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무기는 낯설거나 생소한 물건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장난감 무기는 오랫동안 아동용 놀이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플라스틱 모델처럼 많은 이들이 즐기는 고상한 취미 생활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처럼 무기가 장난감이나 취미의 소재가 되는 이유는 살상과 파괴라는 고유의 기능보다 외형에서 풍기는 멋 때문이다. 물론 인기를 얻기 위해 무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군경처럼 실제 사용자 입장에서 무기는 외모보다 당연히 성능이 우선이다. 그래서 성능과 대중적 인기가 별개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특유의 멋진 모습 때문에 대중으로부터도 거의 일방적이라 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여기에 더해 프로페셔널들도 진정한 최강자로 인정하였던 뛰어난 전투기가 역사에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미 해군의 함재기 F-14 톰캣(Tomcat)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F-14 톰캣은 한 시대를 풍미한 미 해군의 함재기이다
새 시대에 요구된 새로운 함재기
미사일처럼 먼 거리에서 상대방을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등장하면서 전쟁의 방법은 엄청나게 바뀌었다. 특히 거대하고 둔중한 함정들이 고속으로 비행하는 유도 무기의 공격을 피하기는 상당히 어려워졌다. 제2차 대전 이후 세계 최강의 자리를 차지한 미 해군은 이런 변화에 대비하여야 했다. 당연히 다양한 방어 수단이 연구되었는데, 그 중에는 함재기를 이용한 방법도 있었다.
1960년대 이전에도 미 해군의 항공력은 상대가 없을 만큼 강력했지만 이런 전력을 가지고도 미국은 안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야심만만하게 데뷔시킨 F-4 팬텀도 월남전에서 종종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보였던 적이 많았고 소련이 속속 등장시킨 최신예 전투기나 고성능 공대함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장거리 폭격기는 보다 현실적인 위협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러한 적을 제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먼저 격추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 해군은 장거리 수색 및 공격이 가능한 고성능의 최신예 함재기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공군과 해군의 차세대 신예 전투기의 공통 플랫폼으로 정책 당국이 제안한 F-111이 새로운 함재기의 후보 대상이 되었고 전통의 함재기 명가인 그루먼(Grumman)이 개발을 담당하였다.
F-111B. F-4 팬텀을 이을 함재기 후보였으나 F-14에 자리를 내준다
모델 303을 기반으로 제작된 실험용 YF-14
실패 속에서 발견한 희망
이후 제너럴 다이나믹스가 개발한 공군 형 F-111A는 제작에 성공하였지만 해군 형인 F-111B는 항공모함에서 사용하기에는 중량이 너무 과도하였고 엔진이 툭하면 실속이 되는 문제가 발생하여 개발이 중지되었다. 그런데 연구를 주도하던 그루먼은 정작 F-111B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여 자체적으로 모델303이라 명명한 최신 함재기 개발을 별도로 진행하던 중이었다.
티타늄합금이나 카본복합재료처럼 다양한 신소재를 이용하여 항공모함에서 충분히 운용할 수 있을 만큼 기체의 무게를 줄였음에도 F-111B에서 채택하였던 최대 300km까지 탐지할 수 있는 AN/AWG-9 레이더, 150km 이상의 사거리를 가진 AIM-54 피닉스 공대공미사일, 강력한 TF30 터보팬 엔진과 가변익 기술을 고스란히 이용하였다. VFX(Naval Fighter Experimental)을 추진하던 미 해군에게 그루먼의 시도는 눈에 확 뜨였다.
미 해군은 1969년 일사천리로 VFX사업을 실시하여 모델303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형식적인 경쟁이라는 루머가 분분하였지만 여타 탈락 업체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을 만큼 그루먼의 제안은 뛰어났다. 모델303은 캣(Cat) 시리즈로 유명한 그루먼의 전통에 따라 ‘톰캣’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 이후 사용 당사자는 물론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거느리게 되는 역사상 최강의 함대 방공용 전투기인 F-14 톰캣이 역사에 등장한 것이었다.
AIM-54 피닉스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하는 F-14 톰캣
강력함 그리고 멋
1972년 제124전투비행대(VF-124)에 공급을 시작으로 본격 제식화 된 F-14는 강력한 레이더와 엄청난 사거리를 자랑하는 AIM-54를 이용하여 최대한 원거리에서 미 함대를 공격하는 적기를 요격할 수 있었다. 더불어 월남전에서 겪은 근접 공중전의 교훈을 잊지 않아 비교적 대형기 임에도 뛰어난 기동 능력이 있었다. 거기에다가 아직까지 속도가 중시되던 1960년대의 사상을 이어받아 최고 마하 2.3의 고속 비행이 가능하였다.
F-14는 가변익 구조로 속도와 기동성을 겸비한 제공전투기다
저속과 고속 상태에서 비행 상태를 최적화할 수 있는 자동화 된 가변익 구조는 F-14의 비행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이처럼 역사상 최강의 항공모함 탑재용 전투기가 등장하였다고 자타가 공인하였을 만큼 F-14는 데뷔와 동시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끌었다. 미 해군 조종사들은 소련의 어떠한 전투기들은 물론 비슷한 시기에 미 공군이 도입한 F-15보다 더 뛰어난 전투기라고 주장하였을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F-14가 전문가나 마니아 층을 넘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86년 제작된 영화 '탑건(Top Gun)' 때문이다. 전투기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마저도 화면에 등장한 F-14의 인상적인 모습에 매료되었다. 최초 실전 기록은 1981년 시드라 만(Gulf of Sidra)에서 초계 중이던 제41전투비행대(VF-41) 소속 F-14가 적대 행위를 보이던 리비아 공군의 Su-22를 격추시킨 것이었고 이후 1989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영화 ‘탑건’의 제작 지원을 담당한 F-14와 F-5E의 비행 모습 F-5는 미 해군의 어그레서(훈련용 적기)인데 영화에서 가상의 미그-28로 등장하였다
거스르기 힘든 시대의 흐름
하지만 정작 F-14의 진정한 능력은 공교롭게도 현재 미국의 적성국인 이란에 의해서 빛을 발하였다. 1979년 혁명이전까지 팔레비 왕정의 이란은 미국의 최고 우방이었는데 이때 총 80기의 F-14를 도입하여 미국 이외에 유일하게 운용하였다. 1980년에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의 F-14는 서방측 추산으로 약 100여기의 이라크 전투기를 격추시켰지만 20여기가 손실되는 압도적 전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F-14는 본격 활약한지 30여 년이 지난 21세기가 되어 역사의 뒤편으로 순식간 사라졌다. 부품 도입이 어려운 이란이 일부 기체를 간신히 가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총 633기를 실전 배치하였던 미 해군은 2006년 모든 F-14를 완전 퇴역시켰다. 현재 일부 보관용이나 전시용 기체를 제외한 전량을 완전 폐기된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 이유는 적성국인 이란으로 부품이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란에 공급된 F-14. 이란은 미국 외 유일하게 F-14를 운용한 국가로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많은 격추 기록을 남겼다
F-14 톰캣의 마지막 공식 비행 모습
석양으로 사라지다
사실 가변익 구조의 F-14는 유지보수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전투기로 악명이 높기도 했다. 또한 공대공 전투라는 단일 목적의 고가의 고성능 전투기를 보유하는 것이 어느덧 미국도 사치가 되어버렸다. 이를 위해 F-15E처럼 공대지 능력을 추가한 봄캣(Bomcat)으로의 개량도 고려하였지만, 미 해군이 제공기인 F-14와 공격기인 A-6을 동시 퇴역시키고 전술 함재기를 F/A-18로 단일화하기로 하면서 불발의 시도로 막을 내렸다.
또한 300km 이내에 최대 20개의 항공기를 동시에 추적, 조준할 수 있어 경우에 따라 조기경보기 역할도 담당할 만큼 강력한 레이더와 무지막지한 사거리를 자랑하는 AIM-54도 효용성이 예전 같지 않다. 상대방 보다 레이더 탐지 거리가 더 길면, 상대방을 더 먼저 볼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났다. 스텔스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공대공 전투도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게 되면서 F-14는 어느덧 구시대의 유물이 된 것이었다.
무기는 오래되면 폐기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F-14는 비록 노화되고 여기에 환경과 정책의 변화로 인하여 도태되는 운명을 맞이하였지만, 태어난 이후 최후의 순간까지 최강의 전투기라는 타이틀에서 한 번도 내려오지 않은 걸작이었다. 더불어 보기 드물게 수많은 팬들을 양산하였다. 사실 어떤 무기가 폐기 직전까지 최강의 성능과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기는 힘들다. 그런 점에서 F-14는 상당히 보기 드문 희귀한 사례라 하겠다.
글 / 남도현[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자료제공 / 유용원의 군사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