 사람은 불이나 물같이 변하지 않는 것, 변하는 것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고 하고, 동적 이론에 따르면, <physis>는 움직이는 힘, 탄생(birth)을 의미하며, 그 반대는 죽음이라는 거야. (277-278) [전자들은 형상을 후자는 흐름을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호메로스에서 <physis>라는 것은 <phyesthak(자라다)>라는 동상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은 본래 식물이 싹트는 것이야. ...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에 오면 변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있어서 이 우주가 단순히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나 요소들의 결합과 분리에 의해 생겨난다고 해. 엠페도클레스에 가면, <physis>는 없고 <mixis(혼합)>만이 있다는 말을 하고, 이 우주에 원자들의 <diacrisis(분리)>, <syncrisis(결합)>만 있는 것이지 탄생은 없다고 해, 생성은 없다. 헤라클레이토스 같으면 불에서 물이 나오고 물에서 공기가 나오고 공기에서 흙이 나오고, 이렇게 탄생이 있는데 후기 자연철학은 이런 게 없다. (278)
소피스트를 거쳐서 플라톤에 건너오면 유명한 소피스트들의 <physis>와 <nomos>의 대립이 나오지. ... 사람은 <physis>에 있어서는 다 같은데, <nomos>에서는 달라. 아테네 사람이다, 스파르타 사람이다 할 때는 <nomos>에 의한 것인데, 그것은 실정법이나 관습에서 다르다는 거야. (278-279)
그런데 플라톤에 오면 이 <physis>가 무엇이냐 하고 정의하는 대목도 없고, 신도 <physis>요, 사람도 <physis>요, 또 물질도 <physis>요, 영혼도<physis>요, <physis> 아닌 것이 없어. (279)
그런데 이 책[만스페르거(Dietrich Mannsperger, 1933-)의 플라톤에서의 자연(Physis bei Platon)]은 그 제목이 벌써 플라톤에서 <physis>라는 말이 나오는 장소(locus)를 다 빼서 정리해 놓았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철학책이 아니고, 문헌학적(philological)인 책이야. (279)
그것이 뭐냐?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physis>에 대해 동적 이론하고 정적 이론하고 가장 중요한 두 개가 있다고 했는데, 또 하나 플라톤은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나와. 그것은 <보편적(universal)>이라는 의미야. 이 전 우주를 <physis>라고 해. (280) [플라톤에 와서는 자연이란 만물을 지칭하는 의미로도 쓰인다면, 이때는 실재성이라기 보다, 사고의 대상으로서 자연, 즉 분석의 대상으로 자연(정적인 자연)으로 쓰인 셈이다.]
그러니까 그때 <physis>는 우리의 주관적인 것(en hêmin)이 아닌 것이야. 처음에는 <physis>의 기본적인 의미는 주관적인 것[사변적], 혹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인위적]이 아닌 것이라 했지? 그렇지 않는 것, 실재하는 것을 <physis>라고 해. 여기서는 <cosmos>도 쓰고 <holon(전체)>이니 <pan(모든 것)>이니 하는 말을 써. (280) [자연과 규범 사이에 구분이 있을 시기인 소피스트시기에 자연은 만물이며 조화, 우주, 전체, 모든 것으로 확장적 의미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나오냐 하면, <physis>라는 말은 <phyomai>동사의 동명사야. 희랍어에서 동명사는 동명사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명사에 의해 나타난 결과도 의미해. 그리고 또 단순한 결과뿐만 아니라 그 결과의 집합명사(collective noun)도 돼. (280-281) [네 가지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 그 결과, 결과물, 결과물들의 집합, 이런 것인데, 프랑스어에서 현재 분사형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주를 표현하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어. <cosmos>도 있고, <pan(모든 것)>도 있고, <holon(전체)>도 있고, <physis>도 있고 한데, 문제는 뉘앙스가 전혀 달라. 대자연하고 우주하고 전체니 삼라만상이니 모두 의미가 달라. (281)
[앞에 나온 보편적이란 말과 연관하여] 여기서 <universus(전체의, 보편적인)>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무슨 소리냐하면 <하나로 향해져 있다>는 얘기야. <uni->라는 것은 <unus(하나)>, <unius(하나의), <uni(하나로)>, 하나의 여격(dative), <하나로>야. <versus>는 <vertere(기울다)>, 하나로 향해 있다는 말이야. 모든 게 로마로 향해져 있다. 말하자면 세계는 하나라는 이야기야. 통일되어 있다, 모든 게 로마의 주권으로 다 향해져 있다는 얘깁니다. .. 직접 <physis>하고는 전혀 달라, 그 기원이 다르다니까. (281-282) [보편의 개념자체가 로마 제국주의 개념이고, 자연<physis>은 규범의 개념이 아니라 동적 개념이라고 박선생님은 말씀하시는 것 같다.]
... 자연이 동사의 주어가 될 때 .. 이 사람[만스페르거]은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면, 그것은 자연을 인격화(personify)한 것이라고 해. (282) [들뢰즈가 0년에 풍경이 아니라 인격이라 한 것이 있는데, 사물의 인격화는 로마에서 보편화 또는 보편명사화하는 경우가 아닐까? - 그리스 신화는 이미 자연의 부분을 인격화 즉 의인화하지 않았던가?]
<Ouranos>는 하늘인데, 우주라고도 써. 신화에서는 <Ouranos>니, <Gê>니, 땅이니, 바다니, 그게 다 의인적(anthropomorphisch)으로 돼 있어. 그런데 <physis>는 그렇게 의인적으로는 잘 쓰지 않은 것 같다. (282)
또 하나는 [퓌시스사] 동사의 보어가 될 때야. 파이돈편에 나오는 대자연에 대한 얘가 있는데 .. 지난번에 에우리피데스가 쓴 말 뭐지? <historia physeôs(자연의 탐구)>라고 했지? 파이돈편에서 아낙사고라스에 관한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있어. 아낙사고라그가 아테네에 왔을 적에 에우리피데스가 태어났는데, 그가 한 말이 <연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리고 <시민의 불행한 행동에도 관여하지 않고>, 그런데 <자연의 불사하고, 늙지 않는 질서를 보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 사람에게는 수치스러운 행동의 실행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우리 인간이 아니라, 대자연의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은 우리 인간의 불행이나 부정한 것은 상대를 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그 사람들은 행복하다. (282)
테아이테토스편에도 ... 하늘을 보다가 우물에 빠져가지고 트라키아 여성 하녀한테서 경멸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지? 여기서 벌써 사람, 즉 소우주(microcosmos)[라]하고, 대자연하고 대립이 있다는 거야. (283) [인간사와 자연사 사이, 즉 제도 속의 인간 대 자연 속의 인간 사이의 대립이라!]
그런데 이 사람[에우리피데스]은 <physis>가 <agêron(늙지 않는)>하고, <athanaton(불사적인)>하다고 했어. 버넷(1863–1928)은 <physis>가 불이나 물같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그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니라 사람, 즉 소우주와 대립된 대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거야. 달라. ... 사람과 대조적인 대우주(macrocosmos)로서의 대자연[온자연]은 안 늙고 안 없어진다, 영원하다는 얘기야. 이건 아주 중요해. (283) [만물의 총량은 일정하다(불변하다)는 생각은 데카르트이후의 물리학적 견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탈레스로부터 자연론자에게 죽 있어온 것이다. - 이는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와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라틴어에서 <universe>라는 말은 <natura>라는 말보다, 전체 우주, 존재자 전체를 더 뚜렷이 드러내. .. 그러니까 개인, 사람, 소우주가 아니라 그 밖에 실제 있는 것, 또는 우리의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 그것의 총체를 가리키는 거야. 그러니까 그것은 신화적인 것이 아니야. 인간의 연구 대상이니까, 눈으로 보는 대상이니까. 만약에 신화적인 존재라면 어떤 말이 나와야 될까? 눈으로 본다는 말은 안 되겠지? 뭔가 신탁을 물어야지, 신에 대해서. 거기는 그러니까 해석적인 것이지? (284)
글라우콘(Glaucon, Γλαύκων; 전445–4세기)이라는 사람이 있어. <he tou Glaukonos physis(글라우콘의 본성)>이다 그래 놓았어요. .. 글라우콘의 <nature>는 뭐냐? 소크라테스의 <nature>는 무엇이냐? .. 그 사람들의 <physis>는 무엇이냐 말이야. (284) [인간의 본성 또는 인간본성이란 말은 근대에서 흄이 쓴 것이 처음인가? 루소는 la nature humaine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또, <physis tês Crêtês(크레타의 자연)>라는 말이 나와> 크레타 섬의 <physis>라면 구체적으로 있는 크레타 섬의 형태라든지, 위치라든지, 산세라든지,... 지도 위에 섬만 딱 그려놓으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해? / 양문흠: 도식(schêma). (284)
박홍규: ... 그러면 <schêma(도식)>라는 것은 무엇이냐? 도식이라고 번역해. 물건의 형태야. 나중에 더 나아가서 추상적으로 보이는 측면을 <eidos>라고 하지. 그러면 그 구체적인 사물이 바깥으로 나타나는 힘도 <physis>라 하고, 힘과 구별되어서 나타나는 형태도 <physis>라고 해. <eidos>, <schêma>도 <physis>라고 해. (286)
<이것은 무엇이냐(ti esti ?)>의 대답은 <physis>란 말이야. 그 대답은 가장 구체적으로 있는 것부터 가장 추상적인 것까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냐? (286) [소크라테스의 이것은, 즉 움직이는 이 무엇은 <psuchê(Ψυχή 영혼)>가 아니라 에로스(Eros) 인가? (52NNA)]
그래서 이 사람[맨스페르거]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physis>는 <Sein(존재)>과 <Werden(생성)>의 중간에 있고 그것을 매개한다고 해. ... 플라톤 철학은 소피스트편에서 일과 다, 존재와 생성의 철학이 아니냐는 거야. (286)
이 사람의 해석(interpretaion)은 이 사람의 해석이라고만 생각하면 될 거야. 헤겔학파인 것 같아. 언어학자 슈텐쩰(Julius Stenzel 1883–1935)의 제자야. (287)
<ousia(존재)>도 여러 가지 뜻이 있거든? 그런데 이 사람[맨스페르거]은 <ousia(존재)>라는 게 <eimi(있다)> 동사의 <ousios>라는 형용사가 있고 거기서 생겨났다고 해. 어원(etymology)사전에 그렇게 나와 있다는 거야. 글쎄, 그렇게 되는지는 의문이야. 그 말이 맞다면 <ousia>가 아니라 <ousiia>가 되어야 할 텐데. <koinônia>, <philosophia>와 똑같다는 거야. ... <ousa>에서 <ousia>.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287)
그래 놓고는 물론 예전 얘기니깐 어찌 다 알겠느냐, 허허허, 이런 주석을 달아놓고, 인도-게르만 민족의 언어 구조는 변하지 않는 것이며, <Sein>과 <Werden>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은 같고, 그 중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는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는 거야. 또 존재자의 어떤 것을 중요시하느냐, 동물이냐 식물이냐 하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거야. 가령 호메로스는 식물을 중시했다. 이 사람은 그렇게 해석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288)
지금은 인류학이 발달해서, 인류학에도 문헌학(phylology)이 있거든. .. 가령 눈으로 본다. .. <horaô(보다)>인데, 이것의 완료가 <eidenai(알다)>야. 그것도 본래 눈으로 본다는 뜻이야. 그러나 나중에 추상적인 것을 보는 것으로 변해. 또 <theorein(관조하다)>도 눈으로 보는 거야. 눈으로 보거나 감성적으로 구경하는 거. <gignoskein(알다)>, <noein(사고하다)>, 다 그래. 그런데 나중에는 다 추상적으로 변해. <eidenai>는 초감각적으로 보는 것, 그러니까 직관하는 것이고 나중에는 안다는 것 일반으로 변해. .. (288) - [“보다”라는 의미가 확장되어 ‘안다’ 그리고 추상하여 지식 또는 인식, 게다가 이론 또는 직관에까지 이른다. - 이는 인류가 지식이 확장되고 분류(차이)를 거쳐서 계열과 기의를 달리하는 계통수의 가지들의 차히에 이르게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사유를 배운다는 것은 먼저 한 단어(용어)의 공시태를 익히고 그리고 계열이 다른 행간을 읽고, 나아가 과정의 총체적으로 알아챌 때 차히를 깨닫게 된다. 파랑이 인지 노랑이 인지, 빨강이 인지 검장이 인지 말이다. 검정이란 까맣다가 아니라 휘감겨 있다는 회돌이 뜻이다. (52OKA)]
<genesis>도 마찬가지야. <genesis>나 <gignesthai>는 원래 동물이 태어날 때만 쓰는 데, <gignesthai>나 <physis>나 나중에는 모든 생물에 다 쓰이고, 사람에도 써. 그래서 <gignesthai>에서는 <genos(유, 類)>는 원래 혁족이라는 말에서 나와서 유개념으로 변해. <genesis>라고 하면 기독교에서는 <창조>라는 말로 번역하지만, 희랍에서는 창조라는 말은 아니야. 절대로 아니고, 그 반대야, 허허. 창조는 아니고, 있는 것에서 무엇이 변해서 나오는 것이야. (289)
<physis>는 그런 식으로 <ousia>하고 대립되지 않아. 그리고 또 <physis>하고 <genesis>하고 같이 쓰이는 용법이 있어. 테아이테토스편에 그런 데가 있어. (289)
예전 신화에서부터 희랍사람들의 말이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으로 변했고, 뜻이 전부 확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그 만큼 추상적인 지식이, 머리가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해. 그것은 철학에서도 나타나.(289)
<physis>의 아오리스트(aorist)에서 나온 명사형은 <phyton>, 식물이야. 이것도 식물에서 나중에 사람도 땅도 나온다 등등으로 본래의 의미가 확대돼. 의미가 확대돼서 다 <phyton>이라고 해. 나전어의 <humus>처럼 땅에서 나온 것은 모조리 <phyton>으로 돼. 아스티우스(Astius)의 사전에 보면 <terra edita>, 즉 <땅에서 나온 것>, 사람이고 동물이고 식물이고 다야. <physis>도 산이고 나무고 다 <physis>인데, <phyton>도 땅에서 나온 것,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은 다 <phyton>이라고 해. (289-290)
그런데 또 하나 이 사람이 지적하는 것은 <physis>의 어원에는 생성과 존재가 같이 있어서 <physis>라는 말이 존재라는 말을 대신해서 썼다. 보충해서 썼다고 해. 그러데 이것도 곤란해. (290) [이렇게 보충해서 쓰면 이오니아학파와 엘레아학파 사이에 차이가 없어진다. 즉 이오니아학파 다음에 엘레아학파의 존재론이 나온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거기서 볼 때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1857-1939)은 원시적 사고에서 미개인에게는 추상적 개념이 없다고 해. 맞는 이야기야. 존재 개념이 없어. 요컨대 존재개념은 가장 추상적인 개념이야. (290) [절대공간과 같은 맥락에서 존재와 존재자들을 말하는 유클리트기하학이 추상적이다. 그리스가 아니라 북아프리카에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박홍규:... 그리고 미개인[원시인]은 일반론이 없다고 해. 일반론이 있을 리가 없잖아? 추상적 사고가 없으니까. (290)
우리 현대인은 <걸어간다> 그거 하나뿐이야. 그래 갖고 거기에 붙이는 형용사나 부사는 따로 있어. 자기 마음대로 붙여. 거기는 부사와 동사가 떨어져 있지 않은 채 미분 상태로 각각 하나의 말을 구성해. 추상적 사고가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하는 수 없지. 그런 사고가 나올 수 없어. 그런데 또 추리력도 없어. .. 그 대신 기억력은 굉장히 많대. (291)
그런데 베두인 족의 여자가 양을 200마리 치고 있는데 하나만 없어져도 다 안대. (모두 웃음) 추상적으로 양(羊)이 많이 있는 게 아니라, 양(羊)하고 질(quality)이 다 미분이야. 구체적인 양 하나 하나가 다 따로 있어. .. 그러니까 호모사피엔스만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야, .. 미개인은 미개인대로 사는 방식이 있었을 거 아냐? 그렇지? (291) [진정한 의사는 양화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마다 다 다름(차히)를 안다. 프로이트의 실수는 자기가 먹은 코카인의 양을 친구 환자에게도 똑같이 주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추상적인 사고가 발달하기 이전 상태를 초기 자연철학같은 데서 보면 물활론이거든? ... 그것이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구석기 시대까지 간다는 거야. 구석기 시대에서 더 올라가면 영혼이 구별되지 않는 상태가 나와요. 마나(mana)나 뭐 그런 것까지. ... (292) [들뢰즈가 흥미있게도 그런 제국이 있다고 하고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인류학적 관점인가 미학적(감성적) 관점인가 살펴봐야 할 것이다. (52OKA)
그 사람들[페니키아, 여기서는 원시문명인]의 사고의 총집합은 어디냐 하면, 종교에 있어. 예전에는 종교하고 주술이 떨어져 있었단 말이야. 그래서 종교가 주술인데. 그 사람들의 종교가 뭐냐하면 나무를 믿는 종교야. 산림 종교야. .. 인도-게르만 민족이 믿은 나무는 참나무래... (292) [들뢰즈가 노마드의 끝지점(terminal)이 산림인데 나무라기보다 제련이라고 했다. 제련에는 제국이 있다. 내가 보기에 나무 신앙으로 보는 것은 도시성곽(cité)의 성립일 것이다. - 보리수 나무, 당산나무 등, 제우스의 참나무도 도시성곽의 중요한 역할(그 밑에서 제사, 모임, 회의 등)이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박홍규: .. 그래서 게르만 족의 종교가 숲의 신이라는 것을 맨 처음 발견하는 사람이 그림(Grimm)이야. 그림 동화 쓴 사람있지. 그 사람이래. 옛날 독일 종교가 뭐냐를 따져서 그걸 발견했대. 그런데 프레이저의 책을 보면, 리투아니아[폴란드와 러시아 사이의 삼국 중의 하나]가 기독교화 한 것이 14세기 말이래. 그 이전에는 참나무를 숭배했다고 해. 웁살라[스웨덴 스톡홀름 북쪽의 도시]도 참나무 하나하나가 전부 신성이었고, 아일랜드, 켈트 족도 그랬고, 드루이드(Druide, 셀트족의 사제장)란 원시종교가 있거든? 아일랜드도 있고, 프랑스도 있고, 켈트 족 사이에서도 분포되어 있고, 그렇지? 그 사람들이 나무뿌리에다가 고사를 지냈고 거기서 신탁을 받고, 그 승려가 연설가요 재판장이고, 일테면 자치주의 지배자야. 그 <드루이드>라는 것이 뭐냐 하면, <drus>가 희랍어로 참나무라는 뜻이야. 나무라는 뜻도 되고, 그래서 제우스가 무슨 신이냐 하면 참나무 신이야. .. 그리고 자기 마누라가 디아나(Diana) 신이지? 수렵의 신, 천상에서 수렵해서 먹고 살았대. .. 희랍에 델피 신전이 있는데, 그것 말고 더 이전에 신전이 어디에 있었나 하면, 에피루스의 도도네(Dodone)에 있었대.(292)
도도네.. 큰 참나무 숲이 있고, 거기서 제우스의 신탁을 빌었다는 거야. 사전 찾아보면, 거기서 청동으로 만든 그릇을 달아놓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타고 신탁을 빌었대요. 그래서 제우스는 불신도 되고, 비내리는 신도 되고, 우주를 지배하는 참나무 신이야. 그런데 그때만 해도 인간사고가 추상적 사고란 것이 없고 반드시 구체적인 <어떤 것>에 대한 사고만 있어. 반드시 구체적인 어떤 것이 나와야 돼. (292)
희랍 신화가 왜 의인적(anthropomorphisch)으로 갈라지느냐 하면 인간의 모습을 한 신에 의해서 세계를 나누면 전부 구체적인 것만 나와. 인간의 모습을 했다는 것은 신이 전부 고유명사라는 뜻이야. 고유명사로 나눠져. 기독교는 그 점에서는 같아.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를 인정하자는 건 곤란해. 기독교라는 말을 쓸 수가 없어. 신화적 사고 방식에 의하면 우주를 분류(classify)한다는 것은 우주를 고유명사로 환원한다는 말이야. 그런데 그게 안되거든, 깨지거든. (293-294)
그럼 그것이[고유명사] 어디로 가느냐? 가장 추상적인 데로 가야 할 것 아냐? 가장 추상적인 것은 무엇이냐 하면 존재란 말이야. (294)
서양[인류]의 뿌리가 어디 있느냐, 아까도 말한바와 같이 신석기, 구석기 시대, 몇만년 올라가. 뿌리는 그때 다 형성된 거야. .. 그러니까 <physis>라는 것이 유럽 문화의 중심, 뿌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physical science>라는 말이 있지? 그 역사가 간단하지 않아. 그 사고 방식(metality)가 간단치 않아. (294) [멘탈리티는 로고스에 가깝지, 영혼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52OKB)]
원시 사회는 개인이 독립해서 나타나지 않은 사회야.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전43-후17)]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 8)에서 오르페우스가 피리를 불면 돌이 음악을 듣고 따라 다녀. 멈추면 멈추고. 내가 그걸 대학에서 배울 때 이게 무슨 소린가 했어. 허허.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냐. 우리 현대인의 입장과 달라. (295)
사람은 단순히 사람이 아니고, 누구냐 하는 이름이 붙어. 독일말로 <Wer(누구)>, 동물 은 <Was(무엇)>이고 사람은 <Wer>라 해. .. 사람이 나타나려면 추상적 사고가 필요하다. 개인주의가 되려면 사회에서 내 자신을 집단에서 분리해서 집단과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사고가 있어야만 돼. .. 동물은 그게 없어, 원시인도 없어, 원시인은 거짓말을 못하잖아. 어린애도 거짓말이 없어. .. 그러니까 어린아이는 자살이 없지. 자살을 하려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아야 할 것 아냐, (295)
.그런 구체적인 인간을 인격(Person)이라 해. 아까 전체(Totalität)에서 인격성(Persönlichkeit)까지 왔어. 인격성하고 인격은 또 달라. 추상적인 것은 인격이라고 하지 않아. .. 그런데 인격성이라고 하면 거기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돼, 자기 자신의 동일성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돼. .. 요전에 변호사가 그러대. 한 열네살 쯤 돼야 네가 잘 못했다고 법정에 벌을 줄 수 있다고. (296) [형법상 법정 성인의 나이는 시대마다 나라마다 다르다. 유산 상속권의 나이는 또 다르다. ]
인격은 사람에게만 쓰고 개에게는 쓰지 않아. 개에게는 종만 있으니까. .. 지능아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인격성이 발달할 것이고, 그리고 최우에 가서 우리 존재가 드러날 때, 존재인 한에서, 그런 차원에서 우리 인간이 자신의 인격성을 자각할 때, 그때의 인격성이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겨. [내가 궁금한 것은 일반적으로 보편 일반 개별(특수)라고 나누는데, 이 삼등분이 칸트의 것이고, 이는 플라톤에 비하면 불편하다. 네 등분으로 나누면 보편 일반(속) 개별, 특별(인격)로 나누면, 플라톤의 도식으로 보이고 그런데 이런 전도된 방식을 내부로부터 보면 온자아(Moi), 자아(moi), 자기(soi) 온자기(Soi)로 나타날 것이다. 자아와 자기는 이중성인데 어느부분의 포함이 또는 활동이 크냐에 따라 현실에서 현상으로 나타나는 표출이 다를 것이다. (52OKD)
아테네 사람하고 스타르타 사람하고 <physis>는 같지만, <nomos>는 달라. .. 전부 신체 때문이야. .. 그 기초가 신체 구조에 있어. 물질 때문이야. 이것을 다 벗어나야 돼. 벗어나면 플라톤에서 영혼 그 자체가 나와야 될 것은 분명하거든. 영혼은 그것을 다 벗어난 상태야. (297) [정신의 실재성 또는 실증성으로 보는 경우에 영혼은 신체와 분리되어도 실증성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영혼의 실증성은 신체와 더불어 또는 생명체와 더불어서 이다. 영혼의 잔존은 과거를 보존하는 생명체에 잔존이며, 그 잔존의 영원성을 아무도 모른다.]
가령 소피스트편에서 사람을 규정하는데, 어떻게 규정하느냐 말이다. 그러면 사회적 존재(social being)로서 규정할 수도 있고, 그 당시 역사적 상황에서도 정의 내릴 수 있고, 경제적 상황에서도 정의 내릴 수 있어. 여러 가지야. 그런데 거창하게 <ousia>를 내놓고 존재론을 꺼냈거든. 그래 갖고 거기서부터 사람을 소피스트를 규정해. 다른 경우도 다 같아. 거창하게 나와. (297) [왜 소크라테스 시대에 플라톤은 존재(ousia)로부터 시작했느냐가 문제거리이다. 중국은 그게 아닌데..]
그러면 그때의 우리의 인식론은 어떤 것이냐를 생각해야 돼. 플라톤을 이해하는 데 이것은 대단히 중요해. 신체를 벗어나서 사물을 보는 것을 직관이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참다운 것을 봤는데 다시 육체에 들어가서 볼 때, 인식할 때에는 상기라고 해. (298) [벩송은 바깥에서(벗어나서) 인식이 아니라, 안에서 인식을 직관이라 한다. 그러면 벩송의 인식은 기억이 추억들을 끌어낸다. ]
기독교에서 <자매>[형제]라고 하면 하느님 믿은 사람이 진정한 자매래. 성서에 이방인이고 유대인이고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어. 그 말은 무슨 말이야? 거기서 성립하는 인격이 유대민족이 아니라 유대민족을 넘어서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한에 있어서의 인격에 호소한다는 얘기야. 거기에 있는 종교심에, 종교적 영향을 거기 다 미친다는 거야. 그것을 받아들일 인격이 준비돼냐 돼. (299) [들뢰즈에서 제로년이 얼굴의 등장인데, 종교심에 의한 인격의 등장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예전에 그 누군가? 고르바초프(Gorbachev, 1931-). 사회주의, 공산주의도 싫고 인간의 얼굴을 하는 사회주의를 주장했잖아? 인간의 얼굴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 그 말이야. 여러 사람들이 아마 스웨덴식 사회중의라고 대답한 모양인데, 허허. 그러나 사회주의라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인간의 인격을 사회의 법칙 속에 묻어버리는 사상이야. .. 이 인격은 희랍에서만 성립해. 로마 법치국가, 유스티아누스 법전 맨 처음 1절에 <각자의 것은 각자에>라고 써놨어. ... <각자의 것은 각자에>가 뭐냐? 각자의 인격이 독립돼 있다는 말이야. (299-300)
또, 나는 경제학은 잘 모르니까, 맑스 같은 것 두고 하는 얘기야. 우리 인간의 인격을 기초로 두고 하는 경제학이 무슨 경제학이야?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 시장 경제학이라고 하지? 왜 시장 경제학이라고 해? 두 사람이 서로 각자의 인격을 가지고 있고, 책임을 지고, 동일성을 가지고 있고, 또 상대방에게 그걸 인정해야만, 그런 사회에서만, 경제가 이루어져, 합의에 의해서. (300) [개인의 독립성, 동일성, 주체성, 인격이 성립할 때 시장경제이다.]
만약 가족 속에서만 인격이 성립한다면, 가족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 인격이 없어? .. 장가 안가고 혼자 사는 사람..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도 역시 인격이 있다고 해. ... 서양에서 인간의 본성의 극치는 어디에 있느냐, 인격성(personality)이더라. 인격이 중심에 있다 이거야. 이거 잊어선 안 돼. 이런 게 희랍사상이야. (300) [벩송의 DI에서 인격성을 구해내면서 자연의 심층에서 찾고, 그 심층으로부터 분출이 자유이다. 생명있고 기억있는(MM) 존재는 자유를 생산 또는 창조할 수 있고(EC) 그리고 더 나아가 각자에 맞게 발명할 수 있고 그것은 신비주의와 닮았다(MR). 벩송의 이런 사유는 소크라테스의 이뭣꼬에서 영혼의 추구에서 왔을 것으로 가정해 본다.]
그리고 하나 또 중요한 것은 의인적인 것하고 인격(person)은 달라. 이것도 구별해야 돼. 인격은 실제[실재] 있는 인간, <physis>이고, 의인적인 사고 방식은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오르페우스가 피리를 부니까, 돌이 따라다니더라, 나중에 바위가 의인적인 형태를 띠어. (301)
인간의 형태가 더 활동적(active)이기 때문에 대상에다 인간의 형태를 주는 거야. 이거 대단히 중요해. 이북 가면 김일성 배지를 모두 다 달고 다닌다고 그래, 응? 배지가 여러 가지래. 그것만 보면 장관이다 국회의원이다, 다 알 수 있대. 배지라는 게 뭐야. 도대체? 김일성 얼굴이 붙어 있어. 문제는 얼굴이 붙어 있다는 거야. .. 자기는 김일성이 아니라 아무개이지만은 김일성이가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 아니야? 그런 얘기지? 자기는 김일성에게 충실하다는 얘기야. (302)
의인적 사고는 어디에나 다 있어. 특히 강한 것은 희랍이나 아랍의 종교에서야. 원시 종교에서는 적게 나타나고. [종류가 많지 않아서이지 원시 종교에서도, 신석기 시대에도 문양과 뱃지 효과를 지니는 유물들이 있다.] ... 사주팔자에다 사람의 운명을 규정한다는 것은, 요컨대 농경사회의 천문학이 우리를 압도한다는 얘기야. 우리가 거기에 따라간다는 얘기야. (302) -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성의 사물에 대한 체계를 갖지 않은 시기에 하늘의 운행이 인간의 심성을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점성술과 규칙적 천문학이 성립하는 것은 그나마 규칙성을 찾았다는 것이다. 12별자리나 24절기의 표현은 규칙성을 확보이다. 그런데 이를 인간의 삶에다 적용하는 것이 인격인지 풍경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로서는 별자리와 24절기는 인격이라기보다 풍경성이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격의 등장은 영혼의 탐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 게다가 20년간 전쟁 중에서 인간 개인의 문제가 제기되고 문제거리를 푸는 데는 다수의 협의(민주주의)의 필요성이 중요하다고 했을 때 등장하는 것이리라.]
박홍규: 직관이란 것은 우리 신체적인 것 다 빼버리잔 얘기야. 매개하지 말자는 얘기야. (303) - [플라톤의 이데아의 인식은 매개없이 직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벩송 시대에 오면 수학의 집합의 요소들은 매개없는 직관이지만, 먼저 전제로서 질료없는 단위를 인정하는데서 성립한다. 벩송은 질료로 된 (자연의 산물인) 단위가 있고, 이로부터 형이상학을 해도 되며, 이 또한 단순한 것으로 매개없는 자료들이라 한다.]
우주의 근원이 추상적인 것이냐 고유명사냐, 이것은 철학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문제야. 우리 철학하는 사람은 추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난점(aporia)이 있어요. 나중에 충족률로 그게 설명이 안 돼. 그러니까 우주의 근원이 추상적인 원리냐 그렇지 않으면 고유명사냐,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고, .. 가령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이라든지 하는 게 다 이신론[(理神論)]이야. 플라톤의 제작자(dêmiourgos) 같은 것도 고유명사가 아냐. .. 기독교 신학은 출발이 달라. <physis>가 아니라 무[(無)]에서 만들어졌다. 무에서 만들어졌는데 내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충족률은, 내 자신의 죽음 후의 원상복구는 바로 이 구체적인 나[아(我)]라야 돼,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전혀 입장이 달라. .. 그러니까 육체의 부활이라든지 기독교에서 하는 소리가 다 철학과 반대야. (305) - [예수와 베드로는 추상이 아니라 저 세상에 그대로 존재해야 해, 존재자가 아니야. 개별성으로 존재자가 아니라 보편으로서 존재로 존재해. 이런 존재를 흄같으면 망상이라 할 것이고, 이 존재가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흄은 착란에 빠진 자라고 할 것이다. (52OKD)]
박홍규: 그러니까 우리 철학에서는 이신론을 논하는 것이지. 이신론아닌 기독교와 같치 얘기를 한다면 인격이 아니고 신격이야. 기독교에서는 신격이라는 걸 쓰지? 거기서 보면 그리스도는 인간도 되는 동시에 신이래. <homoousia(인간존재)>란 말을 썼어. 중간자, 매개자가 없어. 매개자를 넣으면 희랍철학이 돼. (306)
이신론은 맘대로 공부하는 것이지 신앙을 가질 필요는 없어. 신앙을 가진 사람은 달라. 또 신학은 신앙하고 달라. 그것은 학문적인 중간, 한계선에서 성립하니까. 그리스도를 신으로 믿는다는 것은 신앙이지 학문은 아니야. (306)
박홍규: <Welt>도 프랑스의 <mondial>이란 말처럼 세속적이라는 의미가 나오잖아? <physis>는 전혀 달라. 세속적인 것 같은 개념하고는 딴판이야. 생물학적 개념이야. (308) [<physis>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갈릴리이와 데카르트에서는 물리학인데, 벩송은 생물학적 연관성 또는 심리학적 연관성을 생각한 것 같다. (52OKD)]
손으로 가리키면 <여기 있다>는 얘기가 돼. 그러니까 <voici>, <voilà>는 그렇다 치고, <il y a>는 뭐야? <il>이 뭐야? <es gibt>의 <es>는 뭐야? / 박희영: 신이죠, 제우스. <그가 거기에 뭐를 가져요>, <il y a>. / 박홍규: 독일어 <es>도 자연이라고 해. 불어 <il>도 그렇고. 그러나 말 자체만 갖고는 의미가 없단 말이야. .. 요는 독일 사람들이 예전에 <es gibt>를 <있다>란 말을 대신해서 쓴 시대가 있었다. 일상 용어로 <존재>라는 말을 쓰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는 증거는 돼, 그렇지? (309) [존재라는 추상어 이전에 자연은 생성하고 성장하는 식물, 동물을 포함하는 자연총체였을 것이다. 인류의 사유에 추상보다 현실이 먼저였다. 추상은 이상하게도 논리학과 유클리드 기학학이 성립하는 시기에 정립된다는 겋이다.]
박홍규: <gnosticism>[영지주의]이란 것은 그 희랍철학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에서 쓰는 말이야. 신비주의자들, 신플라톤학파 사람들 얘기야. <gignôskô>는 안다는 뜻이지. (310)
<gignôskô>도 테아이테토스에서 나오는 말이 있는데, 사물 각각을 구분해서 보는 것으로 나올 거야. 희랍에서는 대개 안다는 말이 본다는 말에서 나와. 내가 지금 기억이 희미해서 원전 찾아봐야 해. 거기 찾아봐. ../ 강상진: <oida(알다)> 동사는 반성해서 안다는 뜻이고, <gignôskô> 동사는 지각(perception)해서 안다는 뜻이다. ... / 강상진: 방패를 보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다고 할 때, <gignôskô>라는 말이 쓰인 예가 호메로스에 나옵니다. 박희영: ... 이 사전에는 잘 안 나오네요. 샹트렌(Chantraine)의 어원사전을 봐야겠어요. 박홍규: 봐장크(Boisancq)[봐자끄(Boisacq, 1865-1945)]가 좋잖아? (311-312)
박홍규: <templum>, 절, 그것이 희랍어의 <temno(자르다)>에서 나온 것야. 숲속의 가지를 쳐서 거기서 예배를 봤어. 가지를 치고 빈 공간을 만들어서. 한문이고 비슷해. <금(禁)>이라고 해서 나무<목(木)> 두 개 쓰고 <시(示)>라는 것이 뭐냐하면 제사상이랍니다. 나무 사이에 제사상이 있으니까 오지마라. 그게 타부야. 허허. ... <Eiche(참나무)>에 대해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 있어. 하늘로 올라가는 탁월성을 느꼈어. 캄캄하지요, 숲속이. 성당도 숲어럼 컴컴하고, 유지벅이죠. 고딕성당은 동적(dynanmic)인데, 우리 인간의 피부에, 감정에, 의지에 제일 가까운 건물이야. 고딕 성당이 어디가서 잘 어울리느냐? 종로바닥과 같은 도시에 있으면 안 어울려. 농촌에 있어도 안 어울리고, 숲속에 있어야 돼. 높은 숲의 가지 위에 종루에서 종소리가 들리고 해야 어울리는 거야. (313) [게르만 지역은 산악에 숲이 있는데.... 셀틱 문화는 평원에 숲이 있다. 아세테릭스 만화가 그러하다. . / 니체의 자연과 루소의 자연이 다르다고 하듯이..]
박홍규: 독일말로 <Welt>라 하면 벌써 인간 냄새가 나. 희랍말로 하면 <oikumenê(지상의)>에 가까워. (313)
[인도 이야기는 현재의 이야기도 부분이다. 네팔 불교는 인도가 아니니깐.]
(1991. 12.15.) (13:01, 52OKD)
# 인물들 ******
625 탈레스(Θαλής, Thales, 전625/624경-전547/546경) 밀레토스 학파의 창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칭했다. 고대 그리스 7대 현인의 한사람.
610 아낙시만드로스(Ἀναξίμανδρος, 전610-546)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 그는 탈레스의 젊은 제자였는데, 탈레스가 아무런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인들 중 최초로 자연에 관한 논문을 집필한 철학자가 되었다.
[544 헤라클레이토스(Héraclite, Ἠράκλειτος, 기원전 544-480) 이오니아 에페소스 출신, 불(le feu), 투쟁의 변증법. fr.Wiki, 전544경/541 Éphèse -전480경 Éphèse.
[540-450 파르메니데스(Parménide, Παρμενίδης/ Parmenídês, 기원전 540-450) 존재가 있다(L'Etre est) / fr.Wiki 520/510 - vers 450-448[2]. [소크라테스 20살에 파르메니데스가 죽었다]
490 엠페도클레스(Empédocle, Ἐμπεδοκλῆς, 전490-435) 시실리 아크라가스(Ακράγας, 아그리장뜨Agrigente)출신, 4원소(물, 공기, 흙, 불) 사랑과 증오 (소크라테스보다 20여년쯤 선배)
480-406 유리피데스(Euripide, Εὐριπίδης / Euripídês, Salamine 480 -Macedoine 406) 소크라테스(Socrate, 470-399)의 친구였다. /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469 소크라테스(Σωκράτης, Socrates, 전470경–전399) 고대 그리스 철학자. 기원전 469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 일생을 철학의 제 문제에 관한 토론으로 일관한 서양 철학의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445 글라우콘(Glaucon, Γλαύκων; 전445–4세기) 아테네 철학자. enfant de Ariston et Périctionè.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에 의하면 플라톤의 형이다.
427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본명 아리스토클레스 Aristoclès 427-347; 80살) 플라톤이란 ‘어깨가 넓음’을 의미한다. 이데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나이 42살이었고) [그리고 18년 후에 배울 수 있을 있었다면, 소크라테스 나이 60살이었으며 10여년을 따라다니며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플라톤의 제자이며,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다. 물리학, 형이상학, 시, 생물학, 동물학, 논리학, 수사학, 정치, 윤리학, 도덕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저술하였다.
43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전43-후17) 로마 제국 시대의 시인. 즐거움을 노래하는 연애시로 유명하며 호라티우스와 더불어 로마 문학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사랑의 기술(Ars Amatoria, 01)이 풍속을 문란케 하는 책이라 하여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노여움을 샀다. 그래도 자성하여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 08)를 썼으나 추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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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 8) 오비디우스의 15권에 걸친 시로, 그리스·로마 신화를 다룬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482 유스티니아누스 대제/1세(Flavius Petrus Sabbatius Iustinianus, Ιουστινιανός Α', 482–565; 재위 527-565) 로마 제국의 황제.. 로마법의 집대성은 이미 한 세기 전 테오도시우스 2세가 시도하여 《테오도시우스 법전》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테오도시우스의 법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전히 새로운 법전을 만들고 체계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529년 트리보니아누스를 법무관으로 임명하고 그의 지휘 아래 특별위원회를 만들었고 이 위원회에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했다.
1778 아스트(Georg Anton Friedrich Ast, 1778–1841) 철학자, 독일 문헌학자. [라틴명, Astius], Grundriß der Philologie. 1808, Lexicon Platonicum sive vocum Platonicarum index. 3 Bände. 1835–1839.
1785 그림 형제(Jacob et Wilhelm Grimm, dits « les frères Grimm » (1785-1863 et 1786-1860), 언어학자, 꽁트 수집가들이다.
1857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1857-1939)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알사스 출신이다. 1879년 고등사범학교 졸업. 미개사회의 사유(Les fonctions mentales dans les sociétés inférieures, 1910), La mentalité primitive (1922), L'âme primitive (1927) [fr.Wiki에는 유태인이란 표시가 없고, en.Wiki는 유태인 이라 한다.]
1863 버넷(John Burnet, 1863–1928) 스코틀랜드 출신 플라톤 전공자. 초기 희랍 철학(Early Greek Philosophy)(1892. 4th edition, 1930)(fr,. L'aurore de la philosophie grecque, tr. Reymond, 1919) 그는 옥스퍼드에서 1900-1907년에 플라톤 판본을 낸다.
1865 봐자끄(Émile Boisacq, 1865-1945) 벨기에 언어학자. Dictionnaire étymologique de la langue grecque, 1907-1916
1883 슈텐쩰(Julius Stenzel 1883–1935), 독일 고전 문헌학자, 철학자. Über zwei Begriffe der platonischen Mystik: Zoon und Kinesis. 1914. Zahl und Gestalt bei Platon und Aristoteles. 1924. Philosophie der Sprache. 1934.
1899 샹트렌(Pierre Chantraine, 1899-1974) 프랑스 언어학자, 헬레니스트. Histoire du parfait grec, 1927, Dictionnaire étymologique de la langue grecque, 1968-1980(4 vol.).
1907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비교 종교학자, 작가. 그는 8개 국어(루마니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영어, 히브리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다.
1933 만스페르거(Dietrich Mannsperger, 1933-) 독일 고대철학, 고고학자. 튀빙겐대학 고고학 연구소장, 튀빙겐 대학 명예교수. / Dietrich Mannsperger, Physis bei Platon. Berlin, W. de Gruy- ter, 1969. 1 vol. 16 x 23 cm, vin-336 pp.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Mikhail Sergeyevich Gorbachev, 1931-)는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가. 소련의 국가 수반 겸 당 서기장을 역임. 소련 붕괴 이후 냉전을 종식시킨 공로로 199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재임 중 소련의 개방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였고, 이는 소련을 비롯한 중앙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개혁과 개방, 그리고 사상 해방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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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 신전: 신탁은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맡겨놓은 뜻이라는 의미다.
델피(gr. Δελφοί, lat. Delphi) 그리스의 포키스(Phocis)협곡에 있는 파르나소스 산의 남서쪽 산자락에 자리잡은 고대 그리스의 지명이자 도시를 말한다. / 델포이의 아폴론 성역은 범그리스적인 성소로, 기원전 586년[3]부터 4대 범그리스 경기 중 하나인 피티아 경기가 열려 4년마다 모든 그리스 세계에서 온 운동 선수들이 실력을 겨루었다.
도도네 성소(Dodone, Δωδώνη / Dôdốnê) 제우스와 어머니 여신 도도네의 신탁 성소. 아폴론 신탁소와 멀지 않았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도도네 신탁은 이집트 테베에서 이미 알려진 신탁의 전통이 있다. / 도도네는 그리스 서북 지역 발칸 반도의 에페이로스 지방에 있던 옛 도시이다. / 아르고호에도 돛대가 있었다. 아르고호 돛대 재목으로 는 도도네(그리스 북서쪽에 있던 고대 도시)의 제우스 신탁 신전에서 베어온 참나무가 쓰였다. 제우스 신탁 신전 .
드루이드(Le druide) 셀트족의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 그는 제단의 주제자이며, 동시에 신학자, 법제자, 그리고 왕의 군사 조언자. 그는 처음에는 신과 인간들 사이의 매개자였다. 뒤메질(Georges Dumézil)에 의하면 인도 유럽의 삼각도식의 첫째 기능에 해당한다고 한다.
드루이드(Le druide est un personnage très important de la société celtique, au point qu’il est à la fois ministre du culte, théologien, philosophe, gardien du Savoir et de la Sagesse, historien, juriste et aussi conseiller militaire du roi et de la classe guerrière. Il est en premier lieu l’intermédiaire entre les dieux et les hommes. Il correspond donc à la première fonction de l'idéologie tripartite des Indo-Européens mise en lumière par Georges Dumézil.
La première fonction, dite fonction sacerdotale, est liée au sacré. Dans l'Inde védique: Mitra, Varuna. (로마의 Jupiter). / La deuxième fonction, dite fonction guerrière, est liée à la défense du peuple. Dans l'Inde védique: Indra et Vayu, (로마의 Mars). / La troisième fonction, dite fonction productrice, est liée à la fécondité. Dans l'Inde védique: les deux Ashvins.
디아나(Diana) 또는 야나(Iana)는 로마 신화에서 사냥의 여신으로 야생동물과 숲, 달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디아나는 원래 그리스의 아르테미스와 같은 신이 아니였다. 달과 사냥의 여신으로 만들었다. 신화에 따르면, 디아나는 유피테르(쥬피터, 제우스)와 라토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폴로와 쌍둥이 남매지간이다.
Psyché (Ψυχή / Psykhế, souvent traduit par âme) est un personnage qui apparaît dans un roman qu'Apulée a écrit entre 160 et 180, les Métamorphoses (IV, 28, 1 - VI, 24, 4 ). On a longtemps cru que cet épisode s'inspirait d'un original grec. Mais le personnage d'Apulée n'a pas les caractéristiques physiques de l'allégorie de l'âme que l'on trouve dans l'iconographie gréco-romaine : il en est distinct parce qu'il ne possède pas d'ailes de papillon.
Cupid and Psyche is a story originally from Metamorphoses (also called The Golden Ass), written in the 2nd century AD by Lucius Apuleius Madaurensis (or Platonicus). The tale concerns the overcoming of obstacles to the love between Psyche (/ˈsaɪkiː/, Greek: Ψυχή [pʰsyː.kʰɛ᷄ː], "Soul" or "Breath of Life") and Cupid (Latin Cupido, "Desire") or Amor ("Love", Greek Eros ’′Ερως), and their ultimate union in a sacred marriage.
그리스 문법
명사는 라틴어와 비슷하게 남성, 여성, 중성 3가지의 문법적 성이 있고, 주격, 속격, 여격, 대격, 호격 등 5가지의 격이 있다.[4] 그리고 수는 단수, 복수 외에도 쌍수(雙數, dual number)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쌍수형은 잘 쓰이지 않으며 코이네에 이르면 이미 사라진다. 현대어에는 당연히 없다.
형용사: 수식하는 명사의 성, 수, 격에 따라 형용사도 변화한다. 명사의 격변화와 비슷한 형태다.
동사: 직설법, 접속법, 기원법, 명령형, 부정형, 분사
동사의 시제(tense)는 다른 언어들과 비슷하게 현재, 현재완료, 미래, 미완료, 미래완료, 과거완료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아오리스트(Aorist)라고 불리는 특이한 시제가 존재한다. 흔히 단순히 '과거' 혹은 '단순과거' 시제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적인 과거 시제와는 의미상의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가 있어서 적절치 못한 번역명이라 할 수 있다.
아오리스트는 정해지지 않은 동작을 나타내는 단순한 과거를 뜻한다. 과거라고 하니깐 시간적 과거로서 지나갔다는 선입견이 강하지만, 본디 아오리스트라는 말은 α + όριστος 곧, 제한이 없는(without limits) 또는 정함이 없는(undefined)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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