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펜싱 팀을 동남아시아 최강으로 성장시켰던 45년 경력의 펜싱계 대부 정충회 감독은 오랜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난 해 1월 쿠알라룸푸르 스캄봇에 <정 펜싱아카데미>를 오픈하고 한국 및 말레이시아 유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
<정 펜싱아카데미>에서 훈련받는 선수들은 2011년 말레이시아 전국체전(SUKUMA)에서 개인전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 그리고 단체전에서 은메달 1개를 획득하는 등 정 감독의 집중 훈련 속에서 전국 우승권을 휩쓸고 있는 말레이시아 국가대표 선수들을 가볍게 물리치는 쾌거를 올린 바 있다. 그 가운데 지난 3월30일부터 4월1일까지 한국에서 개최되었던 한국유소년 펜싱선수권대회(13세 이하)에서 정 감독에게 지도받고 있는 김태환 선수(가든국제학교)가 금메달을 획득하여 한국 꿈나무의 우승을 오랫동안 숙원하였던 정충회 감독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
말레이시아에 정착해 살면서 말레이시아 올림픽 위원회 고문, 평통자문위원, 한인회 고문 등을 맡고 있는 정충회 감독은, 지난 1987년 국내에서의 다양하고 화려한 경력을 밑천으로 대만 국가대표 펜싱 팀 감독을 거쳐 16년 동안 말레이시아 국가대표 펜싱 팀 감독으로 활약하면서 말레이시아의 펜싱계 대부로 불리고 있다.
그는 당시에 대하여 “동남아시아 펜싱 경기대회에서 지도하던 림 선수가 말레이시아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 후 림 선수는 호주 정부로부터 전격 스카우트되었고 그의 가족 모두도 초청되어 호주로 이주를 하였다. 몇 년 후 싱가포르 대회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는 호주 펜싱팀의 단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 대회에서 그가 지도하는 호주팀과 내가 지도하는 말레이시아 팀과 한판 승부를 겨루기도 하였다. 지금도 말레이시아 펜싱계에서 활약하는 감독 중 90%가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이다”라고 회상하며, “정성을 쏟았던 제자들이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고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고 전했다.
또 펜싱 지도자로서 정충회 감독은 “말레이시아에서 거주하는 동안 한국의 꿈나무들을 지도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그는 “한국학생들은 말레이시아에 머무는 기간이 짧아 배울 만 하면 고국으로 돌아가버리기 때문에 애써 이루어 놓은 지도의 보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 이유로 오직 말레이시아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정말 열심히 그리고 힘껏 지도하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었던 것 같아 후회된다”고 말했다.
그는 “펜싱은 귀족 스포츠다. 한국의 펜싱도 걸음마 단계이고 말레이시아 역시 저변 확대가 필요한 종목이다. 펜싱은 팔 동작, 칼 놀림 그리고 뇌의 명령 삼박자가 민첩하게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 신체균형, 예감력 등을 발달시킬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명문 대학의 경우 펜싱 특기를 가진 학생에게 입학 가산점을 주는 등 펜싱은 인기 있는 특기적성 종목 중에 하나”라고 강조했다.
1966년도부터 펜싱 지도자로 살아온 그는 배우는 학생들의 숨소리만 들어도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지도 비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믿음이다. 내가 학생에게 믿음을 주어서 그 학생이 나를 믿고 따라 오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학생과 내가 서로 믿음이 생겼을 때 지도의 효과는 그 배를 더한다” 그 결과 정충회 감독에게서 펜싱을 배운 학생은 말레이시아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휩쓴다는 전통을 만들어 놓았다.
그가 2014년 한국 인천 아시안 게임 홍보대사로 공식 임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해외생활을 시작하기 전 인생의 절반을 보낸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인천에서 그는 인하여자 중 고등학교, 인천체육대학 등에서 후학을 지도하였으며 인천체육회 전무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인천체육계의 발전을 위해 애써왔다.
“말레이시아에서 지도하는 국가 대표선수들을 이끌고 2014년 인천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그 옛날 가르쳤던 한국 제자들과 한 자리에 모여 따뜻한 만남을 갖는 것이 꿈입니다” 정충회 감독은 펜싱과 함께라서 오늘도 행복하다.
(코리안프레스 최정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