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투란도트(Turan-Dokht)는 고구려(高句麗) 공주의 이야기!!-2
1.
기원전 2,333년에 역사적인 단군왕검의 조선(朝鮮)이 만들어졌다는 시기와 관련해 동국통감(東國通鑑)은 요(堯)임금 즉위 후 24년이라는 정밀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그간 한국의 강단사학에서는 이를 정확히 고증해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중국의 낙빈기(駱賓基,1917-1994)선생은 그의 저서(著書) 금문신고(金文新考)-1984-에서 프랑스의 천문학자 비아트(Biat)가 서경(書經)에 기록된 사중중성(四仲中星)의 좌표연대추산을 실증하여 요전(堯典)의 기록이 기원전 2,357년의 일임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이 내용을 통해 또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나라 건국과 관련된 기록으로 동국통감이 정확했음이 증명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신단수(神壇樹)는 그간 반도에 무진장 서식하는 박달나무로 강제되어 왔으나, 독립투사이자 사학자이며 단국대학교 설립에 앞장섰던 장도빈(張道斌, 1888~1963)선생의 기록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신단수가 박달나무가 아닌 그 향기도 그윽하고 자단목(紫檀木)의 수려한 품종인 단향(檀香)나무임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이 단향나무가 반도땅에는 자생하지 못함에 따라 반도로 조선을 강제이주시킨 일제의 간교한 술책에 의해 단군임금의 거룩한 신단수가 향기도 없고 초라한 박달나무로 둔갑되었음을 또한 분석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조선민족의 상고역사로 분석되는 삼황오제(三皇五帝)시기의 강역을 명확히 재단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전욱(顓頊)고양씨(高陽氏) 이후로 판명되는 각종 청동제기(靑銅祭器)의 출현이 서안(西安) -현 감숙성 서녕-을 중심으로 출토되었다는 기록을 따라 고찰해 본다면, 요제(堯帝) 등극 후 24년째 되는 해인 BC2333년에 왕검(王儉)이 서북쪽으로 이동해 현재 천산(天山)이북의 비옥한 터전에 자리잡고, 염제(炎帝) 신농씨로부터 시작된 양족(羊族)의 종통이 대감 곤(鯤)의 아들(사위) 제지(帝摯)에서 막을 내리고 요제(堯帝)가 찬탈하여 종통이 끊어지니, 대감 곤(鯤)의 어(魚)씨가 양족의 종통을 이어가는 표식인 선(魚+羊)을 받들어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했던 것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조선(朝鮮) 개국 강역은 현 대륙 천산(天山)이북 역사속의 남만주(南滿洲)에서의 일들이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말이고 따라서 상고(上古) 조선(朝鮮)과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까올리), 발해(渤海)로 이어지는 조선민족 상고역사의 주무대는 바로 현 알타이산인 백두산(白頭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세력을 뻗쳐 민족의 웅대한 기상을 펼쳐 나갔던 것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오늘 재고찰하려는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1924)는 그간 막연하게 중국이라는 한족중심의 역사로 각인되어 반도조선사에 세뇌된 우리 조선민족도 당연히 현 대륙 한족중심의 역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어리석은 역사인식을
견지한 채로 웅대한 오페라 투란도트의 원류를 재해석하지 못하고 일백년을 지내오고야 말았다.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고 노무현(1946-2009)대통령은 세상을 바꿀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사람이 바뀔려면 역사가 바뀌어야 하고 따라서 역사의 재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역시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의 뛰어난 탁견이다.
반도식민사학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고 굴절된 조선사오천년의 왜소한 역사는 반드시 재해석되어야 하며 역사의 재해석이 이루어져야 반도역사에 매몰된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고 비로소 세상을 움직일 내적인 동력이 잉태되어 거대한 변화를 몰고올 수 있게 될 것이다.
조선사(朝鮮史)는 도도한 세계사속에서 무려 일백년을 도둑맞고 심연의 안개속에 갇혀 지내왔다. 일백년동안 모든 대륙에서의 일들이 왜소한 반도의 일로 축소,왜곡되어 이제 반도에 둥지를 튼 후손들은 감히 세계의 변화를 몰고 올 엄두조차 못내는 겁쟁이 후예로 변모해 버렸고 그래서 조선(朝鮮) 오천년 역사의 재해석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2.
버라토시 벌로그 베네데크(Barathosi Balogh Benedek,1870-1945)는 헝가리의 민속학자로 1907년 조선을 방문한 후 그 방문기를 1929년 헝가리에서 ‘코리아,조용한 아침의 나라-Korea, A Hajnalpir Orszaga)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버라토시는 만주-퉁구스 연구자이자 탐험가로 1903년 동아시아에 대한 여행을 시작했으며 그의 주제인 투란사상에 속하는 아시아 민족을 연구하며 많은 책을 내기도 하였으며, 첫 목적지였던 일본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대일본, 아름다운 동양>이란 책을 출판하였고, 1907년의 두 번째 여행에서 러시아 연해주에서 아무르 강 유역의 퉁구스족에 대한 연구수행중 조선방문의 기회를 잡게 되어, 이후 출판을 통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내용을 남겨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앞부분에는 우리가 오늘 재차 밝히려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주무대와 관련하여 중요한 내용들이 실려 있어 이를 재고찰 해보고자 한다.
이를 살펴보면 버라토시의 기록은 우리 조선민족 상고사(上古史) 강역 위치와 민족원류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볼 수 있다.
투란(Turan)은 마자르족인 헝가리 민족과 韓國,日本,滿洲族 등 동아시아 민족은 오래전 같은 장소에 거주했던 혈족(血族)이라는 사상으로 20세기 초 헝가리 내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헝가리인들은 투란으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에 한국이 우리(헝가리)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학문적으로도 밝혀진 바와 같이 한민족(韓民族)도 투란민족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라토리 쿠라키치(白鳥庫吉,1865-1942)이라는 일본인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천여개가 넘는 동일한 어원의 투란어를 비교,분석하면서 한국어와 투란어는 매우 가까운 친족관계의 언어(言語)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영국의 언어학자 애스톤(W.G.Aston,1841-1911)은 50년전에 이미 한국어와 일본어가 친족관계에 있다는 것을 그의 저서에 기록했다. 그리고 한국어,일본어가 투란어에 속한다는 것을 밝혔다.
우랄알타이어족(Ural-Altai 어족)은 스웨덴의 언어학자 카스트렌(Matthias Alexander Castrén,1813-1852)에 의해 최초로 연구된 후 1930년에 프랑스의 소바조가 《우랄알타이어 어휘의 연구》라는 책을 저술함으로써 서서히 학계에 퍼지기 시작했으나, 지지자는 많지 않았다. 현재도 우랄알타이어족에 대한 연구자는 적은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은 확고한 정설처럼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를 놓고 살펴보면 버라토시가 말한 투란어에 속한다는 한국어는 상고시대 투란지역에 거주하였기에 그 언어적 특성이 투란어와 가깝고 그렇기에 한민족도 투란민족에 속한다고 주장했음을 분석할 수 있는데, 이는 조선사오천년의 백두산이 알타이산임을 밝혀내고, 또한 현 천산(天山)이북의 신강자치구가 바로 역사속의 남만주(南滿洲)였음을 고증(考證)해 낼 수 있게 됨에 따라 아랍 지리학자(地理學者) 이븐 쿠르다지바(Ibn Khurdāhibah,816-912)의 저술에 나타난 9세기 카스피해가 바로 주르잔해(조선해)였다는 사실의 타당성을 우리는 확정할 수 있게 되었다.
아래의 지도와 같이 투란 지역은 카스피해의 우측 현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밝혀지는 바와 같이 상고(上古)조선민족의 생거터전으로 오랜 세월 우리민족과 같이 한 지역중 하나였으며 결국 후에 이슬람세력의 등장과 교세확장 그리고 사막화의 진행 등의 이유로 일부세력은 서쪽으로, 남쪽으로, 동쪽으로 새로운 둥지를 찾아 이동했음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분석해 보면, 1917년부터 시작된 대륙조선의 반도이주 이후 1930년을 지나면서 우랄알타이어족이란 용어가 등장하고 일제(日帝)와 친일파들은 조선어가 투란어로 분류되고 또한 투란지역에서 분리된 역사를 지워야 할 필요성에 따라 새롭게 부상한 우랄알타이어족이란 기세좋은 말로 조선어를 포장하고 역사속에 등장했던 투란이란 지역을 역사의 전면부에서 지워나가기 시작했던 것임을 이제 우리는 정확히 파악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헝가리의 민속학자 버라토시의 이 짧막한 기록이 없었다면 우리는 자칫 소중한 상고역사의 강역을 찾아가는 여정속의 중요한 이정표(里程標) 하나를 영원히 찾지 못했을 뻔 했다.
그의 분석과 같이 현 카자흐스탄 지역이 투란지역이고 여기서 이합집산(離合集散)했던 조선상고역사의 우리 선조들이 제민족과의 끊임없는 교류와 분쟁속에서 찬란한 문화를 타민족에 전파하고 또 상대측의 우수한 문화를 습득 체화하여 구한말 찬란한 성지(聖地)동방(東邦) 문명의 원류 위대한 조선을 이룩했던 것임을 가슴 벅차게 바라본다.
3.
이상의 내용들과 이전의 글들을 종합해 판단해 보면, 페르시아의 천일일화(千一逸話)에 나오는 투란의 공주는 바로 이란 즉 페르시아 위쪽에서 강대한 세력을 구축해 8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고조선(古朝鮮)의 후예 까울리(고구려)의 공주여야 정당한 역사적 해석이 이루어진다 할 것이다.
투란도트는 상고(上古)조선역사의 3-4세기, 투란지역을 석권해 위용을 떨치던 까올리 임금의 딸이며, 우리는 수많은 기록을 통해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재해석을 가하는 바이다.
1843년의 이란과 투란 지도
2024.07.09.松溪
첫댓글 고맙습니다
우와~ 진짜 대박이네요.
개인적으로 고대사를 좋아하는데 매번 느끼는거지만 송계님 글을 보면 역사영화를 한편 보는거 같아요.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모르고 있는 지식을 알게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