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권은 청나라 황실에서 황족과 호위 무사들이 수련했던 누구나 손쉽게 행할 수 있는 양생술이자
스포츠이고 호신술이자 생활 속의 도(道)이다. 이를 행함에는 넓은 공간도 많은
시간도 특별한 기구도 특정한 장소도 필요치 않다. 다만 《역경》에서도 “하늘의 운행은 건실하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써 가다듬음을 쉬지
않는다”고 했듯이 성실하고 꾸준한 실천만을 요할 뿐이다.
이는 성명쌍수(性命雙修)의 도(道)로서 몸과 마음을 닦아 하나 되게 하는데, 몸이란 참 나인 영혼이 머무는 집이다.
집이 튼튼해야 주인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기거할 수 있듯 몸이 건강해야 몸의 주인인 마음이 평화롭게 안식할 수 있는 것이다. 《장자》에서도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다.
태극권의 부드럽고 고요하며 느릿한 몸짓의 운동은 기혈(氣血)의 순환 및 신진대사를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온몸에 생기를 불어넣고 신체의 각
기관을 활성화시켜 더욱 건강한 몸을 만들어 준다. 또한 내면의 정신수련을 통하여 사고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순리에 따르는 긍정적 생활태도를
갖게 하며 평온한 심신 속에서 참 나를 찾을 수 있게 한다.
태극권은 격렬하게 움직임으로써 자신의 기운을 소모하고 ‘활성산소’가
생성되어 노화를 촉진시키는 운동들과 달리 고요하게 움직이며 정신을 가다듬고 기운을 축적하여 젊음을 되찾는 운동이다. 그 효용의 결말은 “상록수인
소나무가 다른 낙엽수와 구별되는 것은 겨울이 된 뒤의 일이다”라고 이른 공자의 말씀처럼 노년이 되면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백학의 춤처럼 우아한 자태,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는동작, 모남이 없는 구름처럼
자연스런 변화 속에 고요한 마음, 집중된 정신으로 기(氣)를 단전에
모으고 전신에 운기(運氣)하는 태극권은 기혈순환을
촉진시키며 소주천이 자연히 이루어지게 하는 최상의 기공(氣功)입니다.
▣ 태극권은 우리의 삶에 무엇을 주는가? 최상의 기공인
태극권은 양생술로 삼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기(氣)의 수련과 유연한 몸짓을
통하여 기혈순환을 촉진시키고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바꾸어 주며 건강과 장수를 준다.
내가권(內家拳)의 태두(太斗)인 태극권은 호신술로 삼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나의 의견을 버리고 남의 의견에
따르는 순응의 권리(拳理)를 통하여 부드러움이 강함을, 고요함이 움직임을
제압하는 신비로운 무술의 경지를 터득하게 해준다.
기(技)로
도(道)에 진입하는 태극권은 정신수양법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몸과 마음을
고요하고 느슨히 하는 참된 안정과 평화를 통하여 자신의 본성을 찾고 궁극에는 자아실현을 이루게 해준다.
태극권은 기공의 3대 특성인
보건, 의료, 무술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공이나 외가권(外家拳)에서 얻지 못하는 삶의 지혜 또한 배울 수
있다.
▣ 생활 속의 도(道) 태극권 명상과
선(禪)도 마음을 닦고 기를 기른다는 점에서는 태극권과 같다. 그러나 태극권은
이에 더하여 사람과 사람사이에 관한 지혜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깊은 산중이나 동굴에서 몇 십년 도를 닦은 고승도 인간사이, 특히 음양 관계에서
좌절한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깊은 산중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태극권은 경쟁이 심한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강물과 같이 도도히 흘러 깊은 도(道)의 바다로 갈 수 있는 생활
속의 도(道)의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의 어떠한
위협도 모욕도 도전도 미소로서 무산시키고 또한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날카로운 논쟁 속에서도 모든 사람의 비난 속에서도 항상 중심을 잃지 않고
침착하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할 수 있는 법을 태극권의 가르침을 통하여 터득한다면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천연기공(天然氣功) 태극권 기(氣)만 애쓰게 하고 몸은 안일하게 하는 정공(靜功)의 기공법들은 고정된 자세로 수련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야기된다. 예를 들면
정좌를 하고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기혈의 순환이 막혀 일어날 때 다리가 저리거나 또 몸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기를 돌리려고 애쓰므로 기에
집착하게 되어 기가 정체되는 문제점 등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완한 기공법이 곧 태극권인데, 태극권은 맹자께서 말씀하셨듯이 기를
잊지도 않고 조장하지도 않는 가운데 ‘온몸의 힘을 빼고 긴장을 풀어 느슨히 한다. 등골을 곧추 세운다. 어깨를 가라앉히고 팔꿈치를 늘어뜨린다.
가슴을 느슨히 하고 등을 내민 듯이 한다. 마음으로 기를 행하고 기로 몸을 움직인다’는 등등의 요결(要訣)을 갖추고 천천히 고요하게 움직이며 행한다. 그러면 고요하고 완만한 동작을 따라
호흡이 자연히 깊고 길어지게 되어 기가 마음을 따라 단전에 가라앉고 온몸에 유통되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염려되어 호흡과 기에 대해 강조하지 않고 요결만을 강조하면 호흡법이나 기공법을 잘 모르는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호흡은 동작의 완급에 따라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것이고 기는 자세와 동작의 옳고 그름에 따라 단전에 가라앉거나 가라앉지 못하는 것이며 또 온몸에 원활히 유통되거나 유통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기는 뜻을 따라 운행되니 뜻을 돌리면 자연히 기도 따라 돌게 되므로 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실로 태극권의
모든 요결은 기공수련에 초점을 맞추었으므로 요결에 따라 꾸준히 수련하기만 하면 저절로 기공수련이 이루어진다. 태극권을 ‘천연기공’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건강에 있어서나 성취도에 있어서나 기만 애쓰게 하고 몸은 안일하게 하는 정공(靜功)의 방법들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태극권은 곧 공기 중에서 헤엄치는
‘육지유영(陸地游泳)’이며 ‘움직이는 선(禪)’이다.
▣ 태극권과 여성 국가와 민족의
강함과 약함은 여성의 체력에도 좌우된다. 그 이유는 여성의 체력이 넘치면 어머니가 왕성함으로써 자식도 강하게 되기 때문이며 부족하면 어머니가
쇠약함으로써 자식도 약하게 되기 때문이다. 파종하는 것에 비유해 보면 토양이 기름지면 풍작이 되고 토양이 메마르면 흉작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부모가 자녀의 건강을 위하여 가정 안에서 앞장서서 이끌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과 귀에 익어서
저절로 배우고 저절로 즐기게 한다면 건강에 큰 약이 될 뿐만 아니라 무의식중에 성정(性情)을 도야하여 수양(修養) 또한 될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여성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노동을 지나치게 해서도 안 된다. 태극권은 부드러움, 고요함, 가벼움, 아름다움을 중시하기에 혈(血)이 위주인 여성의 체질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운동보다도
우월하다.
노인이나 젊은이, 남성이나 여성을 막론하고 몸을 튼튼히 하고 병을 없애려 한다면 태극권운동
이상의 것은 없다. 태극권은 진실로 심신을 건강하게 하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태극권: 하차도운(河車倒運:소주천. 임독통. 심신교)을 가장 쉽고 확실하게 터득할 수 있는 천연
기공입니다. 선(禪), 단전호흡, 기공, 명상, 등산, 호신술 등의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운동입니다.
태극권의 건신과
호신
▣ 태극권의 건신
⊙
장부(臟腑) 운동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짐승과는 다른
점이 있다. 짐승의 등뼈는 횡으로 되어있어 사람처럼 똑바로 설 수 없고, 오장육부가 비록 등골뼈에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앞뒤로 순서에 따라
평평히 매달려 있기 때문에 약간 한번 움직이면 각 장부도 모두 앞뒤로 움직이게 되어 등골뼈에 연결된 각 장부의 근육이 쉽게 왕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보다 강한 것이다.
사람은 등골뼈를 곧추세워 똑바로 설 수 있으므로 맑은 것과 탁한 것이 분리되고 슬기로워 진다.
짐승보다 영특한 것도 강한 힘이 퇴화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무엇 때문인가?
등골뼈를 곧추 세우면 장부들이 똑바로 매달리게 되어
위아래로 벽같이 겹쳐 쌓여 한 덩어리가 된다. 그러면 각 장부의 표피와 표피가 서로 붙게 되어 축축하고 후덥지근한 것이 찌는 듯 더워지면 비장과
위장이 먼저 그 피해를 입게 되고 이어서 폐와 장(腸) 및 모든 장부에 병이
생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까닭을 모르고 충분히 걸으면 건강해 진다고 여긴다. 많이 걷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는 좋다. 하지만 많이
걸으면 근육을 상하게 되고 각 장부가 약간의 진동을 받는다고는 하더라도 여전히 겹쳐 쌓여 있어 느슨하고 영묘하게 흔들릴 수 없어 아래로 늘어진
근육이 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나날이 쇠약해 진다는 것을 의심할 바 없다.
오직 기를 단전에 가라앉히는 것만이 그렇지 않다.
기를 단전에 가라앉히면 기가 왕성해 지고 기가 왕성해 지면 혈(血)도 왕성해
진다. 기혈(氣血)이 왕성하면 장부(臟腑)에 큰 이로움이 있다. 무엇 때문일까? 단전은 복부 안에 있는데,
배꼽으로부터 일촌삼분(一寸三分) 아래 있다. 장부는 모두 단전 위에 위치해
있으므로 기를 단전에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매번 호흡할 때마다 장부도 함께 느슨히 움직일 수 있게 되어 호흡에 따라 열렸다 닫혔다 한다. 여기에
태극권의 특징인 가슴을 느슨히 하고 허리를 돌리며 발걸음을 내딛는 운동으로 도우면 장부도 함께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흔들려 나날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축축하고 후덥지근한 것이 모두 사라지게 되어 병이 생길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태극권을 한 번하면 오장육부에 목욕과 안마를 한 번해준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단전의 기가 왕성해지면 마치 타이어의 튜브와도 같은 온몸의 막이 모두 강화되고 피부는
단단하고 질겨지며 저항력이 생긴다. 게다가 체력, 정신력, 사고력 또한 모두 그에 따라 증진된다.
⊙
등골 운동 태극권에서 가장 중시하는 요점은 단전 외에 이른바 ‘미려가 반듯해야 신(神)이 정수리로 관통한다’는 것 및 ‘허령정경(虛靈頂勁)’이다. ‘미려가 반듯해야 신이 정수리로 관통한다’는 것은
미려(尾閭:꼬리뼈)와 정수리의 니환(泥丸:백회)을 지칭하는 것이고
'허령정경'은 정경(頂勁)을 허령(虛靈)하게 하는 것으로 목의 중간에 있는 옥침골(玉枕骨)을 말한다. 이 두 마디 또한 건강에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것이 곧 도가에서 말하는 ‘통삼관(通三關:소주천)’이라는
것으로 삼관이란 미려, 옥침, 니환을 이른다. 생리학에서는 이 삼관을 총칭해 부교감 신경이라고 부르는데 미려, 옥침, 니환과 동일한 부위에
있다. 교감신경이라는 것은 곧 척추의 등골뼈이다. 교감신경은 소모를 주관하고 부교감신경은 회복을 주관한다.
도대체 어떻게 소모된
것을 회복되게 하는 것일까? 그 설을 간략히 말하면, 횡격막이 수축해 가슴 안쪽의 온 부분이 아래를 향해 확장하면 배속에 있는 내장을 압박하게
되고 부교감 신경이 자극을 받아 흥분할 때에 호흡과 맥박이 따라서 느려지고 혈액이 증가한다. 또한 혈당의 감소 및 혈압을 내리고 소변을 잘 보게
하며 열을 내리는 등의 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는 ‘기침단전(氣沈丹田)’과
‘미려가 반듯해야 신이 정수리로 관통한다’는 것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미려를 곧추 세우고 체중을 끊임없이 오른발 왼발로
옮기며 허리를 좌우로 돌리는 태극권 운동을 하면 구슬같이 생긴 스물 네 마디의 등골뼈가 마치 주렴(珠簾)처럼 늘어진 상태에서 운동되므로 디스크의 예방과 치료에 큰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허리와 다리 또한 튼튼해진다.
⊙ 다리
운동 다리는 우리 몸을 땅에 버티고 설 수 있게 하고 중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하며 걷거나 뛰어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작용을 맡은 중요한 부위이다. 그러므로 다리가 튼튼해야만 가고 싶은 곳도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우리의 다리가 교통의 발달로 인한 걷기의 부족과 또 좌식변기의 사용으로 인해 그나마 다리의 튼튼함을 유지시켜주던 누구나 하루에 한 번은
쪼그려 앉아 생리를 해결하는 일마저 없어짐으로 하여 나날이 약해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태극권은 장부 운동과 등골 운동
외에도 다리 운동을 중시하는데, 이는 곧 등골을 곧추 세운 상태에서 체중을 왼발에 실었다 오른발에 실었다하면서 끊임없이 전환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방법으로 다리를 튼튼히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2의 심장으로 불리는 발이 튼튼해지면 혈액순환은 말할 것도 없고 심장도
튼튼해지고 머리 또한 맑아진다.
이상과 같이 태극권의 운동은 일상생활에서 이미 충분히 운동되고 있는 팔을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 충분히 운동되지 못하는 부위, 즉 장부와 등골, 허리 및 다리를 효과적으로 운동시켜줌으로써 완전한 건강을 얻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 태극권의 의학적 효과를 간략히
소개하면: -호흡 기능을 증강시키고 폐활량을
높여 준다. -소화 능력을 강화시키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한다. -모세혈관을 개방시키고 혈액과 임파의 흐름을 좋게
한다. -신경계통을 단련시키고 감각 기관의 능력을 높여 준다. -근육을 부드럽고 탄력 있게 강화시켜 미용에 도움을
준다. -뼛속의 골수를 꽉 차게 하고 관절의 능력을 증강시킨다.
현재까지 의학적으로 밝혀진 태극권 수련에 의한 치료 효과는 다음의 증상들에 탁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혈압·당뇨병·신경통·골다공증·폐결핵·요통·신경쇠약·심장병·위장병·동맥경화·변비·간질환·신장병·관절염·내치질·유정·다리 시리고 저림
등등.
성인은 음양을 적절히 조화시키므로 근맥(筋脈:힘줄과 혈맥)이 화합하고 골수(骨髓)가 견고하며 기혈(氣血)이 모두 순종하는 것이라네!
-황제내경소문-
▣ 태극권의 호신
⊙ 신비한
호신술 태극권 대부분의 격투기들은 선천적인 자연의 본능을 쓰는 권법으로서 비록 자세나 동작은 서로 다를지라도 결국 건장한
자가 왜소한 자를, 날렵한 자가 굼뜬 자를 이기는 힘이나 속도에 의한 기예일 뿐이다. 이와 같이 힘이나 속도에 의해 승패가 가려지는 기예라면
만약 자신보다 더 힘센 자를 만나거나 더 빠른 자를 만난다면 패배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러나 태극권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고,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압하는 후천적인 학문의 실력을 쓰는 권법으로서 힘이 약한 자가 힘이 센 자를, 동작이 느린 자가 동작이 빠른 자를
이길 수 있는 진정한 배움의 권법이다.
이는 마치 고요히 길목을 지켜 연어를 잡는 곰처럼 빠름에 빠름으로 맞서지 않고 내가 유리한
자세를 점하고 남이 불리한 자세가 되게 하여 그 빠름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러면 적이 비록 나보다 빠를지라도 소용이 없다.
또한
마치 유연한 동작으로 몸을 비키며 소와 싸우는 투우사처럼 힘에 힘으로 맞서지 않고 적의 힘에 순응하면서 부드러움으로 그 힘을 화해시키고 제압하는
것이다. 그러면 적이 비록 천근의 힘이 있을지라도 그 힘을 나에게 쓸 수 없게 되고 나는 상대방에게 힘을 빌릴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태극권은 나의 의견을 버리고 적의 태세에 따라 임기응변하는 권법으로 마치 원형의 그릇에 담으면 원형이 되고 방형의
그릇에 담으면 방형이 되는 일정한 형태가 없는 물처럼 대응한다. 그러므로 홀연히 경(勁)을 숨기면 상대방은 그 공격할 곳을 알지 못하게 되고 홀연히 경을 드러내면 상대방은
그 수비할 곳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노자께서 “코뿔소가 그 뿔로 받을 곳이 없고, 호랑이가 그 발톱으로 할퀼 곳이
없으며, 병기가 그 날을 쓸 곳이 없다. 대저 왜인가? 그에게는 죽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천하의 가장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가장 견고한 것을
향해 달린다”라고 말씀하신 바의 경지를 이루는 신비스러운 호신술인 것이다.
⊙
타수가(打手歌) 붕·리·제·안은 반드시 참되게 알아야
하고, 상하상수(上下相隨)가 되면 남이 들어오기가 어렵네. 상대방이
큰 힘으로 나를 치러 올지라도, 사량(四兩)으로 이끌어 움직여
천근(千斤)을 퉁기리. 허사(虛事)가 되게 끌어들여 합하자마자
발출함은, 점·련·첩·수(黏連貼隨)와 부주(不丢)·부정(不頂)을
해야 하네. -왕종악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네. 그러나 굳세고 강한 것을
물리치는데는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네! -노자
태극권의
문체(文體)와 무용(武用)
장삼봉 진인이
황노(黃老:황제와 노자)의 심오한 철리(哲理)에 따라 창안한 태극권은 체용(體用)이 겸비되는데, 이른바 “기를 오로지 해 부드러움에 이르러 젖먹이처럼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 체(體:본체)의 주된 원칙이고, “천하의 가장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가장 견고한 것을 향해 달린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는 것이 용(用:응용)의 주된 원리이다.
그러나 건장한 자가 왜소한 자를, 힘이 센
자가 힘이 약한 자를 이기는 것은 쉽게 볼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는 것은 쉽게 볼 수도 없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기에 믿으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태극권의 힘은 기를 쌓아 이루는 것인데, 기는 물이나 바람과 같아 쌓이지 않았을 때에는 한
방울의 물이나 한 조각의 바람처럼 미약하지만 쌓이면 큰 파도나 태풍이 모든 것을 휩쓸어 가버리듯 큰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은 잴 수가 없다.
지구가 그토록 크지만 쌓인 기의 힘으로 싣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권론에서 “기를 단전에 가라앉힌다. 기가 온몸으로
두루 퍼진다. 마음으로 기를 운행하고 기로 몸을 운용한다. 기를 뼈 속으로 거두어들인다”고 말하는데, 그 지극함에 이름은 “기를 오로지 해
부드러움에 이르러 젖먹이처럼 될 수 있는가”라고 한 것으로서 이 모두 기를 쌓음으로 힘이 쌓임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극권이 기를 쌓는
권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태극권의 공력(功力)은 마치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파도를 이루고, 한 조각의 바람이 모여 태풍을 이루듯 한 모금의 기를 쌓아 큰 힘을 이루는데 있고, 태극권의 성취는 마치
낙숫물이 댓돌을 뚫고, 비바람이 철판을 뚫듯 오랜 세월 꾸준히 계속하는데 있다.
▣
태극체용해(太極體用解) 양가 비전권론 이찬
譯 리(理:도리)는 정·기·신(精氣神)의 체(體:본체)이고 정·기·신은 몸의 체(體)이다. 몸은 마음의 용(用:응용)이고 경력(勁力)은 몸의 용(用)이다. 마음과 몸은 일정한 주재자가 있으니 곧 리(理)이고 정·기·신도 일정한 주재자가 있으니 곧 뜻의 성실함이다. 성실이란 하늘의
도(道)이고 성실하게 하려함이란 사람의 도(道)인데, 다 생각이 잠깐 사이도 벗어나지 못한다.
하늘과 사람이
동체(同體)인 이치를 알아야 하고 해와 달의 유행(流行:넓게 퍼짐)하는 기(氣)를 스스로 얻어야 하는데, 그 기(氣)는 뜻의 유행이며 정신은 스스로 이치에 은미(隱微)한다. 무릇 이후에 무(武)요 문(文)이요
성(聖)이요 신(神)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성취한 것이다. 만약 특별히 무사(武事)를 심신(心身)에 논하고 경력(勁力)에 쓰려하면 여전히 도(道)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단지 하찮은 기술만으로는 성취할 수가 없다. 이와
같다.
경(勁)은 근육에 기인하고 힘은 뼈에 기인한다. 만약
물체를 드는 것에 비유해 말한다면 힘이 세면 수백 근을 들 수 있지만 이는 뼈마디와 피부의 겉의 다룸이므로 굳은 힘이 된다. 그러나 온 몸의
경(勁)으로는 몇 근조차 들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정기(精氣:정신과 기)의 속의 왕성함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만약 공(功)을 이룬 후라면 단단한 힘을 지닌 사람으로부터 절묘함이 나오는 여지가 생기니 몸을
닦는 체육의 도(道)는 그러한 것이다.
▣
태극문무해(太極文武解) 양가 비전권론 이찬 譯 문(文)이란 체(體:본체)이고 무(武)란 용(用:응용)이다, 문공(文功)은 무용(武用)의 정·기·신(精氣神)에 있고 체육(體育)이라 하며, 무공(武功)은 문체(文體)의 심신(心身)에서 얻고 무사(武事)라 한다.
무릇 문무(文武)에는 특히 화후(火候:불의
세기와 시기)의 의의가 있어야 한다. 감거나 놓아줌에 그 때에 맞게 절제해 중용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체육의 근본이고,
문무(文武)를 대대(對待)를 할 때 사용함에 적절하게 축경과 발경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사(武事)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무사(武事)의 문체(文體)는 유연체조이고 또한 정·기·신의 근경(筋勁)이며, 무사(武事)의 무용(武用)은 강경한 무사(武事)이고 또한 심신(心身)의 골력(骨力)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문(文)이 무(武)의
예비가 없으면 체(體)만 있고 용(用)은 없는 것이고, 무(武)가 문(文)의
반려가 없으면 용(用)만 있고 체(體)는 없는 것이다. 무릇 혼자서는 큰일을 감당하기 어렵고 한쪽 손바닥만으로는 소리내지
못한다. 체육과 무사(武事)의 공부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든 모두 이치가 이와
같다.
문(文)이란 안의 이치이고, 무(武)란 밖의 기술이다. 밖의 기술만 있고 안의 이치가 없다면 틀림없이 혈기의 용기이고
진면목을 잃어버리며 적을 깔보고 반드시 패할 것이다. 또한 안의 이치만 있고 밖의 기술이 없다면 다만 생각을 안정시키는 학문일 뿐으로
채전(採戰:도가의 술어로서 음양이 서로 모자람을 보충해 주는 것을 이름)을
쓰는 것은 아직 몰라 작은 차이 때문에 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자기의 기술을 사용함에 '문무(文武)' 두 글자의 풀이를 어찌 이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몸의 움직임은 평온하고 외면의
화려함도 없으며 일부러 함이 없는데도 어느 틈에 교묘히 일을 이루네! -장자
태극도의 도형과 의미
태극도(太極圖)의 의미는 음양이 서로 생하고 강유가 서로 도우며 천변만화
함이네. 태극권은 이로부터 나온 것으로써 추수는 곧 태극의 도형(圖形)이라네!
▣
태극권(太極圈) 양가 비전권론 이찬 譯 후퇴하는 범위는
쉽고 전진하는 범위는 어려우며, 허리와 정수리, 나중과 먼저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하네.
어려운 점은 중토(中土:중정의 土)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며, 후퇴함은 쉽고 전진함은 어려움을
세밀히 연구해야 하리.
이는 움직이는 기술이지 꼼짝 않고 서 있는 기술이 아니니, 몸에 의지해 전진하고 후퇴하며 (적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만 하네.
물방아로 찧는 돌절구처럼 할 수 있다면 빠르거나 느리거나 상대를 꺾을 수 있고, 구름이 용을 따르고
바람이 범을 따르듯 몸을 움직일 수 있으리.
천반(天盤:陽의 手法, 또는
인체의 상단 부위에서 공격과 방어를 하는 기술)을 쓰려하면 그로부터 구해야 하고, 오랜 시일이 지나면 천연스러움이 저절로
나온다네.
태극권의 유래와 발전
▣ 원류(原流) 양나라 시대(502~557) 사람인 한공월(韓拱月)은 소구천(小九天)이라는 권법을 흡주태수(歙州太守) 정영세(程靈洗)에게 전했다. 정영세는 소구천을 수련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으며 병사들도 모두
수련하게 하였다. 이 권법은 정씨 가문 수대에 걸쳐 전수되어 정필(程泌)에게까지 이르렀다. 정필은 소구천이 팔꿈치를 쓰는 법이 부족하다고 여겨
주법(肘法)을 추가하여 양주(揚州)의 호경자(胡鏡子)에게 전수했다. 호경자는 이 권법을 후구천법(後九天法)이라고 불렀다.
당나라 시대(618~907) 안휘성(安徽省)
흡주 사람인 허선평은 도학가(道學家)이자 시인으로서 당대의 대
시인인 이백(李白:字 太白)과도 교류가 있었다. 그가 37식 또는 장권이라고도
부르던 태극공(太極功)이라는 권법을 송씨 가문에 전수한 후, 14~15대에
걸쳐 전수되어 명나라 시대의 송원교(宋遠橋)에게까지 이르렀다.
송원교의〈송씨태극공원류지파론(宋氏太極功源流支派論)〉에는 송원교,
유연주(兪蓮舟), 유대암(兪垈岩), 장송계(張松溪),
장취산(張翠山), 은이형(殷利亨), 막곡성(莫谷聲) 등 7명이 매년 무당산으로 장삼봉 진인을 찾아가 태극권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당나라 시대의
이도자(李道子)라는 사람이 수련한 선천권(先天拳)이라는 권법 역시 37식 또는 태극공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유청혜(兪淸慧)에게 전수된 후, 유씨 가문 대대로 전수되어 명나라 시대의 유연주(兪蓮舟)에게까지 이르렀다. 정영세의 소구천, 허선평의 태극공, 이도자의 선천권 등은
이름은 다르지만 권법의 내용은 거의 같았다고 전해진다.
그 후 송나라(960~1276) 시대의 태극학설을 연구하여 이정(二程), 주희(朱熹)
등과 함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써서 남긴 진박노조(陳博老祖)라고 불리던 진희이(陳希夷)라는 사람은 자신이 수련하던 양생장수지도(養生長壽之道)와 신체운동을 화룡진인(火龍眞人)에게 전수했는데, 이 화룡진인이 바로 태극권의 창시자인 장삼봉 진인의
스승이다.
하늘의 운행은 건실하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써 가다듬음을 쉬지 않는다.
▣
창시(創始) 장삼봉 진인은 송나라 말 요동 의주(遼東懿州)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마음이 담담하고 욕심이 없었다. 그는
원나라(1279~1368) 시대에 부모님을 여의고 중국 각지를 전전하며 수행하다 섬서 화산에서 화룡진인을 만나 양생장수지도(養生長壽之道)와 신체운동을 배웠다.
그 후 장삼봉이 호북(湖北) 무당산(武當山)에 은거할 때, 도가의 공부가 앉거나 누워서 수련하는 것에 편중되어 있어
오랫동안 앉아서 수련하면 바로 일어서서 걸을 수가 없고 다리가 약해지는 폐단이 있으며 또한 도사들이 외출하여 수행할 때 노상에서 자주 변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필히 무공을 익혀야만 비로소 무병장수할 수 있고 몸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역경(易經)의 음양오행설과 황제내경의 동양의학, 노자의 철학사상 등을
근본원리로 세우고 정영세, 허선평, 정필, 화룡진인 등으로 전해 내려온 권법에 소림권법과 도가단공(道家丹功) 등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새로운 권법을 창안하였다. 이 권법이 바로 수세기에
걸쳐 전수 발전되어 현재에 이른 태극권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태극권의 창시자’ 또는 ‘권성(拳聖)’이라 일컫는 것이다.
▣
발전(發展) 명나라(1368~1644)시대 섬서(陝西)에는 왕종(王宗:字
宗岳)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태극권론〉〈십삼세가〉〈타수가〉등을 써서 남긴 왕종악(王宗岳)이다. 이 시대에는 태극권이 남·북 양파로 형성되어 전수되었다. 남파 중에는
장송계가 가장 유명하였으며 그는 영파(寧波)의 엽계천(葉繼泉)에게, 엽계천은 다시 단사남(單思南)에게, 단사남은 왕정남(王征南)에게 전하였다. 왕정남은 용감하고 의리가 있었으며 문인 중에는 황백가(黃百家)가 있었다. 그러나 남파 태극권은 감봉지(甘鳳池) 이후 애석하게도 실전되었었으나 이호천(李昊天)이 끊어졌던 문파의 맥을 되살렸다.
북파 태극권은 왕종악으로부터
장발(蔣發)에게 이어져 장발이 진씨 일족이 모여 사는 진가구(陳家溝)에 전한 후, 세월이 흐르면서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오대문파, 즉 진가, 양가,
오가, 무가, 손가로 발전되었다.
태극권의 문파와 전인
▣
오대문파(五大門派)
⊙ 양가(楊家) 태극권 양가태극권의 창시자인 양로선은 하북 영년(河北永年) 사람으로 어린 시절 진덕호 집안의 사환으로 있을 때, 진장흥이 저녁마다
집안사람들을 모아 무술을 가르쳤기 때문에 기회와 인연 및 그의 정성이 절묘하게 일치되어 진장흥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진장흥은 그의 천재성을
보고 모든 비법을 전수해 주었는데, 하나를 가르치면 백 가지를 알아차렸다.
양로선은 고향으로 돌아온 후 사람들을 모아 태극권을
가르쳤고 후에 북경에서 황족과 호위무사들을 가르쳤다. 그는 북경에서 여러 사람과 겨루었으나 겨룰 때마다 반드시 이겼으므로 양무적(楊無敵)이라고 칭송 받았다. 그는 실력이 진보함에 따라 더욱 더 깨닫는 바가 있어 진식
태극권의 도약, 진각 등의 기(氣)와 경(勁)의 흐름이 끊기는 동작들을 제거하여 끊어짐이 없고 더욱 부드러운 권가를
창제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여전히 진식 권가의 의미를 보존한 채 몸과 마음이 더욱 느슨하고 편안하며 부드러운 중에 강함을
품음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태극권파’를 형성하였다. 양씨 3대는 대대로 명성을 날리며 ‘양무적’이라고 칭송
받았다.
-양식태극권의 특징 심신이 편안하고 동작이 고상하며 구성이 빈틈없다. 신법(身法)은 바르고 동작은 온화하면서도 가볍고
영활(靈活)하며 침착한 가운데 행기운경(行氣運勁) 함을 위주로 한다. 수련법은 느슨함으로부터 부드러움에 진입하고 굳셈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합일되게 한다.
⊙양식정자태극권의
특징 양식태극권의 특징과 다름없으나 양가 120여식의 긴 권가(拳架)의
반복되는 동작과 비슷한 동작, 요결에 맞지 않는 동작을 삭제하고 나머지 동작도 요결에 꼭 맞도록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완하였다. 또한
보법격식(步法格式)과 미인수(美人手) 등의 중요한 비결이 추가 되었으며 지대한 탄성(彈性)을 내포하고 있다.
⊙
진가(陳家) 태극권 진가 태극권은 시조 진복(陳卜)이 전했다는 설도 있고 9대 진왕정(陳王廷)이 전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척계광(戚繼光)이 ‘송태조(宋太祖) 32세 장권’의 영향을 받아 명대(明代)에 민간권술의 장점을 취합해 32세로 정리해 지은 《기효신서(紀效新書)》의 제14편 ‘권경첩요(拳經捷要)’를 보고 창제한 포추(砲捶), 즉 이투권(二套拳)이다. 그 후 14대 진장흥(陳長興)이 장발(蔣發)로부터 권법을 전수 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진가에서 말하는 태극권인 두투권(頭套拳)으로 발전되었고, 이는 다시 진유본이 제정한 신가(新架), 진청평이 제정한 조보가, 즉 소가(小架)로 형성되었다.
그 후 진가태극권은 대대로 전수되며 다듬어져 근래에
널리 퍼져있는 1·2로(路) 권가로 형성되었다. 이 두 권가는 양가태극권의
영향을 받아 연관 동작을 세심하게 편성한 것으로서 동작의 속도 및 강도, 신법, 난이도가 모두 다르며 강유상제(剛柔相濟)의 원칙 하에서 행한다.
-진식태극권의 특징 1로는
부드러움이 위주이고 부드러운 가운데 강함을 품는다. 행기운경(行氣運勁)을 함에
전사경(纏絲勁)의 단련을 위주로 하고 발경(發勁)을 보조로 한다. 2로는 강한 가운데 부드러움을 품고 강하게 발함을 위주로 한다.
행기운경을 함에 전사경의 단련을 위주로 하는데, 강하게 발하는 동작이 비교적 많다.
⊙
오가(吳家) 태극권 하북성 대흥(大興) 사람인 전우(全佑)는 양로선에게 배운 후, 다시 양반후를 스승으로 모시고 양가 소가식(小架式)을 배워 그의 아들 감천에게 전했다. 전우는 만주족이었으나 아들 감천은
어려서부터 한족(漢族)을 따랐으므로 성을 오씨(吳氏)로 바꾸었다.
오감천(吳鑒泉)은 양가의 대·소 권가를 끊임없이 수정해 초식이 둥글고 자연스러우며 완만하고
도약이 없는 오식태극권을 제정했다. 오감천은 먼저 북경에서 권법을 가르쳤고 후에 상해에서 가르쳤다.
-오식태극권의
특징 부드러움을 위주로 하고 동작이 가볍고 느슨하며 자연스러운 가운데 면면히 이어져 끊임이 없다. 동작을 펼쳐 크게 수련한 후에 작고
치밀하게 하지만 작고 치밀한 중에도 어색함이 없다.
⊙
무가(武家) 태극권 무우양(武禹襄)은 양로선에게 태극권을 배운 후 진장흥을 방문하려 하였으나 조보진(趙堡鎭)에서 그가 이미 늙고 병들었음을 듣고는 진청평(陳靑萍)에게 배웠다. 후에 그의 형이 무양현(舞陽縣)의 한 소금 가게에서 얻은 〈왕종악 태극권보〉를 연구한 후 더욱 깊이 깨달았으며
타수요언(打手要言)·사자밀결(四字密訣)
등을
지었다.
무우양은 태극권을 이역여(李亦畬)에게 전했고 이역여는
학위진(郝爲眞)에게 전했다. 후에 학위진이 무식태극권을 북경에서 전수할 때에는
사람들이 이를 이가식(李架式)이라고 불렀으며 그의 아들 월여(月如)와 손자 소여(少如)가 남경과 상해에서 가르칠 때에는 학가식(郝架式)이라고 불렀다.
-무식태극권의 특징 동작이 면면히 이어져
끊임이 없다. 신체를 똑바로 세우고 내기(內氣)로써 신체를 움직임을 중히
여기고 한 팔은 늘 온몸의 절반을 보호하는데, 손이 나아감은 발끝을 지나쳐 나아가지 않는다.
⊙
손가(孫家) 태극권 손가태극권의 창시자인 손록당은 어렸을
때 이괴원(李魁垣)에게 형의권을 배우고 후에 다시 곽운심(郭雲深)에게 배웠다.
또한 북경에서 팔괘장 명가(名家) 정정화(程廷華)로부터 팔괘장도 배웠다. 그 후 북경에 왔던 학위진이 병을 얻어 앓을 때,
손록당이 치료해 줌으로 하여 이에 감격한 학위진으로부터 무식태극권을 전수 받고 태극·형의·팔괘의 장점을 합쳐 손식태극권을
제정했다.
-손식태극권의 특징 나아가고 물러남이 서로 따른다. 편안하고 원활하며 동작이 영민하다. 방향을 바꿀 때에는
개합(開合)이 서로 접하므로 ‘개합활보태극권(開合活步太極拳)’이라고도
부른다.
양가정자태극권이란
정자 태극권의 창시자인 정만청 종사는 본명은 정악(鄭岳)이고 별호는 옥정산인(玉井山人)이며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어 만염(曼髥)이라고도 불리었다. 그는 시·서예·그림·의술·태극권등 다섯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를
이루어 세인들로부터 오절노인(五絶老人)이라고 칭송 받았다.
선생은
유년시절 몸이 허약하여 관동대협 두심오(杜心五) 선생의 전인인 양암풍
선생으로부터 청홍문(淸洪門)의 십칠법(十七法)과 두부룰 쳐서 수련하는 기공을 배웠다. 그리고 장성해서는 태극권의 일대 종사인
양징보 선생으로부터 태극권을 전수 받았고 대대로 제자를 선택해 전수하는 도가(道家)의 비전(秘傳)인 도가단공(道家丹功)을 산서(山西)의 좌래봉(左萊蓬) 조사의 전인인 장흠림 사형에게 배웠으며 소회원 선생으로부터는 역경의 이론을
공부하였다.
그후
1938년 봄, 호남성 국술관 관장으로 재직할 때 '국술(國術:중국 무술)이
호남성 전지역의 대중운동으로 이루어져 선생은 태극권을 보편적으로 보급시키기 위하여 매 2개월마다 각 현의 관장 및 사범 40명을 훈련시키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시간의 절약을 위하여 양가 120여식의 권가(拳架)의
반복되는 동작과 비슷한 동작, 요결에 맞지 않는 동작을 삭제하고 나머지 동작도 요결에 꼭 맞도록 충실하게 보완하였다. 게다가 보법격식(步法格式) 및 미인수(美人手) 등 자신의 연구를 더하여 37식으로 개편해 '양가 간이 태극권(楊家簡易太極拳)'이라고 이름 붙여 보급하였다. 그러나 후에 동남아를 비롯한 미국·유럽
등 세계 각지로 널리 전파되면서 '정자 태극권'이라는 독자적인 문파로 형성되었다.
이 권법은 동작이 섬세·우월하고 지대한
탄성(彈性)을 내포하고 있으며 어떠한 태극권보다도 기공수련 및 체용(體用)에 있어 더 효율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또한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이 보다 쉽게
배워 익힐 수 있으며 태극권의 본질에 더욱 쉽게 도달할 수 있다.
정만청 종사의
일화 중에서 한 가지를 소개한다. "선생이 사천성에 있는 영국 대사관의 초청으로 태극권 시범을 보였을 때, 마침 영국군 방문단이 와 있어 그들과
세 차례 시합을 했는데 선생이 한 번 손을 대기만 하면 그들은 몇 미터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후에 이 소식을 듣고 초청한 미국 대사관의 연합군
환영회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일화는 중국의 항전 기간
중에 있었던 사실로 이로 인하여 태극권이 전세계로 보급되는 효시가
되었다.
양가정자태극권의
석주지(釋主旨)
태극권 권법의 한 틀은 백이십여 동작에
달한다.
그러나 그 중에는 복식(複式:반복되는 동작)이 많으며,
이 복식을 여러 번 반복하므로 하여 심신(心神)을 매우 소모하게 되고,
체용(體用)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에 대하여 몹시 회의(懷疑)적이다.
그 긴 권가(拳架)의 작용을 짐작해 본다면 세 가지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첫째,
배우는 사람들이 항심(恒心:꾸준한 마음)이 없으므로 동작을 많이 늘려 익히게
함으로써 연습 시일을 지연시켜 조금이나마 좋은 길로 이끄는 데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둘째, 태극권의 권식(拳式) 가운데에서 근본이 되는 중요한 동작을 여러 번 되풀이해 연습하게 함으로써 진보의
속도를 촉진하려는 것이다.
셋째, 혹 13식(十三式)의 권법 틀이
지나치게 짧아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만약 이 세
가지 점으로 말한다면 이 모두 아직 요령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만약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 긴 권가(拳架)를 연습하게 하여 끈기가 생기도록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연습 기간이
길거나 짧거나 중단하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약 근본이 되는 중요한 권식을 여러 번 연습하려 한다면 그 권식만을 따로 뽑아
여러 번 연습하면 된다.만약 권법 틀이 너무 짧아 불만이라면 한 틀을 여러 번 반복해 수련하면 된다.
나는 권식(拳式)이 너무 많이 중복되는 것은 의의(意義)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신(心神)을 소비하게 되고 무익(無益)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늘 이 권법의 번잡한 부분을 삭제해 간단하게 하고 쉬운
동작으로부터 어려운 동작으로 진행되는 권가(拳架)로 고치려 했으나 번잡한
세상사로 인하여 오랫동안 이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 내가 호남성 국술관 업무를 주관할 때 군인, 경찰,
학생, 민간인들이 훈련하는 국술 과정에서 태극권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부득불 긴 권법을 삭제해 간결하게 하는 일에 착수하여 널리
보급하는 수단으로 삼게 되었다.
이는 강한 민족과 강한 국가 및 낡은 것을 진작시키고 쇠약해진 것을 흥기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나 배우는 사람들로부터 깊은 찬동을 얻었다. 그러므로 자연히 이 책을 짓게 된 것이며, 진실로 그 시기에 알맞게
만든 것으로 감히 이론(異論)을 세워 기이(奇異)함을 뽐내려 한 것이 아니다.
모쪼록 천하의 어질고 밝은 사람들은 이
점을 양해하고 지도해 주기를 바란다.
정만청 종사의 일대기
나는 젊은 시절 광려산에서 공부하며 한가한 날에는 고찰(古刹)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러다 해회사(海會寺)라는 절에서 한 노승을 만났다. 그는 고향이 하북(河北)이고 여든 살 가량 되었으며 정오가 지나도록 식사를 하지 않았다. 얼굴빛은 어린
아이 같았으며 격투기에 정통했다. 사찰 뒤에는 오로봉(五老峯)이라는 산봉우리가
있었는데, 절벽 사이에는 석이(石耳:영지)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남들은
버섯을 취득할 수 없었으나 노승은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소나무나 덩굴을 잡고 기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원숭이가 민첩하게 움직이고 새가
나는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후에 청성산을 유람할 때에는 상도관(常道觀)이라는 도교의 사찰에서 홍씨 성을 쓰는 도사를 만났다. 나이는 일흔에 가까웠다.
밤에 그가 의거하는 평상을 보니 이부자리와 베개가 없었으며 앉아서 조식(調息:양생하기 위해
호흡을 고르게 함)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 4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했는데, 수염과 머리카락은
옻칠한 것 같았고 목소리는 크고도 맑아 여음(餘音)이 있었다. 나는 평생 동안
이러한 기이한 재주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염(曼髥:정만청) 선생을 포함해 세
사람을 만났다.
정 선생은 어린 시절 뛰어 놀기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 어떠한 일에건 관심을 두지 않는 일이 없었으며, 총명하고
감정이 예민해 사물에 즉시 적응했다.
어느 날 위험한 벽 밑에서 놀 때 벽이 무너져 혼절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회생했는데,
의식이 갑자기 감소되고 폐에 병이 생겼다. 곧 스승을 따라 태극권을 배워 점차 의식이 회복되고 체력도 나날이 충만해졌다. 세월이 흐른 뒤에는
보통 사람의 건장함이 오히려 정 선생에 비하여 약해 보였다.
정 선생은 학문,
의술, 서화(書畵)를 깊이 연구해 터득하지 못한 것이 없다. 또한 유람을
좋아해 경치 좋은 깊은 산골이 있으면 비록 험준하다 해도 반드시 가보았으며 호랑이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정신과 기력이 쌓이고 마음이
평온하기 때문이었다.
정 선생은 훌륭한 의사이다. 그는 "약과 침으로는 병을 치료할 뿐이지만 태극권으로는 병을 물리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나라에 병자가 많다면 어찌 외부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비록 편리한 도구와 진기한
무기가 있다 하더라도 운용하는 장사(壯士)가 없다면 기계가 없는 거나 매한가지다. 공자도 "육예(六藝:예도, 음악, 궁술, 馬術, 서예, 수학)를 가르침에 궁술과 마술의 단련이 없다면
예도, 음악, 서예, 수학 또한 배울 수 없다"고 했다.
정 선생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음식과 일상 생활은 서양 사람들과 다르므로
반드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적합한 운동이 있어야 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온전하게 하려면 당연히 태극권을 선택해야 한다"는 지론을 펴며
사람들을 만나면 싫증내지 않고 입이 아프도록 되풀이해 설명했다.
전수한 제자는 만 명에 가까우며 그들의 재능에 따라 지도했다.
그러나 그 뛰어난 태극권의 효능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정자 태극권 13편》을 저술했다.
요점을 추려
조목조목 구분해 분명히 하고 옛부터 전승된 수련의 비법에 스스로 연구한 정수(精粹)를 추가해 남김없이 공개했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손자병법
13편》을 누가 지었든 간에 용병(用兵)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은 감히 어느
누구도 그 책을 폐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만염 선생이 이 <13편>을 인용해 태극권에 이름한 뜻도 용병을 말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자태극권 13편》을 병사들의 심신을 단련하는 교본으로 삼게 해 《손자병법 13편》의 권모(權謀:임기 응변의 꾀)의 쓰임과 표리(表裏)로 하고자 한 것이 아닐는지……
하늘은 거듭 병을 내리고 있고 국가의
혼란함은 안정됨이 없으니 만염 선생의 마음씀 또한 대체로 알 수 있다. 적막한 사찰이나 인적이 뜸한 쓸쓸한 산에서 고요히 자신만을 지키며 나라의
존망과 세상의 성쇠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하여 한층 더 훌륭하다.
정만청 선생의 고향은
영가(永嘉)이고, 성은 정(鄭)이며, 이름은 악(岳)이다. 자(字)는
만청(曼靑)이다. 옛날 제갈 공명이 관우의 아름다운 수염을 보고 찬미해
말하기를 "당신의 수염은 남의 수염보다 훨씬 아름답다"라고 했는데, 지금 그 뜻을 본 받아 전기(傳記)의 이름을 염(髥:수염)이라고 짓는다.
◎ 1단계 1급 : 어깨에서부터 손가락까지의 근육을 푸는 것이다. 2급 : 사타구니에서부터 용천(湧泉)까지의 근육을 푸는 것이다. 3급 : 미려(尾閭)에서부터 니환(泥丸)까지의 근육을 푸는 것이다.
◎ 2단계 1급 : 기(氣)를 단전(丹田)에
침잠시키는 것이다. 2급 : 기(氣)를 니환(泥丸)에 도달시키는 것이다. 3급 : 기(氣)를 용천(湧泉)에
도달시키는 것이다.
◎ 3단계 1급 : 청경(聽勁)이다. 2급 : 동경(懂勁)이다. 3급 : 신명(神明)의 단계에 다다른 것이다.
이것이 3단계 9등급으로 하나하나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1단계 1급 : 그
법은 우선 손목을 풀고 다음에 팔꿈치를 풀며 어깨가 그 다음이다. 조금의 힘도 쓰지 않고 지극한 부드러움으로부터 점차 진행해 나아가야 한다.
이는 모두 굽은 중에 곧음을 구하는 것으로 그 형태는 원(圓)이지만 지나치게
구부려도 안되고 곧게 뻗어도 안 된다.
- 1단계 2급 : 사타구니에서부터 무릎을 거쳐 발에 이르기까지 모두 느슨하고 부드럽게 해야
하며 그 힘은 족심(足心)에 있고 땅에서 받아들인다. 발은 허와 실로 구분해야
하고 손도 역시 그러하지만 다른 점은 만약 오른발이 실이라면 왼손을 실로 해야만 경(勁)이 일관된다.
- 1단계 3급 : 『부드러운 허리는 한없이 꺾이는 것이
마치 뼈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바 등골의 요점은 부드러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등골이 부드러우면 근육도 부드럽게 된다. 그 요점은
미려중정(尾閭中正)과 정두현(頂頭懸)에 있을 뿐이다.
- 2단계 1급 :
기(氣)는 세, 장, 정, 만(細長靜慢: 가늘고, 길게, 고요히, 천천히)을 위주로 해야 하며 천천히 단전으로 흡입해
마음과 함께 지켜 약간 머물게 한다. 어깨를 약간 가라앉히고 팔꿈치를 약간 늘어뜨리면 기가 인도되어 위완(胃脘: 위의 내강)에 이르게 되고 가슴을 늦추고 등을 편하게하면 기가 가라앉아 단전에
이르게 된다.
- 2단계 2급 : 기가 사지(四肢)에 도달하는
것으로 기가 단전에 침잠된 후에 마음으로부터 파견된 것 같이 곧 기를 사타구니에 이르고 무릎에 이르며 발뒤꿈치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는 또
어깨에 이르고 팔꿈치에 이르며 손목에 이르러 사지의 관절이 모두 열린다.
- 2단계 3급 : 미려(尾閭)를 넘어 니환(泥丸)에 도달하는 것으로 이를 통삼관(通三關)이라고 부른다. 기를 단전에 침잠 시켜 공(功)이 숙련되기를 기다리면 화후(火候)에 이르러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그리되어 자연히 미려를 넘어가게 된다. 추호라도
무리하면 안 된다. 미려를 넘어가면 계속 협척(夾脊: 등골)으로 솟아올라
옥침(玉枕)을 지나 니환(泥丸)에 도달한다.
- 3단계 1급 :
청경(聽勁: 경을 듣다), 경(勁)이라고 하는 그 경은, 기(氣)가 근육에 기인해 부드러움에 이르러 탄력을 가지고 있을 뿐인 것이다. 오직
부드러움만이 상대방에게 점(粘: 달라붙음), 련(連: 연접함), 상수(相隨: 서로
떨어지지 않고 따라감)를 할 수가 있다. 점.련이 되면 나의 기와 상대방의 기가 서로 접촉되므로 그 기의 동정(動靜)을 헤아릴 수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청(聽:듣다)이라고 하는 것이다.
- 3단계 2급 : 동경(懂勁: 경을 알다), 피미동(彼微動: 상대방이 약간 움직임)해야 내가 청(聽: 듣다)할 수 있어 알게 되는 것이고 아선동(我先動: 내가 먼저 움직임)하는 것은 동(懂: 알다. 깨닫다)이 된 뒤에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득기(得機: 기회를 얻음), 득세(得勢:세력을 얻음)를 함이 나에게 있고 상대방에게 없게 된다. 그러나 약간이라도
움직이면 쉽게 헤아릴 수 있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알기가 어려운데 만약 아직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도 듣고 알 수 있다면 그것은 거의
신명(神明)의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 3단계 3급 :
기(氣)는 능히 화경(化境: 入神의 경지)을 이룰 수가 있으며 정신의 작용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을 "힘이 없는
힘은 신력(神力: 신기한 힘)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눈이 그것을 주시하면
신(神)이 그것에 이르는바 기(氣)도 이미 그것을 따른다. 기는 능히 몸을 움직일 수 있는데 마음의 움직임을 기다리지
않고 신(神)은 기를 품고서 행한다. 이것을 신력(神力)이라고 하는 것이며 또한 신속(神速: 신기할 만큼 빠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력(神力)과 신속(神速)이라는 것 사이에는 진실로 천둥이나 번개와 같은 의미가 존재하는 것으로 이를
신명(神明)의 단계에 도달한 것이라고
한다.
태극권의 수련과정
▣ 태극권의
등급(等級)
⊙ 외형상의
등급 기(技)라 함에는 교묘함과 서투름이 있고
예(藝)라 함에는 우수함과 열등함이 있다. 태극권은 기이면서 예이기에 이 또한
당연히 우열이 있다. 이를 크게 세 등급으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만약
강하기만 하고 부드러움이 없거나 부드럽기만 하고 강함이 없다면 배운들 쓸모 없을 것이다. 이는 무턱대고 수련하는 것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강함과 유함이 서로 돕는다면 수비와 공격이 효율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이는 주로 진가태극권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추구한다.
강함과 유함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면 공수의 운용이 자유자재할 것이다. 이는 양가태극권에서 말하는 “뜻을 쓰고 힘을 쓰지
않는다” “솜으로 싸맨 쇠몽둥이 같다”는 상태를 이룬 것으로서 곧 종심소욕(從心所欲:마음에
하고 싶은바 대로 좇아함)의 경지인 것이다.
단독인
음(陰)은 생하지 못하고 고독한 양(陽)은 자라지 못한다.
⊙ 작용상의
등급 작용상의 분류는 다음과 같다. -상급: 신(神)의 작용 -중급: 기(氣)의 작용 -하급: 역(力)의 작용
신을 운용하는 사람은 경(勁)을 몸 밖으로 쏘아낼 수 있고 신기(神氣)가 신속한 반사작용을 하는 심령감응반응(心靈感應反應)이 된다. 기를 운행하는 사람은 기를 온몸으로 돌릴 수 있고 느슨하고
유연하며 감각이 예민하다. 힘을 사용하는 사람은 힘이 몸에 정체되고 유연하지 못하고 딱딱하며 감각이 무디다.
그러나 사람은
기(氣)에서 떠날 수 없고 기는 신(神)에서 떠날 수 없는데, 기란 인체의 영양 조절을 하는 영기(營氣), 즉 혈(血)과 각 기관의 보호 작용을 하는 위기(衛氣)의 순환작용을 말하고, 신이란 영묘한 작용을 하는 주체인 정신작용을
말한다.
그러므로 신이 작용하는 상급의 기예는 정신이 기를 끼고 행하는 신력(神力)의 경지인 것이고, 기가 작용하는 중급의 기예는 뜻으로 기(氣)를 부리고 기(氣)로 경(勁)을
부리는 것이며, 힘이 작용하는 하급의 기예는 힘으로 기를 부리고 기로 힘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神)과 기(氣)의
작용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수련한다면 태극권의 신묘한 운신(運神),
행기(行氣)의 운동과는 거리가 먼 단지 수족만을 굴신(屈伸)하는 힘을 쓰는 운동일 뿐으로 노동과 다를 바 없다.
1920년대 이전,중국에서는 태극권이란 하나의 명칭만 있었고 그 태극권은 현재의 양가태극권만을
의미했다. 1920년대 이후부터 오가등 다른 태극권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양가 태극권 계승자가 중국본토에 한명도 남아 있지 않는 상태에서 중국의
문화혁명이후 진가태극권이 나타났으며 그 이후부터 중국정부의 후원으로 진가 태극권이 중국본토에서 진정한 태극권은 진가태극권이라고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정책적으로 진가촌을 태극권의 본산으로 하여 관광지화 함으로써 태극권에 무지한 수많은 혹자들을 불러들여 외화 획득에 일조를 하고
있다.
그 결과 기존의 양가식을 대표로 하는 태극권들은 진가
태극권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점점 홀대받는 처지에 놓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가태극권의 진가태극권 정통설에 대한 반론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1. 마르스
창간호(2000년5/6월호) 태극권의 진정한 개조는 누구인가?
글
: 중국무술 연구가 - 카시오쿄오지
양파가 퍼뜨린 장삼봉 창시설은
생략
그럼 진정한 태극권의 개조는
누구인가?
양파태극권은 장삼봉을 시조로 하지만 양로선이 직접적으로
하남성 온현의 진가구라는 마을에서 권법을 배웠다는 사실은 항상 밝히고 있다. 진미명이 3대 양징보에게 태극권을 배우려고 처음 만났을때 "양가는
태극권이 매우 정묘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여간해서 타인에게 전하지 않는다고 하던데요..."라고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양징보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타인에게
전하지 않는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람들을 받아 전하고 싶네. 나의 조부는 하남 진씨에게 배웠는데 자네성도 진씨이니 자네가 배우고 싶다면 그것은
진씨로부터 얻은 것을 지금 다시 진씨에게 돌려 주는것에 불과하지. 어째서 숨길필요가 있겠는가."
1930년 겨울. 무술사가 당호는 진가구에서 태극권의 원류에 관하여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진가구에서 행해진 사상 최초의 학술적 조사이다.
이 당시 당호는
[진씨가보]등 일족의 기록과 전승을 검토하여 9대 진왕정이 명대말기 동란기에 향토방위군을 이끌고 실제 전투에서 활약하였으며 그후에는
유유자적하면서 권법을 만들어 일족 자제들에게 가르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당호는 이 진왕정이야 말로 태극권의 개조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현재까지 이 진왕정 태극권 개조설이 가장 유력한 설로 되어있다.
그러나 여기에 진파는 물론 양파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빠져있는 하나의 "오해" 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양로선 이래 세상에 유포된 태극권과 20세기 초엽까지 진씨일족이 전한 "진씨권법"은 형의 명칭과 순서 등이 공통된 부분이
있을뿐이며 전체적으로 보면 기법과 원리를 달리하는 전혀 별종의 권법이였다. 무술적으로 생각하면, 이사실을 결코 경시해서는 안된다.
양로선 이래 양씨태극권은 즉 태극권이다. 그것은 호흡을 중시하며
형을 천천히 연무하고 기술을 사용할때는 상대의 공격을 부드럽게 흘리는 것을 장기로 하는 유파권법이다. 그러나 진씨 권법은 이러한 태극권이
아니었다. 진씨권법은 원래 강한 권법이다. 땅을 향해 격렬하게 내리르는가 하면 갑자기 공중으로 높게 뛰어찬다. 그리고 형의 처음과 끝에 소리를
내며 강하게 땅을 밟는다. 이런 격렬한 기술은 양씨권법 즉 태극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애당초 양씨권법이 태극권으로 성립할때까지 그 직접적인 원류지 였던 진가구에는 태극권이라는 명칭은
존재하지 않았다. 양로선은 청년시절 진씨일족과 함께 수련하였고 그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진씨권법의 명수가 되었다. 그후 고향으로 돌아가서
평생을 수련하여 양로선의 권법은 진씨권법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권법이 되었다. 바꿔 말하면 진씨권법을 졸업하고 양씨특유의 독특한 권법을
창조한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별도의 명칭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권법으로 성립한 양씨권법을 부르기 위해 "태극권"이라는 이름이 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진씨권법을 그냥 태극권으로 부르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때 결코 옳은것이 아니다. 진씨권법이 태극권이라는 명칭을 받아들여 동작을 부드럽게 바꿔간것은 근대에 들어서 양씨권법이 태극권으로 융성하자 그
명성에 동반하여 진씨권법이 주목받은 이후부터이다. 말하자면 태극권이 진가구에 역류한 결과 진씨권법의 일부가 진씨태극권으로서 새롭게 성립한
것이다.
근대까지 진씨권법은 중국북방에 일반적으로 보이는 권법의
한종류 였으며 그 지역사람들은 가을에 행해지는 무술모임을 소림회(小林會)라고 불렀다. 즉 진씨권법은 북파소림권의 일종이었다. 당호와 비슷한
시기에 진가를 방문한 태극권 연구가 오도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진가구 사람들은 진씨권법을 "포추"라고 불렀고 이것을 특기로 하는 진씨일족을
"포추진가"라고 불렀다. 즉 유파의 이름으로 말하자면 진씨권법은 북파소림권의 "포추문"인것이다.
포추에는 다섯가지 형이 있었다. 양로선의 의해 태극권으로 발전한 형은 이중 최초의 형인
"두투권"(주:처음의 형이라는의미)으로 불렸다. 소림파라고 해야하는 진씨권법의 극히일부를 철저하게 익혀 완전히 새로운 권법을 창조한것이
양씨"태극권"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나 나름대로 단언하면
양로선이야말로 양파태극권의 창시자 일뿐아니라 태극권 그 자체의 개조였다고 말할수 있다.
2. 진가 태극권 풍지강노사의 주장
"다시 한번 말하건데, 태극권[진가권]은 펼치는 방식의 장권(long form)에 속합니다. 반면,
형의권은 단권(shorter form)에 속합니다. 그러나, 형의권이 비록 단권에 속하지만, 형의권에서는 힘을 보강하기 위해 몸을 사용하고,
도달거리를 보완하기 위하여 탄력과 도약력을 사용합니다. 태극권[진가권]은 장권의 일종입니다. 이것은 마치 용의 몸(body of
dragon)과도 같습니다. 통배권도 중국무술 중 장권의 하나인데, 항상 팔을 펼치며 수행합니다. 태극권[진가권]은 여러 가지 무술의 장점을
흡수하여 독특한 체계를 형성한 것입니다. 이 동작은 형의권에서 온 것입니다. (시범) 이것은 소림권에서 온 것입니다. 이것은 당랑권에서 온
것입니다. 태극권[진가권]에서의 팔꿈치 가격은 팔극권에서 온 것입니다. 태극권은 18가지 무술의 복합체입니다. 또한 도교, 주역, 중국전통의학을
사용하여 이론적 기반을 형성하였는데, 특히 음양이론과 전통의학의 경락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풍지강 노사의 2001년 워크샵
2001, 7/10-14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풍지강 노사의 워크샵 중 일부
발췌.
3. 효원태극문의
주장
진가에서 주장하듯이 만일 양가태극권이 진가권에서 비롯되었다면
동작이나 권법의 요결상 상호 유사한점(양가태극권에서 파생된 오가태극권은 상당히 상호 유사함)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사용되는 구결의 명칭이
동일하다 해도 그 이해와 실행되는 동작이 전혀 다르니 이것은 무슨 이유일까? 진가에서 보여지는 동경추수(마치 씨름과 같아보임)는 양가태극권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고 또한 그 실행상 태극권 내공권법의 요결과는 정반대이니 이것 또한 무슨 이유 때문일까?
또한 진가권이 천하무적의 최고권법인 태극권이라면, 진가권자들의 주장대로 진왕정의 진가 태극권 창시후
진장흥까지 5대가 지나는 동안에 굳이 양로선 조사님이 아니어도 그 권법의 유명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을 것이고 많은 다른 파 (예컨데, 소림파,
무당파, 아미파등등) ,무술인들이 그권법을 몰랐을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청왕조 주최의 각파 무인들과의 대련을 통한 양로선
조사님의 북경에서의 무술 시범을 많은 무술의 대가들이 목격하고서도 왜 그들은 양로선 조사님의 권법이 어느 파이고 그 권법의 명칭 조차도 알지
못했을까? 양로선 조사님이 진장흥의 제자였다면 북경에서 다른파 무술의 고수들이 양로선 조사님의 권법에 대한 찬사로 천하무적의 권법이란 의미의
태극권이라고 칭했을 때 왜 양로선 조사님은 진가 태극권이라고 알리지 않았을까?
일반 문하생도 아닌 제자였다면, 중국의 관습상 본파 무술을 부정하고 본파 무술을 그것도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한다는 것은 신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중국인들 특히 무술인들사이에서는 절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런 일이 다른
무술인들에게 알려지면 양로선 조사님에게 어떤일들이 발생했을지는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당시에도 그리고 현대에 와서도 또한 다른 파
무술인들 조차도 양로선 조사님은 많은 무인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다. 오히려 진가권자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양로선
조사님은 진장흥의 제자 이면서 감히 가전의 진가 태극권 을 부인하고 사부님을 욕되게 한 파렴치한 인데도 양로선 조사님을 비난하고 제명하기 보다
그의 유명을 인정하면서 그의 유명의 덕을 보려고 하는 것을 보면 같은 무인으로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중국문화혁명 기간동안에는 공산당에 반대하는 무술인들의 단합을
저지하기 위해 어떤 무술도 할 수 없도록 중국공산당이 무술 수련을 전면 금지하였고 이 기간을 무술인들은 무술의 단절기/ 암흑기라고 부른다.
알다시피 양수중사공님은 1929-1949년 사이 중국 공산당파의 적인 장개석 국민당지도부의 무술지도를 하고 있었고 그때문에 국민당 패배후
공산당의 암살/처형을 피해 홍콩으로 피난한 것이다. 양가 태극권 수련자가 중국 본토보다 해외에 더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아직도 그들은
중국본토 보다 여전히 대만을 지지하고 있다. 본인의 솔직한 견해는 양가태극권과 진가태극권 과의 이상한 관계는 태극권의 진정한 역사에서 출발했다기
보다는 정치적 힘에 의한 역사적 사실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결론적으로 양가 태극권 수련자들은 진가 태극권자들이 가설로 여기는 장발이란 고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고 양로선 조사님이 진가촌에서 진장흥노사의 가르침을 받은 것 역시 인정한다. 즉 진장흥 노사가 양로선 조사님에게 가르쳐준 그 무술은 당시 많은
진가들이 수련했던 무술(진가권이라 칭함 )과는 절대로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진가권자들이 그들 스스로 진왕정 노사가 진가 태극권을 창시했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양로선 조사님은 무에서 유의 존재로 태극권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이름없는 형태로 존재해온 무술을 양로선 조사님의
부단한 수련, 권법에 대한 남다른 깨달음등 각고의 노력을통하여 그 무술의 위력이 천하무적임을 만 천하에 알림으로써 이름없는 무명권을 태극권으로
거듭나게 한데 대해, 많은 다른 무인들은 그를 진정한 의미의 태극권 창시자(당시 양가, 오가, 무가, 손가, 진가라고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권법의 명칭)라고 한 것이다.
진가권자들이 양가 태극권에 대하여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양로선 조사님이 원 진가권의 격한 부분을 많이 삭제하고 형을 많이 변형했다고 하지만 진가권자를 제외한 다른파의 많은
무술인들은 현대의 진가 태극권은 소림권에 태극권을 혼합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진가 태극권은 중국정부가 주체가 되어 소림권의 한 형태인 진가권에 원래의 태극권인 양가권을
도입해서 만든 장사용 권법이라는 것이 양가 태극권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