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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위고의 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만난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불쌍한 사람들)」을 읽고
지은이 :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옮긴이 : 정기수
펴낸날 : 2012년 11월 5일
펴낸곳 : 민음사(세계문학전집)
참 대단한 작품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글도 아마 몇일이 지나야 다 써내려가지 싶다. 그만큼 참 부담스런 글쓰기다. 너무나 방대해서 뭘 어떻게 써내려 가야할 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전에 그저 막연히 알고 있던 장 발장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작품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왜 도대체 이 어마어마한 작품이 단순한 장발장으로만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오해는 5권 뒤에 옮긴이의 설명에서 약간 풀렸다.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과정에 주로 일본에서 일부 번역된 것을 우리글로 번역하거나 아이들을 위한 다이제스트 판을 일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우리글로 번역하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원전이 우리에게 전달되면서 일부만 발췌한 번역본으로 소개되거나 전체적인 요약본 형식으로 번역되거나 하면서 그 원전 본래의 것이 많이 훼손되었을 것이고 또한 우리에게 다가올 때는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또한 그런 훼손이 많이 일어났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이 완역본을 읽으면서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이렇게 위대한 작품이 단순히 장발장이라는 정도의 글로만 우리에게 알려져있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정말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적 무책임과 더불어 나 개인의 무책임이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일 뿐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처음으로 프랑스어 원전이 1862년에 나왔는데 여기서 딱 1세기가 지난 1962년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원전에서 비롯된 번역본이 나왔다. 그 당시 옮긴 사람이 다시 딱 반세기만에 다시 원전을 꺼내들어 옮긴 것이 2012년이다. 이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한 데 대해서 이제야 원전의 완역본을 손에 넣고 읽었다는 데서 개인적 책임을 다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그저 한번 읽었다는 데서 위안을 얻을 뿐 도대체 이 거대한 서사시를 마음에 품기조차 어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빅토르 위고가 1845년에 쓰기 시작해서 1862년에 다 써 냈으니 장장 17년이 걸린 셈이다. 책 5권 중에서 1권이 1862년 3월에, 2, 3권이 5월에, 4, 5권이 6월 30일에 출판되었다. 당시 19세기는 물론이고 20세기, 그리고 지금 21세기에도 베스트셀러로, 스테디셀러로 이어지고 있다.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싶겠지만 읽어보면 그렇다. 정말 이 책에는 장 발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자잘한 삶이 있고 민중들의 비참한 현실이 있고 실패한 혁명이 있고 기세등등한 권력이 있고 문학이 있고 지리가 있고 역사가 있고 사랑이 있고 노래가 있고 숭고함이 있고 비루함이 있고 순결함이 있고 더러움이 있고 인간 내면을 아주 배율이 높이 현미경으로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심리묘사도 있고 어둠으로 내려가며 빛을 잃어가는 삶이 있고 칠흙같이 어두운 곳에서 나와 더욱 밝게 빛나는 삶이 있다.
단순히 머리에서 지어냈던 것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정치적, 역사적, 지리적, 종교적 자료들을 조사하여 주도면밀하게 써내려갔다는 생각을 안할 수 없다. 19세 사람이 일순간에 자신의 후배 문학인들을 존경하게 만든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 혁명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혼란스러움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연대기와 역사 이야기들을 보면서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가 프랑스혁명은 세계사 교과서에서 1789년 7월 14일 사람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일련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답답함으로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다가 작년에 이 작품이 뮤지컬 영화로 인기를 끌면서 책도 더 팔리고 뮤지컬도 많은 관객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 맞춰서 몇몇 이들이 ‘레 미제라블’ 속에 묻어있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써 놓았기에 그 글들을 보면서 나를 위해 한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우선 프랑스 혁명은 19세기 약 100여년 동안 이루어진 것이고 성공한 혁명만 3차례고 그 외 유혈봉기는 수없이 많았다. 1789년 프랑스에서는 극심한 굶주림과 신분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여 혁명이 일어난다. 민중들이 국와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왕이 없는 나라’ 공화국을 선포한다. 하지만 이렇게 알려진 프랑스 대혁명으로 민중들의 삶에 바뀐 것은 없다. 오히려 더 힘겨운 삶을 살게 되었다. 왕정이 유지되고 있는 프랑스 이웃나라들은 자국으로 프랑스 혁명이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프랑스에 군대를 파견했는데 여기에 쫓겨난 왕족들과 귀족들이 결탁했다. 역사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라나 민족이나 민중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사람들은 인류역사에서 우리나라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화국을 이끌어낸 민중들이 권력을 이양했던 혁명지도부는 외국군과 자국 내부의 반혁명세력과 전쟁을 벌이면서 한편으로 내부 권력다툼까지 벌이게 된다. 이처럼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날로 물가가 치솟으면서 프랑스 경제는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 와중에 민중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1792년 8월 10일 민중들이 튈르리궁을 습격하여 천여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고서 루이 16세 일가를 탕플탑에 가둠으로써 왕정이 끝이 났다.
이후 혁명 내부세력 사이에 있었던 권력다툼 속에서 자코뱅에 속해 있던 로베스피에르가 루이 16세의 사형집행 여부를 두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왕은 무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순간 혁명이 유죄가 된다. 이제 와서 혁명을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 왕을 죽여야 한다. 혁명이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하면서 재판을 사형으로 몰아갔고 왕은 1793년 1월에, 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그해 10월에 처형된다. 이 과정에서 1793년에 권력을 장악하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여 일시적으로 물가를 안정시켰으나 계속되는 폭동과 식량난을 해결하고 반혁명 세력들과 혁명 세력 중 반대파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공포정치를 벌이게 된다. 루이 16세를 처형하면서 시작된 1년여의 공포정치 기간 동안 1만 7천명 이상을 ‘반혁명’ 혐의로 처형하고 사람들을 수백명씩 구덩이에 집어넣고 대포를 쏘고 혁명정부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3만명 이상을 학살했고 반정부 세력의 중심지였던 방데지방의 경우에는 한꺼번에 25만명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포정치로 몰아가는 바람에 2년만에 실각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사람들을 몰아쳐갔던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민중들도 형리들도 그저 무덤덤하게 그의 죽음을 지켜봤으니 그날만 해도 그의 처형은 그와 함께 했던 숱한 사람들의 죽음 뒤에 일어난 20번째 처형일 뿐이었다. 1794년 7월 28일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로써 최고가격제는 폐지되고 다시 물가는 뛰어올랐다.
바로 이 이듬해인 1796년 장 발장이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치다가 체포된다. 장 발장은 당시 범죄자들이 일정 기간 노예가 되어 부역에 동원됐던 것과 같이 노역형에 처해져서 노예처럼 살았다. 왕은 사라졌지만 다른 사회제도는 변한 것이 없었다. 다만 빵 하나 훔쳤을 뿐인데 19년 동안 노역을 살게 되었다는 것은 도저히 현대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그 옛날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민중들의 비참한 현실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
이렇게 지속된 혼란은 18세기가 막을 내리는 1799년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서 일단락된다. 나폴레옹이 국외적으로는 외국과 전쟁을 이겨내고 국내에서는 반혁명 세력을 없애고 토지분배, 법제도 정비, 초등교육 확립 등의 정책으로 사회를 안정시켰다. 하지만 늘 권력의 맛을 본 자들의 심보는 만족을 모르는 것이다. 쿠데타를 얻은 통령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1804년 스스로 황제에 오르고 반혁명 위협이 없음에도 외국과 계속 전쟁을 벌였다. 계속된 전쟁으로 민중들이 지쳐가고 있을 무렵 워털루 전쟁에서 지면서 1815년 나폴레옹이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바로 이 때가 장 발장이 19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해다. 장 발장에 대해 본격적으로 나오는 1권의 2부에서 시작이 <1815년 10월 초순>으로부터 시작을 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아마도 팡틴에게서 코제트를 받아 돈을 뜯어내던 테나르디에가 나폴레옹과 함께 워털루에서 싸웠던 마리우스 아버지 퐁메르시 소령을 구해낸 것도 아마 이쯤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혁명과 나폴레옹 황제의 몰락 이후 오랜 전쟁과 혁명에 지쳐있던 민중들은 오히려 왕정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로써 외국에 망명해있던 루이 16세의 동생들이 돌아와 차례로 즉위한다. 이 왕들이 처음에는 혁명세력의 눈치를 살피다가 점차 왕으로서 언론을 탄압하고 선거권을 축소하는 등 과거 구체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다시 한번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이것이 1830년 7월 혁명이고 루이 16세 동생인 샤를 10세를 쫓아내고 새로운 왕을 즉위시킨다. 그가 루이 필리프이고 이 시기가 레미제라블의 본격적인 시대적 배경이다.
이 왕은 혁명세력을 지지했고 그들의 뜻대로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했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이로써 프랑스의 산업은 나폴레옹 시대에 마련된 법제도와 안정된 정치질서 속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가 장 발장이 1820년대 프랑스 북부 소도시 몽레이유에서 새로운 구슬 공정을 개발하여 기업가로 거듭나고 성공하여 시장까지 되는 마들렌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시기다.
산업이 발전한다고 해서 민중들의 가난이 해결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아니다. 산업의 발전은 부르주아의 성장을 도왔고 그들은 구체제의 귀족처럼 지냈으나 민중들의 삶은 여전했다. 도시인구는 늘어났으나 코제트가 추운 겨울에 먼 숲 속에 가서 물을 길어오다가 장 발장을 만나듯 수도 시설은 턱없이 부족해서 위생이 깨끗하지 못해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이때마다 슬럼가의 빈민들은 떼죽음 당하기 일상이었는데 1831년 콜레라 대유행이 이를 말해준다. 산업은 발전하여 물가는 오르는데 노동자들의 임금은 그대로여서 빈민가 남성들은 술을 마시고 여성들은 살기 위해 성을 팔고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버려져서 부랑아가 되었다.
부르주아, 거지, 부랑아, 알코올 중독자, 성매매.
테나르디에와 그 부인, 부랑아로 살아가는 그들의 버려진 아들 가브로슈, 부랑아들이 자기 동생인 줄도 모른 채 돌봐주고, 부르주아의 아들이었고 팡틴을 한때의 즐거움으로 같이 놀았던 톨로미에스와 그에게서 버려진 팡틴, 그리고 그의 딸 코제트 등등
이처럼 극도의 가난하고 처절한 삶이 가브로슈가 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니고 탄약을 가지러갔다가 죽고 자베르가 붙들렸다가 죽기 직전에 장 발장에 의해 풀려나고 마리우스가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 몸을 던져 살려내고 죽었던, 순수하게 마리우스를 짝사랑했던 에포닌, 장 발장에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마리우스 등의 일이 벌어졌던 1832년 6월 5~6일 사이에 벌어진 봉기로 이어진다.
이 혁명은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어 실패한 혁명으로 6월 항쟁으로 불리운다.
‘레 미제라블’에서 일어난 혁명은 사실 혁명으로 불리워지지 못하는 실패한 봉기, 실패한 반란인 6월 혁명이다. 이 혁명은 성공한 혁명인 1830년 7월 혁명과 그 혁명에 의해 세웠던 루리 필리프를 쫓아냈고 공화정을 세운 1848년 2월 혁명 사이에 벌어진 19세기에 있었던 수많은 유혈 봉기 중에 하나다.
이 항쟁이 일어나기 전인 1831년 11월 프랑스에서 대표적 공업도시인 리옹에서 노동자 수천명이 가담한 봉기가 일어났다. 노동자들이 오르는 물가에 비해 임금이 턱없이 낮다며 벌인 최저임금 협상이 불발이 되면서 노동자 전체가 들고 일어나 시정을 장악까지 했으나 정부에서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며 잔인하게 탄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빈민과 노동자들, 앙졸라와 그 친구들과 같은 공화정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왕정에 등을 돌려 걸핏하면 폭동을 일으켰다.
1832년 6월 5일에 나폴레옹의 부관 출신이고 국회의원으로 민중들의 편에 서있었고 혁명의 지도자였던 라마르크의 장례식을 계기로 다음날까지 일어난 항쟁이 바로 6월 항쟁이다. 이 때 바리케이트가 수십개 이상 세워졌고 약 800명이 사망한 대규모 항쟁이었다.
장 발장은 이 항쟁이 있은 지 2년 후 사망한다.
장 발장의 죽음 이후 1835년부터 안정을 유지했던 루이 필리프 왕정은 1846년 대흉작으로 또다시 물가가 폭등하고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위기를 맞게되었고 2월에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왕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다. 이것이 1848년 2월 혁명이다. 이 공화국에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이 통령으로 당선됐으나 그 역시 나폴레옹 3세로 황제가 되었다. 그는 1871년 프로이센과 전쟁을 벌였으나 패하면서 물러났다. 그가 물러나면서 급진 좌파 세력이 봉기해서 파리 시청을 점령하고 자치정부 ‘파리코뮌’을 결성하지만 정부에 진압되면서 3만명이 처형당하게 된다. 이를 진압하고 출범한 ‘제3공화정’에 가서야 나름 민주공화정으로 정착한다.
이렇게 1789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1871년 파리코뮌까지 거의 100여년을 이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미리엘 주교》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
‘아니 장 발장은 나오지 않고 무슨 뜬금없이 디뉴에 살고 있는 주교 얘기가 이렇게 기나?’
하면서 답답하고 언제 장 발장은 나오나 하면서 허기졌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결국 장 발장은 전체 이야기의 한 귀퉁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고는 장 발장이 죄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담아내는 시작을 미리엘 주교로부터 시작했다. 사실 장 발장은 죄인이라기보다는 그 시대가 죄를 뒤집어 씌운 평범한 시민이었다. 마치 우리 시대 2009년 1월 20일에 있었던 용산 참사에서 도시의 테러범으로 찍혀 결국 자살로 법원에서 판결내려진 그들처럼.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친 것이 19년의 노역형이라니…….
책을 다 읽고서 미리엘 주교를 주욱 훑어 봤다. 단지 장 발장이 다시 붙들려 들어가는 것을 막았던, 그저 촛대 도난 당한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은접시까지 내주는 그런 성자로 기억되는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디뉴에 주교로 오자마자 화려한 주교관과 허름한 병원을 맞바꾸고 (사실 얼마나 화려하고 호사스럽고 종교 지도자의 거처를 만들었길래 병원과 맞바꿔도 될만한 것이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자신에게 지급되는 모든 돈들 거의 대부분을 사회복지와 빈민 구제사업에 쓰고 그것도 모자라 정부에 순회비용을 신청해서 나온 것을 또다시 자선병원의 환자, 자선모임, 주운 아이들, 고아들을 위해서 쓰는 모습은 가히 성스럽기까지 했다. 옷 한 벌로 살아가고, 산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무서움의 존재였던 이들에게 다녀오고, 내일이면 단두대에 오를 죄인에게 하루 종일 위로하며 감옥에 함께 있다가 단두대 앞까지 가서 위로하고 자신은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단두대에 영혼이 상처받아 추스르는 데 여러날이 걸리기도 했다.
위고는 미리엘 주교가 단두대에 대한 혼잣말 형식으로 그 생각을 옮겨놓았다.
“그것이 그렇게도 흉측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의 법을 모를 정도로 신의 법에만 몰두하는 것은 잘못이다. 죽음은 오직 주님의 권한이다. 인간들은 무슨 권리로 이 알 수 없는 것에 손을 대는가?”
혁명 이후 공포정치 시기에 1만 7천여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을 형장의 이슬로 보냈던 단두대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무덤덤한 모습을 본다. 하지만 생전 처음 가까이에서 대했던 미리엘 주교는 영혼에 너무나 큰 상처를 입는다. 사실 처음에 모두가 이러했으리라. 하지만 너무나 많이 만나다보니 단두대에서의 죽음도 이제는 그냥 일상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살인이 일상이라니. ‘어찌 형벌이 살인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살인이 인간을 위한 살인이라는 탈을 쓰는 것일 뿐 인간을 죽일 권리는 강도에게도 법으로 가장하여 합법적이라 주장하는 권력에게도 그 어떤 것에게도 그럴 권리는 없다.
그는 자신의 집 문을 늘 열어놓게 했는데 그가 쓰는 성서 여백에 그의 생각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여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의사의 집 문은 결코 닫혀 있으면 안되고 목자의 집 문은 늘 열려있지 않으면 안된다.
또 다른 책, 위고는 그 책을 「의학철학」이라 쓰고 있는데 그 책 여백에는 의사에게 환자이듯 자신에게는 불쌍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환자라고 써놓았다. 그리고 이런 글도 있었다.
“그대에게 숙소를 달라는 사람에게 그 이름을 묻지 마라. 스스로 이름을 밝히기 거북한 자야말로 특히 피난처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야말로 19년의 형을 마치고 감옥에서 나온 장 발장이 노란 통행권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들통나서 그 마을에서 먹을 수도 잘 수도 없어 다시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해온 미리엘 주교는 장 발장에게 단지 저녁을 먹여주고 잠을 재워준 것이 아니라 진정한 새 삶을 시작하게 해준 것이다.
어디서고 자신을 받아준 곳이 없고 어디서고 자신을 쫓아냈다고 성당에서 나온 노파에게 하는 장 발장의 말에는 희망이 없었다. 그에게 노파는 이런 말을 한다.
“저 집 문도 두드려 보았소?”
“아니오.”
“거기 가서 두드려 보시구려.”
그만큼 미리엘 주교는 온 마을에 그의 말이 아닌 삶으로 다 죽어가는 노파에게도 문이 열려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을 바꿨고 ‘레 미제라블’의 대 서사시를 시작하게끔 만든 것이기도 하다.
위고가 주교와 곧 죽어가는 국민의회 의원 G와 대화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도 했는데 다음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본다.
“나는 당신을 칭찬하고 싶소. 당신은 적어도 국와의 사형에는 찬성하지 않았소.”
“나를 너무 칭찬하지는 마시오. 나는 폭군의 종말에 찬성했소.”
“그게 무슨 뜻이오?”
“내 말은 인간은 하나의 폭군을, 즉 무지(無知)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오. 나는 그 폭군의 종말에 찬성한 거요. 그 폭군은 왕권을 낳았소. 학문은 진리 속에서 얻은 권위인 데 비하여 왕권은 허위 속에서 얻은 권력이오. 그러므로 인간은 오직 학문에 의해서만 지배되어야 하오.”
“그리고 양심에 의해서.”
“그것도 마찬가지요. 양심이란 우리가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타고난 학문의 양(量)이오. 루이 16세로 말하자면, 난 반대했소. 나는 안 인간을 죽일 권리가 내게 있다고는 생각지 않소. 그러나 악을 절멸시킬 의무는 있다고 생각하오. 나는 폭군의 종말에 찬성했소. 다시 말해서, 여성에게는 매음의 종말, 남성에게는 노예 상태의 종말, 아동에게는 암흑의 종말이오. 나는 공화제에 찬성함으로써 이와 같은 것에 찬성한 거요. 우애와 화합, 오류와 편견의 붕괴는 빛을 만들어 내지요. 우리는 낡은 세계를 무너뜨렸소. 그리하여 비참의 도가니였던 낡은 세계는 인류 위에 나둥그러짐으로써 기쁨의 항아리가 된 거요. 그런데 오늘날, 1814년이라고 일컫는 저 불행한 과거가 되돌아 온 후 기쁨은 사라져 버렸소. 슬프게도 작품이 미완성이었다는 걸 나도 인정하고. 우리는 현실에서는 구체제를 무너뜨렸지만, 사상에서는 그것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었소. 폐습을 타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오. 풍조를 바꾸어야 하오. 풍차는 없어졌지만 바람은 아직 남아 있소.”
프랑스 혁명사에서 1814년 왕정복고의 시기다. 나폴레옹1세가 1812년 러시아 전투에서 패배하여 퇴각하고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 연합군에 패배하여 결국 1814년 황제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왕정복고가 이루어졌고 프랑스에서도 루이 16세의 동생인 루이 18세가 10여년 동안, 그 동생 샤를 10세는 1830년 7월 혁명으로 루이 필리프가 왕으로 세워지기 전까지 왕정복고 시대를 맞이하고 있고 국민의회 의원 G가 개탄하고 있는 현실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토록 어렵게 혁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왕정복고가 일어난 현실에 대해 그 의원의 입을 빌어 위고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나라 프랑스 혁명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이렇게 밝힌다.
“당신네들은 무너뜨렸소. 무너뜨리는 것이 유익할 수는 있소. 하지만 나는 분노 섞인 타도는 경계하오.”
“권리에는 분노가 있는 것이오, 주교님. 권리의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요. 그야 어쨌든,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하든, 프랑스혁명은 그리스도의 강림 이래 인류의 가장 힘찬 한 걸음이었소. 미완성이긴 했지. 그러나 숭고했소. 혁명은 모든 사회적 미지수를 끄집어 냈소. 혁명은 인간의정신을 온화하게 하고 진정시키고 위안하고 밝게 하였소. 혁명은 지상에 문명의 물결을 흘려 보냈소. 훌륭한 것이었소. 프랑스혁명은 인류의 축성식이었소.”
위고는 이 국민의회 의원 G와 미리엘 주교가 주고받는 물음과 대답을 통해서 혁명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주교는 마을에서 소외되었던 그의 죽음도 옆에서 지켜주었듯이 외롭게 버려진 아이들과 아낙네들, 심지어는 도둑들에게까지도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런 모든 삶의 끝자락에서 버려지고 희망도 없고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이었던 장 발장에게도 그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장 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일상으로 들어온 것일 뿐이었다. 늘 주교가 만나던 사람들 중 한사람일 뿐이었다.
《자베르》
너무도 법에, 이성에 철저해서 자신의 감성을 통제하지 못한, 이성 너머에 있는 삶의 그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 장 발장이 마지막에 자신에게 했던 그 일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자신이 확신하고 있던 모든 것이 송두리째 혼란을 겪게 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삶을 마감했던, 자신에게 그만큼 철저했기에 불행했던, 물론 그 자신은 불행이나 행복조차 별 의미를 못 느꼈음직한 사람이었다.
1832년 6월 혁명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혁명군에게 체포되었던 자베르를 스스로 처형시키겠다고 나선 장 발장에게 건네진 그를 데리고 나가서 묶여진 밧줄을 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자유요.”
장 발장이 이 말에 대해 자베르의 반응을 위고는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자베르는 쉽사리 놀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자제를 했어도 그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입을 떡 벌리고 가만이 서 있었다.’
기계처럼 차갑고 정확하고 감정의 흔들림, 아니 감정조차 없는 것처럼 살아왔던 자베르를 뒤흔들어놓았던 장 발장의 행동과 한마디. 장 발장을 죽어라 좇아다닌 자베르를 향한 그의 복수가 예상되었고 주머니에서 빼어든 칼에서 살기를 느꼈고 이제는 죽음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절망, 바리케이드에서 끌려나와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더미들로 가득찬 골목에서 법을 집행하는 자베르와 법의 집행을 받아온 장 발장이 이제는 혁명의 이름 아래 자베르는 처형 집행을 받는 자로, 장 발장이 처형 집행자로 뒤바뀐 암담한 어둠 속에서 자베르는 미리엘 주교를 만난 것이다. 늘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였던 주교처럼 장 발장도 그랬다.
밧줄을 풀러준 행동과 당신은 자유라는 말 한마디는 자베르 인생 전체를 흔들어놓았다. 그리고 장 발장은 자신이 혹시나 이 시가전에서 살아나간다면 포슐르방이라는 이름으로 옴므 아르메거리 7번지에서 살고 있을 거라는 것까지 알려준다. 자베르는 살짝 정신을 차려서 평소 자신이 하던 대로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어깨를 가지런히 하고 가다가는 다시 한마디 던진다.
“당신은 나를 난처하게 하는 군요. 차라리 나를 죽여 주시오.”
하고 공손하게 말하였다.
“가시오.”
하고 장 발장은 빈 하늘에 총을 쏘았다.
아마 자베르도 그 총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잡아서 형벌을 집행하고자 했던 그 사람이 맞는가? 맞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 당연히 자신을 당연히 죽였어야 장 발장이 앞으로 평탄하게 잘 살아갈 것이란 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인데 이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처형했다는 것을 혁명군에게까지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 총을 쏘아 소리를 내는 것도. 마들렌이란 이름으로 몽트뢰유쉬르메르의 시장으로 시민들에게 존경받던 시기에도 자신은 그를 잡아들여 감옥에 다시 넣었건만 도대체 이 사람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형집행은 무엇이고 법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그 법 집행을 하는 나는 또 무엇이고 내가 지금껏 생각해온 것들은 무엇인가?
나는 그가 이처럼 수도 없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의문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으리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시 파리의 하수도 출구에서 마리우스를 짊어지고 나오는 장 발장을 만났을 때도 여전히 그의 몸은 형 집행자로 움직였겠지만 머리는 혼돈상태였을 것이다. 마리우스의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을 도와주고 다시 집에 다녀오겠다는 장 발장과 함께 집 앞까지 와서는 집으로 들여보내고는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도대체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의문들에 묻혀서 끝내는 자신의 몸을 센강의 급류치는 소용돌이 속으로 던진다. 바로 1832년 6월 7일 그러니까 이틀에 걸친 6월 항쟁이 실패로 돌아간 이틑날이었다. 위고는 자베르의 마지막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무려 20여쪽에 달하는 생각들로 채우고 있다. 그 중에 몇몇 글을 담고자 한다.
자베르는 다리 난간에 턱을 괴고서 생각에 잠겼다.
하나의 새로운 것이, 하나의 혁명이, 하나의 대이변이 그 자신의 마음 속에서 지금 막 일어났고, 반성해야 할 만한 것이 있었다.
자베르는 지독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센 강에서 그러게도 뜻밖에 장 발장을 만났었을 때, 그의 마음 속에는 먹이를 다시 잡은 늑대 같은 것과 주인을 다시 만난 개 같은 것이었다.
그는 그의 앞에 곧은 두 개의 길이 보였기 때문에, 생전 하나의 직선밖에 결코 몰랐었던 그는 공포심에 떨었다. 그리고 이것은 가슴을 에는 듯한 고뇌였는데, 그 두 개의 길이 상반된 것이었다. 두 개의 직선 중 하나는 또 하나를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그 둘 중 어느 것이 진실한 것이었을까.
사적인 동기에 일반적 책임인 의무를 희생하고 역시 일반적이기도 하지만 아마 더 우월할지도 모를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 자기의 양심에 충실하기 위하여 사회를 배반하는 것, 이 모든 부조리한 것들이 실현되고 그런 것들이 그 자신 위에 쌓이는 것, 그는 그것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한가지가 그를 놀라게 했는데, 그것은 장 발장이 그를 용서한 일이고, 한가지가 그를 아연실색하게 했는데, 그것은 자베르 그 자신이 장 발장을 용서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을 찾았으나 더 이상 자신을 찾아낼 수가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위고는 말하고 있다. 앞에 ‘자신’은 진정한 인간 자신이었을 테고 뒤에 ‘자신’은 지금껏 살아온 모습의 자신이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자베르가 장 발장을 잡아가는 것은 자신이 장 발장보다 못한 것이고 장 발장을 용서하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죄수인 장 발장을 법 위에 올려놓는 것이라 둘 다 자베르로서는 평생 해본 적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아주 지독한 불명예로 철저하게 스스로 고립된 진퇴양난에 처한 것이었다.
그가 조금 전에 장 발장을 집에 들어가게 해 놓고 그 거리를 떠나온 것은 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자신에게 알맞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공적인 법 집행을 그만두고 사적인 빚을 갚는 일을 한 자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베르의 세계에 있던 법정, 집행 선고, 경찰, 관헌 말고 그 외의 것이 있다는 것을 자베르가 느끼는 순간 그는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바로 신성한 죄수! 사법도 손 댈 수 없는 죄수! 이것은 도대체 알 수 없는 존재지만 자베르에게는 사실이었다는 것이 더욱 그를 혼란에 빠트렸다. 그 모든 생애에서 그를 받치고 있었던 근간을 흔들어 놓았고 또한 자신 위에 거대한 짐을 올려놓은 것 장 발장이었다. 그리고 자베르는 장 발장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표현은 범죄자나 징역수라는 말만 빼고는 미리엘 주교의 삶과 거의 비슷하다.
자선을 베푸는 범죄자, 동정심 많고, 온화하고 돕기를 좋아하고 관대하고 악을 선으로 갚고 증오를 용서로 갚고 복수보다 연민의 정을 선호하고 적을 파멸시키기보다 자신을 파멸시키기를 더 좋아하고 저를 때린 자를 구조하고 덕 위에서 무릎을 꿇고 인간보다 천사에 더 가까운 징역수! 이것이 자베르가 생각하는 장 발장이었다.
자베르에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은 직선적인 의식의 탈선이고 영혼의 일탄이며 저항할 수 없고 직선으로 질주하다가 신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곧음의 부서짐이었다. 꼿꼿한 철로 위를 달리는 철마에서 빛을 받고 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기독교 신자들을 잡으러 가다가 예수의 빛에 돌아섰던 그것을 자베르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위고는 인간 안에 있으면서 참된 양심이 되어 허위에 반항하는 신, 햇살에 태양을 잊지 않게 하는 명령, 진정한 절대가 허구의 절대와 직면할 때 영혼에게 전자를 인정케하는 명령, 반드시 살아남는 인간의 마음 등 불가사의한 사람의 마음을 자베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자베르는 사회를 지키는 개 같은 가호자였던 그 자신은 패배하고 쓰러졌는데 그 모든 폐허 위에서 머리에 푸른 모자를 쓰고 이마에 후광을 받고 있는 한 사나이가 서 있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영혼 속에서 보고 있었고 그것을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샤를레 광장의 초소로 돌아와서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편지에 십여가지 경찰과 관련된 폐단을 지적하는 편지를 유언장을 대신하여 쓰고는 다시 센 강의 다리로 돌아와 몸을 던진다. 위고는 자베르가 다리에서 바라본 강물의 모습을 음침함과 거대함, 공포와 구슬픈 속삭임으로 표현하면서 자베르의 심경을 마지막으로 그려내고 있다.
참 엄청난 인간의 내면 묘사다. 어떻게 그런 일로 사람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극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물론 위고 또한 자베르를 죽일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궁색한 변명을 대고는 있지만 그 변명이 너무나 우리를 사로잡아 오기에 뭐라 대꾸할 수조차 없다.
나는 결국 자베르의 죽음을 이렇게 본다. 인간의 오만한 신념이 불러온 절망적인 혼돈의 끝.
《팡틴》
위고는 1817년에, 그러니까 장 발장의 출소 후 2년째의 모습에서 젊은 청년들과 여인들의 사랑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파부리트를 사랑한 파부리트, 달리아를 사랑한 리스톨리에, 제핀을 사랑한 파뫼유, 그리고 팡틴을 사랑한 톨로미에스. 위고는 이 네 사람이 당시 파리에서 태어나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묘사하면서 당시 젊은이들의 시대상을 약간 보여주고 있다. 톨로미에스는 이 네 친구들의 우두머리였고 부자였다. 톨로미에스는 팡틴의 첫사랑이었고 코제트의 아버지였다.
그러면서 대조적으로 팡틴을 소개하고 있다. 서민의 밑바닥에서 피어난 사람들 중에 하나라고. 그 사회에서 도대체 알 수 없는 아주 짙은 어둠 속에서 나와서 이름도 없고 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녀. 그녀는 바로 장 발장이 마들렌으로 살면서 공업으로 도시를 일으켜 시장까지 되었던 몽트레유쉬르메르에서 태어났다.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고 이름도 지나가던 사람이 부르니 그것이 이름이 된 것이다. 그녀가 태어난 시기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이 조금 지나서인 듯하다.
열 살에 도시를 떠나 근처 농가에서 고용살이를 했고 열다섯 살 때 파리로 돈벌이를 하러 온 것이다. 그녀는 몸의 굶주림을 위해 직공으로 일을 했고 마음의 굶주림을 위해 사랑을 했다. 그가 바로 톨로미에스였다.
이렇게 한량인 네 명의 남자와 바람난 네 명의 여자들의 꿈을 한참이나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정말 어긋난 만남으로 한량들은 정말 숱한 말로 시대를 논하다가 빈정대고 사랑을 말하는 것 같았으나 결국은 여인네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러가는 듯 하다가 편지 한 장 던져주고는 떠나가버렸다. 그리고 팡틴은 울었다. 정말로 사랑한 한 여인과 그와 잠깐 사랑으로 놀았던 남자의 사랑놀음으로 아이들은 그렇게 태어난다. 팡틴이 태어나듯 코제트가 태어난 것이다. 다만 가련한 코제트에게는 슬픈 세월을 견뎌 온 팡틴이 있었지만 가엾은 팡틴에게는 그렇게 슬픔을 버틴 팡틴이 없었다는 것이 더욱 슬펐지만. 어쨌든 팡틴은 코제트보다 슬픈 인생을 살았고 코제트의 모든 슬픔을 자신이 짊어지고 가길 원해서 결국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가서 일을 해서 돈을 벌었지만 사회는 코제트를 그녀 곁에서 슬픔을 이겨내도록 두지 않았다.
《코제트》
코제트와 팡틴이 다른 것은 코제트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는 것을 그 이름으로 알고 있지만 팡틴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데서 그 아픔이 더 했다. 물론 뻔히 그 이름이 나오면서도 자신의 아들 셋을 버린 비정한 테나르디에와 그 부인도 있긴 하지만. 가난한 서민의 밑바닥에 있던 팡틴의 딸로, 도대체 아빠가 누군지 알 수도 생각조차 할 수도 없게 떠나버린 톨로미에스의 딸로 태어난 코제트.
잘 자라다가 팡틴이 몽트레유쉬르메르로 돌아가는 길에 묵은 여관집 주인에게 코제트를 맡기면서 코제트와 팡틴의 삶이 더 꼬이고 힘들어졌다. 도대체 있는 놈들이 없는 사람들에게 온갖 것들을 빼앗아가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개콘 ‘정여사’ 코너에서 외치는 마지막 대사
“있는 사람들이 더해!”
이것이 우리 사회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번 연수 때 백기완 선생님께서 갈라진 것은 남북으로 허리만 잘린 것이 아니라 있는 것들과 없는 사람들로도 갈라져있는 것이라 했듯이 당시도 그랬다.
다만 온갖 모진 삶을 살다가 팡틴이 죽으면서 코제트를 장 발장에게 부탁했고 그 약속을 평생 지켰던 장 발장에 의해 코제트의 이후 삶이 달라졌기에 행복한 결말을 보게 됬지만 당시 수많은 서민들의 삶은 아찔한 삶 그 자체였다는 것을 위고는 말해주고 있다.
엄마는 부자였던 한량을 만나 하룻밤의 사랑을 했지만 코제트는 의식이 있는 마리우스를 만나 사랑을 한없이 하고 결국 결혼까지 해서 가정을 이루는 데서 다른 삶을 살았다. 자신은 비참하게 삶을 마쳤지만 자신의 딸이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도 행복한 것이 엄마의 삶일지도 모른다.
《가브로슈》
위고는 그의 부모가 그를 발길로 걷어차 인생 속에 던져 버렸다고 말하고 그는 당당하게 집을 나가버렸다고 하였다. 위고는 가브로슈를 말하기 전에 파이의 부랑자들을 한참동안이나 그려내었고 그 다음에 가브로슈를 등장시킨다. 위고는 가브로슈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선스럽고 얼굴이 파리하고 날쌔고 예민하고 장난꾸러기였으며 강인하면서도 병약해 보였고 거리를 왔다 갔다 쏘다니고 노래를 부르고(사실 가브로슈의 노래는 6월 항쟁이 시작되는 시위 행렬 사이에서도 불렀고 바리케이트 앞에서 싸우는 순간에도 노래를 불렀고 죽음을 바로 코 앞에 둔 순간에도 노래를 불렀다.) 구슬치기를 하고 개천을 뒤지고 조금 훔쳤으나 고양이와 참새들처럼 즐겁게 훔쳤으며 사람들이 개구쟁이라 부르면 우었고 부랑자라고 부르면 성을 냈고 집도 없고 빵도 없고 불도 없고 사랑도 없다 했다.
하지만 자유로웠기 때문에 유쾌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가엾은 인간들이 어른인 때는 거의 언제나 사회질설의 맷돌이 부닥쳐 와 그들을 부스러뜨려 버리지만, 어린아이인 동안에는 작기 때문에 모면한다. 아주 작은 구멍만 있으면 그들은 살아난다.”
위고는 당시 극빈계급의 가장 말단으로 진창을 청소하는 하수 청소부와 누더기를 줍는 넝마 장수로 물질문명의 끝을 말하고 있다.
가브로슈는 6월 항쟁의 바리케이트 앞에서 너무나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면서 죽어갔다. 자신과 함께 했던 시민군들을 위해 죽어있는 정부군의 총과 약포가 가득 들어있는 탄약 주머니를 챙기기 위해 바리케이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굳이 나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ABC의 벗들》
독일에서 1809년에 조직된 애국 학생들의 결사인 투겐트 분트, 19세기 초에 이탈리아의 통일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조직된 결사인 카르보나리같은 광범한 지하조직체들은 이소설의 배경이 되는 1831년에는 많지 않았으나 파리에도 작은 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바로 1832년 6월 항쟁을 일으키는데 앞장섰던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함께했던 ABC의 벗들이란 모임이 있었다.
ABC(아베세)라는 것은 Abaisse(아베세)로서 민중이라는 뜻으로 두 말의 소리가 같은 데서 나온 말장난으로 Abaisse는 ‘낮추어진 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초기 상태의 비밀결사로 파리의 코랭트라는 술집과 뮈쟁이라는 작은 다방에서 모였고 앞에서는 노동자들이 뒤에서는 학생들이 주로 모였다. 특히 주요인물들로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앙졸라와 콩브페르, 쿠르페락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위고는 앙졸라와 콩브페르, 쿠르페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앙졸라는 필연적으로 전쟁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 혁명의 논리이고 원칙이며 올바른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고 준엄한 남자였다.
콩브페르는 필연적으로 평화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혁명의 철학이고 역사에는 슬기로운 사람으로 기록되었을 것이고 온화한 인간이었다.
쿠르페락은 앙졸라가 수령이고 콩브페르가 지도자라면 쿠르페락은 그 결사의 중심이었다고 표현한다. 그는 한없이 부드러웠고 원만함과 밝은 표정을 다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들 셋을 포함해서 그 외 많은 친구들에 의해 6월 항쟁에서 한 바리케이트가 이끌어졌다.
《마리우스》
자신의 아버지 퐁메르시에 대한 이야기를 성당의 한 집사로부터 듣고는 왕당파였고 나폴레옹을 부오나파르트로 부르며 비아냥거리는 질노르망 할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나와서 방황하다가 길에서 만나 어줍잖은 말로 낚은 레에글 드 모를 만나 쿠르페락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이 모임에 함께 하면서 서서히 6월 항쟁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마리우스의 아버지 퐁메르시 남작은 육군 대령으로 25년간을 야전에서 생활했고 나폴레옹과 함께 있었던 워털루에서 남작 작위를 받았고 그곳에서 연합군에게 패했다. 장인 질노르망은 지독한 왕당파로 나폴레옹을 미워했으나 자신의 딸과의 결혼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리우스 어머니는 아이를 낳자마자 죽었고 질노르망은 퐁메르시에게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넘겨주지 않으면 유산을 상속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아이를 빼앗아 왔다. 그리고 손자에게 지독히도 아버지를 못되게 평하는 말들을 늘어놓거나 아예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버지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은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에게 다녀오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부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완고한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공화파들의 좋지 못한 것만을 들어왔고 그 선두에 서있는 나폴레옹과 그를 좇았던 그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가게 된다.
그 아버지가 그에게 남작 작위를 물려준다는 것과 자신을 워털루 전투에서 살려낸 테나르디에에게 무엇이든 해주어라는 편지 속에서 혼란을 느낀다. 결국 그는 아버지가 자주 가는 성당에서 마뵈프 집사를 만나는데 그로부터 전해들은 아버지를 알고서는 지금껏 거부했던 공화제니 제국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발견에 들어갔다. 아버지를 새로 사랑함과 동시에 그것은 할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이끌어냈다. 이로써 마리우스는 할아버지 집을 나오게 된다. 코제트를 만나서 결혼 승낙을 받으러 다녀가기 전까지.
결국 그는 이 혼란의 항쟁 전에 코제트를 만나게 되고 사랑을 나누면서 코제트의 유일한 사랑을 받아왔던 장 발장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다가 결국 결혼에 이른다.
《테나르디에》
마리우스는 나중에 아버지 생명의 은인인 테나르디에를 범죄의 현장에서 만난다. 아버지 생명의 은인에 대한 은혜 갚음과 범죄를 용납할 수 없는 데 대한 극도의 번민을 위고는 자베르의 그것만큼이나 극심하게 표현하고 있다. 결국 그것을 장 발장이 깨버리긴 했지만 결국 마리우스는 테나르디에를 알고는 은혜 갚기를 그만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나쁜 놈인 테나르디에는 마리우스와 장 발장에게 두 번에 걸쳐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된다. 한번은 장 발장이 6월 항쟁의 끝에 거의 다 죽어가는 마리우스를 들쳐엎고 파리의 하수도를 헤매고 죽음의 길을 넘어섰을 때 막막하게 닫혀진 철장 문을 열어준 것이 그였고, 장 발장의 고백을 듣고 코제트를 장 발장으로부터 떨어트리고 멀리하려할 즈음 장 발장이 자신을 살려주었고 코제트에게 주었던 어마어마한 돈 또한 훔친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벌어들인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 또한 테나르디에였으니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에서 악인이요 그들의 삶이요 쓰임이다. 마리우스에게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갖고 찾아온 테나르디에에게 아버지 생명을 구한 값과 더불어 장 발장에 대한 정보에 대한 대가로 큰 돈을 준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것을 가지고 뉴욕으로 건너가 노예상을 하게 된다. 알 수 없는 것이 악인의 삶이다.
위고는 그의 삶은 실패한 시민이라고 했다. 그리고 악인이 손을 대면 선행을 썩게 하고 거기서 나쁜 것이 나오게 하기에 충분하다 했는데 결국 그는 새로 건너간 뉴욕에서 노예상을 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물론 나머지 생은 나와있지 않으나 참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에포닌》
참 사악한 부모 밑에서 순결한 여인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수 없는 슬픔에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없어 연결시켜주고 결국 그녀는 그가 죽을 위기에 자신의 몸을 던져 살려내는 순결하면서도 가련하고 슬프고 위대한 인생을 살아냈다.
그녀가 사랑한 마리우스. 그러나 너무나 슬프게도 그는 이미 코제트라는, 예전에 자기 집에서 몸종노릇을 하던 그 코흘리개였고 못난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가슴 속에만 간직한 채 자신의 사랑을 위해 온 마음과 온 몸과 온 삶을 다 던지는 그 사랑이야말로 어쩌면 코제트보다 마리우스보다 한차원 더 높은 미리엘 주교의 받아줌과 믿어줌, 장 발장의 한없이 자신을 낮추었던 겸손보다 더 높은 사랑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동생 가브로슈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떠나갔던 여린 마음의 여인.
난 이 이야기에서 코제트보다 에포닌을 더 기억하고 싶다. 그 애절한 사랑의 소녀를.
《장 발장》
이 소설의 주인공. 위고가 그토록 모진 삶을 그려내려고 했던 사람. 그가 미리엘 주교의 집에 들어와서 보여준 노란 통행권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장 발장, 석방된 징역수, 출생지……, 19년간 징역살이한 자임. 가택 침입죄 및 절도죄로 5년, 네 번의 탈옥기도로 14년, 극히 위험한 인물임.’
장 발장의 감옥에서 삶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위고는 장 발장이 살았던 감옥에서 삶을 미리엘 주교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붉은 죄수복에 둥그런 쇠 차꼬, 잠자리는 널빤지, 추위와 더위, 노동, 죄수들, 몽둥이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쇠사슬을 두 겹으로 채우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토굴 속에 집어넣고, 누워있는 환자에게까지 쇠사슬을 채우고, 개들이, 개들이 더 행복하지요! 그렇게 십구년간을요! 제 나이 마흔 여섯입니다. 지금은 이 노란 통행권! 이렇습니다.”
이 말에 미리엘 주교는 이런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어찌보면 앞으로 장 발장이 살아갈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느낌이다.
“당신은 슬픈 곳에서 나오셨군요. 들어보시오. 하늘에서는 올바른 사람 백명의 흰옷보다 회개한 죄인 한 명의 눈물 젖은 얼굴에 더 많은 기쁨이 있을 것이오. 당신이 그 고통스러운 곳에서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생각을 가지고 나온다면, 당신은 가엾은 사람이오. 반면 거기서 호의와 온정과 화합의 생각을 가지고 나온다면 당신은 우리들 중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이오.”
장 발장이 감옥에서 나와서 이곳 미리엘 주교의 집에 들어오기까지 그는 감옥에서 비참함보다 어쩌면 더 잔인한 거부를 받았다.
“툴롱에서부터 나흘을 걸었습니다. 오늘은 120리를 걸었습니다. 오늘 저녁 이 고장에 도착하여 어느 여관엘 들렀는데, 제가 시청에서 제시했던 노란 통행권 때문에 저를 쫓아냈습니다. 그렇게 제시해야만 했습니다. 또 다른 여관엘 들렀더니 ‘나가라!’라고 했습니다. 이 집도 저 집도 다 그랬습니다. 아무도 저를 원치 않았습니다. 형무소에도 갔지만 간수가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개집에도 들어갔지만, 개도 사람처럼 저를 물어뜯고 쫓아냈습니다. 마치 개도 제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들판으로 나가 총총한 별빛 아래서 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별이 없었습니다. 비가 올 것 같은데 비가 오는 걸 막아 줄 하느님도 없다고 생각하며 어느 집 문 아래 구석이라도 찾아보려고 다시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저기 저 광장의 돌 위에서 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친절한 부인께서 이 댁을 가리키면서 ‘저 집 문을 두드려 봐라.’ 그래서 두드린 겁니다. 여기는 무엇입니까? 여관입니까? 돈은 있습니다. 적립금이죠. 형무소에서 십구 년간 노동해서 번 돈 109프랑 15수가 있습니다. 돈은 치르겠습니다. 그까짓 게 무슨 문제겠습니까? 돈은 있으니까요. 저는 몹시 피곤합니다. 120리나 걸었거든요. 배가 몹시 고픕니다. 나가지 않고 그냥 있어도 될까요?”
사람으로부터도 거절당하고 그렇게 지난 19년간 자신을 가둬두었던 형무소로부터더 거절당하고 짐승으로부터도 거절당하고 그리고 별빛 하나 없는 하늘로부터도 거절당한 참으로 불쌍한 사람. 위고는 장 발장을 통해서 그들을 말하고 있었다.
레 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
19년 동안 감옥에서 노동의 대가로 벌어들인 돈은 109프랑 15수였다. 미리엘 주교 앞으로 1년 동안 나라에서 주는 돈이 한해에 15000프랑이었고 미리엘 주교가 자선을 위해 다 쓰고 자신을 위해 남긴 1000프랑과 그 누이가 받는 연금이 500프랑으로 한해를 살았는데 한달로 치자면 125프랑이었으니 장 발장이 열아홉해 동안 벌어들인 돈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다.
위고는 미리엘 주교 집에서 저녁을 먹고 바로 하얀 침대보 위에서 잠에 떨어진 잘 발장에 대해 미리엘 주교가 잠이든 12시부터 장 발장이 일어나기 2시전까지 장 발장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장 발장은 브리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는 글을 못 배웠고 형무소에서 배웠다. 커서는 가지치는 일을 했는데 이것은 그의 아버지의 일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산욕열을 잘못 치료해서 죽었고 아버지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들딸 일곱을 두고 과부가 된 누나 하나뿐이었다. 남편이 있을 동안에는 장 발장을 데려다 키웠지만, 남편이 죽은 뒤에 남은 일곱 살 큰 아이로부터 한 살배기 막내까지 남은 아이들을 결국 장 발장이 키우게 된다.
1795년의 혹독한 겨울, 그 집에 빵이 없었다. 그것이 장 발장의 시작이었다. 결국 그는 파브롤의 성당 앞 광장 쪽 빵집에 그 주인이 막 잠을 자려는 순간 진열대 유리창을 깨고 빵 하나를 집어갔는데 얼마 못 가서 주인에게 잡혀 법정으로 보내졌다. 당시 그에게 총이 한자루가 있었는데 이것이 그에게는 불리했다. 비적이라는 밀렵꾼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사실 도회지에 있는 끔찍한 살인자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에도 당시에는 같은 취급을 당했다. 위고는 짬을 내서 숲 속에 살고 있는 밀렵꾼들이 인간의 사나운 면을 키워주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면을 파괴하지는 않는다고 말함으로 장 발장을 변호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당시 법정이 받아들일 리는 없었다.
목에 걸린 쇠고리의 나사못을 기둥에 대고 박느라 머리 뒤에서 망치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동안, 그는 울고 있었고 눈물에 목이 메어 말도 못 했다.
이것이 그의 형무소 생활의 시작이었다. 당시 법정은 가택 침입죄과 절도죄로 5년형을 선고하고 툴롱으로 보내졌다. 장 발장이란 이름도 지워지고 그에게는 <24601호>라는 죄수번호로만 불리워졌다. 그에게서 누나와 일곱명의 조카들도 그 이름이 지워지듯 잊혀져갔는데 한번 들은 소식에 의하면 누나는 인쇄소에서 아침 6시에 나가 일하는데 6명의 아이들은 온데 간데 없고 막둥이 사내 아이 하나만 데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없어진 6명의 아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고 그 막둥이 인쇄소 바로 옆에 7시에 문을 여는 학교에 있지만 그렇게 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형무소에서는 일정하게 탈옥하는 순서가 정해진다. 장 발장은 4년째에 순서가 돌아와 그 친구들이 도와주면서 탈옥을 시도해서 나갔으나 이틀째 저녁에 잡혀 들어와 3년이 추가되어 8년형이 되었고 6년째 다시 탈옥할 순서가 되어 나섰으나 그날 밤에 잡혀 들어와 자신을 붙잡은 간수들에게 저항했다는 이유로 가중형이 되어 5년이 추가되어 13년형, 10년째에 다시 차례가 되었으나 또 다시 붙들려 3년형이 추가되어 16년형, 13년째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탈옥을 시도했으나 4시간만에 붙들려 들어와 3년이 추가되어 모두 19년형을 살았다.
그는 1815년 10월에 석방되었다. 그해는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지면서 몰락하고 왕정이 들어선 시기이다. 위고는 당시 영국 통계에 절도 5건 중에 4건이 굶주림에 그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
장 발장이 선택의 기로에서 지난한 고민을 한 것이 몇 차례 있다.
첫 번째 고민은 우선 온 우주가 자신을 거절하는 순간에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람으로 대접해 주었던 사제(장 발장은 자신이 붙들려 되돌아오기 전까지 그렇게 알았다)의 집에서 자신이 19년 동안 벌어들인 돈보다 더 비싼 은그릇과 은수저, 어찌보면 자신의 것을 훔쳐간 정부의 것을 다시 되찾아오는 것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그것들을 훔쳐 나올 것인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손 안에 넣으라는 내면의 소리에 그대로 몸이 응답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그토록 인정해 준 그곳에서 그냥 나올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고민에 대해 미리엘 주교는 나이 든 늙은이의 몸을 할 수 있는 한 재빨리 장 발장과 그를 잡아온 헌병들에게 다가가서
“아! 당신이구려! 당신을 보니 기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이오? 나는 당신에게 촛대도 드렸는데 그것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은이니, 200프랑은 능히 받을 수 있을 거요. 어째서 그것도 그 식기들과 함께 가져가지 않았소?”
이 은촛대와 은식기들은 미리엘 주교가 그 많은 돈과 재산들을 다 나누어 주어도 놓아두었던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그리 내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주교라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 주교도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과연 이 자가 지금 놓아준다면 나중에 더 큰 죄인이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지금이라도 잡아서 형무소로 보내 더 사람으로 만든 다음에 내보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위고는 간단한 말로 이 고민을 끝내는 듯하다. 어쩌면 이 고민은 그저 나의 고민일 수도 있겠지만.
“오래전부터 그 은그릇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내 잘못이었소. 그건 가난한 사람들 것이오. 그런데 그 사내는 어떤 사람이었지? 틀림없이 가난한 사람이었소.”
그리고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장 발장이 그토록 평생 동안 간직하고 죽음에 이르면서까지 함께 있었던 은촛대가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내가 하는 그런 고민은 사람을 대하는 썩 좋지 못한 태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미리엘 주교는 장 발장에 대해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그런 사랑 말이다.
“잊지 마시오. 결코 잊지 마시오. 이 은을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쓰겠다고 내게 약속한 일을.”
하지만 장 발장은 주교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 거요.”
그래서 장 발장은 자신이 몽트뢰유쉬르메르에서 세운 공장에 일하는 조건은 ‘정직한 사람’이었고 그 자신도 그렇게 살기 위해 애썼다.
두 번째 고민은 프티제르베라는 소년의 40수짜리 은전 한 닢과 관계된 일로 어찌보면 고민이라기보다는 워낙 벼락같이 벌어진 일이라 뒷 수습이 힘들어진 일이었다. 그가 미리엘 주교 집을 떠나 들판으로 무작정 걷다가 허기지고 힘들어 잠시 쉬고 있는 곳으로 소년이 손에 올려놓고 장난치던 동전이 떨어지면서 장 발장 발밑에 와 멈추던 것을 발로 밟으면서 생긴 고민이다. 그냥 몸이 익숙한 대로 그는 그 소년에게 화를 내면서 그냥 쫓아버렸다. 그리고 한참 멍하니 있다가 자신의 몸이 자신이 시키지도 않을 일을 했다는 듯이 당황스러워하며 뒤좇아갔으나 찾을 수 없었고 만난 신부에게 5프랑짜리 주화 두 닢을 주었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하면서.
세 번째 고민은 이렇다. 마들렌 시장으로 있을 때 상 마티외라는 늙은이가 사과 하나를 훔치다가 붙들렸는데 형무소에서 장 발장과 함께 감옥에 있었던 브르베라는 사람으로부터 장 발장이라는 말을 듣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말을 자베르가 마들렌 시장, 그러니까 장 발장에게 건넸다. 사실 자베르는 마들렌을 장 발장으로 확신에 차서 잡으려고까지 했는데 이렇게 그 앞에서 자신의 실수를 굳이 말했던 것은 마들렌의 양심을 건드리려고 한 것이다. 마들렌 시장을 장 발장으로 의심하던 자베르 경감이 존경받는 마들렌 시장을 죄수 장 발장으로 오인했다는 용서를 빌고 떠나가는 자베르 뒤에서 장 발장은 고민했다. 과연 그 재판정으로 나가서 상 마티외가 아니라 자신이 장 발장이라고 밝혀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가 장 발장으로 재판을 받으면 이제 자신은 그 지긋지긋한 죄수의 이름 장 발장으로부터 해방되고 죽을 때까지 마들렌 시장으로 존경받는 인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데서 오는 고민이다.
네 번째 고민은 코제트를 자신만의 사랑에서 마리우스에게 옮겨가게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온갖 힘든 일을 코제트에게 시키면서 그 엄마 팡틴에게는 많은 돈을 뜯어냈던 테나르디에 부부에게서 엄청난 돈을 주면서 팡틴과 한 약속을 지키기 시작한 그 이후로부터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었고 관심이었는데 그 코제트가 자신이 아닌 한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느꼈고 코제트를 사랑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남자 아이를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고민에 빠졌다. 자신에게서 코제트가 떠나간다면 그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데서 오는 박탈감, 마리우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컸던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한 답을 6월 항쟁 바리케이트 안에서 죽어가는 마리우스를 끄집어 내 등에 들쳐업고 그 무시무시한 파리의 하수도를 빠져나와 그 할아버지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들고 코제트와 함께 마리우스가 있는 질노르망의 집를 찾아가 결혼에 대한 말을 나눴다.
다섯 번째는 마리우스에게 자신의 과거, 자신이 엄청난 수레에서 꺼내주고 파리의 정원사로 살게 하고 자베르에게 쫓기던 순간에 도움을 받았던 포슐르방의 이름으로 살았던 자신이 그 옛날 장 발장이라고 말하였다. 마리우스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코제트의 아버리로 알고 있었던 장 발장과 자신이 사랑하는 코제트 사이를 점점 떨어뜨리려는 일들을 벌였다. 그 상황에서 장 발장은 서서히 코제트로부터 자신을 멀어져가게 했는데 그것은 참으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결국 그는 그 고통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그렇게 자신이 사랑했던, 자신의 온 삶을 다 들여 사랑했던 코제트였기에 누구보다도 코제트에게만큼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권리마저 코제트와 그 아이가 사랑하는 마리우스의 앞날을 위해 포기했다. 너무나 답답한 순간이었다. 결국 그렇게 마리우스와 코제트, 그리고 자신을 힘들게 했던 테나르디에가 이 모든 것을 풀어내는 참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서 그는 코제트 앞에서 죽어간다.
그에게 남은 것은 미리엘 주교로부터 받았던 은촛대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벽장에 남겨놓은 500프랑, 그리고 코제트의 작은 드레스. 이것이 다였다. 마치 미리엘 주교의 삶이 그러했듯이. 미리엘 주교가 그에게 대한 친절함과 받아들임이 그를 위대한 성자로 만들어놓았다.
사회가 그를 거절하고 거친 죄악으로 몰아쳐갔을지 몰라도 그에게 내민 하나의 손이 그를 성자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은 인간이 내민 손이 끌어올린 인간성의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인간의 모진 손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대작으로 만난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이제야 손을 놓게 된다.
읽는 내내
“몇 권 읽으세요?”
하고 묻다가 다 읽고 이 글을 쓰게 되니
“아빠는 아직도 써요?”
하는 찬솔이 말도 이젠 끝이다.
정말 기나긴 여정이었다.
처음에 학교에서 보고서 위고가 책 머리에 쓴 글을 읽고는 매력에 빠져 한번 달려들어보자 해서 읽었는데 거의 여섯달을 보냈다. 그래도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시민 혁명, 그것을 굳이 프랑스 혁명이라 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라는 나라의 위대함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있었던 그 하나하나 시민들의 위대함을 느끼고자 함이다. 단지 프랑스라는 나라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결국은 자국의 국수주의와 다른 외국의 좌절이나 부러움밖에 남는 것이 없다. 위고도 당시 시민들도 그런 결과를 결코 원하지 않았으리라.
인간의 변화와 변하지 않음, 이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끝에서 끝으로 옮겨간 것 치고는 위고가 너무나 잘 그려냈다. 거기에 역사적 배경까지 한껏 펼쳐놓고서 사람들을 세워놓은 모양새가 참 기막히다. 왕정과 공화정 사이에 펼쳐지는 진보의 역사를 배경으로 나타나는 온갖 인간 군상들은 오늘날도 여전하다. 불쌍한 서민들, 서민들 중에서도 그 한쪽 구석을 간신히 차지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 그들에게서 무엇을 뜯어낼 것이 있다고 그들에게조차 뺏어가는 도둑놈들, 그리고 그 모두를 법적인 권력을 휘두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아가는 뻔뻔한 큰 도둑놈들 ……, 그리고 그 모든 억압과 착취 속에서 한 인간의 사랑에 한 인간이 변해서 성장로 삶을 끝내는 모습, 이것들이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을 그대로 그려놓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회와 법, 정치, 경제, 종교, 문학, 학문 등 온갖 것들을 모두 옮겨놓고 자신의 생각을 써놓은 위고의 엄청난 힘, 그것을 보았다.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고맙다.
끝으로 위고가 이 책 첫머리에서 쓴 말을 그대로 옮겨놓으며 그의 정신과 마음을 담아두고자 한다.
“법률과 풍습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문명의 한복판에 지옥을 만들고 인간적 숙명으로 신성한 운명을 복잡하게 만드는 영원한 사회적 형벌이 존재하는 한, 무산계급에 의한 남성의 추락, 기아에 의한 여성의 타락, 암흑에 의한 어린이의 위축, 이 시대의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계급에 사회적 질식이 가능한 한, 다시 말하자면, 그리고 더욱 넓은 견지에서 말하자면,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 같은 종류의 책들도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간단하게 레 미제라블의 줄거리를 쓰려고 했는데 이젠 좀 지쳤고, 그렇다고 나중에 쓰자니 이렇게 기억과 감동이 생생할 때 정리해 놓아야겠다는 협상 끝 인터넷에 있는 줄거리를 가져와서 나름 지우고 덧붙이고 해서 정리해놓는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던 1796년, 장 발장은 홀로 된 누이와 배고픔 속에서 울부짖는 7명의 어린 조카들을 위해 한 조각 빵을 훔치다 체포되어 5년 형을 받는다. 복역 중 장 발장은 탈옥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형별만 누적되어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낸다.
형기를 마친 후 교도소 생활에서 해방 되어 알프스 산 밑 작은 소도시 디뉘 거리에 나타난다. 그가 죄수였다는 소문이 나돌아 아무도 그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교도소에서 조금씩 모은 약간의 돈이 있음에도 매정하게 내쫓긴 것이다. 심지어 개집에서도 사나운 개에게 쫓겨나고 만다. 더 걸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나는 개보다도 못한 신세로구나!’ 탄식하면서 성당의 돌로 만든 의자 위에 자려고 눕는다.
그때 지나가던 늙은이가 일러준 성당 사제관 문을 두드려 미리엘 주교로부터 따뜻한 음식과 쉴 곳을 제공받는다. 처음으로 따뜻한 음식과 깨끗한 시트가 깔린 침대에서 쉴 수 있었지만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사제관의 은접시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게 잡혀온다. 그런데 미리엘 주교가 경찰에게 은접시는 그에게 준 것이라 하면서 은촛대도 주었는데 왜 이것은 놓아두고 갔느냐고 하여 위기를 벗어난다. 미리엘 주교는
“이것을 가져가라, 그리고 정직한 인간이 되어마오. 네 영혼은 내가 사서 하느님께 바쳤다.”이 사건으로 인해 장 발장의 증오심과 반항적 기질은 녹아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반성의 눈물을 흘리고 미리엘 주교 집을 나온 장 발장은 다시 유혹에 빠져 가난한 소년이 가지고 있던 은전 한 닢을 도둑질하게 되고 도둑질 한 그 순간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통곡 한다.
이후 2년여 세월이 흘렀다. 장 발장은 이름을 마들렌이라 고치고 노력 끝에 공장을 세우고 노동자에게 많은 급여를 주며, 학교와 병원을 짓는 등 사회사업에 힘을 쏟게 된다. 시민들의 존경을 받게 된 마들렌은 시장으로 여러차례 추대되었으나 거절하다가 결국에는 받아들이게 된다.
그의 공장 여공 중에 팡틴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공장에 취직하기 위하여 어린 딸 코제트를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맡기나 그들은 코제트를 학대하면서 팡틴 부인의 급여를 양육비로 몽땅 빼앗아 간다. 딸의 양육비를 벌기 위해 매춘부로 몸을 팔게 된 그녀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마들렌 시장에게 구출된다.
마들렌은 코제트도 구해 줄 것을 약속하나 불행히도 상 마르티이외 노인이 앞서 소년의 돈을 훔친 장 발장으로 몰려 재판을 받게 된 사건을 알게 된다. 마들렌은 아무 죄도 없이 교도소로 가야 하는 노인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시장의 지위와 영광을 가지고 행복한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장 발장임을 밝히고 벌을 받을 것인가’ 마음속으로 양심과 싸우던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진범이라고 밝힌다. 마들렌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팡틴 부인은 숨을 거둔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장 발장은 코제트를 구출하기 위해 항구에서 위험에 빠진 노역자를 구하고 자신은 잘못해서 바다에 떨어진 척하고는 탈출하여 테나르디 집에서 혹사와 학대받고 있던 코제트를 구출하여 파리 교외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쟈베르 경감에게 추적당하게 되어 옛날 자신이 거대한 수레바퀴를 들어올려 그 아래 깔려있던 포슐르방 노인을 구해 파리의 정원사로 보냈는데 그의 도움으로 수도원에서 일하게 되고 코제트는 수도원 학교에서 공부하게 된다.
이 시기 프랑스에서는 왕당파와 공화당파가 세력을 다투고 있었다. 공화당파 당원인 마리우스 퐁메르시 청년은 공원에서 만난 코제트를 사랑하게 된다. 포슐르방 노인이 죽은 후 장 발장은 코제트를 데리고 수도원을 떠난다.
1832년 6월 5일 파리에서 시민항쟁이 일어났다. 이 항쟁 중 장 발장은 몰래 숨어들어왔다가 시민군에게 붙잡혀 죽을 목숨이었던 자베르 경감을 구해준다. 끝까지 추적을 거듭하면서 장 발장을 체포하려던 원칙주의자인 자베르 경감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장 발장에게 깊은 감동을 느껴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지만 이후에 다시 장 발장이 폭동 진압으로 중상을 입고 쓰러진 마리우스 퐁메르시를 등에 업고 하수도를 통해 나오는 걸 찾아내고서는 심각한 고민 속에서 혼돈을 겪다가 급기야는 유언장을 쓰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시가전도 끝나고 마리우스 퐁메르시 상처도 회복되어 코제트와 마리우스 퐁메르시는 결혼한다. 자신이 장 발장이라는 사실을 마리우스에게 말하고는 점점 코제트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마리우스의 행동 때문에 더 빨리 죽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장 발장을 신고해서 돈을 벌려는 속셈으로 마리우스에게 찾아왔던 테나르디에 때문에 장 발장의 마음을 알고 뒤늦게 나마 거의 다 죽어가고 있던 장 발장 곁에 와서 그의 죽음을 맞이한다.
참고 박은하기자, 경향신문, 2013년 1월 12일 박은하 기자, 인터넷판 <‘레미제라블’ 역사 알고보면 더 재밌다>
한숭동 전 대덕대 총장, 디트뉴스 24, 2013년 6월 2일, <민주화? 청소년 유혹하는 일베의 덫>
황인술, 독서 신문, 2012. 12. 28
첫댓글 이런거쓰면
재밌어요?
ㅋㅋ 재미라~~~~~~~~~~~~~~~~~
글쎄...재미는 없지...
사람이 늘 재미를 좇아서 살지는 않는단다...
사람은 어찌보면 네가 말하는 <재미>와 그보다 더 중요한, 어쩌면 비슷할 수도 있는
<의미>를 찾아서 살기도 한단다..
방학 잘 지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