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재미있고 놀라운 고추 이야기
매운맛은 맛이 아니다
우리 혀가 느낄 수 있는 미각은 단맛, 신맛, 짠맛, 쓴맛뿐이다. 매운맛과 떫은맛은 맛이 아닌 느낌 즉, 감각이다. 매운맛은 구강 점막을 자극할 때 느껴지는 통증이다. 매운 음식을 뜨거운 음식과 먹으면 아주 맵게 느껴지지만 시원한 음식과 먹으면 덜 맵게 느껴진다. 온도가 낮을수록 통증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매운맛은 통증이므로 먹으면 먹을수록 내성이 생긴다.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유전자
2005년 세계 최초로 고추의 매운맛을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발견됐다. 서울대학 농생대 식물분자 유전육종연구센터 김병동 교수팀이 캡사이신을 생성하는 유전자를 확인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김병동 교수팀은 고추 생체 내의 여러 단백질을 매운맛의 원인 물질인 캡사이신으로 최종 합성 작용을 하는 ‘캡사이신 신세테이즈(CS)’를 발견했다.
매운맛에 중독되는 아주 특별한 이유
매운 음식을 먹으면 신경세포는 매운맛을 경감시키기 위해 엔돌핀을 내보낸다. 엔돌핀이 분비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허전하고 힘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결과 뇌 속에 있던 매운맛의 경험이 자꾸 매운맛을 먹도록 명령한다.
우리가 매운 음식을 먹고 탈이 나도 얼마 안 있어 또다시 매운 음식을 찾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게다가 매운맛은 내성도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매운 것을 찾게 된다. 위궤양 등 위장 관련 질환이 있는 사람은 매운맛 중독이 위험할 수 있지만 매운맛을 즐긴 후 소화나 신체에 별 이상이 없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감기에는 고춧가루 띄운 소주가 좋다?
그렇지 않다.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면 알코올과 캡사이신의 영향으로 혈액순환이 활발해져 땀구멍이 열린다. 그렇다고 열이 내려가거나 바이러스가 죽지는 않는다. 술은 뇌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약물이다. 술과 고춧가루를 동시에 먹으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된다.
감기에 걸렸을 때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콩나물국을 먹으면 낫는다는 것도 틀리다. 고춧가루가 혈액순환을 도와 땀구멍을 열어주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감기 치료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고추에는 비타민C가 들어 있으므로 감기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될 수 있다.
매운맛 최적의 온도를 찾았다!
우리 혀는 단맛은 35℃, 신맛은 25℃, 짠맛은 37℃, 쓴맛은 40℃, 매운맛은 60℃에서 가장 강하게 느낀다. 맛있기로 소문난 음식점의 매운 음식이 대개 뜨거운 것도 이런 이유다. 매운 음식을 60℃ 이상으로 조리하면 매운맛이 살아나서 입맛을 아주 강하게 자극하고, 그 결과 음식이 맛있게 느껴진다.
매운맛은 고추가 진화한 결과다?
노던 애리조나대학 연구팀은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고추의 매운맛은 고추가 진화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포유류가 고추를 먹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고추의 씨앗은 파괴돼 발아되지 못하나, 조류는 고추를 먹어도 씨앗을 온전히 배설할 수 있어 발아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고추는 포유류가 고추를 먹지 못하게 하고, 번식을 돕는 새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조류는 매운맛을 통증으로 느끼지 않고 맛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매운맛을 증가시켰다는 설명이다.
매운맛을 좋아하면 다혈질이다?
한국, 멕시코, 태국, 이탈리아 국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흥분을 잘한다는 것, 즉 다혈질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더운 나라에서 매운맛을 즐기는 것과 관련이 깊다. 예로부터 반도국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부딪치다 보니 전쟁이 잦았다. 오랜 세월 동안 전쟁을 치러야 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다혈질일 가능성이 높다. 재미있게도 위 열거한 나라들 모두 고추요리를 즐긴다는 공통점이 있어 다혈질과 고추의 상관관계를 엿보게 한다.
매운맛을 없애는 데 좋은 음식
매운 음식을 먹고 입안이 화끈거리며 매울 때는 따뜻한 밥을 먹는 게 좋다. 매운 음식으로 자극된 통증의 감각이 따뜻함을 느끼는 온각(溫覺)으로 분산되면서 덜 맵다고 느끼게 된다. 특히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은 탄수화물과 만나면 화학반응이 일어나면서 분해되므로 탄수화물이 풍부한 따뜻한 밥이나 빵이 매운 맛을 가시게 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단백질이 풍부한 우유나 요구르트를 먹어도 좋다. 단백질은 캡사이신 분해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풋고추와 붉은고추, 고춧가루 그리고 고추장
고추보다는 고춧가루, 고춧가루보다는 고추장이 몸에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건강에 더 좋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섬유소와 비타민은 붉은고추, 단백질과 인은 고춧가루, 칼슘과 철은 고추장에 가장 많기 때문이다.
Part 3 모양도 맛도 제각각, 다양한 고추의 세계
‘고추’라고 다 같은 고추가 아니다. 그 모양만큼이나 맛과 질감, 조리법이 다양하다. 고추의 종류별 특징과 맛있게 먹는 법을 살펴본다.
풋고추_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의 고추로 색이 푸르러 ‘청(靑)고추’라고도 한다. 다 익으면 붉은고루(홍紅고추가 된다. 수분이 많고 약간 맵다. 비타민C가 풍부하고 매운맛이 교감신경을 자극해 먹으면 힘이 난다. 생으로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 비린내가 많이 나는 생선요리를 할 때 넣으면 비린내가 사라지고 맛이 좋아진다.
꽈리고추_풋고추에 비해 길이가 짧고 가늘다. 표면이 꽈리처럼 쭈글쭈글하게 생겨서 ‘꽈리고추’라고 이름 붙었다. 풋고추에 비해 질감은 부드러운 편이나 매운맛과 아삭함은 떨어진다. 날것으로 먹는 것보다 조리해 먹기에 알맞다. 몸에 좋은 베타카로틴이 많이 함유돼 있다. 기름을 넣고 볶으면 베타카로틴 성분이 더 잘 흡수된다. 조리 시 너무 오래 익히면 맛과 향이 떨어지므로 마지막 단계에 넣고 살짝 익힌다.
청양고추_우리나라 고추 가운데 가장 맵다. 풋고추에 비해 짧고 가늘다. 원산지는 충남 청양으로 알려져 있으나 ‘청송과 영양 고추를 합쳐 청양고추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충남 청양에서 난 청양고추는 적합한 기후조건 덕분에 빛깔이 곱고 과육이 두꺼우며 매운맛이 강하다. 또한 다른 지역 청양고추에 비해 캡사이신 성분과 미네랄이 풍부하다. 충남 청양의 청양고추 생산량은 전국의 1.2%, 충남의 11.5%를 차지한다. 청양고추는 너무 매워서 생으로 먹기 힘들다. 곱게 다져 국이나 찌개에 넣으면 칼칼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오이고추_풋고추와 피망 등을 교잡해서 만들어낸 고추로 일본 품종이다. 풋고추보다 과육이 2배 이상 두껍다. 수분이 많아 씹으면 아삭하다. 고추 특유의 매운맛보다는 단맛이 많이 난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생으로 먹거나 겉절이를 해먹기에 적당하다. 샐러드, 피클 재료로도 이용한다.
피망과 파프리카_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추 ‘아지’가 유럽에 퍼지면서 생긴 변종이다. 나라에 따라 ‘(파프리카)Paprika’ ‘(스위트페퍼(Sweet Peppe)r’ ‘벨 페퍼(Bell Pepper)’ ‘피망(Pimento)’ 등 다양하게 불린다. 일본에서는 피망과 파프리카를 다른 품목으로 구분하지만 식물분류학상 종이 다른 것은 아니다. 굳이 피망과 파프리카를 구분하자면, 피망은 녹색과 빨간색 두 종류고 파프리카는 녹색과 빨간색 외에 노란색, 주황색도 있다. 피망과 파프리카 모두 매운맛은 거의 나지 않고 단맛이 강하다. 비타민이 풍부하고 식물성 섬유, 철분, 칼슘도 많다. 샐러드로 먹을 때 영양소를 가장 많이 섭취할 수 있다. 볶거나 튀겨 먹어도 좋다.
아삭이고추_씹으면 ‘아삭아삭’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다른 고추보다 길이가 짧고 동그랗다. 매운맛보다는 단맛이 강하다. 고추 열매가 처음 생겼을 때는 보라색이었다가 차츰 초록색으로 변한다. 다 여물면 표피에 그물 같은 선이 생기는데 그때는 상당히 맵다. 금이 생긴 것은 피클 등으로 사용한다. 소금에 절여도 아삭한 맛은 그대로 유지된다. 생으로 먹으려면 금이 생기지 않은 것을 구입한다.
녹차고추_녹차로 유명한 전남 보성에서 생산된다. 고추를 재배할 때 녹차 추출액에 함유돼 있는 카테킨 성분을 주기적으로 뿌림으로써 생육을 좋게 하고 병충해 발생을 줄인 고추다. 일반 고추에 비해 크기와 모양이 균일하다. 과육이 풍부하고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좋다. 가격은 10kg 1박스를 기준으로 할 때 2~3만원 선으로 높다.
Part 4 세계인이 사랑하는 명품고추 BEST 5
청양고추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듯, 전 세계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누리는 고추가 있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명품고추 5가지를 소개한다.
타바스코 고추_멕시코가 원산지로 우리도 애용하는 타바스코 소스의 원료다. 서양인은 참을 수 없이 맵다지만 매운맛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청양고추보다는 맵다. 수확한 고추의 껍질과 씨, 섬유질 같은 불순물을 제거한 뒤 소금과 섞어 참나무통에 3년간 숙성시키면 타바스코 소스다. 여기에 여러 가지 향신료를 첨가하면 우리가 먹는 타바스코 소스가 완성된다.
할라피뇨 고추_멕시코가 원산지다. 노란색과 초록색이 있는데 노란색이 더 맵다. 씹을 때는 덜 맵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운맛이 서서히 증가한다. 불에 구우면 매운맛이 깊어진다. 할라피뇨 고추를 불에 구워 말린 양념을 ‘치포틀(chipotle)’이라고 하는데, 멕시코 요리에 많이 사용된다. 국내에서는 할라피뇨 피클로 많이 먹는다. 스파게티나 피자 등을 먹을 때 할라피뇨 피클을 곁들이면 입맛이 개운하다. 할라피뇨 피클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사천고추_중국 속담에 ‘사천 고추씨 한 알로 장정 열을 쓰러뜨린다’는 말이 있다. 중국 사천지방이 원산지로 그 정도로 맵다. 톡 쏘는 매운맛이 특징이며 단맛도 많이 난다. 사천지역에서 사천고추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재료다. 중국 사천요리의 매운 맛을 내는 요소가 바로 사천고추이기 때문이다. 중국식 샤브샤브 ‘훠궈’에 들어가는 기름도 사천고추로 만든 고추기름을 사용한다.
하바네로 고추_멕시코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아바네로’라고도 불린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알려졌으나, 인도의 졸로키아 고추류(나가 졸로키아, 부트 졸로키아)가 등장하면서 세계 3위로 밀려났다. 청양고추보다 30배 이상 맵다. 따로 먹기보다는 아주 잘게 썰어 요리에 넣는다. 하바네로 소스의 원료로 사용된다. 국내에서는 하바네로를 이용해 만든 살사소스를 구입할 수 있다.
프릭키누 고추_태국의 대표적인 고추다. 길이가 1cm 내외다. 쥐똥처럼 작다고 해서 ‘쥐똥고추’라는 이름도 붙었다. 고추는 땅을 향해 자라는 게 일반적인데, 프릭키누 고추는 신기하게도 하늘을 향해 자란다. 매운맛은 청양고추의 5배 정도다. 먹으면 처음에는 맵지만 매운맛은 오래 가지 않고 뒷맛은 개운하기까지 하다. 태국 음식에 많이 들어간다. 태국인은 고추를 무척 좋아해 고추로 만든 각종 인스턴트식품을 밑반찬으로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