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훔치다
편 영 미
지난 봄 학기 어느 도서관 평생교육 과정에서 맡아 진행한 시 낭송 수업을 생각하면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매 수업은 떨림과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다. 특히 마지막 수업 시간에 가진 작은 발표회는 잊을 수가 없다. 시를 외워 자신만의 색으로 무대를 만들어 가는 수강생들의 모습은 기쁨과 감동을 한 아름 안겨주었다. 아쉬운 것도 있다. 낭송은 시를 외워 목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시에서 받은 감동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삶, 내 감성이 얹힐 때 개성 있고 감동을 전하는 낭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시와 친해져야 한다. 시와 소통하면서 시심을 찰랑찰랑하게 채우고, 정서를 말랑말랑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여러 방법을 추천했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수강생들이 시와 좀 더 가깝고 친근해질 수 있을까?
나태주 시인의 신간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를 읽으며 시에서 답을 찾았다. 시인은 「시 2」, 「시 3」에서 쉽고 명쾌하게 답을 주고 있다. 시가 얼마나 우리 가까이 있는지, 시를 처음 대할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 2」에서는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마시게 /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마시게……. 그림을 보듯 하고 / 음악을 듣듯 하시게 / 속속들이 알려 하지 말고 / 그냥 건너다보시게 훔쳐 가시게’ 한다. ‘시를 훔쳐 가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앉는다. 그래, 시를 훔치자. 훔친 시를 나누고 훔치는 법도 나누자. 가을 학기엔 낭송 시외에도 마음에 쉽게 와닿는 시를 많이 소개해 필사도 하고 낭독하자. 혼자서 힘들면 함께 시의 매력에 빠져보자.
산문시를 찾아보다 만난 신미나 시인의 「정미네」를 읽으며 시 속 정미 같았던 친구 미영이가 떠올랐다. 마음은 이미 어린 시절 뜨끈한 온돌방에 큰 작약이 핀 붉은 밍크 이불이 깔려 있던 미영이의 방에 가 있다. 시를 읽고 또 읽는다. 어느새 둥글게 둘러앉아 있는 친구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이불 속에 발을 쑥 넣는다. 시 읽는 소리와 까르륵까르륵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진다.
‘장마 지면 정미네 집으로 놀러 가고 싶다 정미네 가서 밍크 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고 싶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
불어난 흙탕물이 다리를 넘쳐나도 제비집처럼 아늑한 그 방, 먹성 좋은 정미는 엄마 제사 지내고 남은 산자며 약과를 내올 것이다’ 이렇게 그리움을 도지게 하는 것이 시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함민복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며 시집에 수록된 시 「꽃」의 첫 행이기도 하다. 눈에 들어온 시구를 되뇌어 볼수록 마음 깊이 파고든다. 시인의 시선이 놀랍다. 경계에 금을 긋지 않고 사이를 두고 꽃을 피운단다. 삶 속에서 마주하는 경계의 순간, 사이를 두기보다 금을 그은 순간들이 많다. 그 중엔 꼭 필요해서 그은 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안 돼!, 절대 못 해!’하며 미리 포기해 버린 일들, 무 자르듯 잘라버린 인연 등 서둘러 그어버린 금들도 있다. 경계와 마주했을 때 금을 긋는 게 답이 아님을, 사이란 시간의 필요함을 느낀다.
오랜 시간 동안 불편함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금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짝꿍이 빼앗아간 연필을 찾으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손바닥에 연필심이 깊숙이 박힌 일이 있었다. 그때 하얀 붕대를 감은 손으로 책상 중앙에 경계의 금을 그었다. 손금들 사이에 남아 있는 검은 연필심의 흔적을 볼 때면 그 금은 아웃포커스 기법으로 찍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때의 어린 나는 짝궁과 화해하지 못하고 마음을 닫아버렸다. 사이의 시간이 없었다.
여름이면 꺼내 사용하는 유리컵이 있다. 컵의 적당한 크기,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도 맘에 들지만, 무엇보다 물을 채워도 비워도 변함없는 투명함이 좋았다. 안과 밖이 늘 같다. 그 컵에 금이 생겼다. 버리지 못하고 부엌 창가에 놓았다. 금 간 유리잔에 조약돌 몇 알 넣고 물을 채워 접란 새끼를 따 띄웠다. 손잡이에 노란 리본으로 나비 두 마리 매달아 부엌 창가에 다시 놓았다. 금은 보이지 않고 초록의 싱그러움이 유리잔을 채우고 창을 환히 밝힌다. 며칠이 지나자 투명함은 생명력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며 노란빛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듯하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 집 안과 밖의 경계에 화분이 있고 /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 철책이 시들고 /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시를 읽으며 마음속에 불편함으로 선명히 남아 있는 금 위에 초록의 싱그러움을 내뿜는 유리잔 살며시 놓아두고 싶다. 그럼 경계의 금은 옅어지고 노란빛 이야기가 피어나지 않을까? 이렇게 시는 삶의 면면을 돌아보게도 한다.
꿈인가? 흐릿한 머릿속에선 잠들기 전 읽은 시의 시어가 자음, 모음 흩어져 짝을 찾고 있다. “귀뚜르르 귀뚜루 뚜루루….” 잠결에 가을을 알리는 타전을 받는다. 나희덕 시인의 귀뚜라미가 드디어 제소리를 내고 있다. 김기택 시인의 「나뭇잎 편지」, 정일근 시인의 「쑥부쟁이 사랑」, 이해인 시인의 「가을이 아름다운 건」 등 수업 자료로 쓸 시를 읽으며 가을을 앞서 즐겼다. 낮엔 아직 여름 기운이 남아 있지만, 가을은 서두르지 않는다. ‘매미울음 걷느라 이리저리/ 훗훗한 바람 담느라 허둥지둥’ 급한 여름을 살며시 기다려준다는 박소명 시인의 동시 「기다려주기」를 외며 여름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시를 훔치다 보면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고, 천천히 오는 가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게 한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으며 난 여전히 시를 훔친다. 훔친 시를 나눌 일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