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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장
나사렛 예수 20230917 순복음사직교회주일오후예배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13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6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할렐루야!
오늘은 마태복음 2장의 내용으로 강해설교를 할것입니다.
먼저 지난번에 강해한 마태복음 1장을 간략하게 요약설명드리겠습니다.
크게 4가지 관점으로 설명드렸습니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입니다. 마태복음이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성경이다보니 유대인을 대표하는 조상인 아브라함과 다윗을 표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다윗 역시 얼마나 연약한 인간이었는지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열심으로써 그들이 믿음의 반열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는 족보의 특징입니다. 족보에 특히 여인들이 이름이 나오고 그 여인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보통의 족보에는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은 삶이 있는 여인들이었습니다. 먼저 다말은 시아버지와 동거해서 자녀를 낳았고, 라합은 여리고성의 기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룻은 이방 여인으로 남편이 죽은 과부이었습니다. 그리고 밧세바 이름대신 우리아의 아내라는 말로 다윗의 간음과 살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 역시 혼전임신이라서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처지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세상의 명예와 부러움을 쫓지 아니하시고 세상의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가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는 예수님의 오심의 특이한 점이었습니다. 동정녀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탄생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볼 것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기쁨으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불안으로 두려움으로 다가왔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면서 우리 역시 기쁘고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고 때로 나의 희생과 고난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기를 원하실 때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마지막 네 번째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공부했습니다. 먼저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것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달은 자라야 이 예수님의 은혜가 깊게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입니다. 이것은 이름보다는 예수님을 설명해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로 2000년 전에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임마누엘 하셨던 예수님이 지금으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고 성령을 선물로 보내셔서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임마누엘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I. 먼저 2장 1절에서 12절까지는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경배하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헤롯 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고 에돔 출신으로 BC37년에 즉위하여 BC 4년에 죽었습니다. 이로 보아서 예수님은 대략 BC 4-5년에 탄생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이방인들이 메시야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으로 불러서 이스라엘에 정치적으로 회복할 것을 기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박사들이 별을 따라서 오다가 베들레헴으로 바로 들리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먼저 들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사들이 그냥 어린 아이를 찾는다고 하지 않고 ‘유대인의 왕’을 찾는다고 하니 3절에서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헤롯의 자손으로 임금이 이어져야 하는데 새로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것은 반역이 일어남을 뜻하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직계 자손에게 왕권을 물려주기 위해서 정적이 된다면 친척도, 아니 다른 자식들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였기에 새로운 왕의 탄생 예고는 예루살렘을 떠들썩하게 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헤롯 왕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찾아 경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찾아서 그를 죽여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5,6절을 보면
5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들이 성경지식이 풍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성경지식과 믿음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끝까지 헤롯편에 섰고 이후에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핍박하는 일에 압장섰음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9절부터 12절에 보면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따라 결국 예수님이 있는 곳을 찾았고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고 경배하였습니다. 성경학자들은 황금은 예수님의 왕권을,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을, 몰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꿈에 헤롯왕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II. 애굽으로 피신하신 아기 예수
13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 하니 애굽으로 피하여 있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구원을 베풀 메시야로 오셨는데 헤롯은 진짜 유대의 왕으로 오신 줄로 착각하고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16절에 보면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들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15절에
15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금 피신해서 애굽에 있는데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 예수를 핍박하는 곳이 애굽인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번화하고 잘 사는 곳이 예루살렘이 아니고 예수를 배척하는 곳이 애굽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곳이 예루살렘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17,18절을 보겠습니다.
17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라마는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가까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스라엘 어머니들을 대표해서 라헬의 통곡으로 비유하고 있는것입니다.
라마는 앗수르나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 집결 장소이었기에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갔던 때의 슬픔으로 지금의 베들레헴 유아들의 부모의 슬픔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렘 31:15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 억울하게 어린 사내아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만 애굽으로 피신시키시고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아이들을 죽인 자는 하나님이 아닌 헤롯왕입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성경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상식과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지만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되지 않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구약의 욥입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자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자녀가 죽고 재산이 없어지고 자기가 병들고 아내가 자기를 저주하고 떠나가는 일을 겪으면서 뒤에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데 하나님은 그러한 욥을 꾸짖으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말씀하시고 그러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욥의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억울하게 여겨지는 많은 일들을 우리는 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깨달을 때도 있지만 이 땅에서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옳으시기에 그렇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순복음 사직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마지막 부분에서 볼 것은 나사렛 예수입니다.
19절 이하에서 헤롯 왕이 죽은 후에 요셉이 예수님을 데리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지만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를 두려워해서 비교적 안전한 갈리리 지방의 나사렛 동네에 가서 살게 됩니다.
갈릴리 지역은 이방지역과 가깝고 썩이는 곳으로 유대인들의 경멸하던 곳입니다.
요1:45-46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막14:67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요7: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나사렛 예수시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메시야가 조롱과 수난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시편과 이사야서에서) 그러므로 마태가 23절에 구약성경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라는 말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교회로 모여서 예수를 찾으면서 나에게 도움을 주는 예수, 나를 복되게 하는 예수, 나를 건강하게 하는 예수, 나를 부자되게 하는 예수, 나를 취직시키시고 결혼시켜주는 예수로만 찾고 있습니까? 성경은 예수님은 이 땅의 왕권을 찾는 메시야로 오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나시고, 애굽으로 피난 가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멸시하는 갈릴리 지방 나사렛에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메시야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로 와서 세상의 것을 찾지 마십시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깨닫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나의 삶의 어떠한 순간에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순복음 사직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이 세상의 정치적 메시야가 아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2. 애굽으로 피난하시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시는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정치적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조롱하는 갈리리 나사렛 예수로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 역시 이 땅에 사는 동안 억울한 일과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아니 고난 당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우리 성도의 삶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저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의 삶 가운데 인내하며 평강 가운데 살아가시는 순복음 사직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