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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醴泉) - 물맛이 좋고 단술과 같다고 해서 단술 ‘예(醴)’, 샘 ‘천(泉)’
예천은 회룡포 및 두 개의 향교가 있으며 정자와 누각은 110여 개가 넘는다. 서원과 고택은 세기도 벅차다. 용문사를 비롯한 사찰도 14개나 되고, 절터도 15개를 훌쩍 넘는다.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두운선사가 창건한 용문사에는 국내 유일의 회전식 불경 보관대인 윤장대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대추나무로 만든 목각탱이 있다.
예천 문화관광
http://tour.ycg.kr/open.content/ko/#36.6577005804913,128.452934754745,9
영상포엠 한국 100경
http://www.ktv.go.kr/common/popup/vodplayer.jsp?cid=357342
예천 홍보영상
http://tour.ycg.kr/open.content/ko/tour.guide/movie/2010/
가오실(佳五室)공원 개포면 가곡리 436
가오실(佳五室)이라는 이름에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못의 오른쪽에는 와룡담이 있고 오른쪽에는 용린암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못가에 드러난 조그만 바위는 용귀라 하였다. 용이 누워 있고, 용의 목 비늘이 있으니 용머리 용귀가 있는 것이다.
금당실[金塘室] 전통마을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연못 위에 뜬 연꽃모양과 흡사한 지형이라 연못을 상징하는 금당(金塘)으로 지었다고 전한다.
금당실 송림[金塘室松林]
금당실 마을은 천재지변이나 전쟁에도 마음놓고 살 수 있다는 전국 열 군데 땅 중 한 군데이다곳(十勝之地). 그런데 1863년 동학 창시자 최제우가 처형되는 과정에서 민심이 동요되어 큰 나무들이 일부 벌채되고, 1894년 동학운동 당시 노비 구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벌채되면서 훼손이 심하였다. 그러다가 후에 법무대신이 된 이유인(李裕寅)이 1895년(조선 고종 32) 금당실에 거주하면서 이 숲을 보호하여 왔다고 한다.
이들 소나무는 수령 100~200년·높이 13~18m·가슴높이의 줄기둘레 20~80㎝ 정도로 대부분 줄기가 곧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자란 자연림이다. 오늘날에는 수해방지와 방풍림 역할뿐만 아니라 마을의 휴식처와 행사의 중심지로 활용되는 등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큰 마을 숲이다.
1892년 마을 뒷산인 오미봉에서 몰래 금을 채취하던 러시아 광부 두 사람을 마을 주민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을 주민들은 고심 끝에 마을의 공동 재산이었던 소나무를 베어 러시아 측에서 요구하는 배상금을 충당했다. 그렇게 베어내고 나니 길이 2㎞가 넘는 송림이 800m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지금의 송림은 그 때 남은 일부 소나무에다 당시의 작은 소나무와 그 후에 다시 심은 소나무들이 자라 새로 형성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울창한 송림을 다 없애야 했지만, 바람막이가 필요했기 때문에 다시 숲을 만들어야 했다. 이때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잣나무와 은행나무도 함께 심었다.
이 사건 이후인 1895년 당시 법무대신이던 이유인이 관직을 버리고 금당실로 내려와 95칸 집을 짓고 살면서 숲 보호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한다.
도시복생가[都始復生家] 상리면 용두리 313번지
도시복은 조선 철종 때 사람으로 본관은 성주이며, 호는 야계(也溪)이다. 용두리 야목마을에 살았는데, 마음가짐이 어질고 효심이 극진하였다.
도시복은 장날이면 나무를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어느 장날 늦게 어머니상에 올릴 생선을 사서 돌아오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솔개가 생선을 채가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생선으로 어머니의 저녁상을 차리고 있어 솔개가 끼니 때에 늦지 않게 가져다 준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여름에 어머니가 병이 들어 홍시가 먹고 싶다고 하자, 시복은 홍시를 찾아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날이 저물자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서 시복을 등에 태우고 산속을 달려 강릉의 어느 외딴 집에 내려놓았다. 마침 그 날은 그 집의 제삿날이어서 젯상에 홍시가 놓여 있었다. 시복은 자초지종을 말한 뒤 홍시를 구해 호랑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정서원[道正書院]
산택연꽃공원 용궁면 산택리 95-10(34번 국도변)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기능이 쇠퇴한 저수지 곳곳에 연꽃이 자생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약 3,900m²의 못을 추가로 준설하고, 4종의 연꽃 4,000여 본을 추가로 심어 공원을 조성하였다. 현재 저수지는 5,000여 본의 연꽃으로 뒤덮여 있다. 저수지 주변에 소나무와 산철쭉·야생화 등을 식재하고, 잔디광장·정자·벤치·산책로 등과 차량 50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삼강주막[三江酒幕]
들돌은 본래 체력을 단련하기 위하여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돌로, 장성한 농촌 청년들이 농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이곳에 있는 들돌은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물류의 이동이 늘어 인력이 많이 필요하게 되자,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일꾼들의 품삯을 정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돌은 둥근 타원 모양이며 무게는 50Kg 정도 나간다.
석송령[石松靈] 감천면 천향 1리 석평마을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란 노인이 자식이 없어 시름에 잠겨 있던 터에 꿈속에서 '걱정하지 말아라'란 목소리를 듣고 깨어보니 사람은 없고 나무만 서 있어 전 재산을 나무에 물려주기로 하고 군청으로 가 석송령이란 이름으로 등재하면서 이 이름과 땅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군수까지 참여한 가운데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석송령에서 동신제를 지낸다.
실제 토지대장에는 주민등록번호 및 성명란에 “3750-00248 석송령”이라 적혀 있고 재산세를 납부하고 있습니다. 부근에 자식나무인 석송령2세도 있다.
1) 일제시대에 이 나무를 제거하여 민족(民族)의 정기를 말살하고 일본(日本) 군함(軍艦)의 재료(材料)로 활용하고자 일본인이 인부를 동원하여 나무를 베려고 톱과 장비를 가지고 자전거를 타고 석송령 부근의 개울을 건너오는데 갑자기 자전거 핸들이 뚝 부러져 순사(巡査)는 목이 부러져 죽었고, 인부들은 영험스러운 이 나무를 보자 겁에 질려 달아나서 무사했다.
2) 그리고 한국전쟁(1950) 때는 인민군(人民軍)이 석송령 나무 밑을 야전병원(野戰病院) 막사로 사용하였는데 삼천초등학교(三泉初等學校)를 비롯한 인근 모든 지역에는 비행기로 많은 폭격(爆擊)을 받아 피해를 보았으나 우산(雨傘)모양의 이 나무 밑에는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아 영험스러움을 다시한번 증명하였다 한다.
3) 또한 지금도 학질에 걸리면 소나무에 가서 절을 정중히 하고 기도(祈禱)를 드리면 병(病)이 낫는다고 전해진다.
4) 이 소나무는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정월(正月) 대보름이나 각종 마을행사가 있으면 1년에 10말 이상을 마신다고 한다. 그것은 한 번에 막걸리 5말씩을 행사 후에 나무뿌리 주변에 살포(撒布)한다고 한다.
선몽대(仙夢臺)
특히 대위에 이르면 내성천 백사장의 명사십리가 한눈에 펼쳐지고 넓고 큰 내가 자랑하듯 울창한 노송이 들어서 여름에는 피서지로 봄, 가을, 겨울에는 산책코스로 좋다. 예천 선몽대 일원(仙夢臺一圓) 2006년 11월 16일 명승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예천권씨 초간종택[草澗宗宅]
보물로 지정된 사랑채는 평지 위에 막돌허튼층쌓기로 높게 축대를 쌓은 위에 세우고 난간을 돌려서 다락집 모양으로 꾸민 별당식 건물이다.
안채는 2단으로 높이 쌓은 축대 위에 세우고, 중문 앞에 계단을 설치하여 전체적으로 높고 웅장해 보인다. 사당은 안채 오른쪽 후방에 배치하였다.
별당 뒤 야산 밑에 서고(書庫)에는 권문해의 《대동운부군옥(大東韻部群玉)》 판목(版木) 677매와 14대째 전해지는 옥피리,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전질 120권이 보존되어 있다. 보존 상태가 우수한 조선 중기 건물로 조선 건축의 구조와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용문사[龍門寺]
용문사 윤장대 [龍門寺輪藏臺] 용문사 대장전 안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불교에서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을 윤장대라고 하며 경전을 넣은 책장을 돌림으로써 경전을 읽는 효과를 낸다고 하여 만든 기구이다. 예천 용문사(龍門寺)의 윤장대는 문화재(보물 제 684호)로서는 유일한 것입니다
용문사 대장전(보물 제 145호) 대장전내에 윤장대 한쌍(2좌) 목불좌상 및 목각탱이 있다.
예천곤충생태체험관 상리면 고항리
http://tour.ycg.kr/open.content/ko/tour.guide/movie/2007.insect/
에코-에듀테인먼트(Eco-Edutainment)를 지향하는 2012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는 청정자연과 곤충을 주제로 한 수준높은 전시와 각종 체험을 통해 사람과 곤충세계의 즐거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축제의 공간으로서 자연스럽게 학습의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게 됩니다.
<예천 곤충 박물관> <예천곤충생태체험관> <예천곤충연구소 >
예천진호국제양궁장 예천읍 청복리 150번지
예천군에서 별과 우주를 주제로 한 역사상 최초의 테마공원으로서‘과학관광’, ‘교육관광’을 선도해 나아갈 예정입니다.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조성하고 있는 테마공원으로서 2004년 11월 개원하였다. 재단법인 예천천문우주과학센터에서 운영한다. 대형 천체망원경을 갖춘 별천문대에는 주관측실과 보조관측실, 천체투영실, 관측자 숙소 등이 있다.
장안사(長安寺)
초간정[草澗亭]
이 정자 기둥에는 도끼로 찍은 자국이 있는데 이것에 관한 전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옥매(玉梅)라는 기생이 장구춤을 추다가 물에 떨어져 죽어 화가 난 그의 어머니가 도끼로 찍었다고 한다.
두 번째 전설은 예천 권씨들이 정자 주위를 거꾸로 백 바퀴 도는 자에게 이 정자를 주겠다고 해서,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초립동이 아흔아홉 바퀴를 돌고 나머지 한 바퀴를 돌다가 그만 낭떠러지에 떨어져 익사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도끼로 찍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관례(冠禮 성인식)를 마친 소년이 흑립을 쓰기 전까지 초립을 착용했기 때문에 초립동이라 불렀다
옛날 어느 선비가 과거(科擧) 준비를 하다가 초간정 난관을 백 바퀴 돌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전설에 따라 난관을 돌다가 정자 밑 소(沼)에 빠져 죽었는데 남편을 잃은 부인이 원통하여 기둥을 도끼로 찍어 흠집을 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그 자국을 볼 수 있다. 선비가 빠져 죽은 그 소(沼)의 깊이가 당시 명주꾸리 1개를 펴도 모자랄 정도로 대단히 깊었다고 하나 지금은 많이 메워져 있다. 초간정 원림(명승 제51호)
초간정(草澗亭)의'초간(草澗)'은 당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이 읊은 '滁州西澗(저주서간)에 나오는 내용으로 "나홀로 계류가에 자라나는 우거진 풀을 사랑하노니“라는 뜻의 "獨憐幽草澗邊生(독련유초간변생)이라는 句節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草澗이란 말은 唐詩 "獨憐幽草澗邊生"(시냇가에 자란 그윽한 풀포기가 홀로 애처럽다.)이라는 句節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澗 [ 산골 물 간 ]
황목근(黃木根) 용궁면 금남리 금원 마을
예천 금남리 황목근은 나이가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팽나무로 높이 12.7m, 둘레 5.65m이다. 1939년 마을 공동재산의 토지를 팽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하면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토지(1만2899㎡)를 소유한 부자나무로 5월이면 황색꽃을 피운다하여 성을 ‘황(黃)’,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을 따 이름을 ‘목근(木根)’이라 지었다. 2008년 기준 2만5220원의 세금을 냈다. 금원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 신성시되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회룡포[回龍浦] 용이 승천하듯 물이 마을을 돌아나간다 하여 회룡포
맑은 강에는 쏘가리, 은어 등이 서식하고 강가의 모래밭을 따라 나무가 심어져 있다. 1997년부터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어 회룡포 주변 둑길에 왕벚나무를 심었고, 주변에 공원과 산책로를 내고 잔디를 심었다. 1997년 11월 봉수대를 복원하였으며, 철쭉군락지를 조성하여 민속마을로 완성할 예정이다. 1박2일 촬영지.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 100선 선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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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단군 이래 선조까지의 사실(史實) ·인물 ·문학 ·예술 ·지리 ·국명 ·성씨 ·산명(山名) ·목명(木名) ·화명(花名) ·동물명 등을 총망라하여 원(元)나라 음시부(陰時夫)의 《운부군옥(韻府群玉)》의 예에 따라 운자(韻字)의 차례로 배열 ·서술하였다. 참고한 자료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계원필경(桂苑筆耕)》 등 한국 서적 176종, 《사기(史記)》 《한서(漢書)》 등 중국 서적 15종으로 모두 191종이나 된다. 개인의 저작으로는 양과 질에서 방대하고 뛰어나서 임진왜란 이전의 사실을 아는 데 중요한 문헌이다. 초판의 판목(板木)이 저자의 후손 종가(宗家:예천군 용문면)에 현존하며, 최남선(崔南善)의 광문회(光文會)에서 1913년에 9권까지 간행하였다가 중단되었으나, 1957년에 정양사(正陽社)에서 영인(影印)하여 색인을 덧붙여 간행하였다.
책명에서 大東이라는 말은 東方大國 이라는 뜻이고. 운부군옥(韻府群玉)은 운별로 배열한 사전이라는 뜻이다
예천 맛집 박달식당 20년 전통의 순대집, 박달식당. 점심시간에 발 디딜 틈이 없이 손님이 가득하다. 1박2일 촬영을 한 용궁역 바로 앞에 위치한 박달식당은 순대국밥, 순대, 오징어불고기가 메뉴의 전부다.
예천 맛집 단골식당 1박2일 촬영지 예천 용궁시장 안에 있는 단골식당은 예천 용궁 시장 부근의 여러 음식점들 중에서도 막창순대와 연탄 석쇠 불고기 요리로 유명하다
예천.보문 IC 출발 - 예천진호국제양궁장 - 회룡포전망대 - 중식(용궁순대) - 용문사 - 곤충생태체험관 - 용문금당실전통마을 - 예천천문우주센터 - 석송령- 예천온천 예천.보문 IC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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