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는 대부분의 경우 낀 채 생활하는 것이므로 손이나 손가락의 일부로 간주된다. 손은 물건을 만드는 일뿐 아니라 몸짓에 의해 의사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어떤 손가락에 반지를 끼는가 하는 문제는 반지의 목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옛날부터 그 위치에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현재 반지는 대체로 왼손에 끼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먼저 그 까닭을 손과 손가락의 관계를 통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유럽에서는 오른쪽은 남성, 왼쪽은 여성을 가리키는 것이 통설로 되어 있다. 이는 문장학(紋章學)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른쪽이 왼쪽보다 우위로 꼽히고 있다. 양가의 문장을 합성시킬 때도 신분이 높은 집이 오른쪽에 놓였다. 동물 문장에서 머리를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또 오른손은 의식을 치를 때 주로 사용되며, 성직자는 이 때문에 반지를 오른손에 끼었다. 또한 오른손은 ‘정의’를, 왼손은 ‘악마’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같은 오른손 우위 사고는 남성 중심 사회로부터 생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지를 끼는 손가락에 관해 워커는 ‘신화·전승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남자들은 여자의 왼손에 결혼반지를 끼워주었는데 이는 여자들의 마력을 봉쇄하는 동시에 여자들의 마음을 묶어 놓기 위해서였다. 남자들은 태고젓부터 여자의 체내에서는 심장으로부터 왼손 약손가락에 걸쳐 하나의 도관(導管), 즉 혈관이 똑바로 뻗어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확실히 왼손은 오른손보다 심장에 가까우며 특히 옛날에는 약손가락이 심장(하트)에 이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 심장 속에 감정의 중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것이 사랑과 결합된다는 것에서 왼손에 결혼반지를 끼는 관습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결혼반지를 끼게 함으로써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려 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결혼반지를 왼손 약손가락에 끼는 관습은 본래 이집트 또는 유대에서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프리니우스의 박물지(誌)’에 고대 로마 시대의 관습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원래 반지는 약손가락에 끼는 것이 관습이었다.……그 후 사람들은 그것을 집게손가락에 끼었다. 신들의 형상을 끼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새끼손가락에도 반지를 끼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갈리아 여러 속주와 브리타니아 여러 섬에서는 가운뎃손가락을 사용했다고 한다. 오늘날 가운뎃손가락은 반지를 끼지 않는 유일한 손가락이고, 그밖의 다른 손가락들은 반지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리고 각 손가락 마디에는 나름대로 작은 반지가 끼워져 있다. 갖고 있는 반지를 모두 새끼손가락에만 끼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새끼손가락에도 반지 하나만 끼고 자신의 인장 반지를 봉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인장 반지는 함부로 사용하면 실례가 된다.
이처럼 고대 로마의 프리니우스 시대(기원 1세기경)에는 각기 자기가 좋아하는 데로 반지를 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도 중세 이후 반지를 끼는 손가락은 어디든 상관없었다. 영국의 경우 결혼식 때 반지를 끼는 관습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처음에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 끼었다가 나중에 왼손 약손가락으로 바뀌었다. 이는 각국이 모두 다르며 그리스 정교 신자의 경우 오른손에 끼었는가 하면, 스페인에서는 왼손에 끼곤 했다. 또 지배자의 반지는 오른손 접게손가락에 끼는 일이 많았다. 이는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군대나 민중을 지휘하는 손가락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에는 자유로운 풍조의 영향 때문인지, 또는 마귀를 쫓는 의미에서였는지 반지를 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예컨대 독일의 초상화에는 10개 이상 또는 20개 이상의 반지를 끼고 있는 예도 있는데, 가운뎃손가락에만은 전통적으로 끼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유행도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차차 스러져서 손가락에 끼는 반지 수는 갑자기 적어진다. 이는 장갑착용이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또 반지를 엄지손가락에 끼거나 또는 손가락뿐 아니라 끈으로 목에 매다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하면 발가락에 끼고 있었던 예도 있다. 특히 엄지손가락에 끼는 습관은 중세 후기부터 문예부흥기에 남성 세계에 전파되었다가 17~18세기 초에 걸쳐 일반화하고 있다. 이는 인장 반지와의 관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내하면 엄지 손가락에 인장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이 도장을 찍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장 반지의 숩관이 사인하는 것으로 바뀌자 엄지 손가락에 끼는 습관은 줄어들었다.
이상과 같은 혼란이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1614년에 ‘로마 전례(典禮) 의식서’는 ‘결혼반지는 장차 왼손에 끼도록 하라’고 정했다. 이것은 결혼반지에 관한 것으로 독일에서는 약혼반지를 왼손 약손가락에 끼고 있다가 결혼식 때 그것을 오른손에 바꿔 끼게 하기도 했다. 또 약혼·결혼반지 외의 장식 반지는 비교적 자유롭게 끼었다.
어쨌든 고대나 중세에 출현한 왼손 약손가락에 약혼·결혼반지를 끼는 관례는 구 후 혼란기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기독교 전통을 존중하는 정신이 얼마나 뿌리깊은 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전통을 받쳐주는 합리적인 근거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실생활에서는 오른손잡이가 많으므로 주로 쓰는 오른손에 반지를 기고 있으면 반지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고 반지 자체에도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손을 움직이다가 실수해서 남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왼손 약손가락에 낀 반지는 일상생활에서 아무 방해가 되지 않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현실적인 이유와 전통을 존중하는 정신에 의해 왼손 약손가락에 반지를 끼는 습관이 오늘날까지 존속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대에 있어서 특히 젊은이들은 이같은 전통적인 관례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로이 마음 내키는 손과 손가락에 반지를 끼는 경향이 있다.
발췌 : 반지의 문화사
* 참고 사진은 문맥상 지장이 없는 한에서 생략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