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이라고 말씀드려야 하나요? 사실 좀 바쁘기도 했지만, 지난 번에 식초에 절어 주접을 떤 것이 영 민망했거던요. Nomore니 뭐니 해 가면서 ---. 점잖은 분들 앞에서 얄팍한 속내를 들어낸 것 같아서 원---. 원영이 빈정거리는게 눈 앞에 서언 하더라구요.
그건 그렇고, 성열훈君. 그 친구 정말 대단하더군요. 잘 못 들었었다구요? 천만에요. 순간의 기지로 그 포복절도할 위트를 생산해낸거죠. “eye”를 “I”로 치환하니, 아니 그렇게 뜻이 바뀔 수가? 寸鐵殺人, 아니, 寸舌殺人이더군요. 까페에서 단골손님들 대상으로 시상하는 기회가 있다면 단연 1/4분기 최고영예의 대상을 주어야 할 것 같아요. 가사, 고담준론상에 김영수, 최고 도우미상에 개뿔, 뭐 이런 식으로 시상한다면 말이죠. 또 건방을 떨었군요. 정회원도 아닌 주제에.
제 주제엔 역시 신변잡사 너스레가 제 격이겠죠?
歸家
저녁엔 집에 돌아 옵니다. 집? 세수하고 밥먹고, 옷 갈아입고, 잠자는 기능(?)에 엄격히 한정되어 있습니다마는 그렇다고 집이 아닌가요? 분명히 삭월세 내고, 나 혼자 살고 있고 –- 그러니 내 집임에 틀림이 없죠. 돌아 옵니다? 누가 만든 말인지 참 잘 만든 말이에요. 시계바늘처럼 돌아 옵니다. 도대체 샐 데가 전혀 없거든요. 술? 가시나? 여긴 이슬람국갑니다. 淸淨하다는 뜻의 파키스탄이거던요.
차가 도착하면 대문이 크게 열리면서 경비원과 쿡이 하루 종일 뵈옵고 싶었었다는 듯이 반색을 하면서 맞아 줍니다. 차문 열어주는 놈, 가방 들어주는 놈, 현관문 열어주는 것 까지 경쟁하듯 합니다. 그런데, 압권은 이 경비가 하는 인사말입니다. 꼭 ‘Good night’ 이에요. 처음엔 약간 어색했는데 듣다 보니 뭐 이상할 게 하나도 없더라구요. 아침에 만나면 ‘Good Morning’하잖아요? 낮에 만나면 ‘Good Afternoon’, 저녁에 만나면 ‘Good Evening’, 그러니
오밤중에 만나면 ‘Good Night’이 당연하잖아요? “Good Night! How are you?” 멋있잖아요?
헤어질 때도 ‘Good Morning’ 또는 ‘Good Afternoon’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I bid you) good morning!” 뭐가 잘 못 됐죠?
하기사 옛날에 어떤 선배가 精神一到 何事不成을 사람들이 ‘죽어라 파고들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냐’라고 해석하는데 왜 이것을 ‘아무리 기를 써도 하나도 되는게 없더라’하고 해석하면 왜 안 되느냐고 너스레를 떨던 것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저녁은 주로 회사에서 먹기 때문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쿡의 입장에서는 저의 귀가시간이 즉 퇴근시간에 해당합니다. (예의 그 Bojiya후임인 이 친구는 저의 집에서 10분 거리에 자기 집이 있기 때문에 출퇴근을 합니다) 이 친구 퇴근전에는 온 집을 헤매면서 문이란 문은 꼭꼭 걸어 잠급니다. 작아도 개인주택이기 때문에 창문까지 모두 11개에요. 이 친구가 잠그고 나면 경비가 들어와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합니다. 이제 완전히 물샐틈 없이 완벽히 외부와 격리되는거죠. 그리고 나선 경비가 총을 어깨에 맨 채 밤새고 집주위를 돕니다. 처량하게 안방에 들어 와 문을 잠그면 완전히 이중, 삼중으로 갇히는 거죠. 감옥이 별 건 가요? 달만 봐도 비감해질 때가 있다니까요, 글쎄. 저의 집 주소가 628Z Defense예요. 바꿔 말하면 감방 번호죠. 囚人번호는 0425884076이예요. 제 핸드폰 전화번호가 외부에서 저를 부르는 유일한 번호거든요. (전화도 있습니다마는 인터넷에 연결시키느라고 단절된 상태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하긴 해요. 제 팔자에 감옥 運이 있나봐요. 제가 조금만 더 運이 나빴더라면 지금 어디 안양교도소쯤에서 박지원이랑 ‘어, 박형, 당신 녹내장이야? 난 백내장이야, 당신 녹내장이 조금만 빨리 왔어도 삼성에서 치료비로 병원 한채는 사 줬을텐데, 거 안됐구먼’하면서 놀구 자x졌을 수도 있었잖아요? 한국에서 감옥을 면하고 멀리 이 곳 파키스탄이란 데에 영락없이 圍離安置 되어있는 셈이죠.
起床
起床이 감옥용어로 맞나요? 5시면 기상합니다. 看守의 구령이 아니라 옆집 할아범 치통앓는 소리, 아니 꾸란낭송에 눈을 안 뜰 도리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 예배를 볼려면 자기 혼자 조용히 좀 하지, 뻑하면 마이크까지 동원하기도 합니다.
出勤
밥이랍시고 빵 두어쪼가리 우물우물 우겨넣곤 출근을 합니다. 물론 예의 그 경비원의 깍듯한 ‘Good Morning’이란 작별인사를 받으면서 말이죠. 척 뒷자리에 걸터 앉으면 운전수의 상황보고가 시작됩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이 녀석은 당연한 임무인듯 꼭 간밤의 사정을 청산유수로 진행합니다. 청산유수냐구요? 그렇습니다. 영어 단어 몇개만 가지고 그렇게 할 말 다하는 놈 정말이지 처음 봤어요. “yesterday night, alibaba bus come, money give, handphone give, gentleman and lady cry and cry. Police come, check, check. You sleep, I wait.” 말하자면, “어젯밤에 회사버스에 강도가 침입하여 승객들 금품과 핸드폰등 소지품을 강탈해 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승객들이 회사로 와서 엄청난 항의를 했으며 현재 경찰에서 조사를 진행중에 있습니다. 어르신께서 주무시는 것 같아 계속 기다리다가 지금에서야 보고를 드리게 됐습니다.” 이런 뜻이죠.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이 나라에선 알리바바가 도둑, 강도를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한국회사에서 11년간 눈치밥을 먹었으니 오죽하겠어요? 語順도 한국말 그대롭니다. ‘me home go’ 저 집에 갑니다. ‘I go home’이 아닙니다. ‘wife, yesterday, boy have yes. Me happy. Father happy. Everybody happy happy’ “저의 집사람이 어제 남자애를 출산했습니다. 저도 정말 기뻤고, 아버님이랑 집안 식구들 모두 아주 기뻐하고 있습니다.”
‘You office go, Slamat TV see. Slamat bread have yes. You cry have yes.’ <Slamat>란 우리 집의 쿡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죠. ‘어르신께서 사무실로 출근하시고 나면 슬라마트란 놈은 일은 안 하고 허구헌 날 TV만 보고 있습니다. 가끔은 어르신드실 빵까지도 슬쩍하곤 하는 모양입니다. 한번 야단을 좀 치셔야겠습니다.’
事務室
업무얘기야 할 것 있나요? 엄살이나 떨어야죠. 다른 건 몰라도 정전이 잦아요. 이나라 수력이 풍부해서 전력생산은 괜찮다던데 그놈의 송,배전시설이 엉망이라는 거예요. 하루에도 서너번은 전기가 나갑니다. 더운건 두번째예요. 제 방 바로 뒤에 발전기가 있는데 이놈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워낙 소리가 커서 두통까지 나곤 합니다. 바꾸거나 방음설치를 할려면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니, 肝이 작아서도 못 하겠고. 좌우간 고질입니다.
職員들
한국인들 얘기야 할 것 없겠고—현지인들 얘기나 해야겠죠. 관장하는 업무에 대해서 우리와는 – 적어도 文科출신과는 – 달라요. 우리나라 회사에선 영업하다가 관리도 맡도, 심지어 기술직업무라 할 구매도 맡고 그러잖아요? 여기 애들은 자기 전문분야가 아니면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경리면 경리, 영업이면 영업, 한 분야만 합니다. 전문분야에 대한 경력관리가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그러다 보니 영업하던 놈 이직하거나 하면 천상 외부에서 영업전문가란 놈을 데려올 수 밖엔 없어요. ‘야, 이 친구야, 다른 업무도 하다 보면 네 시야도 넓어지고 또 승진의 가능성도 커지잖아?” 아무리 해도 이것만은 막무가냅니다. 언제고 회사에서 짤리면 다른 곳에 가서 경력을 들먹여야 하는 모양이에요. 비단 이 나라만 이런 것은 아니겠고 영미계통 나라들의 공통된 관습이겠죠. 어떤 제도가 좋은 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 다음은 다시 歸家입니다. 정확히 반복됩니다. 환장할 일이죠.
추신:
저 이번 주말에 서울갑니다. 출장은 아니고 금년초에 갑자기 얻은 백내장때문에 수술받으러 갑니다. 월요일 (17일) 부터 사흘간 입원해야 한답니다. 토요일 (15일)쯤 서울에 도착할 것 같은데 수술후론 음주가 엄금이라니 불행히도 여러분 뵈올 수 있는 날짜는 일요일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귀찮죠? 그래도 제 마음은 벌써 여러분옆에 가 있답니다.
첫댓글백내장탕은 어떻게 끓이는 건가? 거기선 청룡체육관 안다니나보지? 이번에 오면 내가 책을 한 권 선사하지.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인데 옛날에 일어판 중역으로 "인생독본"인가 하는 제목으로 나왔던 건데 나이들어 읽어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 살아서만 돌아와 다오.ㅋㅋㅋㅋㅋ
첫댓글 백내장탕은 어떻게 끓이는 건가? 거기선 청룡체육관 안다니나보지? 이번에 오면 내가 책을 한 권 선사하지.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인데 옛날에 일어판 중역으로 "인생독본"인가 하는 제목으로 나왔던 건데 나이들어 읽어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 살아서만 돌아와 다오.ㅋㅋㅋㅋㅋ
라호리, 영 침묵할 줄 알았는데, 나타나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