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공설
대승의 근본경전인 『대반야경』과 그 주석서인 「대지도론」에는 공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열여덟 차원[十八空]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일체법이 공함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밝히고자 한 것이며 공사상을 더욱 천명하였다.
1) 내공(內空) :
내법內法은 안·이·비·설·신·의근를 말하는데 이 인식기관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기에 공하여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2) 외공(外空) :
외법外法은 색·성·향·미·촉·법경을 말하는데 이 인식대상도 인연으로 생멸하는 것이니 공하여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3) 내외공(內外空) :
위의 내법과 외법을 내內와 외外를 구분하였으나 내 육근과 외 육경이 따로 따로 실재한다고 하면, 이는 자아가 있다는 허망한 집착[妄執]에서 비롯된 것으로 내(內)라는 것 외(外)라는 것도 함께 공하다고 하는 것이다.
(4) 공공(空空) :
내외가 다 공하다고 하면 그 공한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공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즉, 앞의 내공 외공 내외공도 공하다는 것이다. 즉 갖가지 법집을 타파하여 공임을 알지만 이 공이라는 관념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의 일변에 떨어지는 것을 후세에는 흔희 편공(偏空) 악취공(惡取空)이라 하여 금한다.
(5) 대공(大空) :
동서남북 ·사유(四維) ·상하(上下)의 시방허공이 본래 정해진 방향이 없어 근본적으로 공한 것인데 사람들은 허공이 실제로 있다[實有]는 생각을 가지므로 대공은 이를 타파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의 인식속의 방위· 공간· 원근· 크고 작음의 구분도 일종의 연緣에 의하여 세운 거짓 이름이므로 공이라 한다. 이는 공간의 자성에 대한 부정이다.
(6) 제일의공(第一義空) :
승의공勝義空· 진실공眞實空이라고도 한다. ‘제일의’란 말은 열반을 말하는 것으로서 열반이란 모든 미혹과 허망한 집착을 떠난 불생불멸의 경계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열반이라 할 진실한 경계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만일 열반이라 하는 경계가 따로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이름에 사로잡힌 우리의 인식일 뿐 열반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제일의를 제법실상으로 여기는 집착을 비워 물리친 것이다.
(7) 유위공(有爲空) :
유위법은 인연의 화합으로 이루어진 모든 현상계의 법을 말하는데 이것은 불변의 자성이 없어 공하다는 것이다. 즉 5온, 12처, 18계 등은 공하다는 것이다.
(8) 무위공(無爲空) :
무위란 곧 제일의, 즉 최고의 진리를 가리키는데, 이 최고의 진리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는 것이다. 무위법은 유위법의 본체로서 실재하는 것 같지만 그 자체는 이미 공적한 것이니 실로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대지도론』은 이를 일러 유위와 무위는 서로 대립된 것이니 만일 유위를 제거하면 무위가 없고 무위를 제거하면 유위가 없다고 하여, 유위와 무위가 우리의 상대적 인식을 초월하여 두 가지가 별개로서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밝혔다.
(9) 필경공(畢竟空) :
궁극 절대의 공이다. 모든 것이 공이라고 본 궁극의 공이다. 이 공은 유有에 대한 상대적인 공空도 아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상대적인 공도 다시 공한 절대 부정의 공이다. 이 일체의 공까지도 공하였다는 것을 필경공이라 한다. 즉, 유위, 무위법이 다 공일진대 필경 다 공이라는 것이다.
(10) 무시공(無始空) :
무제공無際空· 무전후공無前後空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보아 어떤 기원(起源)이 있다는 것을 부정한 것이다. 시간 그 자체는 공한 것이니, 비록 현상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삼세가 인정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인식 상에서 그렇게 나누어 놓은 것일 뿐, 과거는 무시(無始)이고 미래는 무궁(無窮)할 뿐 이라는 것이다. 연기법의 조건관계에는 정해진 시작이라고 할 것이 없는데 이것을 무시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의 무시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시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런 집착을 깨뜨리기 위해 무시도 공하다고 말한다. 무시도 공하다는 것은 결코 유시를 표시하지 않고, 시始와 무시를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을 표시한다. 세간과 중생 온갖 법이 다 시작한 때가 없으니 금생은 전세에 의하여 있고 전세는 다시 그 전세에 의하여 있는 것과 같다고 대지도론은 말한다.
(11) 산공(散空) :
산무산공散無散空이라고도 한다. 일체법은 인연조건이 화합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조건이 흩어지면 공하여 무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무위법의 입장에서 현상계의 존재 상태에 대해서 말한 것으로 유위법은 인연이 다하면 결국 흩어져 소멸함을 말한 것이다.
(12) 성공(性空) :
본성공本性空이라고도 한다. 일체법은 인연화합으로 그 본성이 공하다는 것이다.
(13) 자상공(自相空) :
제법의 개별적인 면[別相]에서는 제법에는 차고 덥고 딱딱하는 등의 저마다 상相이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본래 다 공하다는 것이다. 앞의 성공(性空)은 제법의 전체적인 면[總相]에서 공임을 밝힌 것이다.
(14) 제법공(諸法空) :
모든 것은 실체가 없고 공임을 말한다. 위에서 말한 일체의 제법이 그대로 공하다는 것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
(15) 불가득공(不可得空) :
일체의 법이 공하다면 우리의 주관적으로 무엇을 알았다든지 얻었다든지 하는 관념조차도 공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경지에선 우리의 관념조차도 공하므로 번뇌와 보리가 공함은 물론 번뇌를 끊는다든지, 보리를 얻는다든지 하는 것마저도 있을 수 없게 된다.
(16) 무법공(無法空) :
앞의 여러 가지 공은 법 그 자체가 공 하다는 것, 또는 공하다는 주관까지도 공하다는 것을 말하였다. 이제부터는 시간적으로 보아 공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과거법은 이미 다 인연이 다하여 없어져 버렸으므로 공하다는 것이다.
(17) 유법공(有法空) :
인연화합에 의해 생겨난 모든 사물을 유법(有法)이라고 하고, 유법의 실성(實性)이 공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제법도 인연의 가합(假合)으로 시시각각 생멸변화하고 있으니 역시 공하다는 것이다.
(18)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 :
무물성공(無物性空)이라고도 한다. 무법(無法)도 유법(有法)도 모두 공이다. 무법은 사멸한 법이고, 유법은 생긴 법이다. 또는 무법은 과거·미래의 법이고, 유법은 현재의 법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도 존재 하는 것도 그 자성도 모두 공이라는 것이다. 결국 시간적으로 생기고 멸하는 일체 제법은 다 공하다는 것을 말한다.
공관空觀의 의의
귀류법이라는 변증론은 일반적으로 원인과 결과, 운동과 변화, 사물과 그 속성, 나와 나의 소유, 전체와 부분 등등의 온갖 대립적 관계에 적용되며, 아비달마적인 5온五蘊과 그밖의 교설뿐 아니라 여래나 열반과 같은 최고 원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공임을 지적한다. 이는 아비달마 철학의 다원론적 실재론 비판에만 그치지 않고, 철학 일반을 널리 비판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중관학파 학자에게는 자기주장으로서 정언定言이 있을 수가 없다. 공에 대한 자기 주장은 '공견'空見일 수는 있어도 '공관'空觀은 아니다. 공의 변증론은 '공이 있음을 주장한 것'(空見)이 아니라, 그런 정언을 내세우기 이전에 본래 공임을 세간의 논리로 알릴뿐이다. 그러므로 공관의 입장은 '무입장의 입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또 곧 중도이다. 이 중도 공은 유와 무를 초월하기 때문에 유는 그대로 무이다. 마찬가지로 생사生死는 자성으로서의 생사가 아니고, 열반도 역시 자성으로서의 열반이 아니기 때문에 '생사는 그대로 열반'[生死卽涅槃]이다.
용수의 이 철학이 공이라는 부정을 원리로 삼아 고도의 이론으로 전개된 것은 철학사에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철학적·형이상학적인 이론만을 구성하지 않고, 그 이상의 실천적·종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공을 중도라고 칭했던 데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보시를 실천할 경우, 보시와 보시되는 물건과 보시의 상대 모두가 공임을 설하는 점에서도 그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반야경에서 종교적·신비적으로 직관되었던 공이 다시 용수에 의해 체계적으로 조직되어 수행자의 명상의 대상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용수로부터 중관사상이 고조되었고 그 후 제바와 라후라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리고 후대의 무착의 유식사상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