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11월 21일)◆
0673년 (신라문무왕 13)김유신(金庾信;595~678), 신라 태내각간 세상 떠남
1690년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 보인(Boyne)전투에서 제임스 2세와 그의 추종자들을 격파.
1751년 디드로(Diderot)의 백과사전 제 1쇄가 파리에서 출간.
1798년 나폴레옹,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점령
1804년 조르쥬 상드(George Sand), 프랑스 작가 태어남
1838년 찰스 다윈, 런던의 린네 협회( Linnaean Society)에 종의 진화에 관한 학설을 발표.
1860년 미국발명가 찰스굳이어(Charles Goodyear:고무 실용화),미국의 발명가 세상 떠남
1863년 미국 남북 전쟁 중 게티스버그 전투 시작.
1867년 캐나다의 독립 기념일
1871년 이탈리아, 로마를 수도로 정함
1872년 루이 블레리오(Louis Bleriot), 프랑스 비행사 태어남
1875년 국제우편조약 발표 (만국우편연합 기념일로)
1876년 러시아의 작가, 무정부주의자 바쿠닌 사망
1883년 (조선 고종 20)인천항 개항
1884년 앨런 핑커턴(Allan Pinkerton), 미국 탐정 에이전시의 창시자 세상 떠남
1890년 영국 독일 협약 (동서아프리카 접경 결정. 독일 에리고랜드 획득)
1893년 (조선 고종 30)북한행궁(行宮)의 성첩 수리
1896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저술한 해리어트 비쳐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 영국 작가 세상 떠남
1898년 (조선 고종 35) 독립신문 76호부터 일간으로 바꿈
1898년 산 후안(San Juan) 언덕 전투
1899년 찰스 랭턴(Charles Laughton), 영국 영화배우 태어남
1901년 노벨상 창설 (12월 10일 첫 시상)
1902년 군악교사 에케르트 한국어 찬송가 출판
1902년 필리핀 폭동 종결
1905년 고고학자 도유호 출생
1905년 독일-프랑스 협정 성립 (모로코의 영토보전 협약)
1905년 일본 제일은행 경성지점, 한국중앙은행으로 발족
1906년 경인-경부철도, 일제통감부의 관리하에 들어감
1908년 의병장 이강년 체포됨.
1909년 영국, 석탄갱부의 8시간 노동제 허락
1911년 제2차 모로코사건 발발
1912년 순수 서정시인 백석 출생
1914년 유길준, 개화운동가 세상 떠남
1916년 솜므(Somme)전투 시작.
1916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Olivia de Havilland), 미국 영화배우 태어남
1921년 보츠아나의 초대 대통령(1966-80) 카마 출생
1921년 중국 공산당 결성
1925년 광동에 국민정부 성립
1925년 에릭 사티(Erik Satie), 프랑스 작곡가 세상 떠남
1926년 장개석, 군벌타도를 위한 북벌 개시
1933년 서울~동경간 직통전화 개설(7.15부터 전화통화 시작)
1937년 영국에서 응급전화 서비스인 999가 실시됨
1940년 드골장군, 영국서 자유프랑스정부 수립
1940년 영국 건지(Guernsey) 지역이 독일군에게 점령됨.
1944년 미국 브레튼우즈서 연합국 44개국이 참가 UN국제통화금융회의 개막
1946년 국군, 병기병과 창설
1946년 미국, 비키니에서 최초의 공개 핵실험
1946년 인도 봄베이서 힌두-회교도간 대충돌 폭동화
1946년 통위부, 경비대 지원을 위한 후방지원부대 창설-
서울 영등포 대방동에 위치한 제1연대 보급중대를 기간으로 통위부 직할부대로 편성
1948년 국회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
1948년 조선경비대 보병학교 폐교
1949년 수도육군병원 설치
1949년 육군보병학교 창설(시홍)
1949년 육군참모학교 창설(용산)
1949년 주한미군사고문단(KMAG) 공식기구로 발족
1949년 해군본부시설감실 설치
1950년 美 지상군 제24사단 21연대 제1대대(스미스부대) 부산에 상륙
1950년 캐나다함대 한국출동
1951년 김일성과 펑더화이(彭德懷), 유엔측의 휴전제의에 동의
1951년 콜롬보계획(동남아경제개발협력) 성립
1953년 서민호 의원, 군사재판서 사형 언도.
1953년 유럽 12개국, 유럽원자력연구회의(ENRO) 설립
1954년 일본 자위대 발족.
1955년 대천 해수욕장 첫 개장
1955년 미국 FOA를 ICA(국제협조처)로 개편
1955년 야전군사령부령, 군단사령부령, 후방군사령부령, 군관구사령부령 공포
1955년 워싱턴에서 한-미 원자력 협정 조인
1957년 유엔군사령부, 일본 도쿄에서 한국으로 이동
1957년 육군항공학교 창설
1960년 가나, 영국연방내 공화국으로 독립
1960년 국방부에 정무차관과 사무차관제 실시
1960년 소말리아, 영국-이탈리아로부터 독립
1960년 연합참모국 신설
1960년 정부조직법 개정법률 공포
1961년 가나-말리-기니 아프리카제국연합 결성
1961년 공군작전사령부 창설
1961년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 태어남
1961년 서울 국제방송국(HLCA) 개국
1961년 칼 루이스(Carl Lewis), 미국 육상 선수 태어남
1961년 한국전력 발족
1962년 르완다-브룬디, 벨기에로부터 독립
1963년 국산 기계식 교환기 개통
1964년 경주 석굴암 복원 공사 준공식
1966년 프랑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서 탈퇴
1967년 박정희 제6대 대통령 취임
1967년 유럽공동체(EC) 결성
1967년 주월한국공군지원단 창설
1968년 핵확산방지조약(NPT)에 62개국이 조인
1970년 300년전 진주성도(촉석진도) 발견
1970년 우편번호제 실시
1971년 군원이관 재개(한국군 월남파병으로 중단)
1971년 박정희 제7대 대통령 취임
1971년 한·미(연합) 제1군단 창설(미 육군 제1군단 해체)
1973년 육군 제3군사령부 창설
1973년 전자 키보드 발명자 해먼드 사망
1973년 제주도 한들굴서 신석기시대 동물 뼈와 무문토기 발견
1973년 해군 제1·2·5해역사령부 창설
1974년 후안 페론(Juan Peron), 아르헨티나대통령 (정치가) 세상 떠남
1975년 육군 사격지도대를 사격지도단으로 개편
1976년 방송윤리위원회, TV 광고방송에 대한 사전검열제 실시
1976년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수립
1976년 한국수출입은행 발족
1977년 5백인 사업체 의료보험 실시
1977년 미국상원 중성자탄 개발 허용
1977년 부가가치세제 실시
1977년 북한, 2백 해리 경제 수역 선포
1977년 의료보험제도 실시
1979년 소니 워크맨 등장
1979년 한-미 공동선언 발표, 남북한과 미국의 3자회담 제안
1980년 김포국제공항관리공단 발족
1980년 위관급장교 계급장 변경
1981년 대구,인천시 직할시로 승격
(10개시 광명, 정주, 나원, 송탄, 태백, 영천, 김해, 동두천, 금성, 서귀포 신설)
1981년 독일 뮌헨에서 미발견된 모짜르트(W.A.Mozart)의 곡이 발견되어 처음 연주됨.
이 곡은 모짜르트가 9세 때 작곡한 것으로 추정.
1981년 전두환대통령 아세안 방문에서 이광요 싱가폴수상과 회담
1983년 경남도청 창원 이전
1983년 국군, 정보병과 창설
1983년 국제전화 자동화
1983년 금융실명거래제 실시
1983년 중국, 모택동 격하. 등소평 추앙운동
1985년 공군 자동화방공체계 작전운영 개시
1987년 육군, 『보급경제확인의 날』을 『군수지원태세 확인의 날』로 개칭
1987년 전국 전화 완전자동화
1988년 작곡가 윤이상, 민족화합 위한 남북한음악합동 대제전 개최 추진을 발표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평양에서 개막(~8일)
1990년 동독과 서독의 통화와 경제를 하나로 묶는 조약 발효.
1991년 '초원의 집'의 배우 마이클 랜든 사망
1991년 공군방공포병사령부 창설
1991년 냉전 시대 구소련권의 마지막 흔적인 바르샤바 조약 기구 해산
1991년 목동과 상계동 지역에서 국내 최초의 종합유선방송 시범방송
1991년 수입상품 원산지 표시제 도입
1991년 육군방공포병 공군으로 전군
1992년 한국-우크라이나 과학기술협력협정 체결
1993년 최신예 상륙함 '고봉'함 취역
1994년 국방부와 각군본부에 설치된 고등군사법원을 하나로 통합
1994년 장기하사 이상 현역군인도 의료보험 혜택부여
1994년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의장 아라파트,
가자 지역에 들어감으로서 25년만에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영토에 발을 들여놓음
1995년 34년만의 완전한 지방자치 시작
1995년 로만 헤르초크 제7대 독일연방 대통령에 취임
1995년 부동산실명제 실시
1996년 마고 헤밍웨이(Margot Hemingway), 미국 모델이자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손녀 세상 떠남
1996년 실업급여제도 실시
1996년 영국, 운전 교습생에게 실기시험 외에 처음으로 필기 시험 실시
1996년 의사들에게 말기 병자들의 자발적인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호주 북부 지역에서 실행
1996년 정부, 대북지원 200만$ WFP에 송금. 100만$ 분은 UNICEP에.
1996년 KBS, 위성시험방송 실시
1997년 로버트 미첨(Robert (Charles Duran) Mitchum), 미국 영화배우 세상 떠남
1997년 홍콩반환(香港返還) 행사. <Hong Kong, China> 시대 개막. 1842년 영국에 홍콩섬이
할양되고 1858년에 九龍半島가 추가 할양된뒤 1898년에 <新界>가 99년간 임대되었던
영토가 모두 중국에 반환된 것.
1999년 제1회 코리아 인터넷 서바이벌 게임
2000년 직장의료보험-지역의료보험 통합
2001년 '반공검사'로 유명한 오제도씨 타계
2002년 김병현 선수, 미국 진출 4년 만에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올스타 첫 선발
2003년 청계천 복원공사 기공식-청계 고가 철거 시작
2004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첫 재판 개최
2004년 영화 ‘대부’ 명연기 말론 브랜도 타계
2004년 의문사위, 유신정권 시절 폭력적인 사상 전향 과정에서 숨진 남파간첩,
빨치산 출신자 3명 민주화운동자로 인정해 파문
2004년 카시니-호이겐스호, 발사 7년 만에 토성 궤도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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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조선 태조 3) 조선, 도읍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김
1904 언론인 추계 최은선 태어남 여기자 2호로 '한국여기자상' 제정. 저서: 씨뿌리는 여인, 여성전진 70년
1914 낙동강유역에 진도 3의 지진
1928 홍명희, <조선일보>에 <임꺽정> 연재 시작
<임꺽정>을 쓰던 홍명희가 신간회 사건으로 잡혀갔으나 일제가 집필을 허용하여,
옥중에서 <임꺽정>을 써서 연재를 계속하였다.
1968 시 도민증을 주민등록증으로 대체
1972 유신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투표율 91.9%, 찬성 91.5% 제3,6대 국회의원 지낸 김두한 세상 떠남
1974 연세대 박대선 총장, 학원의 자유 침해 거부 담화 발표
1978 중국에서 고구려 벽화고분 발굴
1982 충북 청원군 경부고속도로서 관광버스 전복. 37명 사상
1985 서울대에서 독재종식과 5공 헌법 찰폐 위한 범국민토론회 열림
1997 한나라당 출범
1997 4자회담 제3차 예비회담 열림
1997 IMF 구제금융 공식 요청(밤 10시)
11.16 미셀 캉드시 IMF 총재 극비 방한, 강경식 부총리와 IMF 구제금융 합의
11.19 임창열 신임부총리 임명
11.23 IMF 실무단 1진 도착
11.25 IMF 협의단, 국내 금융기관 부실상태 집중 조사
11.27 임 부총리와 휴버스 나이트 IMF 실무단장 비공개 협의
12 .3 협상 타결
1620 메이플라워 호, 미국 프로빈스타운에 입항
1694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프랑수아 볼테르 태어남
1806 나폴레옹, 대륙봉쇄령 발표
1945 프랑스, 드골내각 수립
1980 미국 라스베가스 MGM그랜드호텔에 화재. 84명 사망
1990 소련 이에로플로트 항공 소속 여객기, 시베리아의 야쿠츠크시에서 추락 176명 사망
1991 독일과 러시아공화국, 협력협정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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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가 양화를 구축' 주장 그레셤 사망(1579.11.21)
'그레셤의 법칙'을 만든 영국 금융업자 토머스 그레셤이 1579년 11월 21일 사망했다.그는 16세기 영국 왕정의 재정고문으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로 화폐 개혁을 권유한다. 이 말의 뜻은 한 사회에서 귀금속 가치가 서로 다른 화폐(예를 들어 금화와 은화 따위)가 같은 화폐 가치로서 유통될 경우, 귀금속 가치가 작은 화폐(악화:은화)는 가치가 큰 화폐(양화:금화)를 유통에서 몰아낸다는 뜻이다.
1858년 이 말이 '그레셤의 법칙'으로 정해졌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 출생(1694.11.21)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1694년 11월 21일 출생했다. 볼테르는 흔히 프랑스 지성사에서 최초의 지식인으로 꼽힌다. 볼테르는 생전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문인이었고 다작에 능했지만, 명저를 남기진 못했다.그럼에도 그가 지식인의 맨 앞에 위치하게 된 것은 '기존의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으로서의 지식인상을 모범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낸 '극단의 시대'의 종교적ㆍ정치적 광기에 맞서 투옥과 추방을 무릅쓰고 이성과 양식을 쫓았다.프랑스 남부의 독실한 가톨릭 도시 툴루즈에서 한 개신교가 아들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된 이른바 '칼라스 사건'(1761)을 볼테르가 용기와 지혜로 바로잡은 일은 볼테르를 진정한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778년 84세로 사망했다.
◆기구 이용 최초 유인비행(1783.11.21)
1783년 11월 21일 기구를 이용한 최초의 유인비행이 행해졌다. 장 프랑수아 필라트르 드 로지에와 프랑세스 로랑 아를랑데 후작이 몽골피에 기구로 파리를 횡단한 것이다.이들은 양모와 짚을 태워 23분 동안 파리 시내를 약 9㎞를 비행했다. 그해 12월 물리학자인 J. A.C. 샤를과 니콜라 루이 로베르는 수소를 넣은 기구로 2시간 동안 비행했다. 유인비행에 앞서, 1709년경 브라질의 바르톨로미 로렌소 데 구스망에 의해 최초로 기구의 실험이 있었고 프랑스 앙노네의 조제프 몽골피에와 에티엔 몽골피에 형제는 1783년 6월 4일 무인기구로 2.4㎞ 이상 비행한 뒤 9월 19일 더 큰 기구에 양·닭·오리 등을 태워 띄운 바 있었다. 기구는 군대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나폴레옹은 전투에서 관측용 기구를 썼으며 미국 남북전쟁과 제1, 2차 세계대전 때도 기구가 이용됐다. 과학계에서는 1911~12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인 V. F. 헤스가 우주선(宇宙線)을 증명하기 위해 기구를 5,000m 상공까지 올려보내는 대담한 실험을 했다.1931년 5월 스위스의 물리학자이며 교육자인 오귀스트 피카르는 기구에 여압실을 설치해 세계최고의 고도비행기록을 세웠다. 기구는 스포츠용으로 인기가 있었다.
◆나폴레옹, 대륙 봉쇄령 발표(1806.11.21)
나폴레옹에게 유일하게 자신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섬나라 영국은 눈엣가시였다. 1803년 이집트 상륙작전을 펼쳐 영국 식민지를 뒤흔들려 했지만 실패하고 1805년에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의 영국 함대에 크게 패하자 군사력으로 영국을 공격하는 것을 포기했다.대신 영국과 유럽 국가들의 교류를 막아 경제적으로 피해를 주는 봉쇄정책으로 방향을 바꿨다. 1806년 8월, 나폴레옹은 1000여 년 동안 이어온 신성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10월에는 프로이센군을 격파하고 베를린을 점령했다. 11월 21일, 나폴레옹은 영국과 통상 및 통신을 금지하고 영국의 배가 유럽 땅에 머물지 못하도록 폴란드에서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유럽의 전 해안을 봉쇄하는 ‘대륙봉쇄령’을 베를린에서 공포했다.그러나 봉쇄령으로 유럽 대륙의 국가들이 더 많은 경제적 피해를 입자 반발이 거세졌고 결국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영은문 철거하고 독립문 건립 정초식(1896.11.21)
자유민권·자강운동을 전개하여 자주독립을 지키려고 1898년 서재필ㆍ이상재ㆍ윤치호 등이 중심이 되어 발족한 독립협회는 독립문·독립공원·독립관 건립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독립협회의 활동은 수치스런 사대외교의 상징인 영은문(迎恩門)을 없애버리고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만들고, 모화관(慕華館)은 독립관으로 개수를 추진한 것이다. 실로 국민적 큰 장거였다.우선 독립협회는 독립문의 정초식(주춧돌을 놓는 기념식)을 1896년 11월 21일 하오 2시30분으로 정하고 다음과 같은 초청장을 발송했다."대 죠선국 독립협회 회원들이 이십일일 오후 두시반에 독립공원에서 독립문 쥬추물을 노 흘 터인데 례식을 시행하고 축사와 연설 할 터이니 각하의 참석하심을 바라옵나이다. 건양 원년 십일월 십사일 총대위원 니완용·권재형·니채연. (당일에 청첩을 가지고 옵소서)"1896년 11월 21일 하오 2시30분에 열린 독립문 정초식은 무려 5~6천명의 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진행되었다. 당시 독립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일반시민·각부 대신·학생·각국의 공사들이 참석했으며 "돈의문 밖 서쪽에 운집하고 노약제휘하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식장은 솔문과 만국기로 장식했으며 배재학당 학생들은 '조선가' '독립가' '진보가' 등의 축가를 불렀다고 보도했다.
◆한국독립당 결성(1935.11.21)
안창호, 김구 등이 참여해 1935년 오늘 한국독립당을 결성했다.
1924년 중국국민당이 중국 공산당과 연합해 국민당의 단일정당으로 결속된 것을 계기로 중국·만주 등지에 망명해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한인들 사이에 '유일당(唯一黨)' 촉성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사상과 주의·주장을 초월해 독립운동자들이 하나의 정치조직 아래 결속해야 한다는 데 그 명분을 뒀다.
1927년 임정요인들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헌법을 개정해 "광복운동자가 대단결한 정당이 완성될 때 최고권력은 그 당에 있는 것으로 한다"고 헌법에 밝힘으로써 유일정당이 최고헌법기관임을 명시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이 분열·대립되자 유일당에 참여하려던 좌익계 독립운동자들이 이를 외면하게 돼 결국 이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1945년 11월 임정요인들이 환국하면서 국내 기반의 확대·강화를 모색하게 됐다.
◆주민등록증 발급 시작(1968.11.21)
1968년 1월12일은 무장공비침투사건으로 나라가 매우 어수선한 해였다.주민등록증은 이 당시 여당이었던 공화당이 단독으로 국회에서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의결함으로써 도입되었다. 지문날인제도의 시작은 간첩과 범죄자 색출이라는 명목 하에 실행되었는데, 소위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에서 국가권력이 인간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으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제도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1975년부터 현재의 13자리 숫자 체제로 바뀌었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지원 요청(1997.11.21)
1997년 오늘 정경유착, 한국경제의 뿌리깊은 고질병이 마침내 곪아 터졌다. 한보그룹이 빚을 10조원이나 지고 무너지고 재벌 순위 8위인 기아가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금융 위기가 닥쳤다.국제 금융기관들은 한국을 투자 위험국으로 지목하고 투자금 회수에 나섰다. 한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아 치우기 시작해 10월말 주가는 400선으로 추락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11월말 가용 외환 보유고는 72억 6천만달러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외환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새로 취임한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이날 밤 10시 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국가 신용등급이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졌다. 환율이 1900원대까지 치솟고 기업은 연쇄 부도를 일으켰다. IMF 사태는 대규모 실업 등 총체적인 국가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
◆강원래씨 등 장애 예술인 ‘꿍따리 유랑단’ 첫 무대 [중앙일보 2008.06.30 00:57:42]
[중앙일보 정현목] 장애를 가진 문화 예술인들로 구성된 연극단 ‘꿍따리 유랑단’이 28일 오후 서울 휘경동 서울보호관찰소 대강당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꿍따리 유랑단의 주축은 가수 강원래(39)씨. 그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뒤 좌절하지 않고, 장애인 처우 개선 등의 활동을 해왔다. 한 손으로 마술을 하는 조성진씨, 한 손 무에타이 선수 최재식씨, 안면장애 가수 심보준씨 등 7명이 그와 함께 했다. 장애 예술인들의 감동적인 공연으로 좌절과 실의에 빠진 비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자는 취지다.꿍따리 유랑단의 첫 수혜자는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들. 법무부 명예보호관 활동을 4년째 하고 있는 강씨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공연으로 이들에게 삶의 자극을 주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행사를 기획했다.이들의 공연에 관찰 대상 청소년 300여명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단원들이 유랑단의 오디션에 응시하는 내용으로 진행된 공연은 조씨의 한 손 마술, 심씨의 빼어난 가창력이 더해지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강 씨는 오디션을 주관하는 연기를 소화하는 것은 물론, 마지막 무대에서 클론 시절의 역동적인 율동까지 보여줬다. 구준엽·홍록기·박미경·성은 등 동료 연예인들도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다.강씨는 “두 달 정도 공연을 준비하며, 클론으로 활동할 때처럼 가슴이 설렜다”며 “‘저들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우리도 포기하지 말고 살자’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꿍따리 유랑단은 10여 곳에서 공연을 계속 할 계획이다.정현목 기자 “뉴스와 매거진을 한번에! 중앙일보
◆1909년(융희3년) 일본 제일은행권 5원권-신권 발행개시
(제조 : 일본 대장성 인쇄국, 크기 : 143x85mm 도안 : 광화문(光化門)/채문(彩紋)
1946년 조선은행 정 100원권 발행
이 지폐는 조선서적인쇄 주식회사에서 제조하였다.
1946년 7월 1일에 발행되었으며 이 정(丁)백원권은 기호가(1A-9A)번이다.
도안은 무병장수함을 상징하는 일본의 칠복신중에 하나인 수노인상과
전후면에는 우리나라의 무궁화꽃과 일본왕실을 상징하는 벚꽃문양을 넣었다.
배면의 벚꽃문양이 붉은 자색이다. 규 격: 162×93mm
◆1972년 한국은행 가 5000원권 발행 (도안 : 이이 초상 / 한국은행 본점 , 167 × 77㎜ 한국조폐공사
1980. 12. 1발행 중지 금속선, 자외선감지요소 삽입)
◆2005년 루마니아 화폐개혁 단행
루마니아 국립은행은 2005년 7월 1일부터 기존 1만레이에 대해 새 1레우로 화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루마니아 국립은행은 화폐 개혁에 있어 '유로화와의 호환성을 맞추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습니다. 1레우~500레이의 6권종의 규격들이 모두 5~200유로 지폐들 규격과 비슷하고 주화도 유로 주화들의 금속색과 비슷하게 최소액인 1반은 금색(중간 단위 센트), 5바니는 적색(소액 센트), 10바니는 은색(1유로 중앙, 2유로 외부), 최고액인 50바니는 연한 금색(1유로 외부, 2유로 중앙)의 형식으로 맞추어져 있습니다. 측면도 4종이 모두 달라, 1반은 평면, 5바니는 톱니, 10바니는 부분톱니, 50바니는 'R O M A N I A ★' 문자가 2번 왕복되는 형식입니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
우리 나라의 이름은 여러 가지로 불려 왔다. 한, 조선, 동국, 청구, 해동, 대동, 진 등의 구체적인 국명과 한반도의 특성을 살린 동이(東夷), 근역(무궁화가 많은 곳), 동방예의지국, 금수강산, 소화(小華) 등의 별칭이 사용되어 왔었다. 1948년 치뤄진 선거로 소집된 제헌 의회에서는 우리의 국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일었는데, '고려공화국'과 '조선공화국'을 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대한민국으로 확정되었다. 의원들 중에는 '대한'이란 이름이 우리 나라 역사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더욱이 조선말기에 잠깐 쓰다가 망한 이름(대한제국을 말함)이니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를 제기한 신석우는 "대한을 쓰다가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고 주장하였고 이에 다수가 따름으로써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이란 명칭은 우리 나라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었을 때에 중국 상해를 거점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인사들이 세운 임시정부의 이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호는 자유와 독립을 위해 세운 대한 민국 임시 정부의 정신을 정통으로 이어 받는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1954년 일본 자위대 창설
1954년 7월 1일 일본 자위대가 창설됐다. 전쟁에서 패한 후 헌법에 의해 무장이 금지된 일본이 재무장을 하게 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한국전쟁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일본 주둔 7개사단 병력의 대부분을 한국전선에 긴급 출동시키는 바람에 일본 전국이 치안공백 상태와 안보 무방비상태에 놓이게 되자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는 1950년 7월 요시다 당시 일본 총리에게 경찰력과 해상경비력의 강화를 지시했다. 이를 근거로 1950년 8월 24일 창설된 것이 '경찰 예비대'이고, 이는 오늘날의 자위대 모체가 됐다. 경찰예비대는 1952년 8월 보안청 산하 경비대(육군)와 보안대(해군)로 분리되면서 표면상 경찰조직에서 군대성격으로 발전했고, 1954년 7월 1일부터는 정식 군제로 바뀌면서 항공부대가 창설돼 비로소 육ㆍ해ㆍ공군을 갖춘 자위대가 됐다. 자위대는 정원이 7만5천명에서 11만명으로 불어나면서 사단조직에 해당하는 '관구대', 야전군에 해당하는 '방면대'를 창설, 명실상부한 군대조직을 갖추게 됐다. 2년 후인 1956년 7월에는 일본 정부에 국방회의란 것이 설치돼 방위력을 계획적으로 증강하기 시작했다. 이 회의에서 결정된 '국방의 기본방침' 제3항에는 '국력과 국정에 상응하는 자위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효율적인 방위력을 점진적으로 정비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어, 일본은 이를 근거로 1958년부터 3∼6년 단위의 중ㆍ단기 방위력 증강사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1997년 미국 영화배우 로버트 미첨 사망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마릴린 먼로와 공연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미국 영화배우 로버트 미첨이 1997년 7월 1일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79세였다. 1950∼60년대의 대표적 미국배우 중 하나로 1백80cm의 키에 다부진 체격, 무뚝뚝한 이미지로 `남성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미첨은 `돌아오지 않는 강` 외에도 `라이언의 딸` `십자포화` `엘도라도` `케이프 피어`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1945년 `GI 조 이야기`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로 딱 한번 올랐을 뿐, 끝내 아카데미상은 수상하지 못했다. 미첨은 1917년 8월 미국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에서 출생, 2살 때 열차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영국군 소령이었던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14살 때 가출, 폭력조직 가담혐의로 6개월 간 복역하기도 했으며 1937년 캘리포니아에서 아마추어 연극배우로 처음 무대에 서기전까지 광부, 선원, 권투선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1942년 `레더 버너즈`로 영화에 입문해, 1945년 `GI 조 이야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미첨의 트레이드 마크인 졸리는 듯한 눈은 만성적인 불면증과 무명 권투선수 시절 입은 상처로 눈이 나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928년] 홍명희 소설 ‘임꺽정’ 조선일보 연재 시작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첫회 삽화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의 소설 ‘임꺽정’이 1928년 11월 21일부터 ‘林巨正傳’ 이란 이름으로 ‘조선일보’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벽초는 조선일보가 후원했던 신간회 간부를 맡아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유치장에서도 이 소설을 계속 집필했으나,건강 때문에 몇차례 연재를 중단했다.벽초는 1940년 조선일보가 폐간되자 자매지 ‘조광’으로 지면을 옮겨 연재를 계속했으나 끝내 소설을 완성하지 못했다.그 첫회는 이렇게 시작된다."자, 임꺽정이의 이야기를 붓으로 쓰기 시작하겠습니다.쓴다 쓴다 하고 질감스럽게 쓰지 않고 끌어오던 이야기를 지금부터야 쓰기 시작합니다.각설, 명종대왕 시절 경기도 양주땅 백정의 아들 임꺽정이란 장사가 있어...."
조선시대 최대의 화적패였던 임꺽정 부대의 활동상을 그린 소설 ‘임꺽정’은 일제강점기 때 쓰여진 가장 방대한 규모의 대하장편역사 소설로, 봉단편·피장편·양반편·의형제편·화적편 등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천민 임꺽정이 대꼬챙이의 명수 박유복, 백두산의 비호 황천왕동이, 쇠도리깨 장사 곽오주 등 7형제와 함께 청석골에 반역의 둥지를 튼 후 고난받는 백성을 위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식민지시대 민족의 해방에 대한 염원과 삶의 애환에 중첩적으로 닿아있다.‘임꺽정’은 조선 시대 하층민의 저항과 생생한 삶의 묘사를 통해 근대적 한국리얼리즘 소설의 전형을 제시했고, ‘살아 있는 최고의 우리말사전’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토속어 구사가 뛰어나다. 벽초가 조선일보에 ‘임꺽정’을 연재하기 시작한 1928년 무렵은 이미 일제의 식민정책이 정치, 경제적인 측면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문화적인 측면에도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제 민족의 고유한 전통이나 풍습, 언어까지 심각한 훼손의 위협 아래 놓여 있던 때였기에 더 큰 의미를 지닌다.
◆[1694년]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 출생 도서 `관용론`의 저자 볼테르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1694년 11월 21일 출생했다. 볼테르는 흔히 프랑스 지성사에서 최초의 지식인으로 꼽힌다. 볼테르는 생전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문인이었고 다작에 능했지만, 명저를 남기진 못했다.그럼에도 그가 지식인의 맨 앞에 위치하게 된 것은 `기존의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으로서의 지식인상을 모범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살아낸 `극단의 시대`의 종교적ㆍ정치적 광기에 맞서 투옥과 추방을 무릅쓰고 이성과 양식을 쫓았다.프랑스 남부의 독실한 가톨릭 도시 툴루즈에서 한 개신교가 아들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된 이른바 `칼라스 사건`(1761)을 볼테르가 용기와 지혜로 바로잡은 일은 볼테르를 진정한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778년 84세로 사망했다.
▶ IMF 구제금융 지원 요청(1997)
1997년 오늘.정경유착, 한국경제의 뿌리깊은 고질병이 마침내 곪아 터졌다.한보그룹이 빚을 10조원이나 지고 무너지고 재벌 순위 8위인 기아가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금융 위기가 닥쳤다.국제 금융기관들은 한국을 투자 위험국으로 지목하고 투자금 회수에 나섰다.한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아 치우기 시작해 10월말 주가는 400선으로 추락했다.이같은 상황에서 11월말 가용 외환 보유고는 72억 6천만달러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외환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새로 취임한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이날 밤 10시 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키로 했다고 발표했다.국가 신용등급이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졌다.환율이 1900원대까지 치솟고 기업은 연쇄 부도를 일으켰다.IMF 사태는 대규모 실업 등 총체적인 국가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
▶주민등록증 발급 시작(1968)
1968년 오늘!우리나라 행정사상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이 발급됐다.박정희 대통령은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 주민등록증은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증명해 준다고 말했다.주민등록증은 1962년 제정된 주민등록증법에 의거해 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발급됐다.주민등록증에는 전국민에게 영구적인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주거지에 대한 기록이 명시돼 있어 행정의 능률화를 이룰수 있게 됐다.
▶ 캄보디아 내전 격화(1971)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1971년 오늘.시아누크를 지지하는 크메르루즈군이 론놀정부군에 대대적인 공격에 나섰다.일년전인 1970년 론놀이 이끄는 우익 군부세력의 쿠데타로 반공친미 정권이 세워 진 캄보디아!크메르루즈군 등 좌익세력의 끊임없는 저항에 부딪친다.1975년 4월 마침내 시아누크를 지지하는 크메르루주군이 프놈펜을 점령하고 좌익 정권을 세운다.
▶ 프랑스 사회당 전당대회(1977)
총선거를 위한 프랑스 사회당 전당대회가 열린다.사회당원들의 열렬한 환영속에 등장한 미테랑 서기장!
8개월전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총선거까지 몰고가 프랑스를 개혁하자고 열변을 토한다.공산당과의 제휴를 통해 좌파진영의 다수당 확보에 성공한 미테랑!4개월 뒤의 총선거에서 중도우파의 압승으로 미테랑은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만다.
▶ 독일 철강회사 창립기념행사(1961)
1961년 오늘!독일의 철강회사 크루프사가 창립 15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 잔치를 펼친다.
1811년 독일의 에센에서 프리드리히 크루프가 설립한 크루프사!
크푸프사는 전후 서독의 재건에도 커다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신청
1997. 11. 211997년 11월 21일 한국은 금융, 외환 시장이 불안해지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1995년 하반기 이후 하락세를 보여온 한국 경제는 한보·삼미·진로·기아 등 대기업의 연이은 부도로 1997년 4/4분기 이후 급락 추세를 보였다. 여기에 기아사태의 장기화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 가속, 인도네시아와 타이의 외환위기로 인한 해외투자가들의 아시아 지역에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외국인 증권투자) 축소, 정부부처·정치권 간의 갈등으로 인한 금융개혁법안 처리 지연 등이 겹쳐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신인도가 급속히 떨어졌다. 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100억 달러에 가까운 외환을 소모했음에도 금융·외환 시장이 계속 불안해지자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문제는 12월 3일 IMF와의 협상이 타결되고 구제자금이 들어오면서부터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외환보유고는 정부발표보다 적고 외채는 훨씬 많았다. 국가부도 위기가 고조되고 금융시장은 기능이 마비되는 신용 공황상태에 빠졌다. 구제금융에 대한 과제는 곧이어 출범한 김대중 정부로 넘어갔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1년 반 만에 이른바 IMF 위기에서 벗어났으나 집권 중반에 들어 현대건설, 대우자동차 등 기업 부실로 인한 경제 위기에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기구를 이용한 최초의 유인비행 성공
1783. 11. 211783년 11월 21일 기구를 이용한 최초의 유인비행이 행해졌다. 장 프랑수아 필라트르 드 로지에와 프랑세스 로랑 아를랑데 후작이 몽골피에 기구로 파리를 횡단한 것이다. 이들은 양모와 짚을 태워 23분 동안 약 9㎞를 비행했다. 그해 12월 물리학자인 J. A.C. 샤를과 니콜라 루이 로베르는 수소를 넣은 기구로 2시간 동안 비행했다. 유인비행에 앞서, 1709년경 브라질의 바르톨로미 로렌소 데 구스망에 의해 최초로 기구의 실험이 있었고 프랑스 앙노네의 조제프 몽골피에와 에티엔 몽골피에 형제는 1783년 6월 4일 무인기구로 2.4㎞ 이상 비행한 뒤 9월 19일 더 큰 기구에 양·닭·오리 등을 태워 띄운 바 있었다. 기구는 군대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나폴레옹은 전투에서 관측용 기구를 썼으며 미국 남북전쟁과 제1, 2차 세계대전 때도 기구가 이용됐다. 과학계에서는 1911~12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인 V. F. 헤스가 우주선(宇宙線)을 증명하기 위해 기구를 5,000m 상공까지 올려보내는 대담한 실험을 했다. 1931년 5월 스위스의 물리학자이며 교육자인 오귀스트 피카르는 기구에 여압실을 설치해 세계최고의 고도비행기록을 세웠다. 기구는 스포츠용으로 인기가 있었다.
◆볼테르 Voltaire1694년 11월 21일 태어남 / 1778년 5월 30일 죽음
볼테르, Nicolas de Largilliere가 그린 초상화를 보고 그린 작자 미상의 초상화(1718), Chateau de Versailles 소장 "사람들은 늘 미쳐 있다. 그리고 그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가장 미친 사람들이다."
- 볼테르, 1762
볼테르는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극작가·역사가·철학자·소설가이다. 프랑스 명문 귀족과의 결투 사건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영국 망명길에 올라야 했는데, 이 일로 전제정치와 불평등에 대해 깨닫고 망명과 저항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는 <철학서간 Lettres philosophiques>(1734)에서 영국을 정치적·종교적·철학적인 자유국가로 소개했는데, 이는 전제주의와 가톨릭교에 대한 최초의 폭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훗날 <신앙자유론 Traite sur la tolerance>(1763)·<철학사전 Dictionnaire philosophique>(1764)에서 더 직접적으로 가톨릭 교회를 공격했다. 또한 <자디그 Zadig>(1747)·<캉디드 Candide>(1759)·<어수룩한 사나이 L'lngenu>(1767) 등과 같은 철학적 소설에서는 사회의 불의, 형이상학적 낙관주의, 정치의 부패 등을 고발했다. 오늘날까지 읽히는 작품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18세기 유럽의 전제정치와 종교적 맹신에 저항하고 진보의 이상을 고취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참고> 토머스 그레셤 사망(1597.11.21)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0711/e2007112017284363820.htm
<참고> 나폴레옹, 대륙봉쇄령 선포(1806.11.21)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1526&yy=2006
<참고> 뉴욕 베라자노 대교 개통(1964.11.21)
http://www.donga.com/fbin/moeum?n=dstory$c_134&a=v&l=0&id=200711210115
<참고> 주민등록증 첫 발급(1968.11.21)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0849&yy=2007
<참고> IMF 구제금융 공식 요청(1997.11.21)
http://www.knnews.co.kr/news.asp?cmd=content&idx=599177이 게시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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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08년도 반이 지나 7월을 맞이하였습니다. 금년 목표를 되돌아보고 추스려서 남은 반년동안 충실히 달성하겠습니다. 오늘의 관심뉴스는 장애 예술인들의 봉사활동에 관한 기사입니다. 장애 예술인들의 감동적인 공연으로 좌절과 실의에 빠진 비장애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겠다는 취지로 펼친 봉사활동.. 이들의 활동을 순수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인정해 줄 때 이분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아울러 우리 사회 장애인들의 예술활동이 더욱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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