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에서 백부(伯父)·중부(仲父)·숙부(叔父)만큼 각양각색으로 부르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옛날 형제의 서열을 말할 때에 삼형제일 경우 백(伯)·중(仲)·계(季), 사형제일 경우 백(伯)·중(仲)·숙(叔)·계(季)로 표현하였다. 백은 맏으로 백형은 큰형, 백부는 큰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중은 둘째이고 숙은 셋째이며 계는 막내가 된다. 큰 분의 소생인 자녀들은 보통 부친의 아우들을 숙부라 칭하고 순번에 따라 둘째 숙부, 셋째 숙부, 또는 둘째 작은아버지, 셋째 작은아버지, 넷째 작은아버지 이런 순서로 호칭하며, 막내는 막내 작은아버지로 불러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넷째나 다섯째 분의 소생인 자녀들은 큰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분들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문제이다.
어떤 가문에서는 둘째 큰아버지 셋째 큰아버지로 부른다. 이는 백부의 자녀들이 중부 이하에게 일률적으로 '작은아버지'라고 칭하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보다 형인 분들에게도 일률적으로 '큰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백부 한 분밖에 붙일 수가 없는 것이다. 백부는 세부(世父)라고 칭하고 백모 역시 세모(世母)라고 칭한다. 대(종통)를 잇기 때문이다. 큰아버지는 아무에게나 붙일 수 있는 칭호가 아니다.
넷째나 다섯째 분의 자제들이 아버지의 셋째형과 넷째형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이 경우, 백부와 숙부를 제외한 모든 분들에게 숙부라는 칭호가 붙여진다. 숙(叔)에는 셋째 또는 아우의 뜻이 있으므로 자신의 아버지가 넷째나 다섯째일지라도 셋째부터는 위아래에 관계없이 숙부라 해도 되는 것이다.
혹자는 숙부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보다 아랫분을 지칭하기 때문에 숙부란 칭호는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숙부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아버지의 손아래 숙부 역시 모두 계부라고 칭할 수 있다. 계(季) 역시 말째란 뜻 외에 동생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큰아버지를 경상도 지방에서는 한 아버지〔大父〕의 뜻으로 보아 할아버지를 지칭함을 밝혀둔다. 대부(大父)를 글자그대로 해석할 경우 큰아버지가 되며 할아버지 역시 한 아버지에서 파생되었다. 大를 옛날에는 모두 `한'으로 풀이하였으며, `한'에서 `할'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옛날 진(晉)나라 때 명사인 완적(阮籍)은 조카(형의 아들)인 완함(阮咸)과 함께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든 인물이다. 이 때문에 남의 숙부를 완장(阮丈) ,남의 조카를 함씨(咸氏)라고 칭한다. 그리고 숙부를 유부(猶父), 조카를 유자(猶子)라고도 칭한다.
우리 사회는 대가족 제도가 무너지고 핵가족화 하면서 수 천년 동안 내려온 친족의 호칭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인구 억제 정책으로 대부분의 가정에서 두 자녀 이하를 출산하기 때문에 이제는 종형제(사촌형제)나 재종형제가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게 되었다.
이들이 친족간의 호칭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언제부턴가 친족의 극존칭을 아무에게나 붙여주는 후덕한(?) 언어습관이 유행되었다. 나이 많은 노인에게는 무조건 할아버지·할머니라 칭하고,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분에게는 아저씨·아주머니, 자신보다 연하인 경우에는 김 선생·박 선생으로 불러오고 있다.
물론 선생은 스승이나 교육자 등의 높은 분에게도 사용한다. 그리고 이제는 장인·장모에게도 아버지·어머니란 칭호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이러한 칭호가 널리 통용되다 보니 자신을 아버지·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예의 바르게 장인 장모라고 부르는 사위에게 원망스런 눈길을 보내는 장인·장모도 있다 한다.
아버지·어머니, 이 얼마나 높고 귀중한 칭호였던가. 이제는 장인·장모뿐만 아니라 물건을 사러 가게에 가면 무조건 아버님·어머님이라고 부르는 점원이 태반이다. 애인이나 부부간에는 또 남편을 오빠라고 칭한다. 오누이 사이에 잠자리를 함께 하다니 옛날 분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사장님과 회장님이 왜 그리도 많은지. 개나 걸이나 아버님·어머님이니, 제 부모를 잘 모실 리가 없다.
춘추시대 사상가인 묵적(墨翟)은 당시 사람들이 오직 제 부모, 제 처자만을 사랑하여 공공(公共)의 대의(大義)를 망각하는 병폐를 바로잡고자 겸애설(兼愛說)을 부르짖었다. 즉 남의 부모와 남의 처자도 나의 부모와 나의 처자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겸애설은 이기적인 개인주의에 빠져있던 당시에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제 부모를 남의 부모처럼 무관심하게 대하는 풍조가 유행하였다 한다. 친족의 호칭은 각기 친족에 따라 알맞게 불러야 한다. 무조건 후덕한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호칭 문제에 좀 더 신중을 기해 주었으면 한다.
교수가 반드시 일방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아니 늘상 학생들로부터 적지 않은 ‘자극’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 받은 ‘자극’ 중의 하나가 ‘호칭’을 둘러싼 새로운 경향이다. 학번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거나, 이름 대신에 아이디 혹은 별명을 사용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면,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연령/고학번의 선배를 나이 어린 후배가 스스럼없이 ‘길동’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거나(당연히 형이나 언니나 선배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는다), 혹은 자신의 닉네임이나 아이디를 이름 대신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식은 서로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최근에 나타난 새로운 문화현상 중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경향이 성공회대, 나아가서는 한국 대학에 일반적인 경향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고 또한 이를 둘러싼 갈등이 적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생각해봐라. 형이나 선배나 오빠, 누나 같은 호칭에 익숙해있던 선배가 어느 날 나이어린 후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김교수, 권사장, 박과장, 이선배, 길동 형, 영희 언니, 영희 누나 등, 상대방의 ‘정체’를 사전에 알지 못하면 뭐라 불러야 할지 난감할 때가 적지 않다. 그래서 이름을 서로 확인한 뒤에도 나이나 학번이나 직책을 확인하는 ‘번잡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작업’이 반드시 뒤따르게 된다. 이성이나 이름 뒤에 직책이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별도의 보조적인 호칭을 붙여야 하니, 이름이 이름만으로는 이름값을 못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름이 이름값을 하도록 호칭을 단순화시키는 것, 다시 말하면 이름 뒤에 그저 ‘씨’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만으로 관계는 아주 편해질 수 있다. 특히 관계의 평등성이라는 민주주의적 원칙을 들이대면 나름대로의 명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관행, 습관, 문화라는 것이 반드시 규범적 필요성에 의해 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은 아니다. 호칭의 평등이 반드시 관계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호칭의 서열화를 지탱하던 조건이 변하지 않으면 무리와 갈등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나는 호칭의 서열화가 나이나 학번에 따른 경험/정보/지식의 차이에 기반들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분적인 예외는 있겠지만 1년의 차이라도 먼저 그 길을 먼저 경험한 ‘선배’에게 서열화된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선배’의 경험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간관계의 서열을 드러내는 호칭은 적어도 대학 사회에서는 나름대로 ‘제도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사회는 많이 변했다. 나이나 학번에 따라 경험/지식/정보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배는 더 이상 선배를 ‘외경’의 눈으로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 문화는 숨 가쁘게 빨리 변하고 있고 인터넷 등의 발달로 먼저 경험한 지식이나 정보는 새로운 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다. 이 같은 변화가 호칭이라는 형식의 변화 조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은 싫든 좋든 피하기 힘든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새로운 ‘호칭’에 대해 학번이나 나이를 내세워 옛 방식을 주장하는 것은 아직은 대세이지만 결국은 ‘안타까운 저항’인 셈이다. 틀림없이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학 사회의 서열화된 호칭은 무너질 것이다.
그런데 옆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학생의 말, ‘그럼 선생님! 선생님을 혁태씨라고 불러도 되나요?’ 허걱!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확실히 세상은 내 예상보다 빨리 변하고 있는 것 같다.
# by 몽상가 | 2006/11/21 12:53 | 세상이야기世間話 | 트랙백 |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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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마누라’ 는 극존칭” |
입력: 2007년 07월 02일 17:3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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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마누라’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마눌’이라는 형태로 사용되기도 한다. 존칭의 의미는 온데간데 없고 하대의 분위기마저 풍기는 ‘마누라’가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아내를 높여 부르는 호칭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황문환 교수는 한국학학술지 ‘장서각’ 최근호에 발표한 ‘조선시대 언간 자료의 부부간 호칭과 화계’에서 이같이 밝혔다. 황교수는 16~19세기 순한글로 쓰여진 언간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부부간 호칭 변화를 살피며 호칭에 반영된 존대의 정도와 상대방에 대한 대우의 변화를 고찰했다.
이에 따르면 남편이 아내를 부르는 호칭으로는 ‘자내’ ‘게’ ‘게셔’ ‘마누라’ 등이 있다. 자네를 뜻하는 ‘자내’는 17세기 중반에 쓰인 언간에서는 글자 앞에 한두자 정도를 여백으로 비워 존대를 표시하는 격간법(隔間法)이 적용됐다.
‘마누라’는 19세기 언간에서 극존대의 종결형 어미와 함께 사용됐다. 1882년 흥선대원군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도 ‘마누라’가 등장한다.
‘기간 망극지사 을 엇지 만니 외에 안젼 셔자로 하올잇가 마누라계셔은 상쳔이 도으셔 환위를 하셧건이와~(그간 망극지사를 어찌 만리 외에서 눈앞 간단한 편지로 하오리이까? 마누라께서는 하늘이 도우셔서 환위를 하셨거니와)’에는 ‘마누라’에 존칭을 나타내는 주격조사 ‘계셔’가 함께 쓰였다. 황교수는 ‘마누라’가 극존칭의 호칭이라는 증거로 중세국어에서 ‘마누라’가 ‘마노라’의 형태로 ‘대비마노라’ ‘웃전마노라’ ‘선생마노라’ 등 왕실 인물간에 존칭으로 쓰인 점을 들었다.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으로는 ‘자내’와 함께 ‘게셔’ ‘나으리’가 사용됐다. 황교수는 당하관을 지칭하던 ‘나으리’가 벼슬하는 남편 일반을 호칭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윤민용기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