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전혜린, 미래완료의 시간 속에
Celloman ・ 2017. 12. 10. 2:00 URL 복사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공유하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작가의 글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글의 비극성보다, 작가가 살았던 삶의 비극성을 더 중요시하며 책을 골랐다. 끝내 죽음으로 생을 마무리한 그런 사람들의 글이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그중, 가장 최근에 사랑하게 된 작가가 바로 전혜린이다.
전혜린 작가는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에 평안도에서 태어난다. 서울대학교 법대 입학 및 독일 뮌헨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성균관대학교의 강단에 섰다. 살아생전에는 독일어-한국어 작품 번역을 주로 진행했으며 저서(유고집)로는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가 있다.
1965년 초, 31세의 나이에 자살로써 생을 마무리한 그녀는 '요절한 천재',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 등 수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친일 경찰로 알려진 아버지 전봉덕 때문에 '친일파의 후손'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으며 혹자는 '과대평가되고 미화된 작가'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정말 친일파의 후손인지, 그녀는 정말 천재인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작품이 지닌 가치에 대해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저서 2권은 모두 유고집이며, 전혜린이 생전에 보고 겪고 느낀 일들을 순수한 처지에서 썼을 뿐, 애초 출판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전혜린의 작품을 논할 때는 그녀에게 놓여진 환경이나 시대적 상황 또는 문장력을 두고 얘기할 것이 아니라 그녀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과 그 속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그녀의 사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전혜린은 끊임없이 외로워하고 공허해했으며 현실에서 찾기 힘든 이상을 바랐다.
생의 한가운데 저자 루이제 린저 출판 문예출판사 발매 1998.01.20. 상세보기 전혜린 스스로가 번역한 책 중 루이제 린저 <삶의 한 가운데>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정신 속에서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한다면 삶은 다만 가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전혜린은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한 것 같다. 번데기의 부화율은 약 80% 정도라고 한다. 아마 전혜린은 나머지 20%에 속하는 운명일 지닌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외로움, 적막감과 공허함의 집합체임에도 불구하고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하여 정신의 완전을 꿈꾸는 영혼이 바로 전혜린일 것이다. 마치 모두가 아는 작가 '이상'처럼.
1961년 1월 7일 "일단 자기의 내던져진 상태를 반성해 보고 자기와의 사이에 거리를 두루 알게 되었을 때부터, 즉 자기가 자기의 흥밋거리가 되고 연구 대상이 되었을 때부터, 즉 우리에게는 풀 수 없는 모순과 상처와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대부터 지옥(Hölle)은 시작된 것이다. 즉 우리의 지옥이란 우리의 대자 존재(fürsich sein)이고 우리의 의식성(Bewu βtsein)이고 우리의 지성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다시 즉자(卽自)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한 우리는 영원히 불행한 것이다." -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왜 그녀가 끊임없이 괴롭고 불행했는지 알 수 있는 핵심적인 대목이다. 한 번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그것은 곧 영원한 불행이라는 말은 그녀의 비극적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시놉시스가 아닐까.
"Too much ego will kill your talent."
내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 역시 나에 대한 생각을 도저히 놓을 수 없기에. 나는 어떤 사람이며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전혜린의 일기 앞장에는 다음과 같은 사르트르의 글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전혜린이 스스로의 존재 방식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L'homme n'est geiune situation... Totalement conditionne pur sa classe, son salaire, la naturere son travail, conditionne usqeia ses sentiments, jusfeia se pensees." "인간이란 하나의 상황일 뿐이다... 자기의 직위와 봉급, 자기 일의 성격에 의해 완전히 자기의 정서와 사고까지도 규정 지워진..." - 사르트르,
"Je me choisis moi-meme, non dans mon etre, mais dans mamaniere detre." "나는 내 존재에서가 아니라, 내 존재 방식에 있어서의 나 자신을 선택했다..." - 사르트르, <존재와 무>
전혜린이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그 누구도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그녀는 지극히도 외로웠을 것이다. "가끔 몹시도 피곤할 때면, 기대서 울고 위로받을 한 사람이 갖고 싶어진다. 나는 생후 한 번도 위안자를 갖지 못했다."라는 대목은 그녀의 고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뚜렷하지 못한 것, 모호한 것은 악 보다도 더 싫다"던 그녀는 결국 스스로의 '모호한 삶'에 못 이겨 "생의 지속이 무겁고 귀찮아서 콱 내던져버리고 증기가 되고 싶은 무(無)에의 갈망"을 이기지 못했으리라.
1961년 1월 17일 "결국 제일 쉽고 제일 행복한 상태는 온갖 의욕이 없는 것(삶의 의욕조차도), 즉 정지, 죽음의 상태인 것 같다. 의욕이 있는 곳에는 아픔도 있는 것이니까!" -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그녀의 일기장을 엮어 유고집으로 만든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에는 그녀의 죽음에 대한 모든 단서가 들어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노라면 그녀가 낸 복잡한 퀴즈를 하나씩 풀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퀴즈를 낼 적에 단서가 될 수 있는 빵가루들을 여기저기 뿌려 놓았다. 마치 '나, 전혜린의 발자취를 따라와'라는 듯이.
그녀가 남긴 활자와의 만남은 나를 지독히 공허하게 만듦과 동시에, 나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것이 전혜린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당시의 그녀와 지금의 내가 만나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마법 같은 일. 외로움이 사무칠 때면 어김없이 전혜린을 찾는다.
1964년 9월 19일 미래 완료의 시간 속에 산다. 일류전(Illusion). 모든 것은 환상. 미래까지도 이미 완료된 시칭(時稱) 속에서는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2017. 12. 10. 인지가 붙어있는 전혜린의 책을 덮으며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저자 전혜린 출판 민서출판사 발매 2002.01.10. 상세보기
태그#전혜린#이모든괴로움을또다시#전혜린에세이#그리고아무말도하지않았다#번혜린번역서#전혜린저서#전혜린유고집 취소 확인 ` 5 공감 5 이 글에 공감한 블로거 열고 닫기 댓글 쓰기 이 글에 댓글 단 블로거 열고 닫기 북마크 되었습니다. 네이버 북마크 가기 X 현재 북마크 되어 있습니다. 북마크를 해제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X 서버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X 북마크 서비스 점검 중으로, 현재 북마크 읽기만 가능하오니 이용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X Keep에 저장되었습니다. 목록보기 편집하기 X 이미 Keep에 저장되었습니다. 목록에서 확인하시겠습니까? Keep 목록 가기 X 서버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X 북마크 서비스 점검 중으로, 현재 북마크 읽기만 가능하오니 이용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X 이 __feed_info__ 마음에 드셨다면 네이버 MY구독에서 편하게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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