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동운동의 과제
정현철 (민주노동자 시흥연대의장)
2016년 365일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을 하루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4월 13일을 선택할 것이다. 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던 날이다.
노동자의 삶은 언제나 고달팠지만, IMF이후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특히나 이명박-박근혜정부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은 노동자들을 벼랑 끝까지 내몰았다. 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투쟁하던 노동자들은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절망이 낳은 비극적 선택이었다.
박근혜의 당선은 시작에 불과했다. 2015년 8월부터 소위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직 임금은 삭감하고, 비정규직은 더욱 확대하는 정책을 밀어부쳤다. 청와대가 경총,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노동계가 반발하고 국민의 여론이 정부의 노동정책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박근혜식 밀어붙이기는 멈출 줄 몰랐다. 2016년이 박근혜의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인 서명운동'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박근혜식 밀어붙이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거기다 4월 총선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새누리당 독식, 개헌저지선까지 넘본다’는 기사가 넘쳐났다. 정부안대로 파견법이 통과되었을 경우를 생각하니 앞이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 기막힌 반전이 일어났다. ‘여소야대’.
기가 막힌 국민들의 선택이었다. 국민들은 박근혜의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박근혜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질주했다. 그리고 거대한 촛불항쟁에 고꾸라졌다.
최근 애슐리를 비롯하여 이랜드 외식사업 프랜차이즈에서 4만 4천명의 임금 84억원을 체불한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랜드는 15분 단위로 노동시간을 체크해 저녁 6시 28분에 퇴근했어도 6시 15분까지만 일한 것으로 임금을 주는 일명 ‘임금 꺽기’라는 치졸한 방법까지 사용했다. 29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우리나라 재계순위 50위의 이랜드그룹이 노동법을 몰라서 임금체불을 했을까. 이랜드는 지난 2007년 비정규직노동자를 대량해고 하면서 영화 카트와 드라마 송곳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이러한 화려한 전과를 지닌 이랜드 그룹은 제 버릇 남 못주고, 또다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블랙기업’으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이랜드그룹 회장 박성수는 왜 이같은 짓을 반복하는 것일까. 송곳의 명대사를 인용하자면,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그러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대량해고 해도 되고, 알바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해도 벌금 2천만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으니까 노동법 따위는 무시하는 것이다.
그럼 기업들에게 그래도 된다는 시그널, 노동자를 착취해도 된다는 시그널을 누가 주었을까. 바로 박근혜정부다.
2016년 위대한 국민의 촛불로 박근혜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노동개혁은 사실상 좌초되었다. 그러나 ‘그래도 된다’는 시그널까지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다.
촛불집회에서 한 비정규직 청년노동자가 이렇게 물었다. “박근혜가 퇴진하면 저의 삶은 좀 나아질까요?” 이제 우리의 촛불은 그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
2017년이 노동자의 삶이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근거는 여전히 부족하다. 오히려 세계경제의 어려움과 불확실성의 증가, 국내 경제 침체로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2016년 촛불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노동자들은 새로운 세상과 더 낳은 삶을 갈망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이정도로 폭발력을 지녔던 배경에는 지난 20여년간 고용불안정과 소득불평등으로 고통받던 노동자들의 불만과 분노가 담겨있다.
촛불이후 노동자의 삶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고용불안정해소와 소득불평등 해소다. 그리고 재벌체제의 해소와 노동권의 강화도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고용문제는 비정규직문제와 청년실업 등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비정규직 문제 사회적합의를 통해 법제도개선과 비정규직노동자 권리보호를 통해 풀어가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가는 원칙중의 하나는 상시, 지속적 일자리는 정규직 직접고용의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정규직 업무에 대해 온갖 불법과 편법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하면서 노동자들을 이중삼중으로 착취하고 있고,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또한 오랜 논의를 통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도록 법개정이 이루어 졌으나, 현실에서는 전혀 작동 하지 않고 있다. 사문화되어 버린 것이다. 법을 집행해야 할 정부는 모르는 척하고 기업이나 노동자는 그런 법문구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현실이다.
시흥시는 이미 2012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시흥시 비정규직 및 영세⋅소규모 사업장 근로자 권리보장과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음에도, 시집행부의 의지부족과 일부 시의원들의 반대로 조례에 담긴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들이 시행조차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함을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저성장구조가 지속되고, 제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인해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어 들 것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이 틈을 타 자본과 정부는 제2의 IMF가 몰려오는 냥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고용유연화, 즉 비정규직 확대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소득양극화와 불평등을 강화시킬 뿐이다.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고, 기본소득제 등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노동계내부에서 제4차 산업혁명 등 미래 산업구조 변화에 대한 논의나 고민은 부족한 실정이다.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중 하나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연간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중 하나다. 이처럼 장시간 노동이 고착된 것은 정부와 재계가 근로기준법을 탈법적으로 해석하고 운용해왔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 초과근로를 금지하고,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주 12시간의 초과근로가 가능하도록 돼있다. 헌데 노동부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서 제외하도록 해석하면서 주당 최대 68시간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주 5일제를 전면 실시하고, 근기법상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주 12시간으로 지키고, 교대제를 개선하고, 통상임금에 고정 상여금과 기타 수당을 포함시켜 연간 노동시간을 2천시간 이하로 줄이면 약 3백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2016년 최저임금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다. 하지만 결국 최저시급 1만원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급 6,470원에 그쳤다. 소득불평등과 양극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2017년엔 반드시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실현시켜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최고임금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10대 재벌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최저임금자와의 임금격차는 약 180배의 차이가 난다. 최고경영자들은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 중소자영업자 몰락, 법인세 감면 등으로 거둬들인 막대한 초과이윤의 일부를 ‘보수’라는 명목으로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경여실패로 노동자들을 대량해고한 CEO들도 막대한 보수를 챙기고 있다. 이는 CEO들이 경영실적이 좋아서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규제가 없어 막대한 보수를 챙기고 있다는 반증이다. 정부와 재계에서 임금피크제(사실상의 최고임금제)를 실시하는 것처럼 최저임금제와 연동한 최고이금제를 도입해 소득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재벌체제의 해소와 노동권의 강화 문제다. 박근혜게이트를 통해 재벌체제의 문제는 공론화되었다. 정부와 재벌은 밀접한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국민들의 재산을 헐값에 매각하거나(삼성의 경영권승계), 뇌물을 주고 불법을 합법으로 둔갑(현대자동차의 파견법확대)시켜주려고 하였다. 재벌체제해소 문제는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근본문제라는 점 정도로 언급하고 이후에 기회가 있을 때 더 다루도록 하겠다.
어쨌든 산적한 노동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권을 강화하고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요즘 현장은 무법천지다. 위에서 이야기한 애슐리 사례를 비롯하여, 최저임금 미달자가 2백만명이 넘고, 주5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자도 350만명이 넘는다. 발월시화공단 파견노동자의 94%는 불법파견이고 10대재벌 사내하청 노동자 40만명도 대부분 불법파견이다. 노동법만 제대로 지켜도 노동자들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또한 노조하기 쉬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세력을 만들고 조직화하는 것은 헌법적 가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헌법의 정신이 제대로 구현되거나 작동되지 않는다.
최근 시흥시의 의뢰를 받아 사단법인 시화노동정책연구소에서 실시한 ‘시흥스마트허브 비정규직 근로자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해고 우려와 취업 방해 우려 등 노조 가입에 따른 불이익 우려로 인해 노조에 미가입하는 노동자가 22.3%에 달한다.
하지만 위 조사에서 더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회사에 노조가 불필요 하다는 응답이 35.9%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나타냈다는 사실이다. 위 조사에 따르면 노조에 미가입 이유로 노조에 대한 반감(10%), 노조 가입효과 부재(13.5%), 가입방법을 모름(11.3%) 등을 꼽았다. 이는 노동운동이 혁신해야 할 대목이다. 94%가 50인미만 사업장에 종사하고 있는 시화공단의 현실에서 현장 노동자들은 ‘노조가 불필요 하다’거나 ‘노조 가입효과 가 없다’고 느끼고 ‘가입방법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별, 정규직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노동운동이 이들 노동자들을 담아 낼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지점에서 노동운동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조직화 방식을 개별가입을 중심으로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기업별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이 아니라, 시나 공단을 중심으로 노동의제를 형성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노동운동)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위 실태조사에서 ‘노조에 대한 반감’이 10%나 나온 것을 노동운동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노동운동이 특히 민주노총이 혁신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자신이 의탁할 곳을 찾지 못하고 위에서 제기한 수많은 노동과제들을 풀지 못하거나, 남이 풀어주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박근혜의 지지율이 5%가 나왔을 때, 한 노동자가 술자리에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과연 민주노총의 지지율이 박근혜보다 높을까요?” 이 물음이 2017년의 화두이자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