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밤에 대망의 섬 여행길에 오르다.
아--드디어 출발이다. 놈들이 뭐라 해도 할 것은 해야 한다--- 이미 질러 놓은 불이다. 게다가 나 혼자 외로이 가는 천리 길도 아니니 다행이다. 이번 여행은 왠지 아주 의미가 있고 즐거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금 이 시간 남쪽 제주도에는 비가 온단다. 그러나 내가 가는 경상북도는 비가 그치겠지...하고 막연한 바램이다.
11시 40분 일행이 모두 도착하여 서울을 출발, 관광버스는 사르르 굴러 중부 고속도로를 달린다. 밤 12까지 인솔자(이용민)가 뭐라고 일정과 주의사항과 인사말을 하지만 귀에 안 들어온다. 그만큼 나의 가슴은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에 몰입되어 있었다. 아--드디어 간다. 내 가슴 속에는 한 가지 염원--무사히 다녀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뛰고 있었다.
여행은 단순히 두려움에 떨게 하거나 흥분시키는 최음제가 들어 있는 게 아니다. 엊그제 동네 동우회에서 서해안, 군산 앞바다의 선유도를 다녀온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섬--하면 45년 전 제주도 여행의 추억--- 20시간 조난과 배 멀미와 망망대해를 가르는 스크루의 포말---이 나를 죽이고도 남는다. 그 때 나는 아직 젊은 나이에 저 세상에 가는 줄 알았다. 나는 서울대학에 입학하고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지리산과 한라산 종주 무전여행을 떠났다.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는 20대의 나이였다. 청운의 꿈이요, 지성의 상아탑(우골탑)이었던 대학에 들어가려면 공부를 아주 잘 하거나 부모가 돈이 많은 학생이 아니면 꿈도 못 꾼 시절이었다.
1960년대 초 4.19혁명과 5.16쿠데타가 일어나서 부모님들은 정신이 없던 시대다. 나는 고교동창의 꼬임(?)에 넘어가 생전 처음으로 말만 들어본<무전여행>이라는 걸 해본 사람이다.
2만5천분지 1 우리나라 지도를 들고 줄을 그어가면서 알지도 못하는 독도법을 배우며 따라간 서울 촌놈의 배낭여행이었다. 학생이 돈이 있을 리 없고 한 친구는 집에서 어머니가 못 가게 한다고 쌀가마니를 통째로 등에 메고 나타났다. 서울역에서 만나 몰래 전라선을 탔던 추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밤이 이슥하니까 고속도로는 한적하기 그지없다. 앞뒤에 따라오는 차도 안 보이고 화요일 밤의 중부와 영동고속도로는 한적했다. 모두 잠이 쉬 들 리가 없다. 잠시 불을 끄고 눈을 부친다. 1시간 가서 강원도 문막 휴게소에 들렸다. 밤 1시--부시시 눈을 뜨고 시원한 광장에 나가서 기지개를 켜고 한바탕 몸을 풀고 먹을 것을 사서 다시 출발했다.
이제부터 잠이 마구 쏟아진다. 시끄러웠던 뒷좌석에서도 잠에 곯아떨어진 모양이다. 눈을 감았다 떴다 보니 차는 강원도 새말인터체인지를 지나 둔내터널을 달리고 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진부, 용평을 거쳐 대관령터널을 지나고 금방 강릉시내가 나온다.
추암 동해일출 사진은 운무에 가려서 포기하고
밤 2시 30분경 버스가 막히지 않아 과속으로 달린다 했더니 앞좌석에 앉은 손님이 운전사가 졸음운전을 한다고 한다,.. 곡예운전... 나는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어서 큰소리로 외쳤다.
“ 가까운 휴게소로 가서 쉬라!!!“고 소리치며 앞으로 나가서 인솔자를 불러서 급히 강릉휴게소로 들어갔다...휴---하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긴 숨이 쉬어졌다.
정말로 운전사는 눈이 충혈돼 있었다. 휴게소에서 30분 이상 쉬던지 잠을 붙이고 떠나자고 시간을 끌어보았지만 젊은 운전사는 갈 수 있다고 고집을 세운다. 결국은 여럿이 상의를 한 끝에 운전사의 손바닥에 간단히 압봉으로 수지침치료를 한 후 출발했다.
나눠 준 일정표에는 정동진(추암해수욕장)에 4시반에 닿기로 되어 있지만 1시간이나 빨리 추암 주차장에 도착했다. 해가 뜨면 바다와 일출을 배경으로 사진대회를 가지는 것이다. 아직은 날이 새기를 기다려야 하고 사진은 재수가 좋아야 한다. 사진동호회 사람은 사진장비를 들고 나가고 나머지는 계속 차안에서 잠을 잤다. 이곳은 애국가의 홍보영상에 나오는 동해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들려오는 소리가 오늘은 날이 흐려서 해가 안 보인다고 하며 다시 버스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디카 사진기를 챙겨들고 찬 바다 바람이 부는 정동진공원을 산책했다. 길가에 동백나무가 많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구기자나무가 여기저기 보인다.
촛대바위에 올라가 한 바퀴 빙 돌고 내려가서 <추암횟집>에서 조식을 했다.
생선 몇 마리와 나물류 정식을 간단히 먹어 치운 후 곧바로 주차장으로 이동해서 동해 여객터미널로 올라갔다. 날씨가 맑고 흐리지 않아 오늘은 배가 출항을 할 것 같다. 어젯밤 버스를 타고 잠 한숨 제대로 못 잤어도 기분이 상쾌하다. 길가의 가로수와 녹음이 우거진 숲도 비가 온 후 밝게 웃는 모습이다. 아침 7시 반에 묵호항에 도착했다.
울릉도 가는 등치가 큰 배는 이미 정박해 있었다. 오늘은 우리만 가는 게 아니다. 전국의 독도사랑 모임과 산악회모임, 각종 종교단체와 동네 계모임 모두 합쳐져서 짬뽕으로 섞여가는 것이다.<코리아 독도 녹색운동연합>이라고 빨간 유니폼을 입은 인솔자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다. 여객터미널 대합실은 금방 북새통을 이루고 전국에서 올라온 버스가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호각소리,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없다. 무려 400여명이나 승선한다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대합실의 화장실은 너무 작아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