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의 생태이야기(9)
흔적으로 나누는 야생동물의 진실 이야기
1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기온이 조금씩 올라갔다.
따뜻한 햇살의 감촉과 부드럽기까지 한 바람의 속삭임은 나를 세상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아니 자연 속으로 나가서 어서어서 살펴보라 한다. 나무는 잘 지내고 있는지, 봄에 피어날 새순들은 별 탈 없는지 그리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로제트식물(두해살이초본)들이 겨울찬바람과의 싸움에서는 잘 이겨냈는지 등등
서둘러 산림환경연구원에 도착해 숲 안쪽으로 난 길로 걸었다.
의외로 내 눈을 길게 멈추게 한 것은 너구리 발자국과 고라니 발자국이다.
너구리는 개과 동물 중 유일하게 겨울잠을 자는데 온도가 오른 채 몇날며칠이 유지되어서 그런지 분명히 돌아다닌 흔적이었다.
동남산 기슭에서 뻗은 벌판에 자리 잡은 산림환경연구원은 습지를 함께 품고 있다.
물론 마을과도 인접해 있다. 그래서 인지 삵, 고라니, 너구리, 청서(청설모) 등 야생동물들이 자주 내려온다.
이들 중 삵은 멸종위기 2급이고 고라니는 중국과 우리나라 밖에 없는 고유종에 속하며,
너구리는 고라니와 더불어 흔적(발자국, 배설물)이 자주 발견되는 종 이외에는 특별한 자료가 없다.
그리고 청설모는 우리나라 제주도와 섬 지방을 제외한 전국에 분포하며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옛날 우리민족과 함께한 종이다. 외래종은 아닌 것이다.
왜 이들은 벌판과 연결된 산림환경연구원으로 오는 것일까?
물론 숲의 임연부(가장자리)와 맞닿아 있는 마을의 논과 밭으로 더 자주 내려온다.
흔히 뉴스로 통해 듣는 멧돼지의 습격사건 이나 로드킬 즉 야생동물들과 다양한 생명체들이 도로나 길 위에서 당하는 교통사고사망이 생겨나는 이유가 바로 무엇 때문이냐는 것이다.
이쯤 되면 짐작이 될 만한 터 일반적으로 먹이활동 때문인 것이다.
숲에서 천적을 피해 힘겹게 구해야 얻어지지만 인간이 가꾸는 농장에서는 쉽게 얻어지니 위험을 감수해 산허리를 끊어놓은 도로 폭이 아무리 넓어도 가로질러 가는 것이다.
또한 고라니 새끼들조차 낮밤을 가리지 않고 본연의 습성대로 물가를 찾느라 끊어진 서천 물억새 밭에 들킬세라 꼭꼭 숨어 있다.
한 달 반 만에 산행을 했다.
조금 가파른 능선 길에서 담비(멸종위기 2급)와 족제비의 배설물 흔적을 발견했다.
추운겨울 무얼 먹으면서 어떻게 지냈는지 대략 알 수 있을 만큼 배설물에 나타나며 먹이는 거의 정해져 있다.
그래서 이들의 먹이관계에 이상이 생기면 생태계라는 연결고리들이 끊어지는 것이다.
3월까지는 야생동물들의 흔적들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걸어가는 숲길을 스쳐지나가지 않으면......
고라니 뒷발자국
고라니가 뛰어간 발자국
너구리 발자국들
너구리 앞발자국
왼쪽 흰색의 배설물은 족제비, 고욤씨앗이 보이는 배설물은 담비의 것.