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쯤 연애한 다음 혼인신고를 급히 결심한 내 결혼은 입사 동기 말로는 이런 풍경이었다.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어도 그것보다는 덜 익겠다. ” 익기는 커녕, 우리는 풋콩 같은 상태로 결혼했다. 내 눈에만 매력 있는 얌전둥이인 줄 알았더니 많은 여자들의 눈에 들었던 바 있는 새침한 남편은 자신만만하게 ‘난 내가 사귀고 싶었던 여자랑 한 번도 사귀지 못한 적이 없었어.’ 하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그다지 사귀고 싶지 않았던 여자와 결혼하게 된다. 정신을 차려 보니 가장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 남편은 도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된 걸까, 요즘도 자다 일어나서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나 어쩌다 이런게 된 거지?” 그러면 나는 온화하게 말한다. “그냥 자. ” 둘 다 같은 직장에서 나름 격무에 시달리므로, 우리는 곧 잠든다.
물론 결혼생활 40일 동안은 불타게 싸웠지만. 서로 울고 불고 집을 나가네 마네 나는 남편이 진짜 내가 자는 사이 집을 나갈까봐 문 잠금장치를 고장내는 등 옛 영화 은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우리 단칸방에는 박살낼 샹들리에가 없어 못 박살냈지만 스탠드 몇 개는 박살냈다.
부수려고 한 건 아니고 서로 흥분해서 팔팔 날뛰다 줄에 걸려 넘어진 정도지만, 어쨌든 그랬다. 누가 신혼은 꿀맛이라고 했던가, 나나 남편은 혼인신고만 하고 짧게 예배만 드리고 말고 싶었지만, 이 초스피드 결혼을 허락해 주신 부모님을 위해 그분들이 원하시는 예식장 결혼 – 내가 평생 할 줄도 몰랐던! – 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처럼 급히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면 사랑이 급히 식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므로 미리 잡아놨던 예식장 시간이 파토난 결혼으로 비는 시간이 식장마다 많아, 의외로 여유있게 괜찮은 결혼식장에서 그럴싸한 결혼을 했다.
하지만 남들이 하와이니 몰디브니 떠날 때 그러진 못했는데, 남편은 돈 들어오고 나가는 일을 하고 있어 정신이 없는데다 나는 아직 새파란 신입 직원, 그런 주제에 회사에서 펴내는 월간지를 맡고 있는데 10월 13일에 결혼했으니 월간지 분야에서 일해 본 분들은 좀 아시겠지만 한참 눈 빠지게 교정하고 필자들에게 원고 내놓으라고 울부짖어야 할 시즌인지라 어딜 떠날 생각을 못했다.
회사에서 짬밥이 더 되는 남편은 신혼여행을 가고 싶어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일이 실수투성이인데 몰디브는 가라앉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 당장 매일 혼나는 게 걱정이었다. 결혼이 인륜지대사라고 어른들이 그러는데 우리는 무슨 업무 처리하듯 재까닥 끝냈지만 의외로 후폭풍이 있었다.
공임 아까워서 청첩장 일일이 접고 봉투에 붙이고 주소 써대고 하는 것도 일이 많았지만 사소하게 시어머니 그래도 그간 녹즙 팔아 푼푼이 모은 돈으로 좋은 백이라도 하나 사드리고 싶고 남편의 언니분에게 기초화장품 세트라도 사드리고 싶고 그런 것들이 신경을 잡아먹었고, 30년 동안 완전히 다른 삶을 살던 남녀가 단칸방에 있자니 회사에서도 같은 층 바로 옆 팀에 근무하는데 서로에게서 잠깐 도망칠 새도 없었다.
더군다나 워낙 개차반 내멋대로 살아온 인생이라 그런 나를 조금이라도 교정해 주고 싶어했던 남편은 도무지 교정이 안 되는 나 때문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우리가 너덜너덜해질 즈음, 간신히 일주일 청원휴가를 받았다. 없는 형편이라도 어디 멀리 떠나 보자고 각종 더운 나라를 남편이 신나서 이야기하는데, 나는 여권도 없었다.
새로 발급하려면 며칠 걸린다니 일주일 내에 어딜 가긴 틀렸다. 내가 워낙 방구들 귀신이라 남편은 제주도라도 가자 했지만 제주도는 일하느라 갔다가 후딱 돌아와서 도로 녹즙 배달한 기억밖에 없는 나에게 제주도도 다 귀찮았다. 이 추운데 뭘, 사실은 그간 뭐 하고 살았길래 여권 하나 없는가 싶어 스스로가 서글펐다.
스쿠버 다이빙 강사 자격증이 있는 남편은 팔라우니 필리핀이니 좋은 다이빙 스팟을 많이 다녀 봤는데, 나의 여행 장소라고 해 봤자 금천구의 조선족 상대하는 식당(삭힌 두부 맛이 기가 막힌다!)이나 터벅터벅 거리를 걷는 정도니, 물심양면 결혼을 지원해주시는 다정한 시부모님이 계신 남편이 괜히 부럽고 얄미웠다.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하니 살아 계셨으면 이 참에 나한테 양복 하나 해 달라고 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죄없는 깡통만 멀리 걷어찼다. 남편이 술 한 방울이라도 하면 이혼이라 했기에 망정이지 마실 수 있었다면 체내 혈관의 절반은 알콜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지마켓에서 글씨 새긴 은반지를 나눠 꼈는데 우리 엄마가 기어이 나에게 다이아 반지를 받아냈으니 아버지라면 양복 한 벌 정도야 너끈히 받아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청원휴가 일주일을 쉬지도 못하고 서로 부딪히다가, 우리는 결국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다. 거기가 어딘고 하니, 모험과 신비의 나라 롯데월드! 가능하면 에버랜드라는 곳을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삼성 제품을 써선 안 된다는 나의 주장으로 롯데월드로 낙착되었다.
“야 롯데도 대기업이야. ” 남편이 말했다. “박기혁이 복귀했어. 난 롯데 야구 좋아한다고. ” 나는 구차하게 대답했다. 평일 낮이니까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완전히 우리의 착각, 중국 관광객들이 로티와 로리를 잔뜩 둘러싸고 있었다. 데스크 직원이 귀띔했다. “3시 이후면 다 빠지세요. ” 과연 그랬다. 그래도 학생들이 잔뜩 몰려와 인기있는 놀이기구를 다 타고 있었는데, 그동안 남편에게 내 못된 생활습관을 바로잡히느라 골이 나 있던 나는 재미있는데 인기없는 놀이기구를 발견했다.
바로 범퍼카! 남편과 결혼하면서 술과 오토바이를 둘 다 금지당한 나는 간만에 운전할 수 있어 매우 신이 났다. 물론 네 바퀴는 상대 안 하지만(자동차에는 관심이 없어서 운전면허도 없다), 범퍼카는 바퀴가 두 개! 10년 오토바이 라이더의 칼치기 운전 경력을 대폭 활용해 나는 남편 차의 엉덩이께를 들이받는데 전력을 다했다.
쾅! 쾅! 남편은 벽에 몰려 있다가 내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엉거주품 일어나려 했지만 그대로 자동차에 받혔다. 쾅! 후에 보니 남편은 놀이기구 운영 직원에게 무슨 차가 제일 빠르냐고 슬쩍 물었다 한다. 그리고 다시 덤벼들었지만 역시 쾅! 쾅! 주변 사람들은 범퍼카 버전을 보고 감히 가까이에 오지도 못하고, 나는 콧구멍을 벌름대며 남편을 쫓아다녔다.
남편은 직원이 추천한 차를 타고 또다시 승부를 요청했지만, 논리로는 남편에게 다 지고 마는 나는 회사에서 행정 업무에 멍청한 만큼 범퍼카 운전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범퍼가를 열 번쯤 타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지쳐 잠들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신혼여행을 어디로 갔다 왔느냐고 하면 롯데월드요, 하고 대답할 때 다들 안됐다는 얼굴을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슬며시 웃는다. 왜요, 롯데월드 괜찮아요. 모험과 신비의 나라 아니겠습니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