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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4 - 이즈 슈젠지온천의 강을 지나 대나무숲에서 이즈의 무희를 생각하다!
2019년 4월 10일 가케가와 掛川(괘천) 에서 시즈오카를 거쳐서 도카이도(東海道 동해도)
시미즈(淸水 청수) 에 내려 미호노마츠바라 三保松原 (삼보송원) 해변에서 눈을 인
후지산을 구경 하고... 후쓰(普通 보통) 열차를 타고는 미시마(三島 삼도) 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 하고는 사철 이즈 하코네 철도 를 타고 수선사 修善寺 역에 도착해서는
1번 정류장 에서 버스를 타고 슈젠지온천 修善寺温泉 에 도착해 슈젠지 修善寺 절을 찾습니다.
시간이 오후 5시 10분이라 절의 대문이 닫혔기로 옆 골목으로 올라가서 절의 옆구리
로 들어가니 다행히 여긴 담이나 문이 없는지라..... 절 내부를 잠시 둘러보며
구경을 합니다. 여기 슈젠지 온천 Shuzenji Onsen 修善寺温泉(수선사온천) 은
가쓰라강가에 있는 온천으로..... 슈젠지 는 일본 헤이안 시대 불교 승려였던
고보(홍법) 대사 (弘法大師) 에 의해 807년에 창건된 오래된 사찰 이라고 합니다.
경내에도 온천수 가 나오기 때문에 몸의 부정을 씻을 때도 온천수를 이용 한다고 하네요?
돗코노유 는 강가에서 병든 아버지 몸을 씻기고 있는 아들을 모습을 본 흥법대사
가 감동하여 손에 들고 있던 돗코로 강바닥을 치자 온천수가 솟아 올랐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오늘 늦은 시간임에도 바로 강가 돗코노유 온천 에는 위쪽과
아래쪽 2군데에 중국인 단체들이 양말을 벗고는 들어가 족욕을 하는 모습 이 보입니다.
슈젠지 가 속한 이즈(伊豆 이두) 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몇년 전에 아타미의 호텔 에 숙박하면서 오도리코( 踊子) 열차 를 타고는
이즈 반도 남단의 시모다(下田) 까지 왕복하면서..... 이즈를 몸으로 겪는
나로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와 나쓰메 소세키 에 백석...... 세 사람이 떠오릅니다.
여기 이즈(伊豆 이두) 시의 슈젠지 온센 (修善寺 溫泉) 은 오랜 역사 를 지닌
덕분에 과거 부터 유명세 를 탔으니 노벨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는
“이즈의 무희” 라는 소설에서 여기 슈젠지 온천을 세세히 묘사 하기도 했습니다.
소나기 지나간 고개의 찻집에
맑은 동반자 여행의 하늘
귀여운 무희 북을 들고
걸어 가는 길에 흰 꽃
오늘 잠자리는 온천의 여관인가?
하얀 욕조에 물드는 살갗
귀여운 무희 연회석에 둘러싸여
샤미센과 북, 미닫이 창문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어리지만
검은 머리 엷은 화장
귀여운 무희가 고개를 갸웃
웃는 눈언저리의 부끄러움
배가 떠나가는 시모다의 바닷가를
또 만날 날은 올까
귀여운 무희 가볍게 흔드는 손가락에
흘리는 눈물도 붉은색
- 영화 “이즈의 무희”에서 야마구치 모모에가 부른 주제가 -
허연 씨에 따르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이즈의 무희 (伊豆の踊子)”를 1974년에
니시카와 가츠미 감독이 영화로 만들때 여주인공 가오루 배우는 야마구치 모모에
(山口百恵) 인데.... 그녀는 이 영화로 스타 반열 에 까지 올랐으며 훗날 남편이
된 기무라 도모카즈 와는 이 영화에서 함께 주연을 맡으며 교제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6년후인 1980년 야마구치 모모에 는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은 은퇴 선언 을 한 직후
부도칸에서 마지막 공연 을 하니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은퇴 공연은
눈물바다 였으니 함께 출연한 동료 가수들도 공연 내내 눈물을 닦았다는데....
그만큼 그녀의 은퇴 는.... 당시 일본 대중문화계에 엄청난 상실감 을 안겨 줬습니다.
그런데 은퇴 당시의 나이는 불과 21살 이라? 최전성기를 누리던 21살짜리 대형
가수의 은퇴 선언에 일본은 떠들썩 했으니.... 그런데 허연씨의
말에 따르면 은퇴 공연에서는 21살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녀의
처연한 눈빛이 놀라웠다는데 산전수전을 다 겪어낸 초월자의 눈빛 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런 처연한 눈빛으로 '안녕의 저편' (さよならの向う側) 이라는 노래를
불렀으며 노래를 끝맺으며 "제멋대로인 절 용서하세요. 행복하겠습니다"
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무대를 영영 떠났는데.... 그녀가 은퇴를 선언한 건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미우라 도모카즈와의 결혼생활에 충실 하기 위해서 였다나요?
14살 나이에 연예인 발굴 프로그램에 입상하면서 연예계에 데뷔한 그녀는 우수어린 한을
담은 허스키 목소리, 나쁜 소년 같은 중성적 매력, 화려하면서도 슬픈 외모 에
사람들은 매료됐는데, 당시 일본 대중문화 유입을 금지한 한국에서는 잘 몰랐지만
중국과 대만, 홍콩 에서 인기는 대단했으니 매염방이나 장국영은 그녀의 광팬 이었습니다.
허연씨는 송풍수월에서 그녀가 한국계 라고 말하는데... 그녀보다 먼저 일본열도를 뒤흔든
1세대 대형가수 미소라 히바리 가 그랬듯 2세대 여왕 이었던 그녀도 한국계라는
설이 유력한데... 모모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으니 그녀는 가정에 불성실한
한국계 아버지 와 병든 어머니, 그리고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소녀가장 이었답니다.
조선시대말 부터 구한국말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후 가난했던 질곡의 시절을 살아
오면서 소설에 보면“한국 아버지 = 무능하고 불성실한 가장, 어머니 함티 장사”
라는 이미지는 도식화 되어있는데 허연씨는 비로소 그녀의 처연한 눈빛 이 이해가
됐으니 그녀가 그렇게 빨리 스포트라이트를 내던지고 가정을 꾸리는데 집착한 이유 라...
"시모다 바닷가를 또 만날 날은 올까 / 귀여운 무희 가볍게 흔드는 손가락에 /흘리는 눈물도 붉은색"
이라는 대목은 야마구치 모모에 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음색으로는 소화할 수 없을 듯한
어떤 절대미 가 느껴진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의 출세작인 '이즈의 무희' 는 '설국'
만큼이나 하고 싶은 말이 넘쳐나는 소설이니 야마구치 모모에 이야기는 그 시작에 불과합니다.
'설국' 은 늘 첫 문장이 화제 가 됐지만 '이즈의 무희' 는 마지막 문장이 압권 이라 합니다.
"배에는 생선과 바다의 냄새가 물씬거렸다. 어둠 속에서 소년의 체온이 느껴지며
나는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 두었다. 머리가 온통 맑은 물로 변했고,
물이 주르르 흐른 뒤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 듯 달콤한 쾌감 이었다."
'이즈의 무희' 는 야스나리 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으로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야스나리의 대표작 으로 꾸준히 거론되니 1920년 '초혼제 일경(一景)' 으로
등단을 하기는 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고.... 초기작인 이 작품이 이후
펼쳐질 야스나리 문학 세계의 예고편 성격 을 띠고 있기 때문 이라고도 합니다.
야스나리 는 1926년 '문예시대' 에 '이즈의 무희' 를 발표했는데 그 전인 1919년
교우회 잡지에 이즈반도를 여행한 글을 실었고, 1922년 '유가시마의 추억'
이라는 또 다른 글을 통해 '무희' 의 존재를 다시 언급하니 이런 사실로
미루어 야스나리는 1919년 무렵부터 이 소설 구상 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무살 주인공 '나' 는 이즈반도로 여행을 떠나는데 뒤틀린 성격을 고치고, 태생적인
우울감으로 부터 벗어나고자 떠난 여행이었는데 우연히 유랑극단 일행 을 만나
동행을 하니 가족 중심으로 구성된 유랑극단에는 14살짜리 무희 가오루(薫) 가
있었는데 가오루를 지켜보면서 야스나리는 자신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 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이 소녀가 몸을 파는 여자 가 아닌지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소녀의 티 없이 맑은
성정을 느끼면서 의심과 우울감도 사라지는데 순간 순간 가오루가 보여주는 작은
관심은 일그러진 성격을 밝게 만들어주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 가오루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네" 라고 나를 평하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느낌 이라!
하지만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 에서 벌어지는 둘 사이의 애틋함 은 오래가지 않으니
야스나리는 도쿄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인데.... 일행이 시모다 항구 에
도착한 날 야스나리는 도쿄행 배 에 오르는데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이면서 서 있고...... 야스나리는 선실에 누워 눈물을 흘립니다.
이런 줄거리 때문에 혹자들은 '이즈의 무희' 를 '일본판 소나기'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직 연정이나 욕망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설렘' 으로 그려내는 부분은..... 두 작품이 흡사 하며 차이가 있다면
'소나기' 는 죽어서 이별 하고 '이즈의 무희' 는 살아서 이별 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즈의 무희' 는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 의미를 더하는 상징으로 가득한 소설 이니
유랑 가무단 소속의 타비게닌 (旅芸人) 5명의 리더인 어머니와
큰딸인 치요코, 치요코의 남편인 에이키치, 작은딸인 14살짜리
카오루, 그리고 구성원 중 유일하게 가족관계가 아닌 17살 유리코가 있습니다.
소설은 '나(야스나리)' 와 유랑가무단이 아마기 고개에서 우연히 만난 후 동행하는 이야기
인데, 그중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여행중 나와 카오루의 관계를 묘사한 부분이니 두
주인공이 미성숙한 호감과 연정 같은걸 느껴가는 과정은 소설의 중심 이미지를 구성합니다.
주인공 '나' 는 아마기 찻집에서 카오루를 처음 봤을때 그녀에 대해 불순한 마음을 갖는데
실제보다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다가 최하층 천민인 타비게닌 에 속한 여인을
윤락 여성 처럼 대하는 분위기 때문인데 온천욕을 하던 카오루 가 자신을 발견하고
알몸으로 뛰어 나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는 그녀가 순수한 아이 였음을 깨닫습니다.
"어두컴컴한 욕실 안쪽에서 갑자기 발가벗은 여자가 달려 나오는가 싶더니,
탈의장 끄트머리에서 냇가로 뛰어내릴 듯한 모습으로 서서는
양손을 번쩍 들고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수건도 걸치지 않은 맨몸 이었다.
그게 무희 였다. 어린 오동나무 처럼 보기 좋게 쭉 뻗은 하얀 몸을 바라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깊은 숨을 내쉬고 나서 킥킥
웃었다. 어린애였다." 카오루를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처녀 로 생각하고
욕심으로 들끓던 나는 이 장면 이후 달라진다. 속세의 사랑이 정신적 사랑
으로 옮겨갔으며 순수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유랑가무단과의 동행을 받아들이게 된다.
"무희가 아래층에서 차를 날라왔다. 내 앞에 앉더니, 새빨개지면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손이 떨려서 잔이 차 받침에서 떨어지려고 하자 급하게 다다미에 내려놓는 바람에
차를 엎지르고 말았다. 너무나 심하게 수줍어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처음엔 멀찌감치 앉아서 손을 길게 뻗어 돌을 놓더니 점점 자신도 모르게 바둑판
위로 몸을 기울여 왔다. 아름다운 머리칼이 내 가슴을 스칠 정도가 됐다.
그 순간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더니 "실례하겠어요. 야단맞으니까요"
하면서 돌을 내던지고는 뛰쳐나갔다. 공동탕 앞에 어머니 가 서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은 좋아." 주인공은 자신이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보편적인 의미로 좋은 사람임을 카오루의 말을 통해 신내림 받듯 깨닫는다.
카오루는 자신의 서툰 애정 표현으로 한 남자의 영혼을 구제해 주고 있는
것이다. 푯말에는 '거지와 유랑가무단은 마을에 들어오지 말 것' 이라고 써 있다.
"꼬불꼬불한 산길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야마기 고개에 다가왔구나 싶을 무렵, 삼나무
밀림을 하얗게 물들이며 매서운 속도로 빗발이 산기슭으로 부터 나를 뒤쫓아 왔다."
소설의 첫 장면에 나오는 아마기 터널 은 아마기산(天城山)에 있다.
해발 830 미터의 아마기 고개를 관통하는 터널이 건설된 것이 1905년 이었다.
"컴컴한 아마기(天城) 터널 속으로 들어가자 차가운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남이즈로 나가는 출구 가 앞쪽에 조그맣게 뚫려 있었다."
물론 소설 속에 등장하는 노파가 운영하는 찻집은 지금 없다. 하지만
나머지 풍광은 110여년전 야스나리가 지나쳤을 때 모습 그대로 여행객을 맞는다.
터널을 지나 내려가면 7개의 폭포 가 연이어 있는 가와즈 시치타키 가 시작되는데 4번째
폭포인 쇼케이(初景) 앞에는 두 주인공의 동상 이 서 있다. 이즈반도 곳곳에
'이즈의 무희' 관련 동상 이 있지만 여기에 있는것이 가장 유명하다. 폭포를 배경
으로 가오루 가 새침하게 앉아있고 그 모습을 남자 주인공이 잔잔하게 바라보는 모습이다.
슈젠지 온천 의 남쪽에 유가시마(湯ヶ島溫泉) 온천이 있으니 가오바타 야스나리 소설
'이즈의 무희' 무대 였으며 그가 체류하면서 소설을 썼던 여관 '가와바타노야
유모토칸' (川端の 宿 湯本館) 이 있으니 야스나리는 처음 이즈반도를 여행했던
1918년 이후 '이즈의 무희' 가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 매년 이곳에 들렀다 합니다.
여관은 에치고유자와의 다카한 과는 달리 거의 완벽하게 100년 전 모습을 간직
하고 있으니 다카한이 화재 때문에 재건축을 하면서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린 반면 유모토칸은 그때 건물이 그대로 있는데다가 주변 풍광도
달라진게 없어서....... 아주 생생하게 소설의 분위기를 접할 수 있다고 합니다.
" 무희는 아직 술자리에 앉아 북을 치고 있군. 북이 그치면 견딜수가 없었다. 나는
빗소리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덧문을 닫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가슴이
답답했다. 또 탕에 들어갔다. 비가 그친 뒤 달이 나왔다. 비에 씻긴 가을밤이
청명하게 밝아졌다. 맨발로 욕조를 빠져나왔지만 뾰족한 수도 없었다. 2시가 넘었다."
정화된 '나' 는 불쌍한 노파와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낯선 사람들의 부탁에 기꺼이 응하고,
김초밥을 나누어 주는 처음 보는 소년의 호의도 순순히 받아들일 만큼 성숙한
인물이 되어 도쿄를 향해 떠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로 다 녹아들어 받아
들여졌다" 는 소설의 구절은 시모다항을 떠날 때 정화의 순간이 그를 찾아왔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처녀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되었으니 함께 발견된
이토 하쓰요 가 보내온 편지에는 "왜 파혼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고 쓰여 있었다. 그가 이토 하쓰요를 만난건 스무살
1919년으로 그녀는 야스나리가 드나들던 도쿄에 있는 카페 여직원으로 당시 14살 이었다.
그녀는 부모를 여의고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 였으니
일찍 부모를 잃은 동병상련으로 두 사람은 마음을 열었고 가까운 사이가 되는데
그러던 중 카페가 문을 닫게 되고 이토 하쓰요는 기후(岐阜)현으로 내려가니
떨어져있기 힘들었던 야스나리는 성급하게 그녀에게 청혼하고 그녀는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16살 이토 하쓰요는 파혼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편지를 보내고 잠적을
해버린지라 야스나리는 기후로 달려갔지만 이미 그녀는 종적을 감춘 뒤였으니
그녀가 왜 그랬는지... 파혼 사건은 야스나리에게 큰 상처로 남기니 그는 죽기 1년
전에 "이유도 모른채, 허무하게 이별한것이 커다란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다."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즈의 무희' 주인공인 가오루가 바로 이토 하쓰요의 분신 일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으는데 처음 만났을때 둘의 나이가 모두 14살 이었다는 공통점도
그렇고... 무엇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토 하쓰요에게서 처음 느꼈던
감정이 소설 속에서 가오루를 향한 감정으로 치환된 것 같다는 이야기 입니다.
또 한가지 공통점은 이토 하쓰요와 소설 속 가오루 둘 다 계급을 넘어선 대상 이었으니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일본 최고 명문 인 도쿄제국대학의 예과생 이었고,
오사카 지방 귀족 가문의 자손 이었지만 이토 하쓰요는 평민 출신의 가난한 카페
여급에 불과했으니 신분제라는 구습의 그늘 이 남아 있던 20세기 초반 일본 사회임에랴?
소설 속 가오루도 계급을 뛰어넘은 연정 인데, 유랑극단에 속한 사람들, 다비게닌(旅芸人)
은 조선의 사당패 처럼 최하층 천민집단 이었으니, 다비게닌은 무사 귀족
승려 아래 계급인 사농공상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불가촉 하층민 인데... 주인공은
신분을 뛰어 넘어 소녀에게 사랑 을 느끼고 자신이 성숙한 인간이 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첫댓글 '이즈의 무희' 를 '일본판 소나기' 라고 부르기도 하는군요.
'소나기' 는 죽어서 이별 하고 '이즈의 무희' 는 살아서 이별 을 한다는 것입니다.
두 작품다 너무나도 슬픈내용인데 우리나라 소나기는 죽어서 이별하니까
더 슬픈내용인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이즈의 무희.....
잔잔한 감동을 조는 소설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